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2/02/17 03:49:06
Name 항즐이
Subject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2. 승리를 향한 자세 (2# of 2)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2. 승리를 향한 자세 (2# of 2)

미동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백조 이야기를 하면서 우아함을 위하는 일이 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런 움직임이 들어가는 것인지를 생각한다. 소위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서 어처구니없는 일들은 하지 말기로 하자는 생각의 공유로서의 코드가 백조의 물갈퀴질인 셈이다.
하지만 역시 긴긴 세월동안 우리는 백조가 되기 위해서 그를 살펴보고, 노래하고 또 흉내내 왔다. 그것은 물갈퀴질이 아니라 분명 곧게 뻗은 목과 흔들림 없이 미끄러지는 고요함이다. 잔잔한 그 우아함이 얼마나 완벽했기에 천년을 넘어서도 다른 종의 생물에게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상대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가꾸는 생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탓이다.
많은 게이머들 중에서도, 유난히 자긍심이 강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김동수 선수가 아닐까 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심보다는 믿음으로서 살아간다. 그만큼 승리에 당당하고 한마디라도 패배를 위해 애쓰지는 않는다.
스카이배 스타리그 16강의 첫 경기, 김정민 선수와의 네오버티고에서의 혈전. 그 찬란한 승리는 한 달 동안 수백번이라는 엄청난 물갈퀴질을 했던 그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승리 후에 잔잔히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유지했다.
그는 잘 알고 있다. 백조가 따로 자신의 우아함을 누구에게 설명하기 위해 울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백조는 자신의 고요함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가림토 그 역시 자긍심의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바르다는 것은

이래저래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주위에는 꼭 그런 사람이 한 둘씩 있다. 이름을 들으면 반가운 사람, 혹은 즐거운 사람. 그렇다면 이름만으로도 푸른 잎을 지니고 하늘로 곧게 일어서는 젊은 나무 한 그루가 생각나는 게이머는 누구일까.
나는 늘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열심히고 또 전진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선수이다. 다른 모든 선수들이 이견없이 인정하는 최고의 실력, 그리고 가장 올바른 선수의 자세를 지닌 사람.
모든 것에는 차이가 있고 개성이 있고 사람에게 이르러서는 비슷함마저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 모습이다. 하지만, 게이머라는 말의 가장 바람직한 정답을 만들어야 한다면 김정민이라는 선수의 그것을 지켜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많은 기대와 시선들을 차분하게 안아들고 다시 마우스를 잡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았을 얼마 전의 경기에서 그는 힘겨운 패배를 하고 일어나야 했다. 최근의 저조한 성적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지만 그는 앞으로 잘하겠다는,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사실을 차분히 써내려가며 주위의 걱정들을 받아 안았다.
가장 힘들어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순간에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고 있었다. 젊음이라는 말은 설핏 미숙한 열정과 비유되곤 하지만, 그는 이미 세월을 충분히 갈무리한 싱싱한 상록수가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진눈깨비가 나무를 긁어 생채기를 만든 날이다. 하지만 나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지 끝이 여전히 하늘을 향해 자신을 치켜올려 내뻗고 있음을.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험난한 길만큼

성학승은 어린 선수다.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면 그를 설명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는 나이보다도 더 어려보이는 외모를 지녔고 그 나이만큼의 쾌활함을 지녔다. 그리고 승부에 때로 대범하려는 모습조차 보인다.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저그 유저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이야기해 본적이 있다. 같이 대화를 하던 게이머는 늘 연습을 쉬지 않기로 유명한 게이머 였다. 하지만, 대뜸 돌아온 대답은 "그래도 전 학승이한텐 안되죠"
그는 언젠가 새벽의 배넷에서 나를 만난 적이 있다. KPGA위너즈 챔피언쉽 4강 경기가 2일정도 남았던 날. 그는 테란 유저를 찾아다니며 섬맵을 연습하고 있었다. 세 경기 정도 했을까, 보는 사람도 지쳐 가는데 그가 했던 말은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아, 정민이 형에 대한 연습이 40게임 밖에 안되다니"
그는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은 험난한 길을 지나 정상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우리는 늘 영광의 뒷모습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도 알고 있다. 마치 어린 선수라는 말은 선수에게 필요 없다는 듯한 그의 자세는 우리가 진정으로 게이머들을 기억해야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 하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2/02/18 00:19
수정 아이콘
와..백조에 비유한것은 정말 예술이네요.^^
항즐님의 프로게이머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있네용...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
나는날고싶다
02/02/18 17:0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어여..+_+ 형의 애정과 아이디어..짱..+_+
게임에 목숨 거는 것 같은 아들녀석이 명절쇠러 집에 왔다가 'pgr21' 보는 것을 어깨 넘어로 봤습니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이라는 걸 별로 마뜩찮게 생각했었기에 아들이 하는 일에 큰 관심 없었다가, 얼마전 부터 관심이 생겼길래 무심코 "싸이트 즐겨찾기 해 놔라" 했었지요.
게이머로서 별 재능도 없어 보였고 저보다 잘 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치어서 마음에 상처만 받는것 같았기에 저러다 말겠지...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에 아들놈이지만 속으로 은근히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면이 많지만, 스스로 고쳐가면서 언젠가는 이 사회에 쓸모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겠구나... 하는 생각! !!
그후로 시간이 나면 vod도 보고, 여러 게시판의 글들도 보는 일이 잦아 졌습니다.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게시판의 글들이란... 정말 수백편의 글 중에 읽을만한 글 한모금 찾기란...
그러다가 본 'pgr21'은 제게 경이였습니다.
제일 처음 읽은 글이 주인장 어르신의 '맵에 대한 제안'이었고 거기에 대한 수많은 댓글들... 그리고 저를 무척이나 놀라게 한 항즐이님의 치열하고 결코 어정쩡하게 중단하지 않는 끝없는 반론과 토론들...
화~~!!!
이런 분들도 있구나... 굉장한 놀라움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계신 사회라면... 아들이 이런 곳에서 한번 인생을 걸어 보는 것도 멋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실려있는 글을 쓰시는 항즐이님의 팬이 된것 같습니다. ^^(쑥쓰...)
앞으로도 좋은 글, 그리고 아직은 생각이 짧을지도 모를 게임계의 많은 젊은이들... 잘 이끌어 주시길 머리숙여 부탁드립니다.
처음 글 올리면서 너무 길게 쓴게 아닌지... ^^ 내용이 부실하고 의미 없다고 생각 되시면 삭제하셔도 좋습니다. 항상 발전하시길...
항즐이
02/02/22 23:00
수정 아이콘
p.p님의 글에 너무 감동을 받아 여행지에서나마 바로 글을 올리려 했지만 예의가 아닌것 같아 이렇게 침착한 시간에 다시 글을 올립니다. ^^ 님과 같은 분이 제 글과 저의 모습을 그렇게까지 좋은 것으로 생각해 주신것이 너무나 감사할 뿐입니다. ^^ 늘 글을 쓰면서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단 한사람의 뜻깊은 이의 칭찬과 단 두 사람의 뜻깊은 이의 비판만을 감사하는 것으로 족하다' 라구요. 늘 분에 넘치는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드님이 게이머로서 좋은 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용은 그야 말로 꽉찬 열매입니다.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98 그가 내게 맵핵이냐고 물었다 [13] 글장19173 02/04/12 19173
97 정원 가에 앉아 있던 유령회원이 인사드립니다 [14] 서인6594 02/03/22 6594
96 [잡담] 惡役이 없는 善惡劇 [17] 無痕6046 02/03/18 6046
95 '양아취' 프로게이머를 위하여 [26] 아휘21130 02/03/04 21130
93 저그 이야기 (3) - 홍진호 [15] nowjojo13881 02/03/15 13881
92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3. 승부와 윤리 [11] 항즐이8429 02/03/09 8429
91 저그 이야기 (2) - 장진남 [22] nowjojo9849 02/03/05 9849
90 [허접꽁트] In the name of the Freedom [19] Apatheia6965 02/03/04 6965
88 [fic] 星 戰 1-1 [9] 개구쟁이4461 02/03/22 4461
87 [fic] 星 戰 [9] 개구쟁이7971 02/03/04 7971
86 저그 이야기 (1) - 강도경 [18] nowjojo10195 02/03/04 10195
85 [전략적 잡담 2탄] 대 저그전의 프토,테란의 또 다른 전략(?) [13] 나는날고싶다6041 02/02/23 6041
84 [자료] 게임벅스 배틀리포트. -_-vV [21] Apatheia7210 02/02/14 7210
83 [전략적 잡담] 1.08 이후 혼란 속의 Z VS Z에 대하여.. [19] 나는날고싶다6275 02/01/29 6275
82 임요환 선수의 2001년도 전적과 승률...(추가 수정했음) [17] tongtong16330 01/12/30 16330
79 [잡담] For, the Early Bird. [28] Apatheia7902 02/02/25 7902
78 스타리그의 역사와 프로게이머 계보...그리고 임요환 [79] tongtong27336 02/02/21 27336
77 나의 스타 중계에 대한 추억...... [8] kama12798 02/02/19 12798
76 [잡담] the Fan [7] Apatheia5816 02/02/18 5816
75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2. 승리를 향한 자세 (2# of 2) [5] 항즐이8068 02/02/17 8068
74 블록버스터 주진철 저그 분석. [26] jerry12443 02/02/14 12443
73 프로라는 이름을 위하여 2. 승리를 향한 자세 [16] 항즐이7684 02/02/13 7684
72 [잡담] 메가웹 블루스 [13] Apatheia6265 02/02/09 626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