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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2/01/10 17:03:10 |
Name |
EpicSide |
File #1 |
012012112104.jpg (135.1 KB), Download : 21 |
출처 |
도탁스 |
Subject |
[기타] 드라마와는 달랐던 고려 말의 권신 이인임의 말년 (수정됨) |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유배당한 상태에서 위리안치(대역죄인을 섬 등으로 보내 가둬버리는 것) 처벌을 받고
폐결핵+홧병크리로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은퇴 후 유배 간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죽음.
드라마에도 나왔지만 유배당한 곳은 사실상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경산부(현재의 경북 성주)였으므로
마땅히 부관참시 할 죄를 지은 간신치고는 큰 처벌 없이 말년을 보낸 셈
당시에 최영이 '이인임은 정책을 올바르게 세워 국가를 안정시켰으니 허물보다는 공이 큽니다'라고
쉴드를 친 것이 유명한데, 이것이 최영의 실책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 편으로는
'이인임이 후대에 기록된 것 만큼의 간신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음
고려사에서 말하기를 '이인임에게 조그마한 공로가 있다 해도 과연 그것으로 그가 국권을 14년간 잡고 있으면서
매관(賣官)하여 높은 벼슬자리가 천하기 진흙처럼 되고 매옥(賣獄)하여 조정 내외에서 간악한 자가 소원을 이루게 하고
군정(軍政)을 파괴하여 주, 군을 폐허로 만들었으며 흉악한 무리들을 양성해서
국가의 근본인 백성들을 깎아 먹게 한 죄악을 덮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극딜을 하고있고 이것이 오늘날 이인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임.
하지만 이와 다르게 이인임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색은 '목은집'에서 이인임을 무려 '명재상'이라고 여러번 표현하기도 했고
공양왕 즉위 이후 여느 대역죄인들처럼 이인임의 묘를 파헤치고 가문의 재산을 몰수하고 집 터를 연못으로 만들자는
오사충(이후 조선 개국공신이 됨)의 건의가 있었으나 부관참시와 재산몰수는 행하지 않았고 집 터만 연못으로 만들었는데
이조차 얼마 지나지 않은 조선 건국 직후인 태조 3년에 다시 메꿔지는, 사실상의 사면조치가 행해짐.
또한 이인임 사후 최영, 이성계가 주도했던 고려말의 권문세족 대숙청 시기에 수많은 가문들이 멸문지화를 당했으나
정작 고려말 최고의 권문세족이었던 이인임의 가문은 위에 언급했듯이 집이 연못이 되어버린 이인임 외에는
죽임을 당하는 등 큰 화를 입은 사람은 없었으며 심지어 먼 친척도 아닌 친조카였던 이직, 이제 등이 이후 조선 왕조에서 벼슬까지 하였음
최영이 인정을 베풀어 자신과 한 때나마 노선을 함께 했던 이인임이 극형에 처해지는 것을 봐주었을 가능성도 있고
이성계가 건국 직후에 불안정한 조선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인임 사후에도 유의미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그의 친인척들을
포용하는 방침을 썼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여말선초의 이인임과 그 가문의 모습은
여느 역사 속에 등장하는 '나라를 말아먹은 간신과 그의 가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면 너무 평탄한 모습이었던지라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정황들이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역사학자로 유명한 안정복은 스승 이익에게
'이인임은 과연 어떠한 사람이냐'고 물어봤다는 기록이 그의 저서 '순암집'에 남아있음.
안정복 정도 되는 인물이 정말 이인임에 대해서 몰라서 물어봤을리는 없고
'정말 그가 나라를 말아먹은 간신이 맞느냐'는 질문을 우회적으로 한 것으로 보임.
결론은 여말선초 드라마는 아직 짜낼 구석이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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