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학 동창 두명과 연락을 했다.
3년만이었나, 아니 한명은 그보다 오래되었던 것 같다.
가장 최근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대학교 때 단짝이었던 한 명은 가정을 이루고 아빠가 되었고, 안경낀 모범생 이미지였던 한 명은 의외로 댄서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냥 직장인 아저씨가 되었다.
미생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임시완이 아닌 주변에 앉아있는 이름없는 엑스트라인- 나중에 내 후배들이 저런 틀에 박힌 부류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느낄지도 모르는 특색없는 무리 중 한명 같은.
서로 다들 잘 살고 있구나 성장 했구나 칭찬하고 대견해했다.
학생가(學生街)에 갇혀있을 때는 그냥 생각없이 사는 녀석들인 줄 알았는데, 머리가 커진건지 세상이 그렇게 만든건지 몰라도 나름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사실 아직 나는 자신이 없지만.
내가 다녔던 대학교의 주변의 학생가는 캠퍼스라기 보다는 비교적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골목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올 것만 같은 정겨운 골목길 사이사이로 허름한 자취방들과 술집, 밥집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대학 정문으로부터 전철역까지 수백개의 술집이 들어서있지만 서점이라곤 단 하나, 지하의 골동품점 같은 헌책방이 다인 곳이기도 했다.
그 학생가에 갇혀 꼬박 7년을 보냈다.
그 7년 동안 뭘 하고 뭘 이뤘을까,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분명 학생가의 저주이다.
푸근하고 달콤한 저주.
그 학생가에는 생각과 이성을 마비시키는 나른하고 끈적이는 그런 힘이 있었다.
허나 학생가의 모든 사람이 저주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자기만의 확실한 목표가 있고 대학을 도구나 발판으로만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주의할 것은 학생가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달려가지 않고 심지어 걷지 않아도 아무도 꾸짖어주지도 일으켜주지도 않는 학생가에서는 가끔 제자리에 발이 묶인 채 허송세월하며 매몰된 사람이 보였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나 스스로는 아무런 열정이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사소한 열정에도 부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그렇게 학교를 다녔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문득 시간은 흘러있다.
학교에 다닐 때의 나 자신은 실패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카스 광고에 나오는 젊은이들처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던가 "젊으니까 도전해야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눈 앞에 닥친 과제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다 어느새 눈 떠보니 학생가를 떠날 시간이 되었었다.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이뤄서 떠나게 된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지나서 밀려날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도 가끔 꿈을 꾼다.
꿀 때마다의 디테일은 조금씩 다른데, 큰 줄기는 비슷하다.
서른 살이 넘어서도 학교엘 다니고 있는데, 일이 바빠 좀 처럼 수업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수님한테 사정을 해 볼까, 백지를 내도 C+라도 주시겠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을 하다가, 이번 학기에는 졸업을 해야 되는데, 졸업을 해야 되는데...라고 되뇌이다 꿈에서 깬다.
꿈에서 깬 직후는 현실과 꿈이 섞여 비몽사몽이라 내가 학교를 졸업을 안했었나 하다가 정신이 점차 현실로 돌아오면서 나는 예전에 졸업을 했고 졸업장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휴 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학생가 저주의 파편일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더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던 것과 더 알차게 보내지 못했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그 때는 싫어했던, 다른 사람들과도 좀 더 잘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든다.
왜 그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훈수 두는 입장에서 대국이 더 잘보이는 것 처럼, 본인의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대해서는 판단력이 떨어지는 법인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순간이 다 재미있진 않았지만 추억보정인지 몰라도 지나고 나서 총평을 내려보면 그래도 재미있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끝나고 나서야 미련이 남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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