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2/08/24 13:37:19
Name Apatheia
Subject [잡담] 저그, 그리고 잭 니콜슨.
-저그는 못 떠요. '악역'이거든요.

한 프로게이머의 얘기다.



내가 꼽는 최고의 악역은 단연 배트맨 1에서의 조커다.

그 시니컬한 미소와 가끔 보이는 어린애같은 치기...

그에게서는, 단지 '악하기 위한' 위악이 아니라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자리잡고 있는 '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런 표현이 어울린다면)이 느껴졌다.

그 영화를 본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래서 난 배트맨 역의 마이클 키튼이 어땠는지는 가끔 잊어버리지만

조커 역의 잭 니콜슨이 순간순간 짓던 그 '조커스마일'은 절대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악역이 아니라

이미 그 스스로 온전한, 한 당당한 캐릭터였다.



스타크래프트의 시나리오에서, 저그는 악역이다.

물론 세 종족 모두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으니

각기 다른 종족의 입장에서 봐서는 모두가 악역이지만

저그의 경우는 테란과 프로토스의 공적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한때 테란의 로망이라는 말이 있었고

이제는 또 프로토스의 로망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있지만

저그의 로망이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좀체 생겨날 것 같지는 않다.



'악역'의 보이지 않는 조건은, 그 강함이다.

뻔한 스토리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설정상의 금과옥조이지만

악역은 주인공보다 훨씬 강하다.

처음엔 쥐뿔도 가진 것 없다가(배트맨은 예외인가? ^^;)

나중엔 정말 엄청난 '괴물'이 되어버리는 주인공과는 달리

악역은 처음부터 강하고, 부유하고, 지적이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약한' 악역은, 그래서 사람들의 증오조차 사지 못하고

되려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악역은 강해야 한다.

그래야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대중들이

마음껏 그 대상을 욕하고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토록이나 훌륭하고 좋은 조건을 가지고도 악역은 자신이 지닌 '악'의 신념에 충실하다.

그냥 주인공의 말을 듣고 '세계평화'를 위해서나 싸우면 좋을 텐데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끝까지 그는 주인공과는 다른 길을 고집하고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는, 장렬히 산화한다.

단지, 자신의 신념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도 저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우승을 못해봤다 라는 볼멘 소리는 가끔 나오지만

'종족적인 암울함'을 한탄하는 다른 유저들의 목소리에 가려져

그런 아픔은 한낱 배부른 소리 정도로나 치부될 뿐이다.

거기에, 저그의 아픔이 있다.

결국은 악역일 뿐 주인공은 될 수 없는,

그러나 그러면서도 아무런 동정도 연민도 받지 못하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순간에도 수많은 로스트 템플들에서

저그는 테란을 쌈싸먹고 프로토스의 진지에 폭탄드랍을 감행하고 있다.

남들이야 뭐라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건

어쨌든 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배려가 필요 없을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가장 빛나는 자리를 주인공에게 내어주고

결국 마지막엔 시체조차 찾을 수 없을만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지라도

나는 세상을 내 발 아래 꿇리겠노라 절규하는 악역의 로망,

내가 보는 저그는, 그렇다.


-Apatheia, the Stable Spirit.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저글링 점프를
02/08/24 13:43
수정 아이콘
ㅠ,. ㅠ 멋져요 큭.... 결국은 악역일 뿐 주인공을 될 수 없는,
그러나 그러면서도 아무런 동정도 연민도 받지 못하는... 눈물 찍
Dr. Lecter
02/08/24 13:44
수정 아이콘
조커가 했던 얘기가 있죠.
"남들은 내가 항상 웃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난 속으론 항상 울고 있어."
배트맨1의 주인공은 배트맨이 아니라 조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폐인저그
02/08/24 14:05
수정 아이콘
저그여 타올라라!!! 라고 외치고 싶지만...

언제나 돌아오는것은 다 타버렸어...새하얗게 타버렸어.(이레디엣에...)

흑...ㅠㅠ
02/08/24 14:38
수정 아이콘
강도경 선수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요. 자기는 항상 악역인 대마왕 피콜로라고^^;
그리고 항상 악역쪽의 종족을 선택하는 봉준구 선수도 떠오릅니다.^^
저글링을 키우고 싶지는 않군요. 버로우 하느라 집안 구석구석 구멍이 뚫리면 곤란할테니^^
응삼이
02/08/24 14:30
수정 아이콘
아파님글을 보고 갑자기 저글링을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생각이...
폭풍저그
멋진 글이네요 ^^
추천게시판으로 가지 않으려나?
02/08/24 15:02
수정 아이콘
깨는말같지만요..저글링 크기가 3m가 넘는다는데여-0-;;;
키우신다면 먹이는 멀로-_-a
ㅜㅏㄹㅇ후ㅏ좯호ㅔㅐㅑ노엗헤ㅐㅈㄱㄷ헤
죄송합니다<(_ _)>;;;
02/08/24 15:04
수정 아이콘
흑 정말 감동..눈물나요 ㅠㅠ
02/08/24 15:04
수정 아이콘
결국은 악역일 뿐 주인공을 될 수 없는...
멋진 명언입니다 ㅠㅠ
나라당
02/08/24 15:13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여~!!저그의 로망이라.....
글구 공룡님 락바텀 기대하고 있겠어여~~
02/08/24 15:20
수정 아이콘
요즘들어 다시 주옥같은 글들이 올라오는 군요.^^
02/08/24 15:25
수정 아이콘
멋진 악역이야 말로 성공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죠.
카리스마 넘치는 악당이던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악역이던
악역에게 매력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매력있는 주인공보다
더 큰 장점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배트맨의 경우 1, 그리고
어느정도 성공한 2를 제외하곤 전부 망했죠)그런 면에서
저그는 악역의 역할을 아~주 잘한다고 볼 수 있겠죠^^
AIR_Carter[15]
02/08/24 15:23
수정 아이콘
저그유저로써 저그를 하다가 가끔 느끼는 것들인데 저렇게 표현이 될수도 있는거군요. ^^
언젠가부터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완벽하게 표현할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더군요. ^^
그래서 그런지 아파님이 무척이나 부럽답니다. ^^;
02/08/24 16:52
수정 아이콘
전 강도경 선수가 베넷에서 했던 말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_-;;
근데 중요한건 누구도 그 종족을 강요한적은 없다는거죠..^^
다들.. 그 종족으로 먹고 사는게 프로게이머 아닌가요..
약하면 약한대로 응원도 받고 자존심도 있고
강하면 강한대로 실속 챙기고..
02/08/24 19:31
수정 아이콘
저그라는 종족자체가 생길떄부터
다분히 악역으로써 만들어 졌다는데 의문을 거둘수가 없네여~
흔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적대감이랄까? 그런것을 모조리 포함하고 있는듯
생김새도 꼭 파충류와 포유류를 썩어놓은듯한 에이리언(<-- 대표적악역이죠)처럼 생겼고 그 번식력 또한 우리에 심어져 있는 외계생명체에
대한 느낌같은것을 반영한거 같고요!!
가장중요한것은 영웅이 없다는 것... 나올수가 없죠
영웅의 특징을 가진 유닛이 암것두 없으니..
게임을 떠나서 그냥 이야기 정도로 생각해보았을때 정말 악역에 충실할뿐
별루 좋은점은 없어보이네여~~
02/08/24 19:35
수정 아이콘
역시 다비님.. 이 다비님을 추게로~
02/08/24 20:13
수정 아이콘
역시 아파님의 글은 ^^
전에 TPZ에서 홍진호선수가 저그는 맨날 악역이라고 볼멘소리하던게 기억나네요^^;
The_kingka
02/08/24 23:02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욥 ^^;;
이렇게 생각하니까 이상하게도 저그에게 동정이 가는 ^^:;;
웨이브으악
02/08/25 00:41
수정 아이콘
멋 집 니 다~^^
식용오이
02/08/25 01:02
수정 아이콘
불멸의저그님,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02/08/25 01:29
수정 아이콘
Apatheia님의 글을 추천 게시판에서 읽게 되니 더욱 반갑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많이 부탁드려요.~**
02/08/25 02:10
수정 아이콘
식용오이님! 잘 지내시죠? ^^
마요네즈
02/08/25 02:18
수정 아이콘
휴.. 제가 PGR로 발걸음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요사이 몇글들이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는군요.. 다시 이런 감정을 느낄수 있게 해주시다니.. 공룡님, Apatheia님 감사합니다.. 최근 저도 모르게 이곳의 가벼워져버린 분위기에 휩쓸려서 언젠가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었는데.. 뒷통수 맞아버렸네요..^^ 제 욕심이겠지만 삭제게시판으로 가는 글보다 추천게시판으로 가는 글이 더 많아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오크히어로
02/08/25 18:51
수정 아이콘
배트맨1 정말 제가 본 영웅 영화중에선 가장 걸작으로 뽑고 싶습니다. 그 암울한 배경하며 주인공 배트맨조차도 이중적인 모습과 약간의 병적 증세... 그리고 조커의 눈부신 연기는... 저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 조커의 웃음이 바로 조커의 울음이듯 저그의 영원한 강함은 늘 타종족의 야유와 시기를 받아야 하죠. 하지만 그래도 저그 유저는 없어지지 않을것이며 또한 영원히 최고의 유저를 자랑하는 악의 종족이 되겠죠.

한국 사람들은 의외로 악을 좋아합니다 ㅋㅋㅋ
불멸의저그
02/08/26 16:58
수정 아이콘
저 잘 지냅니다 식용오이님 안부를 물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요.. 저그가 강하다는 말에 반발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요즘에는 테란 이기기 힘들더라구요.
플토도 마찬가지로 정말 이기기 힘드네요.
말하다보니 저의 허접함을 드러내는 말이네요. 하하하
고집스럽게 주인공의 길을 걸어가지 않는 악역이라
참 표현이 멋지네요..
그럼요.. 저도 남들이 머라하든 고집스럽게 저그를 계속할 것입니다.
어쩐지 제성격과 딱 맞는다니깐요..
Dr.protoss
02/08/28 12:46
수정 아이콘
저그... 악역의 로망이라... 너무 멋지군요 T.T
퍽풍저그홍진
02/08/30 16:15
수정 아이콘
악역이라..게임에도 악역이 있나여?특히 스타란 게임은 막말로 말해서
무조건이기면 장땡 아닙니까? (반칙은 사용하지않고)
그런데에서 악역이라뇨.. 무슨 말도 안돼는...그럼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테란입니까?플토입니까?그럼 반대로 저그한테는 테란이나 플토가 악역입니다..무슨 말도 안돼는 말을.. 제가 저그유저이고 많은 저그유저들이 이글의 제목만 봐도 열받을껍니다..무슨 말도 안돼는...그럼 블리자드사가 정말 그렇게 만들었다면은 저는 스타 때려칩니다..악역이라뇨..
류재학
02/08/31 15:00
수정 아이콘
저그 악역 맞는데요.... 스토리상 그렇죠. 아마 싱글플레이를 안 해보신 듯.... 아 그리고 저그에는 영웅이 있죠. 캐리건과 듀란. 캐리건은 다 아실테고 듀란은 정체불명(보너스 미션에서 보면 프토+저그의 잡종을 만들죠)
쌔규이
02/09/09 03:05
수정 아이콘
...무신 악역이라고 흥분하고 스타 때려칠 것 가지야...-_-;;
악역이라...좋네요~
네로울프
02/09/14 02:38
수정 아이콘
창백한 달빛 아래서 악마와 춤춰본 적 있나?
사나이울프
02/09/21 18:04
수정 아이콘
작열의 사막 위에서 고독과 싸워본 적은 있소이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23 [허접꽁트] 귀환 -下 [33] Apatheia6626 02/09/14 6626
122 [허접꽁트] 귀환 -中 [6] Apatheia5790 02/09/14 5790
121 [허접꽁트] 귀환 -上 [7] Apatheia8063 02/09/14 8063
120 "프로게이머 vs 바둑기사 제1편" - updated version. [9] 정현준15712 02/09/01 15712
119 (잡설) 한 여름낮의 꿈 [12] 마치강물처럼7093 02/08/28 7093
118 [잡담] 게임속의 영웅중심 세계관에 대해. [8] 목마른땅6261 02/08/28 6261
117 [잡담] 저그, 그리고 잭 니콜슨. [31] Apatheia8151 02/08/24 8151
116 <허접꽁트> 락바텀 (5) [28] 공룡7954 02/08/24 7954
115 <허접꽁트> 락바텀 (4) [15] 공룡6264 02/08/24 6264
114 <허접꽁트> 락바텀 (3) [11] 공룡5892 02/08/23 5892
113 <허접꽁트> 락바텀 (2) [4] 공룡6271 02/08/23 6271
112 <허접꽁트> 락바텀 (1) [12] 공룡10392 02/08/23 10392
111 저는요 이런 모습을 볼때 기분이 참 좋습니다^^ [14] minority6960 02/08/21 6960
110 가림토를 성원해 주시는 분들께... [36] p.p12219 02/08/10 12219
109 [허접꽁트] 단축키 L -the other half. [24] Apatheia16727 02/04/01 16727
108 [잡담]게임계 vs 바둑계 [22] Dabeeforever9647 02/07/16 9647
107 [일인칭 자전적 실명 소설] 페노미논(phenomenon) [27] hoony-song8578 02/05/07 8578
106 끝말잇기 필승의 비법 -_-+ [27] 한마디21218 02/04/12 21218
105 [긴 잡담] Drone [15] 수시아9622 02/06/09 9622
103 [잡담] 낭만에 대하여... [12] Apatheia9131 02/01/13 9131
102 [잡담] 말난 김에 짜봅시다... 프로게이머로 축구 드림팀을 짠다면? ^^ [27] Apatheia11657 01/12/12 11657
101 [경기감상+게이머열전]그를 위해서 쓰여지는 드라마 [19] 항즐이15290 02/04/28 15290
99 [잡담] 눈물은 흘렀을 지언정 [33] 항즐이12484 02/04/25 1248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