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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 이 글입니다.
#13
늦가을이였던지라 늦은 밤엔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었는데, 그 날 집에 오는 길에 휴대폰을 다잡은 두 손이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14
오랜만의 연락 이후로도 우리는 쉽사리 얼굴을 보지 못했다. 마치 고등학생의 수시전형 원서접수처럼 간호학과 특성상 3학년 2학기까지의 점수가
취업에 유의미한 성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마지막 학기를 견뎌내고 있는 그 아이에게 정신적-시간적 여유는 없다시피 했을뿐더러
나 또한 월급의 대부분을 집안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사용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고 그것은 묘하게 내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런 생활 가운데에 얼마라도 남는 돈은 저축을 하다보니 금전적 여유 뿐만 아니라 심리적 여유도 고갈되어가고 있었기에
그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때때로 버거운 짐이 되어 나의 일상을 짓누르곤 했다.
종종 새벽 늦게까지 학업에 열중하던 그 아이는 내가 일을 하는 날이면 카톡을 하곤 했고, 내가 부탁했던대로 힘들때마다 자신의 고민을 홀가분하게
털어놓아주었다. 나는 또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그 아이를 잘 다독여주었고, 그 아이는 내게 '세상이 내게 등 돌려도 나를 믿어줄 사람'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였고, 그 때의 기분이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15
때때로 갈증이 날 때가 있다. 글쎄 그것을 갈증이라 부르는 게 올바른 표현일지는 모르겠으나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목이 말라질때가 있다.
나는 그럴때면 물을 한통이고 두통이고 마셔댔고, 주변 사람들은 스트레스성 폭식의 또다른 표출이 아닌가하고 나를 염려했다.
가끔 그렇게 갈증이 날 때가 있다. 물을 마셔도 갈증은 가시질 않고 목과 배가 아파오고 머리가 띵해질만큼 물을 마셔도 갈증이 날때가 있다.
2011년 12월 언제쯤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아이의 기말고사 시험이 끝난 당일날 우리는 만나 집 근처 커피숖에서 담소를 나누었고
그 아이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가진 채로 나를 만났다. 나 또한 복학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시점이라 우리는 시간이 가는줄도 모르고
한참을 서로의 기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그 아이가 나를 보는 눈빛은 예전의 그 어떤 것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너시간쯤 하다가 헤어졌는데, 그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그 갈증이 어디서부터 기인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날 집에 들어가기 전 열쇠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리면서 그 아이는 방학이 되어 앞으로 여유가 생긴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눈치껏 그 이야기를 잘 알아먹고 웃으며 돌아섰다. 그 아이를 만난 언제나처럼 발걸음은 가벼웠다.
#16
눈치껏 그 이야기를 잘 알아들었지만 그 이후 며칠간 쉬는 날에 게임방엘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 리그오브레전드를 처음 접했기 때문이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는 것이지만 롤은 참 인성파괴게임인 듯 싶다.
12월 30일 20:00에 출근을 해 일을 하고, 12월 31일 08:30쯤이 되어 퇴근을 했다. 집에 와 한숨 늘어지게 자고나니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였고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한대 피는데 왠지 모르게 서글펐다. 이렇게 나이를 먹나 싶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고생했다. 스물둘아. 하고서
씻고서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친구들과 연락을 했다. 열한시쯤이면 다들 접속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동시에 그 아이에게 카톡이 왔다.
지금 국채보상공원인데 과 동기들과 함께 종소리를 들으러 갔다고 했다. 그 종소리는 나와 듣기로 약속했던 것이기도 했다. 왠지 속이 쓰렸다.
어쩔 수 없나, 하고 생각했다. 돈, 현실, 연애, 여자, 나, 어쩔 수 없나? 라는 생각.
누구나 가슴 속에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거라고들 한다고 했다. 재밌게 놀다와, 하고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17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였다. 한참을 게임에 열중하는데 그 아이에게 전화가 왔고, 무얼하느냔 말에 밤산책을 한다고 얼버무렸다.
그 아이는 이제 시내에서 집으로 오는 길이라며, 잠깐 얼굴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안될 이유가 없지않냐며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자대전입을 처음 받고 선임과 함께한 샤워의 스펙타클함을 난 아직도 기억하는데, 2012년 1월의 샤워 또한 그 때의 속도와 버금 갔던 듯 싶다.
순식간에 목욕재계를 하고 옷을 차려입고 향수까지 뿌리고 평소 않는 목도리까지 메어가며 멋을 내고 그 아이를 만나러 나갔다.
술이나 한잔 할 수 있으려나, 하고서 그 아이를 기다리는데 시내에 다녀온 그 아이 또한 아주 멋스럽게 차려입은 모양새였다.
"우와 저기요"
"응? 뭐?"
"저기 죄송한데 그쪽분 제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혹시 연락처 좀.."
"아 네? 저 그런 여자 아니에요. 010.."
"크크크크 야 썬~ 뭐야 크크 여자애 같다 여자애. 와 여자다 여자"
"야 크크크 뭐?"
"평소랑 너무 다르잖아 인마. 못알아볼뻔 했네. 진짜 이쁘다"
"아 그래?"
그 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술이나 한잔 하자는 나의 말에 그 아이는 난색을 표했고, 그럼 커피나 한잔 하지 뭐, 하고서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늦은 시각이니만큼 문을 연 커피집은 없었다.
십분여를 걸으며 시내에 가서 무얼했느냔 말에 그 아이는 타로점을 봤다고 했고, 뭐라고 하디? 좋은 남자 만난다고 하디? 라는 나의 질문에
어떻게 연애운이라는 걸 단박에 맞추느냐고 그 아이는 신기해했다. 야 이십대 초반 신체건강한 여성이 보는 신년운세야 뻔하지 뭐 크크 하고서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그 아이의 운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 찰나 조용한 바가 눈에 띄었고, 알코올 없는 것도 많아 오빠가 안내하마 나만 믿어 하고서 그곳에 들어갔다.
나 잠깐 화장실좀, 하고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깔루아밀크와 레모네이드를 시켜놓았고, 야 나 레모네이드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았어
하고서 그 아이는 또 한번 신기해했다. 야 이십대.. 아니 그만하자 크크크. 하니 그 아이는 레모네이드와 레몬쥬스의 차이는 뭘까 하고서
레모네이드를 만지작거렸고, 야, 탄산이 들어가면 에이드, 탄산이 없으면 쥬스. 멍청아 크크 하고 농담 따먹기를 했다.
와 진짜 그러네, 하고 그 아이는 웃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슬픈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는 조용한 바였다. 이 노래 참 아는사람 몇 없는데, 하고서 혼자 생각했다.
내 가슴을 쥐어뜯어봐도 계속 흐를 것 같은, 눈물은 넘쳐흘러 작은 강을 이루고 떠나네.
가사를 마음속으로 씹어삼키며 그냥 아주 쓰잘데기 없는 슬픈 예감 같은게 들었는데
그 스쳐지나간 슬픈 예감을 나는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나서야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러고나니 잠시 서로 할말을 찾을 시간이 찾아왔다.
여기 분위기 좋다 그치?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게 예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렇게 나이를 먹나 싶었다.
#18
요즘 내가 너무 아파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다. 걱정 고민이 너무 많아보이는데 자기한텐 너무 괜찮은 척해서 때때로 섭섭하기도 하다고
그 아이가 나에게 기대는 것처럼 그 아이도 내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자기를 믿지 못하냐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너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니 세상이 아름다운 곳이 되어서 니가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 짐을 너에게 떠넘겨버리기
싫다고 했다.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는 존재의 자기운동의 인연이라는 것은 없는 법이라고, 내가 네게 기대기 시작하면 우리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을 거라고 둘러댔다. 사실 나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였다고 이야기했어야했다.
그 아이는 그 이후로 취직에 대해 몇주 전 내게 털어놨던 고민의 진전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깔루아밀크를 홀짝대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이는 야 나, 고백할 거 있어. 하고서 몸을 앞으로 기댔다. 나는 피식 웃으며 지갑을 챙기며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나서였을까
참 야, 그래서, 신년 운세는 어떻게 됐어, 봄날이 온대? 하고 나는 운을 뗐다.
그 아이는 손 끝에 거스러미를 떼어내는 체 하며 응. 봄날이 오긴 온대. 근데, 하고서 말을 삼켰다.
왜? 뭐래? 나이차 막 스물몇살씩 나는 남자 만난대? 아니면 또래 만나는데 단명한대? 뭔데 뭐 하고서 이야기를 보챘고
그 아이는 응. 그 사람이 한다는 말이.. 내가 지금 좋은 인연을 만났대. 평생이 지나도 다시는 오지 않을만큼 좋은 인연이래.
근데 서로, 서로 너무 눈치만 보고 간만 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없어서 결국은 그 인연을 놓치고 말거래. 그런 이야길 들었어.
하고서 빙그레 웃었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도통 영문을 모르겠지만, 짐짓 눈치 없이 못 알아들은 척 했다. 나도 그저 빙그레 웃었다.
-6부에 계속
아마도? 다음 편이 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분들께, 그리고 용기내어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께는 더더욱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1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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