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문신 안민학(1541~1601)이 자신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토로한 작품
인터넷수능 A·B형문제로 출제된 적 있음.
이 글은 400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아내를 위하는 남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죽은 아내에게 [제망실곽씨문]
안민학
늙은이 안민학은 아내 곽씨 영전에 고하니라.
나는 임인생이요 자네는 갑인생으로 정묘년 16일 혼인하니 그때 나는 스물다섯이요 자네는 나이가 열셋이었소.
나도 아비 없는 가난한 홀어미의 자식이요 자네도 가난한 홀어미의 자식으로 서로 만나니 자네는 아이요 나는 어른이나 뜻이 어렸을 때부터 독실하지 못한 선비를 배우고자 하여 부부유별이 사람에서 큰 일이므로 친하게 말 것이라 하여 자네와 나는 가깝게 말인들 하며 밥 먹은 때인들 있으랴.
내 자네에게 밤이나 낮이나 늘 가르치기를 어머님 봉양을 지성으로 하고 남편을 따르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 이러던 것이 십 년을 함께하여 바라는 것이로되 그대 내 뜻을 안 받고자 할까마는 가난한 집에 홀로 된 시어머니 위에 있고 나 하나 세상 물정에 어둡고 재주가 없어 집안일에는 아주 차리지 못하니 고싯긔(고식적) 봉양하는 정이 다했다고 어찌 할까?
내 입을 옷도 못 하고 행여 실잣기를 하여도 나를 해 주리라 하니 그대는 겨울이라도 아무런 저고리 하나나 하고 영오(겨우?) 장옷 하나나 하고 누더기 치마만 하고 바지도 벗고 차가운 구들에서 서어한(서늘한, 설핏한?) 자리하고서 견디니 인내와 고생이야 이 위에 있을까? 그대 점점 자라 키도 커서 내가 늘 희롱하여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길러 내었으니 나를 더욱 공경하라.” 하니 그대가 죽었다 하나 잊을 것인가?
내 벗도 있으며, 서울 계신 내 모친을 번거롭게 하여 헛이름을 얻어 두 번째 공도로 참봉을 하니, 내가 내 몸을 돌아보니 하도 부끄러워 다니고자 하는 것이 아닌 줄을 그대 사뭇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글로 기뻐하는 뜻이 없고, 내 매양 그대더러 말하기를, “어머님이 하도 하고자 하신 것 마지못하여도, 나중이면 파주나 아무 데나 산수 있는 가 집을 짓고 죽을지언정 붕천을 시름하고 수석 간에 가 살다가 죽자.”하니 그대 그 말을 좋게 여겨 들으니 내가 늘 그르네.
물욕 적은 이는 그대 같은 이 없다 하여 늘 살 땅을 못 얻어 하더니 어찌하여 내 몸에 죄가 쌓여 병든 나는 살았고 병 없던 그대는 백년해로할 언약을 저버리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어디로 가셨는가. 이 말을 이르건대, 천지가 끝이 없고 우주가 넓고 넓을 따름이로다. 차라리 죽어 그대와 넋이나 함께 다녀 이 언약을 이루고자 하되 어버이를 공경하여 울지도 마음대로 못 하거든 내 서러운 뜻 이룰까?
그대 오륙 년 전부터 늘 심열이 있어, 봄이면 자다가 갑자기 냉수 달라 하고 혓바늘이 돋고 하니, 그대의 명이 되게 박하여 모자간의 변도 만나고 나도 사나워 그로써 그대 마음을 쓰게 한 것이 많고, 그것도 많이 성질을 몰라 조그마한 일이라도 두어라 아니하니, 그리하여 병이 많이 들고 겨울이면 의복도 그리 설피니, 술남이를 구월에 낳은 후부터는 조리도 잘 못하니 더욱 병이 들어 나중에는 을해년 유월부터는 아래 자식이 다시 기운이 편치 않아 누웠다 일어났다 하고 음식도 덜 먹고 하니 내나 그대 어머님이 다 태기라 하여 또 아들이나 할까 하여 기뻐 말하고 하더니, 그러므로 나는 믿어서 약을 진실히 못하고 그해 팔월 추석, 제(祭)를 홍주의 부분에 제하러 가서 인하여 유산을 하고, 구월 스무날 후에야 모든 그대 병이 중하였으니, 그때부터 정말 병인 줄 알고 의약을 시작하였으되, 그대가 약을 아니 먹으니 가까스로 인삼, 형개산을 설(가루) 하나만 보고 먹다 벌써 병이 겨웠고 그대 명이 그만한 것도 인력으로 어찌할까 하거니와 그리 병들게 하는 고로 내가 남편이 되어서 무무상효 다시 이 한 넋이 대답할까?
자식이 둘 있으니 딸이 가계를 할 것이거니와 술남이가 제 목숨이 길어 살아나면 이는 그대가 비록 죽어도 그대 이어 가고, 우리 다 죽은 후라도 자손이 있어 자기라고 할 것이로라 하겠기로 위로하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면 사나이 일생을 서러워하며 그저 살까. 내 뜻은 자식이 있으니 그대 삼 년을 지내고 양첩(良妾)이나 하여 그대 자식을 후에는 어려운 일 없게 하고자 하네만 노친이 계시니 일을 끝내 마음대로 못할 것일지언정 내 뜻대로 삼 년을 다 기다리며 장가들지언정 아니 들리라 할까 하거니와 그대 위하여 한 해를 상복을 입네. 첩이나 장가나 하다가 쉽게 상복을 벗은 후에야 할까. 술남이 살아나면 그대 조상 봉사를 온전히 맡기로 그대의 기물을 모두 두 자식에게 나누어 주고 나는 쓰지 말고자 하네.
그대 죽을 적에, 그대 파주의 그대 아버님 분묘 근처에다가 묻으라 하니, 이는 나 죽은 후에 부디 홍주의 선영에 잘 것이니, 이제 그대를 아버님 곁에다가 묻을 것이로되, 내 죽기 전에는 고혼이 될 것이요 파주도 아주 버릴 것이니 그대가 임종에 이르던 말을 좇아 파주로 하려 하거니, 내 거기 들기 어려우니 나 곧 홍주로 가 들며 술남이의 어버이를 제각기 묻으며 우리들 죽어서나 한 곳에 갈까? 이 일은 이제 그 피치 못할 새 내가 병든 것이 이리 망극한 상혼(喪魂) 보고 얼마나 오래서 죽을까. 죽기 전에는 꿈에나 자주 보고 서러워할 것이니 나는 그대 어머님 향하여 그대 주지하고 조금은 내덜가 이식들이 기르시면 자네 사뢸 일을 아니할까? 그대 어머님과 자식들은 내 살았으니 어련히 할까? 잊고 가 계심이 망망코 서럽고 그리운 정이야 평생을 잇는다고 끝이 있을까?
이제 처치하는 일만 하네. 죽는다고 정령이 있으면 모를까 하도 망극하여 붓 잡아 쓰노라 하니 정신이 없어 자주 그러하시매 거꾸러지며 말도 차서 없으니 자세히 보소.
나는 승지 아주버님과 장령 아주버님네 위로하여 주시네. 벗들도 진정하여 돌아보네.
말이 이에 이르자 길게 통곡하고 그치네. 병자년 오월 10일. 입관할 때 넣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