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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8/20 02:22:23
Name 아브락사스
Subject 나이 서른... 끝난 잔치에 임의 입대를 보며...
이 게시판에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시작할때 고해성사를 하듯이 나 역시 '스타'를 '재미있게' 보기 시작했던건 예전 게임큐 시절로 기억한다. 그때는 3학기까지의 구멍난 학점을 메꿔야하는 복학생의 고달픈 수업일정을 따라가던터라... 단지 식사시간 틈틈이 나오는 게임방송을 보던 시절이었는데...

어느날 '임요환'이라는 선수를 알게되고, '김동수'란 선수를 알게되고 그 둘이 '결승전'이라는걸 한다고 알게되었다. 사실 인터넷기반의 여러 사업이 한참 팽창하던 때였지만, 워낙 보수적인 성격탓에 인터넷 결제따위는 전혀 신뢰하지 않았었기에... 아마 그날도 시험이 끝나고 집에 갔을때 정말 할일이 없지 않았다면 그 '결승전'을 '휴대폰 결제'까지 해가면서 보지 않았었으리라...

그 경기를 보고 난 이후부터 난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 둘이 하고있는 경기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무언가 극한의 수련을 통한 '달인'들만이 펼칠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라 생각했기에... 나는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최근 경기를 봐야했고, 느껴야했고, 따라해봐야 직성이 풀리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구멍난 학점이 메워지면서 취직을 하기까지 '스타'는 내게 '여유시간'을 활용하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팀플에서 점차 1대1전투로, 국민맵 '헌터', '로템'에서 점차 '개마고원', '패러독스', '포르테', '발키리', '러시아워' 로...

취직을 하고 나이 서른이 되면서 '스타'는 내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에서 점차 무정형의 '인생사'로 변하고 있었다. 단순히 '스타'를 '좋아하는' 수준이 아닌 이제 '스타'가 하는 날이면 왠지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노력하고, '결승전'이 하는 주말이면 열일 제쳐두고 때론 경기장으로 때론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모여 경기를 '관람'하고 '토론'하고 '재생'하는...

그러다가 어느덧 서른... 요즘 나는 내 나이대 사람들이 점차 '임요환'과 '우리'의 승리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제 '회사'와 '사회'와 '인간간의 관계'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된 나이 서른에... 우리는 우리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이었던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활약했던 한 게이머의 투혼에 점차 우리를 투영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임요환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한두통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패턴은 항상 비슷하게... 그가 이기면 '봤냐? 오늘 모모모 빌드 진짜 죽음이더라.. 맥주한잔 하자', 그가 지면 '봤냐 조낸 아쉽다... 쏘주나 한 잔 할까...'

어쩌면 점차 사회에서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게 점차 적어진다는걸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에 '우리'가 '임요환'에게 '우리'는 투영한다는 건... 꿈많았던 시절... '객관'과 '합리'로 세상을 재단할 수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을 같이 살아온 그에게서 무언가의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그가 진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같이 우울해하고 그가 이긴날에 같이 환호하는게 아닐까... 그의 경기가 항상 객관과 합리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었기에...

언젠가 우연치않은 술자리에서 그에게 말했듯이... 나는 이제 그의 승리만을 원하는 팬이 아니다... 나는 그에게서 엄청난 물량으로 상대를 압도한다거나, 단단한 수비로 자원을 확보한 이후 운영을 통한 승리를 원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어서, 마누라에게 구박을 받아가면서도 집앞 게임방에 몰래몰래 아들을 데리고 나와 '빌드'를 가르치고, '컨트롤'을 느끼게하고, '운영'을 깨닫게 하며, '전략'을 만들수 있을때까지, 그가 선수이건 코치이건 감독이건간에 '아빠가 예전에 이걸 처음 배울때 쟤가 어떤걸 했었는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만의 스타일을 계속 지켜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바랄뿐이다...

순진한 '빠'와 개념없는 '까'들이 그의 승패를 놓고 수많은 리플을 쏟아낼때, 그의 뒤에 수십만 '무리플 예비역 아저씨'들이 같은 심정으로 그를 보고있다는걸... 그래서 그의 입대와 그 이후의 생활에 여전한 관심을 보낼거라는걸 알기 바란다...

끝으로... 몇해전 '박철순' 투수의 은퇴경기처럼, 수많은 아저씨 올드팬들이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같이 '마이웨이'를 부르는 그 날이 올때까지 앞으로의 변화에도 변하지 않는 그를 바라고 믿고 성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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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8/20 02:36
수정 아이콘
임요환 선수가 제 고등학교 후배라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부터...
조금은 더 악착같은 모습이 늘었던 제 모습이 언뜻 생각나네요
언뜻 내년에 서른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비슷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06/08/20 02:45
수정 아이콘
같은 직장인으로써 공감가는 글이군여.
선 보는 자리에서 취미가 뭐에여? 란 물음을 받으면 차마 이야기 못하지만...
삶의 즐거움중 하나인 스타리그에 임요환선수의 공백은 상상하기 힘들듯 하네여.
그리고, 박철순투수의 은퇴경기를 경기장에서 본 저로썬 그때의 감동을 잊을수 없습니다.
임요환선수도 박철순투수처럼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상식을 무너트렸으면 합니다.
Katase Ryo
06/08/20 02:49
수정 아이콘
저역시 서른의 무리플 예비역 아저씨라서 그런지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저희는 어느새 그를 자신처럼 생각하게 되버린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승리를 소리높여 자랑하지도 그가 까일때 나서서 방어하지도 않는듯 합니다.
그냥 아 승리해서 기쁘다고 생각하고 까일때면 이런식으로 욕먹는 구나 하면서 안타까워하고 마는 거 같습니다.
마치 당사자가 나서면 안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글이 추게로 가기를 바라는 건 임팬으로서의 이기적인 마음인걸까요.
어쨌든 외쳐보겠습니다. 추게로...
06/08/20 04:19
수정 아이콘
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여 대충 읽고 잘려고 했는데...
삼십대 무리플 예비역 아저씨라는 말에 발끈하여 거의 3년만에 리플달아 봅니다.
허걱.....올해부터는 민방위였군요.(조금은 슬프군요)
친구들중에 반은 스타리그를 보고 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타리그를 보는 우리들은 그렇지 않는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인생의 즐거움중 하나를 모르고 사는거다`라고 하면서
술자리 막판에 이어지는 게임방행을 유도해보곤 하지만,
나이 좀 먹어서 그런지 동참하질 않더군요.
(친구들이 노총각 군단이라 토요일에 만나면 일요일 해뜨는것을 보고야 집에 들어갑니다.)
저역시 스타크 출시 초기에 조금하다가 흥미를 잃어 책상서랍에 두고 잊혀지고 있었죠.
(주종족이 테란이었고 배틀넷에서 저그와 프로토스에게 연전연패를 했었죠)
사실 서랍장속에 잊혀져가던 스타 CD를 다시 꺼내도록 한건
그당시 혜성처럼 등장했던 임요환 선수였습니다.
그에 대한 고마움만큼이나 그를 응원했다고 다짐해봤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 될것 같습니다.
부디 입대전 MSL에서 좋은 성적을 내길 바라며,
좋은 은퇴경기 기대하겠습니다.
늦은시간에 좋은글을 써주신 아브락사스님께 감사드리며,
조용히 추게행을 외쳐봅니다.
06/08/20 09:06
수정 아이콘
좋은글. ^^
willbefine..
06/08/20 09:12
수정 아이콘
무리플예비역아자씨..에서 저역시 슬그머니 끼어들어 봅니다.

물론 아자씨는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아줌마? 정도네요..

비슷한 또래라서 그런지 글을 쓰신 전반이 모두 공감하는 부분이여서 그냥 지나칠수 없네요.

어느순간 저도 이기고 지는 게이머 임요환을 넘어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나의 20대를 온전히 함께 한 그,..

인간 임요환을 사랑하게 되어버렸습니다.


하긴 말 그대로 제 20대를 함께 한 사람이 그인데, 어찌 그를 여타 게이머과 함께 놓고 얘기할수 있겠습니까..=)

군대가 녹녹한 곳은 아니라는 얘기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또 저의 임요환군은 뭔가를 해낼수 있는 에너지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자의반 타의반 이미 그는 해내야 하는 운명이니까요..
다시이곳에
06/08/20 10:51
수정 아이콘
여기 무리플 예비역(?) 아줌마도 한 표 보태주십시오. ^^
군 생활 잘 할 겁니다. 그리고 이제껏 그랬듯이 그는 사람들 깜짝 놀라게 할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겁니다. 박서니까요.
06/08/20 11:50
수정 아이콘
예전 야구 중계 매일 보듯이 요즘은 스타만 봅니다.^^
마녀메딕
06/08/20 13:48
수정 아이콘
공감많이 되네요. 스타를 좋아하고나서 누구를 만날때 상대방이 스타를 아는지 스타를 보는지 꼭 물어보게 됩니다. 저도 나이대가 삼십대 것두 여자인지라 주위에 스타를 보는 친구들이 없어 너무 슬퍼요. 같이 얘기나눌수 있는 상대가 없어서. '야, 어제 요환이 경기 봤어? 진짜 이맛에 스타본다' 이런말 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다드
06/08/20 16:12
수정 아이콘
멋진글입니다.
저도 나이들어서 이렇게 멋지게 임요환선수에 대해 이런 멋진 응원글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utopia0716
06/08/20 18:47
수정 아이콘
무리플 예비역 아저씨가 간만에 쓴 글인데 에이스 게시판에는 가야죠 ^^
두툼이
06/08/21 09:56
수정 아이콘
글을 읽고.. 정말 많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임요환"이 아닌 "나, 우리"로 느끼는 그런 감정.
요환선수가 지면 내가 진듯.... 요환선수가 이기면 내가 이긴듯 행동하는
모습이 요환선수를 한 게이머가 아닌 "우리"로 느끼는 모습이겠죠.

저도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에게 '빌드'를 가르치고, '컨트롤'을 느끼게하고,
'운영'을 깨닫게 하며, '전략'을 만들수 있을때까지, '엄마가 예전에 이걸 처음 배울때
쟤가 어떤걸 했었는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만의 스타일을 계속 지켜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06/08/21 13:03
수정 아이콘
무리플 예비역 아저씨라...
30대 중반이 넘어가니 뭐 민방위도 한참이고...
그래도 게임큐부터 시작했던 그와의 스타경기는 아직도 함께 가네요.
별로 좋은 응원하는 팬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마지막 은퇴경기가 결승이었으면 싶었는데.
박정석과의 sky 결승 이후론 한번도 결승을 못 간 것 같네요.
30대 게이머가 되길 그만큼 간절히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가 30대 게이머를 한다면 그때도 그를 응원을 해 줄 팬이 되겠습니다.
요즘 추게나 여러게시판에 있는 그에 대한 헌정글을 가끔 찾아보긴 하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긴 하네요.
PGR도 이젠 명예의 전당이 필요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명예의 전당에는 올라간 선수에게 헌정한 글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군대가 은퇴를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만(박서에게는 더더욱이나...) 그래도 군대를 이유로 은퇴하는 게이머가 앞으로 늘어날테니이제 슬슬 PGR도 그들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06/08/21 13:28
수정 아이콘
아 추게는 못가더라도 에이스 게시판은 가야 하지 않을까요?
붕어의안습
06/08/22 10:40
수정 아이콘
저도 27살 임선수와 동갑내기 입니다.
이런소리 하면 미친X 소리 들을수도 있지만,
임선수의 개인리그를 볼때면
이기든 지든 그 자체에 제가 활력소를 느끼게 됩니다.
아무튼 임선수의 군입대는 당분간 스타리그 방송에 별 흥미를 못느낄거 같네요.
06/08/23 04:40
수정 아이콘
정말 너무 멋진글이네요.
감동받았습니다.
추게로 꼭 가야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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