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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28 01:38:27
Name ZolaChobo
Subject [일반]  대출을 거절 당하다
대한민국 공공기관 사이트가 다 그렇습니다만,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건 참 괴로운 일입니다. 보안의 탈을 쓴 수많은 멀웨어를 설치하고 공인인증서를 꺼내 비밀번호를 넣으면 아차, 익스플로러가 아니었지. 처음부터 저 과정을 밟으며 다시 들어가면 땡, 12시가 지났습니다. 대출심사 조회는 평일 9시부터 12시 사이에 해 주세요~☆ ...알바가 저녁 11시에 끝나는 제 입장에선 복장이 다 터집니다. 은행 업무 시간에 맞춰야 한다면 차라리 이해라도 갈 텐데, 단순 조회조차 안 된다니요. 한국장학재단의 홈페이지는 새 나라의 어린이일까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저 친구, 양치는 잘하는지

사실 한국장학재단을 찾는 것이 괴로운 이유가 단순히 귀찮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저 짓을 하고 앉아 있자면 이새x들 일부러 이렇게 거지 같이 만들어 놨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니까, 매번 대출 심사를 받고 소득분위 이의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통보받고 거절 당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곧통 받으며 네 계급성을 다시 상기하라는 높으신 분들의 음모가 담겨있지 않나, 마 그러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대출은커녕 장학 신청도 할 이유가 없는 친구들은 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을 텐데요. 문득 신입생 시절 글쓰기 수업에서 만났던 문과대 그녀가 떠오릅니다. 그날의 토론 주제는 반값 등록금이었죠.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각자의 사정과 말뿐인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있었어요.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왔습니다. '아니 근데 솔직히 등록금은 다들 아버지 회사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요?(웃음)' 그 웃음은 얼마나 해맑던지요. 생각해보면 그때의 전 참 착한 아이였나 봅니다. 지금 제 눈 앞에서 저런 소릴 한다면 오함마로 머가x를... 아...아닙니다. 어쩌면 생활의 무게가 제 성격을 요 모양으로 짓눌러 놨는지도 모르죠. 사실... 매달 초면 뭉텅이로 나가는 차비가 무서워 통장을 미리 비워놓고, 어서 6만 원을 내놓으라는 추심 전화에 시달리는 삶이 해맑다면 뇌 기능을 의심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친구 한 놈이 '(학자금 대출 꼬이면) 감옥 가야 하는 건 아니지?' 라는 소릴 내뱉네요. 하, 안 팔리는 성소수자의 삶에 지쳐 우울증에 걸린 친구이니 그냥 그러려니 합시다. 물론 이 친구의 부친은 잘 나가는 의대 교수시죠. 중학교 친구입니다. 사실 10대에 사귄 제 친구들은 다 배경이 좋아요. 대기업 이사는 기본에 교수, 고위 공무원, 정치인의 장손 등등. 못해도 (전통적 의미의) 은수저는 되는 친구들입니다. 살면서 돈 걱정이야 해봤겠지만 용돈이 부족한 영역이지, 돈 만 원이 나올 구멍이 없어 손을 벌벌 떠는 친구들은 없죠. 그런데 요즈음 취업을 앞둘 나이가 되니 금수저를 욕하더군요. 정확히는 본인들이 중산층이라는 인식이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인들이 다 나 정도는 살았거든요. 은수저는 본인이 은수저인지 모릅니다. 생각해보니 윗 문단의 문과대 그녀도 제가 살던 동네 출신이었죠. 한땐 가족보다도 소중하던 친구들인데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할 말이 없어져요. 함께 조던 리셀 여행을 떠나자는데 저에겐 자본금 30이 없습니다. 애들은 언제나 잔고가 0에 수렴해가는 제 삶을 이해 못 하죠. 이것 참,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

핵심만 간단히 하자면 집이 망했습니다. 아버지는 신불자가 되어 택시를 몹니다. 어머니는 백화점에서 옷을 파세요. 담보물이 경매에서 계속 유찰되어 소득분위는 당당히 10분위입니다. 한 달 소득이 1200 이라나요. 아버지는 구구절절한 진정서를 쓰셨습니다. 물론 재심사에서 바뀐 건 없었죠. 나라가 하는 일이 어째 이모양이냐며 상담원을 잡고 쌍욕을 하시더군요. 됐고, 제가 나쁜 놈입니다. 불효자는 울어야죠. 어쨌든 스무 살 넘어선 늘 일을 했습니다. 군대에선 외박과 휴가를 나와 일을 했어요. 카투사였고 중대는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가정폭력, 강간, 음주운전, 마약, 성접대... 붙어있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죠. 월급은 밥값(!)으로 다 나갔어요. 보직 운이 안 좋아 야근이 많았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면 밥을 사 먹어야 하는데 거 참... 왜 디팩보다 라면이 더 친숙했는지 원. 매주 나가야 할 분명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 여잔 절 속였습니다. 왜 그랬냐 물었더니 답하더군요. '넌 조건이 안 좋아' 흠...그렇죠. 데이트 중 비가 오는데 우산 살 돈이 없어 비가 그치길 마냥 기다리고, 집에 데려다주곤 차비가 없어 2시간 반 거리를 걸어오던 놈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좀 더 어릴 땐 알량한 학벌을 팔아 사기를 쳤습니다만, 군대를 다녀와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방황하다 정신을 차리니 학점이 무슨... 이런 놈팽이가 누굴 가르칩니까. 과외를 피하니 학교에 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고, 결국 받을 수 있는 페이는 한 달에 50만원 정도로 수렴합니다. 부모님과 함께 사니 그리 쪼들리진 않습니다. 옷을 사거나 선뜻 여행을 떠날 여유는 없지만 그럭저럭 만족해요. 각종 공과금을 제하고 남는 돈은 주로 먹고 마시는 데 씁니다. 어쩌면 너무 많이 쓰고 있는지도 모르죠. 한 잔에 만 원이 넘는 술을 좋다고 마시며 돈 없다고 찡찡대는 게 웃길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취미에요. 아프니까 청춘이라던데, 아프면 치료를 해야죠. 먹어 보니 약보단 술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술 마실 친구가 점점 줄어든다는 걸 빼면 그냥저냥 살만합니다.

그래도 이런 날은 힘이 드네요. 취업을 위해 토익을 한 세트 풀고, 마지막 학기 개강을 앞두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학자금 대출이 승인 거절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언제나 그렇듯 12시가 넘어서 확인이 불가하다네요. 신데렐라도 아니고 거 참 도도한 친구들. 아마도 소득분위나 추가 학기 관련되어 문제가 생긴 것이겠죠. 사실 큰돈은 아닙니다. 마지막 3학점을 듣고 졸업이니 등록금의 1/6이겠네요. 60은 넘고 70은 안 될 돈입니다. 그래서 슬퍼요. 큰돈도 아닌 것에 온갖 짱구를 굴려야 하는 삶이 서글픕니다. 이리될 줄 알았다면 이번 달에 일이라도 더 했을 텐데. 아니 풀타임을 뛰었어도 저 돈과 생활비를 모두 벌어내진 못 했을 거야. 부모님께 어떻게 이야길 꺼내야 하나. 스물 여덟 백수 새끼가 대출이 안 된다며 등록금을 달라고 하면. 사촌 형에게 연락을 해볼까? 안돼 그건 민폐야. 그럼 돈 돌려 받을 생각도 안 하고 줄 거다. 그건 아니지. 아, 오늘 아침 햇살론 스팸 전화가 왔었는데 상담이라도 받아볼 걸 그랬나. 금융권 일하는 친구놈들 연락처가, 아 얜 제2금융이잖아. 니미럴-

같은 생각이 들어 찌질대봤습니다. 술 먹고도 잘 안 하던 신세 한탄을 이렇게 길게 쓰네요. 며칠간 글이 안 나와 고민이었는데 역시 돈이 최고입니다. 늦었네요. 자러 가야겠습니다. 내일은 토익 900을 넘겨야죠. 밤샘 운행을 하고 들어올 아버지께 돈 얘기도 꺼내봐야겠고, 월요일은 졸업식입니다. 이제 동기들이 하나도 남지 않겠네요. 안 그래도 쪽팔려서 빠질 핑계를 찾고 있었는데 대출이나 알아보러 가야겠습니다. 아, 다만 취업이 하고 싶네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연애를 하는, 그 평범한 일들이 제겐 왜 이리 힘이 들까요.

일요일 토익 보시는 여러분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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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영
16/02/28 01:57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올해부터는 모든일 다 잘되시길
yangjyess
16/02/28 02:09
수정 아이콘
화이팅.
허클베리핀
16/02/28 02:32
수정 아이콘
그럼에도 분발하시며 사시는 게 느껴집니다. 파이팅입니다. 싸워야죠.
포포탄
16/02/28 02:33
수정 아이콘
그런 사람이 한둘이겠나.. 하면서 자위를 할 뿐이지요.
차라리 정말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서, 나만 이렇게 사는게 아니라는 알량한 자존심 잡아가면서 살 뿐이지요..
바카스
16/02/28 02:37
수정 아이콘
그 상위컷에 내 자신이 들고 내 자식이 그나마 탄탄한 길로 나아가게 만들어줘야죠.

시스템을 못 바꾸면 그 시스템에 따르고 그나마 꼼수 써서 더 쟁취할 수 있다면 그렇기 해야죠.
이혜리
16/02/28 02:42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 저도 준비하던 시험 도중 집이 박살이나서 먼저 취업한 친구들 도움으로 용돈이랑 인강비+교재비 받아서 시험 합격 할 수 있었어요.
오프로디테
16/02/28 02:55
수정 아이콘
원래부터 나쁘던 가세였지만, 저번학기에 더 확 기울어 버렸습니다. 그 전엔 그나마 월세값과 세금 정도는 받고, 그외에 생활비만 벌어 쓰면서 살았었는데 할머니의 재수술, 어머니의 장사 실패 이후 의도치 않게 완벽한 독립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기 중 근로알바로 그 모든 지출을 충당 할 수는 없었고, 모아뒀던 돈도 어머니에게 다 주느랴 답이 없는 상태 였습니다.
그와중에 방세며 세금등을 천천히 내도 된다는 주인아주머니의 말씀 덕분에 한학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신 아주머니는 올해 방 재계약 할때 밀린 방세며 세금은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하시며 재계약 까지 해주셨습니다.
이상태에서 도저히 취업준비 할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일단 눈앞에 닥친 빚들부터 해결하자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에 밀린 방세를 갚고, 생활비와 방세를 벌면서, 취업준비를 하다간 셋다 놓치고 망할 거 같더라구요. 그래서 3학점 남겨놓고 휴학신청을 했습니다.
엊그제까지 근로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주인아주머니께 조금씩 돈을 갚고 있습니다.
올 한해 5월까진 지금 하던 알바를 하고 그 후엔 공장에서 6개월 정도 돈을 벌어, 내년 한해동안 돈걱정 없이 공부하고 취업하는게 목표입니다.
사실, 지금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취업준비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내가 하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모습들이 많이 부럽기도 하고, 한살이라도 어린게 취업시장에서 하나의 스펙이라고 생각하는 제입장에서 올해를 이렇게 쓰는게 진짜 너무 아쉽지만, 어쩌겠나요. 제 능력이 모자란것을...
제 나름의 살 방법을 찾아야죠.
정말 요즘엔 술만큼 좋은 친구가 없습니다. 이 술도 줄여야 할텐데 이것마저 없으면 진짜 버티기 너무 힘들거 같아요.
글 보고 저도 갑자기 이래저래 지껄였네요.
힘내세요.
토모리 나오
16/02/28 02:57
수정 아이콘
장학재단 수입산정 저도 호되게 당해서 남일같지 않네요.
힘내세요! 올해부터 일들이 잘 풀리길 바랍니다.
그리고 토익 잘보세요 :)
WhenyouRome....
16/02/28 03:13
수정 아이콘
장학재단 수입산정 참 희한하대요. 아버지가 건물도 있고 아파트도 좋은데 사는 녀석이 소득분위가 장학금 수령이 가능하다네요. ???뭐지. . . 근데 또 별볼일 없어보여서 장학금 받을거같던 애는 정작소득분위가 안된다하고. . . 참골때립니다.
naloxone
16/02/28 07:09
수정 아이콘
최소 은수저 어쩜 금수저에 속하긴하는데 저는 어디가서 말을 못하겠더군요. 뭣모르던 시절에 누굴 깔본것도 아닌데 잘 모르는 사람이 적개심까지 갖는걸 당해보니 그냥 흙수저 코스프레 하면서 살고있죠.
16/02/28 10:57
수정 아이콘
20~30대 공부하기 왜이리 힘드나요. 취업 걱정까지 해야 되고 간신히 취업하면 대출부터 갚아야 할 빚쟁이가 되고. 빚 다 갚으면 40대부터는 해고 당 할 걱정해야 하고 뭔 놈의 세상이 이런지.
신동엽
16/02/28 16:04
수정 아이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서 댓글 남깁니다.

초과학기 학자금 대출은 학교 내 학자금대출 담당 부서에 소정의 서류를 제출하시고 학교 측에서 한국장학재단으로 승인내역을 송부하면 승인됩니다.

대출은 소득분위 산정과 관계 없습니다.

저도 참 힘들게 졸업했습니다. 참고하세요.
cafferain
16/02/28 17:21
수정 아이콘
평범한 일들이 참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음 과외를 고려하시는 것이 어떠실런지 싶습니다. 나의 신념에 위배된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오히려 글쓰신 분의 경험과 인생의 깊이를 아시는 것들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부모님 두 분이 일도 하시고 건강하시면 큰 복이시니 건강한 마음을 가지시고 열심히 하시면 길이 열릴꺼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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