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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07/17 21:32:22
Name white
Subject [잡담] 추억 이야기 - 두번째
고1 때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이었습니다

시험 끝나고 집에 왔다가 친구네 집에가서 책을 빌리고, 집에 오려고 마을버스를 탔습니다

종점이였고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기사 아저씨가 출발하실 생각을 안하시고,
앉아서 담배를 피고 계셨고, 버스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자기네들 끼리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무심코 밖을 내다보았는데

마침 인도에 한 아저씨께서 대여섯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따님이셨던것 같습니다)와
함께 앉아서 옷가지와 감자를 팔고 계셨습니다

말이 옷가지 였지....
그냥 옷걸이 두어개에 걸어놓은 옷이 전부였고,
감자도 바닥에 펼쳐 놓으신 열개 남짓이 전부 였습니다

소녀는 한쪽에서 쭈쭈바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습니다)를 먹고 있고
아저씨께서는 그런 그 소녀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더군요
애초에 장사에 별 관심이 없으셨던것 같습니다...

그러고 몇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트럭한대가 나타나더니 사람들이 우루루 내리고는
다짜고짜 길에 펼쳐놓은 감자를 발로 다 짓밟아 버리고
그 옷걸이를 전부 트럭에 실고 울며 매달리시는 아저씨를 바닥으로 밀쳐버리고는
유유히 가버리는 것 이었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말 그냥 정신이 멍 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 광경을 바라보던 제가 정신을 차렸을때 저는 이미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차마 그 광경을 더이상 바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바닥에 주저 앉아 울고 계신 아저씨를...
그 옆에서 함께 아주 서럽게 울고있던 소녀를.....

마을버스가 출발 하였습니다
그리고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제가 내릴때 까지 아무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집에 오는 내내,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얼마간을 계속 울었었습니다
슬퍼서도, 무서워서도 아니었고
그냥, 무언가 참을 수 없는 느낌이 눈물로 표출되었던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냥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무엇이 옳고 그릇된건지
잘 판단이 서지를 않습니다...

오늘도 그때처럼 많이 덥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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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그리
03/07/17 21:39
수정 아이콘
음 너무 가슴이 아픈 이야기군요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 아마 구청
단속반이었을텐데 저도 그런일을 볼때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지금까지 제가 가졌던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우리주위엔
너무나 힘들게 사는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분들에게 조그마한 도움도
주지못하고 편하게 사는 제자신이 참 많이 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 절 이렇게 편하게 살게 해주신 저희 부모님에게요....
03/07/17 21:44
수정 아이콘
얼마 전부터 제가 타는 주로 타는 버스에 과속 경보음이 설치되었습니다. 아마 시속 80km가 넘어가면 경보음이 울리게 되는데, 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그 버스를 탔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경보음이 심하게 울리더군요. 아마 5분 이상 계속 울렸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아무도 버스 기사를 향해 속도를 낮춰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사 바로 뒷 자석에 앉아 계시던 아저씨가 갑자기 기사 분을 향해서 호통을 치시면서 속도를 낮추라고 했습니다.
물론 속도는 곧 낮춰졌고, 경보음은 그쳤지만, 곧 이어서 기사 분이 그 아저씨와 실갱이를 벌이게 됬죠. 말은 즉슨 "과속 딱지를 끊으면 내가 끊는 거지 그 쪽과 무슨 상관이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버스에서 출구에 붙어있는 경고문에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설치한 경보음이므로 분명 기사에게 경고를 하라고 적혔있었습니다만, 기사 분은 계속 자기 개인의 일일 뿐이며, 아저시가 "열 받을" 일이 아니니까 "입 다물고" 있으라더군요.
곧 왠 할아버지께서 처음 항의를 하셨던 아저씨를 향해 "기사가 이미 사과를 했는데 뭘 계속 따지냐"며 조용이 하라고하면서 실갱이가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버스 안에 몇 명이 타고 있었는지 아십니까? 저를 포함해서 대충 20명 정도가 있었지만 그 셋의 다툼에 단 한 명도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다들 아주 무심한 표정 -_- 으로 사태를 관망하거나, 주변을 내다보거나, 시끄럽다는 듯이 찡그릴 뿐이었죠.
버스 안에서는 에어콘 바람이 차가울 정도로 불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무표정한 그들의 표정에서 저는 나도 모르게 위축되어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계속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이시로
03/07/17 21:47
수정 아이콘
이 '도시'의 무서움에 저는 항상 두려움을 느낍니다.
에리츠
03/07/17 22:09
수정 아이콘
사람들은 이기적이기 마련입니다.

이상적으로만 살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린나이에 이런걸 느껴야했던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한심스럽습니다.

아... 가끔은 이렇게 현실적이여도 괜찮겠죠?
안전제일
03/07/17 23:05
수정 아이콘
무언가를 아직 모르고 혼란스러운 나이인데...이제는 더이상 혼란스러워하면 안된다고 다그치는 목소리를 듣고는 합니다.
그냥...그렇다는 것이지요. 이게 나름의 타협이겠지요.
무지개너머
03/07/17 23:13
수정 아이콘
'내가 왜 이런걸 알아야하나... ... 난 아직 몰라도 될 거 같은데' 이런생각 많이 했었죠
As Jonathan
03/07/17 23:58
수정 아이콘
정말 안타깝죠,, 그사람도 우리와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참 좋겠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히 생각하고, 그냥 동정만 하는 시민들,,
안타깝죠,,
하지만, 계속 안타까워 할 일이라기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가 더 혼잡해질수도 있다는 약간 과장된 결과도 있을지 모르죠,,
참 안타깝습니다,, 어느것이 악이고 어느것이 선인지,,,,,,,,
felmarion
03/07/18 01:21
수정 아이콘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안타까움과 작은 비겁함속에 숨어버리게 되는군요.
03/07/18 15:22
수정 아이콘
에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나는군요...

"옆집에서 누가 죽든지 말든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다만 티비에서 하는 인명 구조 프로만 눈이 가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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