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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5/13 12:23:11
Name 王天君
File #1 SingStreetRunning.0.0.jpg (164.1 KB), Download : 64
Subject [일반] [스포] 싱 스트리트 보고 왔습니다.


어떤 나이가 넘어갈 때쯤이면 사람은 변한다. 코너는 깨달았다. 학교는 갑갑하다. 하기 싫은 일들이 너무 많다. 맛있는 시간만 계속 보내고 싶다. 이걸 아직 모르는 꼬맹이들이 깝깝하기만 하다. 다 아는 척 하는 어른들도 꼴같지 않다. 잘 굴러가는 줄만 알았던 지구는 사실 비뚤어진 공전축 위에서 회전하던 것이었다.

늦건 빠르건 모두에게 닥쳐오는 위기다. 소년기가 허물어지고 뭔가 튀어나오나 싶었는데 턱 하고 막힌다. 순진의 잔해 사이로 쇠창살은 견고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비틀즈의 바가지 머리 대신 새끈한 젊은이들이 응큼하고 멋깔나는 노래를 부른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한껏 폼을 재며 노래를 부른다. 코너와 형이 열광한다. 리오 - 리오 - 형광색의 도형들이 사각형 위를 돌아다닌다.

희망은 엉뚱한 곳에서 구원의 길을 보인다. 외계의 존재같은 여자가 학교 정문 건너편에 서있다. 더러웠던 일진에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코너는 두근대는 심장을 꾹 삼킨 채로 걸어간다. 맥락 없는 대화에 코너는 침착한 척, 여자는 가소로운 미소를 날린다. 당황하지 않고.... 코너는 블러핑을 이어간다. 밴드 하고 있는데 뮤직비디오를 찍을 예정이야, 너 거기 출연할래? 모델이래며. 아무튼 전화번호를 땄고 이제 바빠졌다. 방금 전까지 왕따 직전의 코너는 아티스트로 거듭난다.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서 밴드를 만들어야 한다. 뮤즈의 등장에 허풍은 열기를 타고 오른다. 무자산, 무담보, 무재능, 무열정의 청춘은 난데없이 천재가 된다. 사랑은 10대에게 늘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킨다. 10대는 그게 기적인지도 모르고 그저 해낸다.

사람이 척척 모인다. 밴드가 생겼다. 듀란듀란의 리오를 연주해본다. 그럴싸하게 사운드가 뽑힌다. 코너의 형은 혹평한다. 남의 음악이나 따라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여자를 꼬시겠냐! 코너와 에이먼은 머리를 맞대고 오리지널 곡을 만든다. 리듬과 멜로디에 코러스가 입혀지고 구색을 갖춘 음악이 허공에서 띵까거린다. 여기에 코너의 숨길 수 없는 찬양을 담은 가사 한 수저. 모델의 수수께끼라는 곡이 테이프에 담겼다. 그 때 밴드한다던 그 꼬마라고 비웃어? 코너는 초조하면서도 자신만만만한채로 테이프를 건넨다. 가사 외워와. 토요일 오후 두시야. 토요일 열 두시니까 그 때 거기서 보자. 라피나를 끼고 싱 스트리트의 행진이 시작되었, 아직 모른다, 시작될지도 모른다.

처음 찍는 뮤직비디오에 싱 스트리트 모두가 허둥댄다. 과장되지 않은 게 없고 어울릴 법한 게 없다. 카우보이가 웬 말이며 송곳니는 대체 어따 써먹으라고? 싱 스트리트 그룹의 두 거목, 코너와 에이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반짝이면 그저 멋있는 줄 알고 빼입었지만 결과는 처참하다. 안 올 것 같았던 뮤즈, 라피나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 온다. 신생 밴드의 이 행색에 당황하면서도 라피나는 모델로서의 프로페셔널리티를 발휘한다. 라피나의 화장에 난해한 밴드의 컨셉은 더 난해해졌다. 잔뜩 힘을 준 멤버들의 연기 아래 미스테리한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테이프에 담긴다. 아주 실험적이고 아주 어설프지만 무시할 수 없는 열정이 화면을 채운다. 마지막은 새하얀 얼굴의 라피나가 신시사이저에 맞춰 까닥까닥까닥까딱딱.

촬영이 끝나고 코너와 라피나는 같이 돌아간다. 라피나를 실은 자전거는 아주 천천히, 아까 지나쳤던 길을 모른 척 다시 지나친다. 세상에서 제일 느리고 뻔뻔한 자전거가 마침내 라피나의 집앞에 도착한다. 설레는 시간 뒤 바로 완강한 현실이 찾아온다. 라피나가 사귀는 남자친구는 나름 잘 생겼고 코너의 자전거를 대기도 미안할 정도로 좋은 차를 몰고 있다. 미래에 보자 미래파 친구! 경쾌한 인사를 날리며 뮤즈와 뮤즈의 합법적 납치범은 코너를 뒤로 하고 사라진다. 살짝 풀이 죽은 코너에게 형은 숙제를 내준다. 또 다른 가수들의 위대한 흔적을 좇아 코너의 영감이 음표의 흔적을 밟는다. 내게 빛을 주고, 부수고, 떠오르게 하는 여자. 가사를 입은 노래가 라피나에게 전달된다. 화장을 지우던 라피나는   울기 시작한다. 마음을 담은 노래가 마음에 닿는다.

코너는 변한다.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을 한 채 학교를 간다. 음악은 순딩이 학생의 허물을 벗긴다. 야시시한 존재 선언에 모두가 놀란다. 벡스터 수사는 코너를 호출해 세수할 것을 명령한다. 교칙에 없으니 따르지 않겠다고 빠져나가보려 하지만 코너는 무자비하게 씻겨진다. 막 개화한 아티스트의 자기 표현은 무자비하게 꺾인다. 어린 예술가는 서럽다. 그러나 이런 자신을 인정해주고, 인정받고 싶은 다른 이가 있다. 라피나는 코너를 "코즈모"라고 부른다. 모든 예술가는 예명을 갖고 있게 마련이기에. 그리고 질투를 숨길 수 없는 그에게 더 많이 웃게 해달라며 영감을 준다. Happy Sad. 행복과 슬픔이 섞여 다시 한번 눈물나는 미소를 짓게 해주길. 코즈모는 고민에 빠진다. 이야기를 들은 형은 만만치 않은 여자애라며 참고자료들을 던져준다.

코너는 다시 한꺼풀 벗어던진다. 새 뮤직비디오가 리듬을 타고 돌아가기 시작한다.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인 라피나는 예정에 없던 다이빙을 감행한다. 밴드 모두가 놀라고 코즈모가 라피나를 구하려 뛰어든다. 헤엄도 칠 줄 모르면서 물에 뛰어들었던 이유를 묻자 라피나는 대답한다. 예술은 절대 건성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사랑놀음의 낚싯대였던 음악은 점점 진짜가 되어간다. 코즈모의 감정도 격해지기 시작한다. 엉겁결에 한 키스는 둘 사이의 선을 진하게 잇는다. 사랑도 사람도, 고치 속에 들어있던 공상은 현실 속에서 날개를 뽐내며 푸드득거린다. 바다를 바라보며 했던 이야기는 둘 만의 여행으로 나아간다. 물결을 가로질러 도착한 둘 만의 외딴 섬에서, 비스킷을 나눠먹으며 둘의 충동이 만난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이끄는 자력은 입술과 입술에서 만난다.

학교 축제라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를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고자 싱 스트리트는 도모한다. 중간고사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음악만을, 끝내주는 노래로 강당에 모인 이들을 열광시키기를. 그러나 꿈과 열정의 악셀이 늘 대답하지 않는다. 코너의 부모님은 이혼을 결심한다. 코너의 형은 멘토 역할에 진력을 내고 무력한 삶의 한을 동생에게 쏟아낸다. 라피나는 뮤직비디오 현장에 오지 않는다. 덜컹거리는 현실은 꿈을 더 이상 싣고 가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순간 노래하는 사춘기 소년은 가장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눈 앞에 펼친다. 모두가 빽투더 퓨쳐 풍의 50년 대 춤을 추는 사이로 라피나가 걸어들어온다. 자신을 그렇게 윽박지르던 벡스터 수사는 공중제비를 넘은 후 코너를 인정하는 제스쳐를 날린다. 엄마와 아버지는 코너의 노래에 맞춰 다정하게 춤을 춘다. 형은 말쑥한 모습으로 나타나 근사한 액션을 보인다. 결단코 그렇지 않은 현실이, 싱 스트리트의 노래에 맞춰 아름답게 펼쳐진다. 모두가 멋지고 행복하게 노래에 휩쓸린다. 한 소년의 절망은 이토록 애절하게 환상을 펼친다. 그리고 거품을 걷어내며 다시 현실이 찾아온다. 썰렁한 강당, 어설프게 춤을 추는 출연자들. 코너는 라피나가 런던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코너는 계단에 주저앉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놓쳤던 사랑이 쭈그리고 앉아있다. 뻣뻣하게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이 있다. 허우적대지만 아직 꿈을 찾지 못한 친구가 있다. 이 시궁창 더블린에 경쾌한 철퇴를!! 코너와 라피나는 반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학교를 떠난다. 둘을 가두는 세상은 너무나 좁고 빡빡하다. 더 나은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를, 스타일을, 배경을 찾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떠나지 못했던 형제의 꿈을 이어받고, 떠났던 이의 실패를 다시 끌어안고, 비바람 몰아치는 바다를 쪽배가 가로지른다. 꿈은 늘 무모하고 희망은 손 닿는 곳 너머에 있다. 노래는 파도를 타고 넘어 또 다른 육지를 향해 날개짓하기 시작한다. 떠나는 이에게 축복을. 행복할 수 없을거라 이야기하는 세상으로부터 운명을 훔쳐 달아나라.

@ Ferdia Walsh-Peelo. Dane Dehaan 의 뒤를 잇는 청춘 스타의 첫 페이지를 확인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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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e Beleren
16/05/13 12:51
수정 아이콘
군더더기 없이 훌륭한 글 잘 봤습니다. 시사회 갔었는데 개인적으로 보는 내내 마음이 심하게 아련했네요. 원스를 처음 볼때는 내 삶이 싱 스트리트 같았는데 싱 스트리트를 보는 지금 나는 원스에서나 보던 안되는 사랑을 끝마친 어른이 되어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했습니다. 분하기도 했고 (?)
자전거도둑
16/05/13 13:15
수정 아이콘
90~2000년대 한창 유행하던 헐리웃 하이틴물 느낌을 간만에 느껴서 좋았네요. 남주가 워낙 잘생겨서 여성분들도 좋아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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