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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이런 판결이 나올 거라고 충분히 예상했습니다. 과거 '두근두근 체인지'의 전례가 있기 때문이죠. (두근두근 체인지의 경우 표절 및 도용은 인정받았으나, 이미 다 완성되어 방영이 끝난 드라마이기 때문에 문제를 삼을 수가 없다는 개그성 판결이 나왔었죠. 이게 무슨 정치논리에 의한 과거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을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도 아니고... 웬 시츄에이션인지 원.)

만화와, '어떤 의미에선' 동병상련의 처지인, 게임업계에 속한 저로서는 만화의 저작권이라는 것이 저런 식으로 취급된다는 게 정말이지 한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식으로 보는 것도, 단지 유희로는 인식되어도 문화나 저작물로는 인식되지 못하는 컨텐츠의 비애라고 단정짓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너무 비탄에 빠지게 하는 일입니다. 법으로는 있되 사람들 사이에선 사문화되어 버린 저작권법을 탓하는 것도 제 자신만 비참해지는 일이고요.

주위에 만화를 그리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지망생들도 여럿 보고요. 그런 이들이 이번 판결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요? 상대적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갈 수 있는 다른 곳에 비해 대우 받지 못하든 말든, 자기 하고픈 일을 하는 것으로 낙을 삼는 그런 이들의 처지에서는, '이렇게 되겠지'라는 예상은 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그들과, 만화를 그리고 그렸고 그 만화로 즐거워하는 이들 중 적잖은 사람에게는 이번 판결이 큰 상처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저를 포함해서죠)  그리고 이런 상처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에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솔직히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위스전 이후 '축구는 [오늘... 죽었] 다' 라는 자막이 나갔는데요. 제가 이 판결에 자막을 내보낸다면 '만화는 [오늘... 죽었]다' 쯤이 될 거라면... 너무 비약이 심한 것일까요.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정말 유감입니다.


- The xian -

P.S. 평소에 긴 글을 쓰기를 즐겨하는 제가 자게에 열다섯줄을 채운다는 게 오늘처럼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만큼 이번 일에 대해 하고픈 말은 많은데 가슴이 턱턱 막혀서, 한 번 쏟아내면 무슨 말이 나올줄을 모를 정도로 감정이 격앙되어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렇겠지요......

(그래도 열다섯줄은 채웠습니다. 쌍시옷 섞어 이야기하고 싶은 거 억지로 참아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