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3/23 15:19:41
Name 지하생활자
Subject [일반] 응급실 #1
# 어느 날 아침, 여느날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응급실 컴퓨터 앞에 앉아 차팅을 하고 있엇다. 갑자기 저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외침이라기 보다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다. '우리애 살려주세요' 뒤를 돌아보니 중년의 남성이 가슴에 무엇인가를 안고 CPR 룸으로 달려들어간다. CPR인가? 라는 생각에 간호사와 다른 의사들이 모두 CPR 룸으로 달려갔다. 침대 위에 백지장 처럼 하얀 애기, 1살이 채 안되었을 것 처럼 보이는, 그런 애기 위에서 손가락 가슴 압박을 시행하고있고, 아빠는 침대 앞에 무너져 오열하고 있었다. CPR 한 사이클이 끝나기 전에 소아과 선생님들이 오고, 응급의학과 소속인 우리는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일을 하려고 돌아갔다. 머지 않아 소아과 선생님들도 그 방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나왔다. 열리는 문 뒤로는 남자의 절규가 무겁게 응급실을 짖눌렀다. '내가 어제 잠을 자지 않았어야 하는데.. 내가 어제 잠을 자지 않았어야 하는데..' 학생 때 까지 합치면 응급실에 2달 넘게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짖누르는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베드에 누워있던 백지장 처럼 하얀 아이가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여 소아과 선생님이 작성한 차트를 열어 보았다.

xxx 10m/F DOA.
환아 내원 전일 xx병원에서 위루 수술을 받은 환아로 금일 아침 잠에서 깨지 않아 보호자가 깨웠으나 의식 없는 상태로 발견되어 본원 내원.
mental status comatous, pupil 5mm fix
내원시 Asystole, 자발호흡 관찰되지 않음.

태어난지 채 1년이 안된 아이에게 이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는 '살아있음'을 위해 아기는 지난 밤 얼마나 노력했을까. 또, 아버지는 죄책감에 어떻게 남은 날을 살아갈까.


# 티스타가 온다고 전화가 왔다. bleeding이 심하다고 한다. 어서 지금 쌓여있는 환자들을 처리하고 티스타르 맞을 준비를 해야한다. 차트를 최대한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는 와중에 119 베드가 문을 밀고 들어오며 곧바로 CPR 룸으로 들어간다. 가슴 압박을 하지 않으면서 들어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래도 환자의 상태가 중해보여 곧 CPR이 터질 것 같다. 밖에 쌓여있는 환자를 어서 차팅해야한다. 곧 안에서 던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CPR!
응급실에서 듣기 싫은 한 단어를 꼽자면 바로 이 단어일 것이다. 응급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지만, 되도록이면 하고싶지 않은. 서둘러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CPR 룸 앞에 아주머니가 빈 성인 남성의 신발을 들고 엎어져 통곡하고 있다. 들어가보니 머리쪽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고 던트 선생님이 가슴압박을 시행하고 있었다. bleeding의 양을 보니 머리 쪽을 크게 다친 것 같다. 당연히 옷은 다 가위로 잘라 발가 벗겨져 있었고, 눈은 반쯤 감겨 가슴 압박의 리듬에 맞추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30분간은 CPR을 시행해야 한다. 두 사이클째 흉부압박을 하는 도중 가슴에서 두둑 두둑 소리가 난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다. 가슴압박을 하면 무조건 갈비뼈는 다 나간다. 게다가 intubation 한 곳을 통해 흉부 압박에 맞추어 피가 튀는 모습이 보인다. 이 환자도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30분째, 아직 환자는 asystole, 아무리 도파와 에피를 넣어도 심장은 전기적 신호도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 ROSC(심장이 원래 리듬을 찾는 것) 되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십중팔구는 전기적 신호도 만들지 못하거나 설령 신호를 만들어도 수축하지 못하는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응급실 담당교수님이 보호자를 모셔온다고 하며 문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배우자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들어오자마자 환자를 안으며 오열한다. 교수님은 이제 가슴압박을 중단해도 좋다는 동의를 얻고싶어 제세동기에 일자를 그리고 있는 EKG를 가리키며 이미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아주머니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안되겠다고 판단한 교수님은 아주머니를 다시 방 밖으로 모시고 나가고 우리는 다시 CPR을 한다. 내 차례에 흉부압박 도중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마요'라고 던트선생님이 말한다. 사실 지금하는 흉부압박은 의미가 없다. asystole로 30분 이장 유지된 환자는 무슨 짓을 해도 ROSC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떄문이다. 조용히 이 환자의 병력에 대해 여쭈어 보았다.

'보행자 TA(traffic accident)야, 골목길에서 부딪혔다는데 골목길에서 얼마나 밟았길래..'

아주머니는 사고 당시 분명 환자와 같이 있었을 것이다. 갑작스런 배우자의 죽음은 얼마나 큰 충격일까. 10분후 들어온 교수님은 CPR중단을 선언한다. 우리는 한명씩 방 밖으로 조용히 나간다. 잠시 후, 젊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환자의 딸인 것 같다. 아버지를 갑작스레 잃은 자식의 외침이다. 그들에게는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고마워할 시간도, 미안해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 여느때 처럼 트리아지에서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려 '또 누군가 왔군..'하는 생각에 걸어나갔다. 119 침대에는 딱 봐도 이건 황달이라는 생각이 드는 온몸이 노란 아저씨가 초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불러보지만 눈동자를 움직일 생각도, 소리를 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가슴을 주먹으로 아프게 누르니 손이 올라와 내 손을 잡아채려고 한다. 다행히 motor기능은 어느정도 살아있다. GCS 4,1,5 라고 수첩에 적었다. 옆에 서 있는 보호자는 측은함과 분노가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환자는 기저질환으로 간 경화가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은 꼬박꼬박 먹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이렇게 된 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도 먹지 않으며 술만 그렇게 먹었다고 한다.
왜 그러셨냐고 환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의사가 이대로 술을 마시면 죽을 수 있다고도 이야기 해 주었을 텐데. 무엇때문에 그렇게 술을 마셔야 했을까. 현실이 너무나 불만족스러워 도피하고 싶었던 것일까.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6/03/23 15:33
수정 아이콘
잘 읽엇습니다... 만, 너무 전공용어가 많네요 ㅠㅠ
CPR : 심폐소생술
DOA : Dead on arrive. 죽어서 도착한 것.
mental status comatous : 의식 상태 혼수
pupil 5mm fix : 동공이 5mm로 고정. 동공 열렸다는 겁니다.
Asystole : 심장이 안뛰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intubation : 삽관. 보통 기도에 관을 넣으면 이거입니다.
도파, 에피 : 도파민, 에피네프린. 심장 뛰라고 넣는 약물입니다.
EKG : 심전도
GCS : Glasgow coma scale. 혼수상태 점수매기는 건데 숫자가 낮을수록 의식불명입니다. 4, 5, 6이 만점.
어리버리
16/03/23 15:38
수정 아이콘
설명 감사드립니다. 의학 미드를 보면 약간 익힌 단어들이 나오긴 하는데 모르는 단어도 많아서 검색을 해봐야 하나 생각했네요.
최종병기캐리어
16/03/23 15:38
수정 아이콘
Motor기능은 뭔가요?

티스타와 트리아지는 뭐죠?
16/03/23 15:50
수정 아이콘
모터는 운동기능을 의미합니다. 움직임이 있고 없다는 거죠. motor/sensory 로 구분합니다.
티스타는 모르겠고...
트리아지는 부상자 분류방식인데 (triage) 여기서는 그 의미가 아닌거 같습니다. 그냥 응급실 입구에서 분류하는 장소를 트리아지라고 부르고 있는것 같네요.
16/03/23 15:36
수정 아이콘
응급실은 언제나 제정신이기 힘든곳 같습니다... 진짜 힘들거 같아요.
고생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와 돌아가신 분들께 애도의 묵념을 보냅니다.
핑핑이남편
16/03/23 15:39
수정 아이콘
원래 눈물이 없는편인데, 사무실에서 두번째 인물의 단락을 다 읽고나니 눈물이 살짝 흐르네요.
아무런 예고없이 사고에 의해 떠나는 사람이 있고, 그로부터 남겨지는 사람들에 살짝 감정이입했나 봅니다.

안타깝네요.
16/03/23 15:4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블리츠크랭크
16/03/23 16:03
수정 아이콘
안타깝네요 잘 읽었습니다
트루키
16/03/23 16:08
수정 아이콘
담담한 글이라 더욱 감성적이 되네요. 잘 봤습니다..
도망가지마
16/03/23 16:45
수정 아이콘
참 감상적인 글이데 전공용어가 너무 많네요 ㅠㅠ
웬만한건 상황봐서 이해하며 읽는다해도 감상적인 기분이 좀 차갑게 가라앉는 그런 느낌?;;

이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은게 ... 피지알과 옆집 홍차넷이 대한민국에서 의사분들 비율이 가장 높은 커뮤니티라고 (혼자)생각하는데(전공 커뮤니티 빼고요) 가끔씩 수필같은 글도 너무 전공용어를 섞어 쓰셔서 좀 어렵게 느껴지더라구요. 기왕 글쓰시는거 조금만 친절히 써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6/03/23 16:58
수정 아이콘
요새 진상 시리즈가 유행(?)이라 혹시나 다른 응급실에서는 어떠한 시트콤들이 쓰여지고 있나 하고 클릭했는데 글의 무거움에 숨이 턱 막힙니다.
한 시간 뒤부터 시작될 근무에 제가 이런 일을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응급실의 한없이 힘든 점이자 한없이 다이내믹한 점이죠...
지하생활자
16/03/23 17:33
수정 아이콘
티스타는 trauma - star 로 중증 외상환자입니다
B스타는 brain- star로 뇌출혈, 뇌경색 의심 환자구요
C스타는 Cardiac -star로 급성 심근경색 의심환자입니다.
세 환자군은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기에 따로 관리합니다.
급하게 써서 용어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네요.
16/03/23 18:46
수정 아이콘
계속 연재해주시길!
케타로
16/03/23 21:45
수정 아이콘
한글용어로 바꾸어서 이해하기 쉽게 써주셨으면 더 좋았을 글이었던거 같네요.
좋은글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연필깎이
16/03/24 01:22
수정 아이콘
용어가 어려워도 분위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문제가 없네요.
잘 읽고 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251 [일반] 자유게시판 신규 운영위원을 모십니다 [4] OrBef5351 16/03/19 5351 3
64250 [일반] [프로듀스101] 11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순간들 (데이터 주의) [14] 모비에7343 16/03/24 7343 1
64248 [일반] [3.23] 김치찌개의 오늘의 메이저리그(박병호 1타점 2루타) [2] 김치찌개4107 16/03/24 4107 0
64247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28 (5. 문득 바람의 방향이 바뀌니) [24] 글곰3937 16/03/24 3937 48
64246 [일반] [프로듀스101] 4차 경연 직캠 현황 [10] Leeka3388 16/03/24 3388 2
64245 [일반] '소년소녀 라이브러리'를 아십니까? [15] 북텔러리스트5589 16/03/23 5589 5
64238 [일반] [감상]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7] 마나통이밴댕이5064 16/03/23 5064 0
64237 [일반] 청해진-정원 새로운 문건이 나왔다는데요 [12] 능숙한문제해결사7534 16/03/23 7534 0
64236 [일반] 브뤼셀 테러의 배경: 분열된 벨기에와 몰렌베크 그리고 안락함 [20] santacroce6824 16/03/23 6824 15
64235 [일반] 역습의 DC!! 배트맨 대 슈퍼맨은 재미있을까? [46] 빵pro점쟁이7411 16/03/23 7411 2
64234 [일반] 박재범/키디비의 MV와 린/엠버/전효성/라붐/비투비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5] 효연덕후세우실6673 16/03/23 6673 0
64233 [일반] [수필] 엄마의 마중 [5] my immortal2994 16/03/23 2994 20
64232 [일반] 응급실 #1 [15] 지하생활자6132 16/03/23 6132 16
64231 [일반] [책추천] 역사 및 시사 관련 추천도서 목록 공유합니다. [21] aurelius9075 16/03/23 9075 23
64230 [일반] [스포] 무스탕: 랄리의 여름 보고 왔습니다. [47] 王天君7767 16/03/23 7767 5
64229 [일반] [스포] 피닉스 보고 왔습니다. 王天君2623 16/03/23 2623 1
64228 [일반] [스포]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보고 왔습니다. 王天君5409 16/03/23 5409 1
64227 [일반] [스포] 산하고인 보고 왔습니다. [2] 王天君3453 16/03/23 3453 1
64226 [일반] [스포] 45년 후 보고 왔습니다. [3] 王天君5055 16/03/23 5055 1
64225 [일반] 지하철에 나타나시는 여러 유형의 승객들 [27] 삭제됨6592 16/03/23 6592 4
64224 [일반] [진상] 식품회사 진상 타입 3 [19] 블루투스6197 16/03/23 6197 3
64223 [일반] 2016 ESPN 선정 NBA 역대 스몰 포워드 TOP 10 [19] 김치찌개10499 16/03/23 10499 0
64222 [일반] 헌터x헌터-원리원칙과 융통성의 관점에서 [22] 전회장6317 16/03/23 6317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