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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란트
Date
2006/07/12 20:06:40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20]계란이 먼저일까. 병아리가 먼저일까.
https://cdn.pgr21.com./free2/24291
삭게로!
-BGM-
-Waltz By Suneohair-
-허니 앤 클로버 1기 ED Theme
이제 대학 물 먹는다고 거무튀튀한 교복을 벗어던진 날이 바로 어제 같은데 걷던 길 잠시 멈추고 내 나이를 생각해보면 벌써 그 날로부터 2년이 지났다. 이제는 좀 앞 날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변함없이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놀 수 있으려나 하는 바보같은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다.
지난 한 달 동안 티비만 틀면 줄창 방영되던 월드컵 경기들. 나는 그것을 모두 챙겨볼 만큼의 열렬한 축구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이름 있는 나라의 경기는 몇 번 챙겨보곤 했다. 크게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다만 가끔 나이 어린 선수들이 카메라에 비쳐지면서 해설자들 혹은 방송 자막으로 그 선수들의 프로필을 보거나 듣게 될 때 나는 가끔 티비 채널을 돌리면서까지 그들이 나와 동갑 혹은 한 두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동생 혹은 형 또래라는 사실을 괜한 열등감에 애써 외면하려 했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들과 살아온 근본부터가 틀린 사람인데 내 나이와 비슷한 남자라면 무조건 월드컵에 나가 뛰어야 한다는 법 조항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들에 대해 알게 모르게 열등감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시간의 활용에 있어 내가 보낸 지난 세월에 대한 후회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 또래의 누군가가 뭔가 훌륭한 혹은 주목받는 일을 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굉장히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생각이 삐뚫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싫은 것은 싫은 거다. 그냥 나 혼자 하는 생각이니 그것마저 남들 눈치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고쳐야 하겠지. 언제까지 남들 하는 것만 바라보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깎아내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그 정도까지 바보는 아니니 말이다.
나도 언젠가는 무언가 되겠지. 나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아직은 시기가 아닌 거야. 나는 이 따위 말들로 작아져만가는 스스로를 애써 부추기고 다독여서 다시 걷게끔 만든다. 억지다. 누가 봐도 억지다. 언젠가..아직은 시기가...이 정도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나는 세상의 주목을 받을 정도의 일을 해낼 만큼 노력과 투자를 실행하지 않은 것이다. 나 자신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다 알고 있음에도 아직도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은. 결국엔 또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는 비겁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난 무슨 일을 잘할까. 난 무슨 일을 하고 살게 될까. 난 누구와 같이 살게 될까. 난 돈을 얼마나 벌게 될까. 난 얼마나 내 삶에 만족하면서 살게 될까.
난 왜 태어났을까.
아주 어릴 적 나는 그다지 성격이 활달하지 못했던 탓에 같은 반의 또래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하곤 했다. 그 시절의 행동들이 그렇듯 다가가서 자극을 주고 확실하게 힘으로 그것을 받아치게 되면 그 녀석의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자신과 비슷한 세력(?)의 그들과 힘을 합쳐 더욱 수준이 낮은 자극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 그런 바보들의 욕구 해소에 대한 집중 타겟이었다. 여기에서도 한 가지 변명을 내놓자면 나는 그것을 내가 힘이 없어 받아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였다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무슨 말을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내가 야속했던 것인지 그들의 오기를 자극했던 것인지 그 들 중 하나가 나에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그것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들의 말을 듣고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진지하게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엄마 나는 왜 태어났어?"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어머니는 나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나는 부모님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는 것을 바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 당시에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도 몰랐던 내가 존재라는 꽤나 철학적인 문항에 접근하려 한 것이다. 결론은 아무런 딥도 얻어내지 못했다. 당연하다. 지금까지도 확실히 모르는 그 대답을 그 때라고 알겠는가. 애시당초 잠시 동안 혼란이 생겼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문제였다.
계란이 먼저일까 병아리가 먼저일까. 닭이라는 생명체가 생기기 위해서 우선으로 되어야 할 순서는 무엇일까. 지금 나에게 당신은 왜 태어났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게 답할 것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이왕 태어났으니 그 후에 무얼 이루는 삶이 될 것인지 고민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당연히 나는 그 후자를 택하겠다. 속된 말로 풀어쓰자면 어머니 아버지가 밭 갈고 씨 뿌려서 싹이 났으니 이제 내가 그 싹을 키워서 열매를 맺는게 순서로서 맞는 것이다.
결국에 눈을 감는 그 순간이 되면 나는 어느 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되어 있을것이다. 그것이 해피 엔딩일지 배드 엔딩이 될지는 순전히 내가 하기에 달려있지만 조급해지고 싶지 않다. 급할수록 여유가 필요한 법이다. 타인이 잘하는 일을 저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 하고 극단적으로 볼 이유가 없는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다른 사람은 하는데 나는 못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와 내가 살아온 시간은 명백히 다르다. 그리고 개인의 사상 또한 다를 것이다. 성공이라는 명제는 분명 한 사람의 삶을 따라다닐 것이다. 욕심이라는 부가 사항을 꼭 달고 다니면서 말이다. 혹여나 나보다 먼저 세상에 드러난 인물과 같은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모티브가 자신이 하고 싶어서가 아닌 그의 성공한 모습을 보며 그것을 따라가야겠다는 것이 되면 안되는 것이다. 똑같은 닭이 낳은 달걀이라도, 그 달걀에서 태어나는 병아리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두 같은 종의 닭으로 성장하더라도 분명 각 달걀의 모양은 모두 다르지 않은가.
이제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그 동안 나는 나보다 조금 더 잘생긴 껍질을 가진 달걀들을 부러워했던 꼴이다. 그 껍질이 비록 나의 그것보다 더욱 동그랗고 예쁘게 생겼더라도 그것은 결국 껍질일 뿐 그 알맹이 마저 나보다 앞설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차마 결실을 맺지 못하고 뜨거운 철판 위에 알맹이를 던져 누군가의 식량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못나고 걸음이 더디더라도 결국에 나는 그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게 될 것이고 그것에 충실해야 한다. 같은 색의 파스텔을 도화지에 똑같이 긋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번지게 하느냐에 보는 이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 마냥. 심지어 나는 나와 똑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들과도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지금에 와선 이제 그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그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이라는 명제에 부합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적어도 내 욕심 하나는 채우고 살 수 있지 않은가.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풀리는 것이 없다고 푸념만 늘어놓는 하늘 아래 적어도 그 한 가지 만큼은 세상의 뜻을 거역하더라도 풀어 놓을 수 있지 않은가.
달걀이 먼저인지 병아리가 먼저인가 물어오는 세상 앞에 당당히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 될테지. 나는 꼭 그렇게 멋진 삶을 살아야 겠다는 욕심을 가져야 겠다. 일단은 그게 우선이다.
-참 오랫동안 글을 멈췄습니다. 대학이라는 길을 멈추고 취직이라는 다른 길로 들어선 올 해. 머릿속이 참 복잡합니다. 그래서인지 글 역시 참으로 엉망진창입니다. 아직도 제 호흡은 빠르고 거칠기만합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 싶은 욕심에 부족하지만 쉼터를 만들고 싶어 이렇게 오랜만에 20번째 토막을 내놓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다..하시는 분은 덧글이나 쪽지로 대강의 이야기를 적어주세요. 각자의 사연 함께 공유하고 싶으신 분들도 환영입니다. 아 물론 제보자(?)분의 아이디는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2006. 07. 12. 윤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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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포스
해시 아이콘
06/
07/12 20:08
수정 아이콘
윤여광님 글도 오랜만이네요
좋은 글 한번 보고 갑니다
아직도 그 추게에 갔던 여광님의 수필 두 편이 생각나네요
백두급호랭이
해시 아이콘
06/
07/12 20:19
수정 아이콘
윤여광님 글을 읽을때마다 인생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느낌이에요. 왠지 이런게 나의 생각인 마냥 착각하기도 하고요. 책을 읽어서 하나하나 배울때의 그런느낌. 좋은글 고맙게 보고갑니다.
올빼미
해시 아이콘
06/
07/12 20:22
수정 아이콘
글멋있네요^^.. 여담이자만, 닭과 계란은 계란이 먼저입니다.
진화계통상 조류는 양서류다음이므로..
abraxas
해시 아이콘
06/
07/12 20:32
수정 아이콘
그리도 기다리던 여광님 글이네요
가끔씩 윤여광님 이름으로 검색해서 지난 글들을 되씹곤 했는데...
자주 오셔서 글 남겨주세요 ^^
팬을 너무 기다리게하면 안됩니다
윤여광
해시 아이콘
06/
07/12 20:39
수정 아이콘
abraxas님//패...팬!!
아. 놀랬습니다. ^^. 앞으로 글이 올라오는 텀이 짧아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죄송합니다. ㅠㅠ
XellOsisM
해시 아이콘
06/
07/12 20:44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읽어보는 토막수필이네요.
변함없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햇님가면
해시 아이콘
06/
07/12 20:45
수정 아이콘
생각을 글로 표현하시는 능력이 참 좋으신것 같습니다.
멋진 글 잘 읽고 갑니다.
Judas Pain
해시 아이콘
06/
07/12 20:46
수정 아이콘
안녕하세요 여광님^^ 오랜만에 뵙는군요
흠흠,,, 개인적으로 여광님의 글중 가장 좋아하는 글은 '내 인생 오늘만 같아라' 입니다
그때가 밤 늦은 새벽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처음에 제목하고 반말보고 '뭐야 이 건방진...' 했답니다 흠흠 내가 뭔 애기를 하고 있담 가끔 글써주시면 들릴일 있을때마다 꼬박꼬박 찾아서 읽어볼게요
You.Sin.Young.
해시 아이콘
06/
07/12 20:5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여전히 좋은 글을 쓰시네요.
koel2
해시 아이콘
06/
07/12 21:30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읽는 수필이네요.
머리에 피도 안마른 저지만 저도 가끔 저런 생각을 한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그 일을 찾으면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보겠다구요.
다음 수필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나!!
해시 아이콘
06/
07/12 21:50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보는 여광님 수필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윤여광님 팬입니다^^
hyoni
해시 아이콘
06/
07/12 22:03
수정 아이콘
앗. 여광님 반갑습니다.^^
꼭 멋진 삶을 살아나가실거라 생각됩니다. 이곳에 남겨주시는 글도 그중 하나이겠구요.
신변의 변화와 함께하는 좋은 글, 계속 기대해도 되겠죠? 언제 제보 한번 해봐야겠습니다.^^;
윤여광
해시 아이콘
06/
07/12 22:34
수정 아이콘
hyoni님//움찔!!!제보...라고 하시니 왠지 고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쿨럭^^....저 잘못한거 없어요..ㅠㅠ
Juliett November
해시 아이콘
06/
07/13 00:43
수정 아이콘
오랜만이시네요.. 요즘 들어 이래저래 좀 우울하고 걱정도 많았는데
상큼한 음악과 함께 글을 읽으니 조금은 위로가 되네요..
마치 동네 친구랑 한밤중에 벤치나 놀이터 어디쯤에서 속얘기를 나눈 기분이랄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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