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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11:03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12490027
[인사동서 물시계 부속품·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출토]
21/06/29 11:0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366&aid=0000739940
[인사동서 쏟아진 ‘세종의 꿈’… 한글 금속활자 등 1600점 발굴] 여기에 좀더 자세한 사진들이 많이 나옵니다. 우왕
21/06/29 11:12
인쇄사를 다시 쓴다기보다는, 인쇄사에 기록만 남아 있던 것이 실물로 튀어 나왔다 정도로.. 책에서만 보던 갑인자가!! 근데 윗분들 기대(?)와는 다르게 이게 국보급이면 대학원생은 구경도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21/06/29 11:13
[나랏 말씀이 듕귁과 달라] 이 구절을 맨 처음에 박은 세종대왕님의 혜안은 보고 또 봐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중국이 얼마나 떼를 많이 썼으면 저렇게 첫구절에 넣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되네요
21/06/29 11:22
조선/한국에서 뭐 만듬 → 명/청/중국 : 야 그거 우리꺼 기반으로 만들었으니 다 우리꺼임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의 이 논리는 불변이었나 봅니다
21/06/29 11:47
그 의견도 꽤 들어 봤습니다
하늘 관련, 글자 관련은 무조건 중국만 할 수 있고 다른 나라가 하면 중국에게 덤빈다고 인식했다죠 당장 중국의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칭했으니까요
21/06/29 18:26
그 반대죠. 문화적으로 지배층이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어있었고 언어만 다른 상황이었는데
중국 옛 성현들의 말씀(구체적으로는 유교경전이죠.)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어렵다는 취지로 쓴거니까요. 만주어든 일본어든 독자적인 문자가 있었는데 이거가지고 중국에서 딴지걸었다는 말을 본적이 없는데 한글만 특별대우할리가요.
21/06/29 18:35
https://www.news1.kr/articles/?3730958
말씀듣고 왜 몰래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당시에 별도로 문자가 있는 나라는 오랑캐 취급을 받아서 신하들이 반대할껄 예상하고 몰래 혼자 만든 거네요 그리고 [상소문에는 훈민정음이 자칫 중대한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최만리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사실이 중국에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는 자가 있으면 어떡하겠느냐"고 걱정했다.] 이런 글이 있는걸 보니 중국이 다른 걸로 시비를 많이 걸었던 거 같습니다
21/06/29 18:37
그러니까 중국의 시비가 아니라 결국 신하의 시비를 걱정한 것이죠.
지배층(왕과 고위 관료들)이 문화적으로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어 내부정치적으로 신하의 반대 명분이 될 것이었다는 말인 것이죠. "오랑캐 취급 당한다"는 것인데 이거 자체가 한국 지배층이 얼마나 중국의 문화에 감화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겁니다.
21/06/29 11:50
와... 이건 큰 것 같네요. 일성정시의랑 자격루 부품까지 나온거면 정말... 기록이 실물로 등장하는 것 만큼 역사적으로 기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오늘은 조선의 과학기술에 취해는 하루가 되겠네요 크크
21/06/29 11:58
훈민정음 첫머리에 '나랏 말씀이 듕귁과 달라' 라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한자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중국인들 본 적 있습니다...-_-;;;
21/06/30 11:07
근데 실제로 그게 당대에도 "한글이 이래서 쓸모 있다!"라는 근거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한자를 가르칠 때 天은 "천"이라는 발음이 난다는 걸 누가 옆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것만으론 알 수가 없지만 거기에 "천"이라고 써 주면 天을 처음 보는 사람도 그게 천 발음인지 알 수 있다는 게 당시 써먹던 논리.
21/06/29 12:04
근데 활자가 반전이 없네요???
저대로 찍으면 좌우가 반대로 나오는 거 아닝가요??? 아니면 조판하기 쉬우라고 윗면 아랫면 모두 새겨 놓으셨나…
21/06/29 12:53
금속활자 옆 총통이라
소설가들의 영감이 꿈틀 여기 금속활자를 지켜야하는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사동 재개발을 해야 할 남자도 있죠
21/06/29 15:26
기사를 보니 당대에 바로 묻힌건 아니고 최소 1558년 이후에 묻힌걸로 추정됩니다. (총통중에 날짜 새겨진 제일 늦은게 1558년이라고) 아마 임진왜란때 급하게 도망가면서 파묻은게 아닐까요?
21/06/29 18:32
활자 만드는 금속이나 노동력이나 공짜가 아닌데 만들었을 당시에는 파묻을 여유가 없이 만든거 열심히 잘 썼겠죠.
그리고 한글은 표음문자이지만 조합형으로 글자를 구성하기 때문에 그리스문자, 키릴문자 같은 글자를 한글자씩 풀어서 쓰는 서양 알파벳 형태에 비해서 활자 하나하나를 만드는 수고로움이 큽니다. 한문보다는 낫지만 일본 가나 문자나 서양 알파벳에 비하면 헬이죠. 그렇기 때문에 활자 하나하나의 가치가 큽니다. 같은 글자를 많이 만들어놓고(물론 많이 쓰일수밖에 없는 모음은 자음보다 더 많이) 그중에 몇개를 빼서 쓸 수 있는 서양 알파벳과 다르게 한국은 그 여러 다양한 조합문자의 총체적인 활자를 더 많이 만들어야 원활한 인쇄가 가능할수밖에 없거든요. 이 문제가 얼마나 크냐면 받침을 쓸 수 있는 한국어 타자기가 개발되기 전의 지식인들은 한글도 조합형으로 쓰지 말고 아예 풀어쓰기를 하는게 어떨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디지털로 되어있으니 별 문제가 없어서 현대인들이 인식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이죠. 이거 때문에 금속활자를 먼저 개발해놓고도 책이 대량생산되기 어려웠던 것이죠. 물론 종이가 비싸서이기도 했지만
21/06/29 22:36
저는 인사동이라 해서.. 인사동 골목 깊숙한 골동품점이나 미술품가게에 창고에서 발견된줄 알았는데..
서울 한복판에서도 발굴이 진행중인 곳이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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