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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03/23 23:22:04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053903021
Subject [일반] <파벨만스> - 노장 감독의 따뜻한 자기고백.

2011년, (한국 개봉은 2012년이네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은 <휴고>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가족영화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초기의 영화인이었던 '조르쥬 멜리에스'에 대한 헌사인 동시에, 영화 아카이브 복원에 열심인 본인에 대한 자기고백에 가까운 영화였습니다.

작년 연말, <바빌론>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추악하고 혼돈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주먹구구의 할리우드를 다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걸 힘주어 역설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방금 보고 들어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파벨만스>는 그 두 이야기의 중간 쯤에 위치하는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파벨만스>는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입니다. 유대인, 부모님 등의 가족 환경, 세세한 사건, 그리고 엔딩에서의 대면까지(영화를 꽤 딥하게 보시는 분들은 반가운 얼굴을 만나실 겁니다.), 영화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실화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스필버그 감독은 본인의 삶 자체를 영화화 한 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떤 명확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본인의 무엇인가가 확실해지는, 삶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영화라는 매혹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처음으로 영화라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본인이 어떻게 그러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혹은, 어떻게 아직도 빠져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영화에 대한 방향성과 몇몇 극적인 요소를 제외하고선 스티븐 스필버그판 <보이후드>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시간이라는 마법이 이루어낸 성장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오락영화 지향인 개인 취향을 빼놓고 생각하면, 재봉선이 거의 없는 느낌이 들고,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은 <팬텀 스레드> 이후로 오랜만에 드는 기분이에요. 음악이든, 혹은 카메라워크를 비롯한 시각적 모습이든.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이 듭니다. 다만, 본질적으로 회고록에 가까운 영화고, 어디든 카메라 들고 뛰어들던 '씨네키드'의 이야기다 보니, 배경 지식 내지 공감대 없이는 재밌는 영화라고 이름 붙이기는 애매하긴 해요. 그러지만, 어떤 예술을, 꿈을 꿈꾸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게 훨씬 보편적이진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저는 묘하게 <그랜 토리노>가 생각났습니다. <그랜 토리노>가 무뚝뚝하고 거친 할아버지의 미리 써둔 유서같은 느낌이라면, 이 영화, <파벨만스>는 익살스럽고 따뜻한 할아버지가 풀어놓는 재미난 이야기 같다고 해야할까요. 이 할아버지는, 아직까지 아이의 마음을 지니고 있는 할아버지인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아이 같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익살스러운 그런 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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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도있어
23/03/24 09:06
수정 아이콘
주말에 파벨만스 볼려고 했는데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볼려면 스필버그의 유년기 외에 어떤 배경지식이 필요할까요?
aDayInTheLife
23/03/24 09:09
수정 아이콘
몇몇 키워드나 영화사적 간단 지식이 필요하실 거 같아요. 음… 근데 막 되게 깊게는 안보셔도 될거 같기도.. 크크
그럴수도있어
23/03/24 09:1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23/03/24 14:57
수정 아이콘
저는 다회차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볼 때도 재미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때 제일 재미있게 본 거 같기도 해요. 저는 부모님 사건도 몰라서 중간에 더 임팩트가 강했네요. 스포를 안 당하고 본 셈이니까요. 오히려 사전지식보다 취향에 맞느냐가 더 중요한 거 같네요. 배경 지식이 크게 필요한 영화는 아닌 거 같고 영화 혹은 예술과 삶의 관계나 현실 세계와 필름으로 재창조된 세계와의 괴리 이런 것들을 생각하시며 보면 더 재미있을 거 같네요.
Rorschach
23/03/24 10:40
수정 아이콘
매우 매우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바빌론은 실망스러웠었는데, 좀 격하게 말해서 감독이 자의식 과잉에 빠져서 "이거 봐! 내가 이렇게 영화를 사랑한다고! 나의 영화 사랑을 알아줘!" 이렇게 허공에 외치는 느낌이 강했었거든요.
그런데 파벨만스는 담담하게 영화를 대하는 감독 본인의 생각을 물 흐르듯이 느끼게 해줬었습니다.

다만, 감독과 작가가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 캐릭터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서 영화가 끝나는 시점에서 그 부분이 좀 찝찝했었네요. 실제 스필버그 감독의 유년시절과 부모님 이야기 내용은 전혀 모른 채로 영화를 봤었거든요. 차라리 픽션이었다면 그러려니 할텐데 거의 실화라는 이야기에 2차 충격...
aDayInTheLife
23/03/24 11:58
수정 아이콘
흐흐흐 좀 충격적이긴 하죠. 바빌론의 과잉에 비해 좀 편안하고 유머러스하게 진행되는게 더 낫다. 고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떤 의미에서는 스필버그에게 굉장히 중요한 고백 같은 작품은 아닐까 싶더라구요.
닉언급금지
23/03/24 13:41
수정 아이콘
그냥 레디 플레이어 원의 E.T세대 판이라던 얘기가 있던데... 뭐랄까... 암튼 보고 판단해야겠네요.
aDayInTheLife
23/03/24 14:5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갑자기? 싶었던 레디 플레이어 원보다는 더 좋았어요. 저는 레디플레이어원도 좋아하는 영화지만 마무리 짓는 방식은 마음에 안 들긴 했거든요.
훨씬 개인적이고 세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23/03/24 14:54
수정 아이콘
처음엔 스필버그가 자기 얘기 영화로 한다는 아이디어를 싫어했다고 하죠. 스탭중에 스필버그랑 오랫동안 같이 일한 분이(애당초 이 양반이 제안) 스필버그가 거절하는걸 끈질기게 설득해서 겨우 마음을 돌렸다고…
aDayInTheLife
23/03/24 14:56
수정 아이콘
스필버그 츤데레인가요. 크크 싫다면서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는 것도…
23/03/24 15:02
수정 아이콘
보러갈까 말까하는 중인데 이렇게까지라 말씀하시니 좀 땡기네요 크크
aDayInTheLife
23/03/24 15:0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즐긴 영화는 레디 플레이어 원이지만 소박한 자기고백록이라고 해야할까요. 크크
23/03/24 14:59
수정 아이콘
처음에 각본가 분이 어린 시절 이야기 영화로 만들어야 된다고 설득한 건 맞지만 영화화 하기로 마음 먹고도 계속 미룬 건 부모님이 살아계셔셔라고 알고 있습니다.
23/03/24 15:01
수정 아이콘
네 그래서 마음 돌리고도 제작 들어가는덴 시간이 걸리긴 했죠 흐흐
23/03/24 15:16
수정 아이콘
저도 전반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여서 좋았는데 이동진 평론가는 반대로 아주 서늘한 영화라고 평했더군요. 일부 공감가긴 했지만 그래도 전 여전히 이 영화는 역시 따뜻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게 모든 등장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노인의 온기가 느껴졌어요. 고등학생 시절 체드라는 인물 조차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aDayInTheLife
23/03/24 15:26
수정 아이콘
저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지긴 했어요. 가짜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채드의 감정선이라든가 그런 부분에서요.
되게 그래서 이 사람이, 혹은 이 삶을 거쳐온 사람의 시선은 그렇게 진중하고 무겁게 바라보는구나가 느껴지더라구요. 저도 여전히 따뜻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무게감은 느껴지는 영화라고 해야할거 같네요.:)
비역슨
23/03/25 15:55
수정 아이콘
저도 따뜻한 마음으로 감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팀 버튼의 빅 피쉬를 감상하던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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