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5/04/08 23:55:29
Name Neuromancer
Subject [일반] 삼국지 이후의 이야기, 위진남북조 시대: (上) 진(晉)의 성립과 멸망 (수정됨)
download.jpg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의 의의

삼국지를 포함하여 그 이후의 시대까지를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220~589)라 한다. 이른바 끝없는 전란과 분열로 점철된 시기이며,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져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당시 지구 반대편에 있던 유럽의 고대 로마 제국 때문이기도 한데, 예컨대 한나라와 로마 제국은 각각 동아시아와 서양을 대표하는 문명이고 동시에 거대한 영토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면에서도 꽤나 닮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 측의 운명은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유럽에서는 더 이상 고대 로마와 같은 압도적인 패권 국가가 두 번 다시 등장하지 못하였으나 중국에서는 후한(後漢)의 멸망 이후에도 위진남북조 시대를 거쳐 수-당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통일 국가가 한나라의 영토와 위상을 이어 계속 정치적, 문화적으로 압도적인 영향력을 구가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유럽은 끝끝내 통일되지 못하고 계속 분열된 상태로 있어왔는가, 또 어째서 중국은 수 많은 분열기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하나의 형태로 나아갔는가? 그것이 여전히 학계에서 풀리지 않는 중대한 의문으로 남는다. 이 글을 써내려가며, 어쩌면 그 단서를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i14309164019.jpg

사마씨 가문이 위나라의 황위를 찬탈하다

조조가 세운 위나라는 5대 황제인 조환(曹奐)에서 공식적으로 그 명맥이 끊어진다. 그러나 위나라의 실질적인 멸망은 그 이전 황제인 조모(曹髦) 대에서 이뤄졌다고 보여지며, 그 역시 사마씨 가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 4대 황제인 조모가 사마사-사마소 형제에 의해 비참하게 시해당하고 난 뒤, 그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던 조환은 비로소 위 왕조가 완전히 끝장났음을 직감했고, 주어진 현실에 그대로 순응하여 사마씨 가문에게 제위를 선양한다.

이렇게 등장한 사마씨 가문의 서진(西晉, 265~317)은 시작부터 문제가 많은 국가였는데, 첫 째로 황위의 정당성을 내세울만한 명분이 부족했다. 예컨대 위나라의 조조는 헌제에게 황위를 선양받을 당시, 비록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긴 했더라도, 대외적으로는 한나라 황실의 보호자를 자처하였고, 헌제를 시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마씨 가문은 자신의 주군인 조모를 주살한것도 모자라 그 뒤를 이은 조환에게서 사실상 황위를 찬탈하다시피 했기에 이러한 행위로서 한나라 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유교적 질서와 윤리관을 본인 스스로 무너뜨린 셈이었다.

둘 째로, 위나라를 폐하고 일어난 왕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위나라가 남긴 유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이전 왕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고, 이른바 구품중정제라고 알려져 있는 구품관인법도 큰 틀에서는 거의 동일했다. 위, 촉, 오로 갈라져 있던 삼국 시대의 혼란을 종결짓긴 하였으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후한 말부터 내려져오던 여러 모순점들이 여전히 내부적으로 산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셋 째로, 이후에 재차 언급되겠지만 이 역시 심각한 문제로, 정복 전쟁 과정에서 만리장성 이북의 이민족들을 대거 자신들의 영토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위나라와 서진이 각각 건재할 당시에는 비교적 점잖게 지냈으나 이후에 팔왕의 난을 거치며 서진의 국력이 급격히 고갈되자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 처럼, 돌연 중앙 정부에 대항하여 대규모 군사 반란을 일으킨다. 5호(흉노, 선비, 강, 갈, 저)로 대표되는 이민족들은 자신들의 본거지를 중심으로 서진을 압박했고 특히, 이 중에서 유총이 이끄는 흉노족이 서진을 멸망시키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wlsaud0320-1149997916.jpg

구품중정제의 시행과 문벌 귀족의 형성

구품중정제는 구품관인법이라고도 불리우며, 엄밀히 말하면 서진의 건국 이전. 즉, 위나라 대부터 내려오던 제도이다. 본래 삼국 시대만 하더라도 뜻을 품은 인물이 쓸만한 인재를 새로이 구하고자 할 때는 본인이 직접 지방 곳곳을 떠돌며 수소문해 찾아다니거나, 또는 주변 사람들을 등을 통해서 추천받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구품중정제가 시행되고 나서부터는 전국의 인재들을 한데 모이게끔 함으로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구품중정제를 통해 지방 호족들이 각지에서 군벌화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이들을 중앙 정부로 끌어들여 일정한 충성심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가령, 구품중정제가 이상적인 방향으로 기능하기만 한다면, 지방의 호족들에게 중앙의 고위 관직을 하사함으로서 그들이 주군을 향하여 반란을 일으킬 동기를 대대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중앙과 지방의 여론을 합치시켜 정치적 안정 역시 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품중정제의 한계 역시 명확했는데, 그것은 평가 방식이 너무나도 모호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구품중정제의 평가 기준으로 지목되는 "인망"이나 "덕" 같은 요소들은 정확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관적으로 파악되기가 어려웠고, 결국 유교적 관점에서 어떤 사람의 자질을 평가하고자 노력하기보다는 단지 그 사람이 얼마나 유력한 가문에 속하는지, 혹은 얼마나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따라 관직의 등급이 결정되는 악습과 폐단이 사회 전반에 성행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문벌 귀족이라는 새로운 상류층 집단을 만들어냈는데, 이들은 대체로 관료와 지주가 결합된 형태로서 세습이 가능했고 자신들의 이익과 부합하는 여러 정치적 특권들을 부여받았다. 문벌 귀족들은 가문 단위로 그 지위가 세습되는 경향이 있었고, 여기에 더해 문벌 귀족들 사이에서도 등급이 매겨져 유력한 가문은 유력한 가문끼리, 그렇지 못한 가문은 그보다 못한 가문끼리 통혼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에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하고, 낮은 지위에 머물던 문벌 귀족들, 혹은 이러한 세태에 심각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일부 문인들은 현실 정치를 떠나 자연 속에서 조용히 은둔하는 삶을 택하기도 하였다.

c79db877d8a6a213e73aaa9e0859cab1-1480496043-3169.jpg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

후한(後漢)이 시행했던 군현제는 중요한 지역은 황제가 직접 다스리되, 그 밖에 나머지는 황제가 임명한 중앙 관료들을 파견하는 형태로 지배하는 체제였는데 서진의 초대 황제에 오른 사마염(司馬炎)은 이러한 방식을 취하지 않고 되려 그 이전 시대 유물인 봉건제로의 회귀를 택한다. 이는 사마씨가 아닌 다른 가문이 제위를 찬탈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으로서, 실제로 황제의 측근들 중 야심찬 인물이 나타나더라도 황족들이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에서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지방으로 파견한 황족들에게 점점 필요 이상의 권한을 주게 되어, 명분만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황족들끼리 내전을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마염 또한 이 점을 염려하였으므로 황족 간 권력의 균형을 맞추고자 각별히 신경쓰며 어느 누구든 섣불리 불온한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여러 방면에서 부단히 노력하였다. 때문에 그가 제위에 오른 기간에는 일견 불안해 보이는 협력 관계가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그러나 그 뒤 제위에 오른 사마충은 황제로서의 재목이라기엔 심각할 정도로 무능했고, 이 기회를 틈타 황후 가남풍이 황족들을 대거 살해한 뒤 자신이 서진의 실권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황족들이 봉기하여 팔왕의 난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지고 서진은 즉각 내전에 돌입한다.

장장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팔왕의 난은 권신 사마월에 의해 가까스로 제압되는가 싶었지만, 내전으로 인해 국운은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져 있었고 이 기회를 놓칠리 없었던 영토 내 이민족들이 대대적으로 궐기하여 화북 지방에 자신들의 정권을 세운다. 서진의 중앙 정부는 이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으나, 서진이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사실상 낙양에 주둔해 있던 중앙군이 전부였으므로 전황의 대세를 끝내 뒤집을 수 없었다. 결국 낙양은 얼마 가지 않아 함락당하고 불태워졌으며, 사마치를 비롯한 황족들과 대신들은 과거 자신들이 수하로 부렸던 흉노에게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로서 화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진 세력은 사실상 멸망했고, 이후 강남을 기반으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사마예(司馬睿)가 이민족들의 침공을 피해 도망쳐온 서진의 일부 유민들과 강남의 토착 세력을 규합하여 동진(東晉)을 건국한다. 동진은 고토 회복을 국시로 하여 수차례 북벌을 단행하였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고, 이렇다 할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화북에서는 전진(前秦)이라는 티베트계 출신 민족, 저족(氐族) 중심의 통일 왕조가 들어섰고, 되려 376년 화북을 통일한 부견(苻堅)이 엄청난 수의 군대를 일으켜 동진을 침공한다.

Battle-of-Fei-River.png

비수대전

전진은 광활하고 비옥한 화북 지역을 온전하게 장악한 상태였으므로, 강남 지방에서 근근히 버티고 있던 동진을 국력 면에서 크게 압도하고 있었다. 부견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원정 초기에는 전쟁이 쉽게 끝나리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심각한 오판이었는데, 전진은 표면상으로는 화북 지역의 통일을 이룩한 것 같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 정치, 사회적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민족간의 갈등이 끊이질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견은 오로지 자신의 야심만 앞세워 이들로 구성된 군대를 조직했으니, 병사 개개인들의 사기가 좋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군대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화북 지역의 한족들은 전진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심했고, 오히려 적국인 동진을 자신의 모국으로 생각했을 정도였다. 또, 그들 휘하의 선비족과 강족 역시도 저족과는 다른 정체성을 지녀 민족간의 대립 구도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전진의 군대는 머릿수만 많았지 애초에 제대로 된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견은 무리한 원정을 감행했고, 결과적으로 수양성 인근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전투의 내용은 이러했다. 전진과 동진의 군대는 강을 끼고 대치하고 있었는데, 동진 측에서 자신들의 군대가 먼저 강을 건널테니 잠시 군대를 물려달라고 제안했다. 부견은 이를 받아들이는 척 했으나, 실은 군대를 물리는 척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을 감행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완벽히 실패했는데, 위장 퇴각 전술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고도의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쉽사리 이행하기 매우 어려운 작전이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전진의 군대는 사기가 극도로 낮았던데다 병사들 대다수가 그러한 상황에 익숙치가 않았으므로 위장 퇴각 전술을 실제로 퇴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명령이 떨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구심점을 잃고 와해되었다.

망연자실한 부견은 수도로 돌아왔지만, 이미 상당수의 부하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뿔뿔히 흩어져 각지에서 할거하였고 전진은 비수대전의 패배로 인해 이를 제압할 힘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이로서 잠시나마 통일되는 듯 보였던 화북 지방은 다시 끝모를 분열기로 접어들고 만다. 반면, 비수대전의 승리는 동진에게 다시금 북벌을 추진할 수 있는 천운과도 같은 기회를 안겨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승리에 도취되여 현실에 안주하기만 하다가 420년, 송무제 유유(武帝)에게 정권을 빼앗기게 된다. 이로서 남북조 시대의 서막이 열린다.


-中-에서 계속.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지탄다 에루
25/04/09 00:04
수정 아이콘
오 재미있는 역사글 감사합니다.
25/04/09 00:24
수정 아이콘
아주 혼란한 시기라 이 대장정이 어떻게 진행될까 했는데 요약특집이군요. 기대가 됩니다.
닉네임을바꾸다
25/04/09 09:32
수정 아이콘
막장 군주들의 향연인...
아케르나르
25/04/09 11:02
수정 아이콘
전에 5호16국시기를 다룬 블로그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 복잡해서 읽다가 그만뒀었네요. 일어난 나라도 망한 나라도 너무 많고, 유교 윤리관?이 무너져서 그런가 난잡한 상황도 워낙 많이 일어나더군요. 대표적으로 황후였다가 나라가 망하고 난 후 자발적으로 창녀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라던가...
Neuromancer
25/04/09 14:07
수정 아이콘
접근하기 굉장히 힘든 시대이긴 합니다..
25/04/09 12:17
수정 아이콘
막장드라마 소스를 찾으라고 하면 이시대를 찾으면 된다고 하는 시대
25/04/09 13:59
수정 아이콘
서진 망하는 시점부터 수나라 통일전까지 5호 16국이랑 남북조 시대까지 상당히 흥미있는 시기인데, 너무너무 복잡해서 엄두도 안나더군요
몇몇 역사책도 보긴 했는데, 후아...
Neuromancer
25/04/09 14:06
수정 아이콘
그래서 읽는분들이 최대한 편하게끔 되도록 짧게 요약해보려고 합니다.
如是我聞
25/04/09 14:42
수정 아이콘
봉건제로의 회귀를 택한다. 이는 사마씨가 아닌 다른 가문이 제위를 찬탈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으로서, 실제로 황제의 측근들 중 야심찬 인물이 나타나더라도 황족들이 이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에서였다.
~ 이게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요. 주나라가 다른 제후국에게 어찌되었는지 잘 알았을텐데..
Neuromancer
25/04/09 15:4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능력있는 측근에게 권좌를 빼앗기느니 차라리 같은 가문원이 빼앗아 왕조라도 건사하길 바랬던거죠. 당장 사마씨 본인들부터가 조조의 후손에게 칼을 꽂고 배신해서 왕좌를 거머쥐었으니까요. 측근들에 대한 신뢰는 주군에게 충성해야한다는 유교적 질서가 작동해준다는 전제 하에 유지되는건데 그걸 스스로 깨뜨린게 사마씨 가문입니다. 본인들이 나쁜 사례를 스스로 만들어냈으니 그걸 감당하는것도 본인들이 해야죠.
如是我聞
25/04/09 19:37
수정 아이콘
그럴거 같기는 합니다만.... 어째 좀...
25/04/09 16: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위나라가 조비때부터 황족들 견제하다가 근왕세력 날아가고 사마씨에게 홀랑 잡아먹혔으니 황족들에게 실권을 쥐어준거죠.

그리고 주나라 때야 실질적으론 영향력이 닿지않는 이민족들을 포함해 중화라는 하나의 질서로 포장한게 봉건제였고 진한 이후로는 분봉을 해도 황제의 우위가 확실한 상태에서 작위를 뿌린거라 다르다고 봐야하구요.

전한시대도 오초칠국의 난처럼 잡음이 있긴했지만 황실이 왕망한테 망했어도 지방황족에 의해 후한으로 이어진 것처럼 서진이 망했어도 동진으로 이어진게 황족들에게 분봉해준 나름의 의미는 있었던걸로 생각되네요.
如是我聞
25/04/09 19:40
수정 아이콘
말씀 듣고보니 중국 고대에 몇리 밖은 어떻게 취급하고 하던게 생각나네요. 은주교체기 기준 실질적인 세력투사가 가능하지 못한 곳에는 분봉했는데, 진 시대에는 그게 아니게 되니 다르다는 말씀이죠?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일반] [공지]자게 운영위 현황 및 정치카테고리 관련 안내 드립니다. [28] jjohny=쿠마 25/03/16 14776 18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300159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54461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57007 3
104059 [일반] 제67회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 김치찌개566 25/04/13 566 0
104058 [일반] [서평]《출퇴근의 역사》 - 통근을 향한 낙관과 그 이면 계층방정968 25/04/12 968 2
104057 [일반] 나스닥이 2프로 가까이 오른 어제자 서학개미들 근황 [26] 독서상품권5295 25/04/12 5295 0
104056 [일반] [역사] 한국사 구조론 [23] meson3696 25/04/12 3696 10
104055 [일반] 오사카에서 찍은 사진들 [14] 及時雨3325 25/04/12 3325 9
104054 [일반] 테슬라 FSD 1년 사용 후기 [51] vitaminwater8139 25/04/11 8139 23
104053 [일반] 닌자 리얼리티 쇼크에 평범한 헤즈들은 쇼크! [23] 된장까스6175 25/04/11 6175 0
103974 [일반] [후원] 영남권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기부 인증 이벤트 [106] 及時雨29703 25/03/26 29703 23
104052 [일반] 중국 자동차 산업 의외의 복병, 하이브리드 [84] 깃털달린뱀13735 25/04/10 13735 11
104051 [일반]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 미국 증시 근황 [76] 무도사13241 25/04/10 13241 0
104050 [일반] 엄청난 변동성에 녹아내리는 레버리지 etf [17] 맥스훼인8999 25/04/10 8999 0
104049 [일반] a great to time to buy 완전 주가조작 아닌가요? [37] 알파고9622 25/04/10 9622 5
104048 [일반] 챗지피티와 손자병법 시뮬레이션하기 [2] 가위바위보4289 25/04/10 4289 2
104047 [일반] 미래의 아이들은 디스토피아에 살게될것인가 [49] 방구차야5516 25/04/09 5516 1
104046 [일반] 국채금리와 자본유출 (ChatGPT와의 대화) [22] 번개맞은씨앗2658 25/04/09 2658 0
104045 [일반] (잡담) 자존심 센 첫째 딸 이야기(+후기) [19] 하나4324 25/04/09 4324 23
104044 [일반] 국제 공조 스테이블코인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을까 [55] 사부작4686 25/04/09 4686 1
104043 [일반] 트럼프 행정부의 잠재적 고율 관세 정책이 미국 및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 [42] 뒹구르르5710 25/04/09 5710 5
104042 [일반] 삼국지 이후의 이야기, 위진남북조 시대: (上) 진(晉)의 성립과 멸망 [13] Neuromancer4265 25/04/08 4265 1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