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병이란 말이 있습니다.

과거 음악계에서의 홍대병은 ‘나만 아는 밴드’ 같이 영광스러운 이름이 붙은 밴드나 아티스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지칭하는 영광스러운 단어였습니다.





그 예로 과거 홍대의 상징 중 하나, ‘인디계의 서태지’ 장기하씨는 이런 모습이었죠. 이런 밴드의 음악,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게 홍대병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인싸들은 이 영광스러운 단어마저 빼앗아갔습니다.

자랑스러운 인디계의 서태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딘드밀리 룩이라는 괴상한 이름이 붙은 패션을 하고 다니는 인싸들을 홍대병 환자라고 하더군요.



이와중에 음악 차트, 특히 인디 차트는 기계들의 전쟁터가 된지 오래입니다.


언제부턴가 ‘홍대병=인싸 감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음악 역시 사회적 문제인 인싸피케이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요즘, 과거 홍대병의 전통을 유지하려하는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가 있습니다.



‘브로콜리 너마저’를 아십니까?


‘브로콜리 너마저’가 누구냐?

상관없는 두 단어 붙여 만드는 인디 밴드 이름의 시초라고 할까요?






‘볼빨간사춘기’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아류에 불과합니다.


요즘 친구들에게 ‘브로콜리 너마저’를 아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마 대다수는 그게 뭐냐고 되물을 것이고

일부는 그 이름 정도는 어디선가 들어봤다고 할 것이며 노래는 모른다고 할 겁니다.

‘인디계의 텔미’라는 별칭을 가졌던 ‘앵콜 요청 금지’를 모르냐고 다그치면

그런 노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며

그중 일부는 텔미가 뭐냐고 묻는 친구들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이런 ‘브로콜리 너마저’는 다음 달이면 만 서른이 되는 저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밴드입니다.


물론 이곳의 횐님들에 저는 머리에 피도, 모근도 안 마른 애송이겠읍니다만,,껄껄 ^^



이들의 필모그래피를 정규앨범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집 <보편적인 노래>는 2008년 12월 발매 되었습니다.



현재 음원 서비스 및 판매가 중단 된 앨범입니다.

그 당시의 나 새X를 만나면 해줄 말이 욕 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 앨범 CD를 구입한 거 하나만큼은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낄낄. 부럽죠?

아무튼 이 앨범에서 우리는

긴 춤을 추는 와중에 상대방의 발을 자꾸 밟습니다.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찌질한 춤을 추기도 하구요.

커피를 싫어하면, 쌍화차를 좋아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합니다.

찌질한 노래들..


덕분에 당시 전 스무살의 서툴렀던 만남과 이별을 그 시대 홍대병이라는 표현으로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런 감정이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위로해준 너무나도 고마운 앨범입니다.





2집 <졸업>은 2010년 11월 발매되었습니다.



이제 막 졸업하고 사회에 나간 청춘들을 위로하는 앨범이라고 할까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절망에 빠져있는 친구들에게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해야하는 사회 초년생들에게

‘이 미친 세상 어딘’가에 있을 젊은이들에게 그래도 행복해달라고 말해줬어요.

위로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건 알지만, 그게 너의 탓이 아니란걸 알지만, 그렇다는 걸 알아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어줬던 고마운 앨범입니다.




그리고 3집 <속물들>이 2019년 5월에 발매됩니다.



근데 이 앨범에서 이야기하는 노랫말들이 너무나 공감됩니다. 하지만 지난 앨범과는 다르게 가슴 아프지 않아요.

이제 ‘서른’이 된 ‘속물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던걸 이야기합니다. 그 말은 이제야 아닌 걸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 같네요.


덕분에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됐고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난 좋은 사람이 아니란걸. 그저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란걸.



글쎄요,

앨범 소개글에는 부끄러움을 고백하는 자리이면서도 더 이상 이렇게는 살지 않겠다고 하는 선언이라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앨범에 적극 동의하며 들었거든요.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속물들이다’ 라고 외쳐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나의 뻔뻔함에,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하려고 거짓말하는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있음에.

이제는 인정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아닌 걸 아니라고’ 할 수 있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 앨범은 그래서

꼴에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달고 살았던 저에게 너무 좋은 선물이에요.



얼마 전 이들의 공연을 다녀왔습니다.

건반치는 잔디님께서 이번 앨범 티셔츠 판매를 광고하면서 <속물들>을 내고 나니 이런 광고를 하는데 마음이 더 편해졌다고 하시더군요.

농담이든 진담이든 마음이 편해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해졌어요.

(물론 이번 앨범과 티셔츠는 사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물이니까요 낄낄.)



어떤이들은 ‘브로콜리 너마저’도 어느새 꼰대가 되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벅스 뮤직 앨범에 달린 댓글을 보니

‘1집에서 홈런을 치고 2집에서 2루타를 친 뒤에 당황해버린 생계형 인디밴드가 긴 호흡 뒤에 선택한 번트와 같은 느낌이다.’ 라는 표현도 있더군요. 그 선택에 서글프게 공감하게 된다는 말과 함께요.


모르겠어요. 전 서글프긴 싫습니다.

모든게 내 잘못이라고, 내 탓만 하던 과거로는 ‘아무래도 다시 돌아갈 수 없어’요.

앵콜 요청 금지입니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최애인 ‘서른’ 입니다. 객원 보컬인 이아름님은 슈퍼스타k4에 출연하셨던 분입니다.

서른

만약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면

그건 참 유감이네
그동안은 아직 나는
행복하지 않았거든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버려야 했던
날을 버티고 나서 찾아온 지금이
어쩌면 정말 어른이 되는 순간

서러운 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건 아마 시작이기 때문일지 몰라
조금 힘겨운 하루였다고 해도
언제나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만약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면


아닌 걸 아니라고 하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버려야 했던
날을 버티고 나서 찾아온 지금이
어쩌면 정말 어른이 되는 순간

서러운 날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건 아마 시작이기 때문일지 몰라
조금 힘겨운 하루였다고 해도
항상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