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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1 23:03
여담인데, 박시백 님이 그렸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방석의 세자 책봉을 이방원은 속으로 은근히 반겼을지도? 라는 해석을 하더라구요. 왜냐하면 둘째인 방과를 세자로 삼았으면 뭐로봐도 명분이고뭐고 없어서 왕이 될 기회 자체가 없어질 뻔 했는데, 방석이 세자가 되는 바람에 쿠데타를 할 명분이 생겼다고...
22/01/11 23:38
하긴 방과가 세자였다면 방원에게는 기회가 없다시피했을겁니다.
적자가 없다고 해도 수명대로 왕을 했다면 넷째형인 회안대군 이방간이 왕위에 올랐겠죠. (익안대군 이방의는 정종보다 일찍 죽습니다.) 회안대군은 세자가 될 수 있는 적자가 있었습니다. 1차왕자의 난이 아니었다면 쿠테타 명분이나 왕의계승 명분이 없었을거고요.
22/01/12 00:37
사실 저 상태로 방석이 왕이 되었다면, 훗날의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방원을 포함한 방간의 배다른 형제들은 죄다 죽어나갔을겁니다.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였죠.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 였을 뿐이고, 여러가지로 신덕왕후 강씨가 갑자기 사망한 것이 큰 변수를 만들어줍니다. 그녀의 사후의 상황은 방원을 중심으로한 형제들에게 더 명분이 있었던 듯 합니다. 왕자의 난이 진행되며 빠르게 궁궐안 세력들까지 항복하는 과정을 보면, 이미 포섭된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방석의 세자책봉은 좀 아니다.. 싶었던 거죠.
22/01/11 23:47
??? : 내 아들놈이 외삼촌들한테 휘둘리는것 같아서 미리 정리합니다. -사실 원인제공은 어떻게보면 양녕대군탓임...
22/01/12 03:55
능력은 쥐뿔도 없고 그렇다고 조선건국에 이름자좀 올릴 공훈도 하나 없는 주제에
욕심만 많아서 주제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면 어떤 댓가가 오는지를 역사가 보여준거죠 그것도 건국초기 민심과 시류가 안정되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실력자,명망가의 존재자체가 국가안녕의 버팀목이던 시절인데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이자 실력가인 이방원을 저렇게 대했다는 자체가 신덕왕후가 얼마나 소견이 좁은 사람인지 보여주는거죠
22/01/12 08:44
자제들중 일등공신인건 맞고 똑똑한것도 맞지만 아직 실력자라 보긴 어려울듯 합니다 오히려 신덕왕후 옆에 이성계 정도전이 있죠
아마 이방원은 이제부터 처가 밎 조영규 조영무 이숙번 하륜등을 포섭해서 그 세력을 키워나가지 싶네요
22/01/12 09:24
강씨만 오래 살았으면, 왕자의 난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윗 분 말씀대로, 방석과 강씨를 비호하는 인물이 실세 중의 실세 정도전이었는 걸요. 하지만, 먼저 죽는 건 신덕왕후였고... 또한, 신덕왕후의 집안이 이성계가 그 자리에 오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을 터인데, 공훈이 없다고 볼 순 없죠.
22/01/12 11:22
이성계를 사실상 중앙에 꽂아준 뼈대있는 집안의 본처(경처라 첩개념이 아니죠)라 애초에 위치 자체가 엄청 막강한데,
살아있는 왕비에 세자의 친엄마이기까지 해서 이것만으로도 위상이 엄청 높죠 거기다가 왕인 이성계가 엄청 아끼기까지..... 뭐 그러니까 방석을 세자에 꽂을 수 있던 것이겠지만요. 강씨가 살아 있으면, 방석/방번만 죽이는 게 아니라, 당시 중전인 강씨도 같이 죽여야 하는데, 이건 진짜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죠. 이방원이 감히 선택하기 힘든 선택이에요. 아무리 정치 천재 이방원이라한들 수습불가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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