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0/08/10 21:32:58
Name zeros
Subject Mr.Waiting - 15
그녀와 나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은 예전 훈련소 때의 동기들처럼 자신들이 앞서 우리를 정의하고 있었다. 아주 틀린 말들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가끔은 헛갈리는 순간들이 있었으니까. 그녀와 많이 다정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런 기분에 이끌려 현실을 왜곡하지 않으려 애썼다. 분명 이전보다는 훨씬 행복한 나날들 이었지만 모른 척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굳이 냉정해지지 않아도 무방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녀와 전화를 할 때, 또 만났을 때 난 혼란스러웠다. 너무 즐겁고 행복해야할 순간들이 이상하게도 고통스러웠다. 물론 그런 시간들이 전부 고통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핸드폰의 종료버튼을 누를 때, 버스정류장에서 그녀를 버스에 태워 보낼 때. 그 때 느껴지던 느낌은 단지 아쉬움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강했다.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그러한 느낌에도 조금씩 적응하여 무뎌질 때쯤 생각했다. 그녀가 나에게 하는 말과 내 앞에서 짓는 웃음들 속에는 어쩔 수 없는 거리감과 차가움이 있었고 외면하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모든 것들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외면하려는 나의 의지 때문에 그 정체를 찾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 어차피 나는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쳇바퀴가 돌 듯 우리는, 아니 나는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도대체 몇 번째인지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내 앞에 주어진 그 상황을 바꿔보려 노력하진 않았다. 그것이 그저 용기의 부재인지 나의 마음이 식어버려 놔버리고 싶어진 것인지 알 수 없었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놔둘 뿐이었다. 평소처럼 그녀와 통화를 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결국 다가올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슬픈 일이었지만 결국 그것도 잠시일 뿐. 어느 샌가 그 마저도 무뎌져버렸다. 난 거의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녀와 나. 둘 중 누가 먼저 말하느냐의 차이일 뿐 결과와 그 이후의 행보는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생각의 갈피를 이미 잡은 상태여서인지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확신은 힘을 더했다.
  
그 날 결심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평상시처럼, 항상 만나던 것처럼 또 그녀를 만나던 나날들 중 하나인 것처럼 별다른 생각 없이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그냥 전개가 그랬다.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내 의지에 반하는 진행이라던 지, 원하지 않았지만 억지로 하는 이끌음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주변상황이 우리를 결론으로 이끌었다. 아마도 그 시작은 식사를 하기 직전부터인 듯 했다. 그 날 우리는 브런치 가게에 갔었다.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오픈하신 가게였다. 오랜 만의 재회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주문하기 전 테이블에 앉아 잠시 함께 이야기 하던 중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아, 근데 이 분은 누구야? 여자친구?”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난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 생각했었다. 답을 생각해 두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무의식 중에 난 스스로 대답할 말을 생각해 두었나보다.
  
“아, 아뇨. 그냥 제가 혼자 좋아하는 겁니다.”
  
그녀의 미소가 어색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너무도 편했다.
  
“아 그렇구나. 10번 찍어야지. 지금 한 7,8번은 찍은 것 같은데?”
“네. 저도 그러려구요.”
  
두 사람의 대화에 등장하는 제 3자는 바로 테이블 앞에 앉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꽤나 우스운 상황이기도 했다. 조금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주문이야기로 무마 시켰다. 편한 카페 스타일로 꾸민 매장에서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비치되어 있던 만화책을 읽으며 잠시 쉬었다. 서로 이야기도 하며 4,5권 쯤을 읽었을까. 창 밖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지은아, 우리 이제 일어날까?”
“응? 어. 그래 그러자.”

그 날은 그녀가 추천한 술집을 가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슬슬 이동을 해야 했다. 형님께 인사를 드리고 길을 여쭈어 보았다. 예전 삼청동에서처럼 길을 잃을 일은 없어보였다. 저가는 햇빛에 노래진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멀지는 않았다. 술집에서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안주를 많이 주는 가게의 특성 탓에 우리는 정말 배불리 먹고 나올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간 곳은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기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나와야 했다. 신촌의 번잡한 거리를 지나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 되었다. 20분 정도를 간 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렸다. 사람은 얼마 없었고 스크린 도어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이유는 없었다. 난 결론으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지은아, 저 사람 보여?”
“응? 누구?
“저기, 저 사람.”

난 손가락으로 스크린 도어에 비친 지은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 저 사람 좋아한다.”

그녀는 말이 없었다. 곧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음이 들렸다. 그 때 그녀가 내 귀에 이야기 했다.

“저 사람이 왜 좋은데?”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 난 그녀의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얼버무렸다.

“야. 그런 거에 이유가 어디 있냐. 그냥 좋은 거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IVECO-Stralis
10/08/13 13:50
수정 아이콘
처음으로 리플답니다..잘보고있어요...
경험담으로 쓰신것 같아요^^(실례가 안되는지..)
읽는 동안 준오의 마음이 빙의된거 같아 제가 답답 하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96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리그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닙니다. The xian5318 11/05/10 5318
195 [스타2 협의회 칼럼] 타산지석(他山之石) The xian4935 11/05/10 4935
194 [스타2 협의회 칼럼] 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The xian4580 11/05/10 4580
193 [스타2 협의회 칼럼] 지(智), 덕(德), 체(體) The xian5186 11/05/09 5186
192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우선순위 The xian4993 11/05/09 4993
191 [스타2 협의회 칼럼] [The xian의 쓴소리] You are not prepared. The xian5711 11/05/07 5711
190 [스타2 협의회 칼럼] 모두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 (3) '이벤트'보다는 '일상'이 되기 The xian5149 11/05/07 5149
189 GSL 후기 만화 - May. 8강 1, 2일차 [6] 코코슈6510 11/05/06 6510
188 [스타2 협의회 칼럼] 모두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 (2) THE GAME The xian5205 11/05/06 5205
187 [스타2 협의회 칼럼] 모두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를 위하여 필요한 것 (1) THE LIVE The xian5151 11/05/06 5151
186 [연재 알림] 스타2 협의회 칼럼을 연재하려 합니다. [1] The xian5510 11/05/05 5510
185 GSL 후기 만화 - May. 16강 1일차 [1] 코코슈6564 11/04/29 6564
183 GSL 후기 만화 - May. 32강 3일차 코코슈5969 11/04/25 5969
182 GSL 후기 만화 - May. 32강 1, 2일차 [2] 코코슈5973 11/04/23 5973
181 GSL 후기 만화 - 월드 챔피언쉽 결승전 [2] 코코슈7152 11/04/12 7152
180 GSL 후기 만화 - 월드 챔피언쉽 16강 ~ 8강 [3] 코코슈7364 11/04/04 7364
179 GSL 후기 만화 - GSTL Mar. 8강 ~ 결승전 [5] 코코슈8177 11/03/25 8177
178 GSL 후기 만화 - Mar. 결승전 [9] 코코슈8852 11/03/22 8852
177 Mr.Waiting - last [4] zeros9795 10/08/13 9795
176 Mr.Waiting - 15 [1] zeros8012 10/08/10 8012
172 Mr.Waiting - 14 [1] zeros7219 10/08/06 7219
171 Mr.Waiting - 13 [2] zeros6406 10/08/03 6406
170 Mr.Waiting - 12 zeros6658 10/07/30 665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