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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검사외전(2016) - 관객을 얕봐도 너무 얕본다



내가 볼 때 <검사외전>은 '재밌는' 영화가 아닌, '재밌는 척'하는 영화다. 정확하게 원인을 짚기는 어려우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언가 모르게 기만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가 정말 재밌는 작품인지, 아니면 재밌는 척(?) 분위기를 몰아가는 작품인지 보는 내내 갸우뚱했다는 얘기. 안타깝지만 그래서 나는 무장해제하듯 마음을 가볍게 풀어헤친 채로 이 영화를 즐기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재밌을만한 요소는 전부 때려 박았다


일단 <검사외전>은 요즘 대세인 충무로 상업영화의 흥행 공식을 전부 몰아넣은 명절용 종합선물세트다. 황정민-강동원이라는 요즘 가장 핫한 두 대세배우를 캐스팅해 버디물 형식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범죄오락물'이라는 경쾌한 장르를 통해 범죄물 특유의 긴장감과 장르적 쾌감, 그리고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코미디와 사회비판적 요소까지 한데 녹여내려 노력했다. 또한 장르적 색깔에 충실한, 지루할 틈 없는 스피디한 편집과 시원시원한 전개까지. 이렇게 외관만 놓고 보자면 명절에 극장에서 맛볼만한 상업영화로 이보다 더 훌륭한 조합의 밥상은 없을 법하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실상은 좀 다르다.

우선 영화는 기본적인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며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기 보단, 일단 대충 대충 눈앞의 사건을 우연을 통해 눙쳐 넘기고 어영부영 빠르게 흐름을 타면서 자신들이 준비한 '유쾌한 유머'라는 필살기로 관객들을 홀리려한다. "개연성이야 뭐, 대~충 이런 얘기야. 이정도면 됐지?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어때? 일단 재밌지? 그리고 강동원 봐, 쩔지?". 소개팅으로 치자면, 정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설명은 얼렁뚱땅 대충 넘긴 채로, 준비해온 마술 등의 이벤트용 소품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환심을 사고자 하는 상대를 마주한 느낌이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비어있다. 백번 양보해서 개연성의 부실함 측면 정도는 애초에 눈감아준다손 쳐도 정작 영화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장르적 색깔도 어딘지 모르게 기시감이 심한데다 허술해 보이고, 코미디도 약하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이러한 허술함을 <범죄의 재구성>, <타짜> 등을 연상시키는 빠른 편집과 전개로 눙치고 유머로 희석시키는 느낌이 강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무언가 찜찜하긴 한데, 속도감 있는 편집을 통한 이야기의 빠른 점프와 배우들의 개인기를 통해 일단 어찌어찌 의문점들을 넘기는 느낌이랄까. 마치 끊임없는 이슈를 생산해내 과거의 논란을 무마하고 희석시키는 현실정치와 언론 플레이를 보는 듯도 하다. 한마디로 관객을 얕봐도 너무 얕본다는 느낌.

더불어 주연배우 둘의 캐릭터 연기 또한 아쉽기는 매한가지다. 한쪽은 너무 생기 없이 눌러붙은 채로 답습의 늪에 빠져있고, 다른 한쪽은 과도한 의욕으로 인해 애매하게 붕 떠있다. 황정민의 연기에 대한 피로감이야 더 언급하는 것이 입 아플 만큼 비슷한 색채의 동어반복이다. 스크린 속에 검사 변재욱은 없고 <부당거래>, <베테랑>, <히말라야>의 캐릭터 연기가 뒤섞인 그 어느 지점의 그 누군가가 있을 뿐이다. 분명 황정민 본인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으나, 관객이 체감하는 캐릭터와 연기가 비슷하다는 점은 배우로서 심각하게 고민해볼 부분이다. 그나마 영화에서 이성민과 함께 유이하게 제몫을 하는 강동원의 연기도 냉정하게 볼 때 '캐릭터빨'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스크린 안에 정말로 사기꾼 한치원이 있다기보다는, 사기꾼 캐릭터를 능청스럽고 그럴싸하게 잘 연기하는 배우 강동원이 있는 느낌. '무난하다', '제몫을 했다'는 정도의 합격점은 줄 수 있어도 그 이상의 상찬을 해주긴 어렵다. 내 개인적으론 오히려 이 영화를 통해 배우 강동원의 한계를 본 느낌이 강하다.

이제는 사회비판도 패션인가


그리고 <검사외전>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사회비판적 코드'는 어떤가. 한때 젊은 층들 사이에서 '패션좌파'라는 말이 유행했다. 마치 패셔너블한 옷을 걸치듯 그렇게 진보적인 좌파라는 이미지의, 이른바 '있어 보이는' 좌파라벨을 본인 스스로에게 붙이는 젊은 층들 사이의 유행과 행태를 통칭한 말이다. <검사외전>을 보며 '이제 한국 상업영화에서 사회비판도 패션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작년의 <베테랑>, <암살>, <내부자들>에 이어 <검사외전>까지. 충무로에서 흥행영화를 만들려면 추악한 현실을 까발려주며 관객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막판엔 악을 응징하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것이 어느새 트렌드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사회비판' 그 자체로 나쁠 건 없다. 아주 오래된 단골 소재이기도 하고. 다만, 이 사회비판적 시선이란 요소가 <복수는 나의 것>이나 <살인의 추억> 등에서처럼 일종의 불편한 전율 혹은 현실의 맨얼굴과의 깊이 있는 대면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흥행을 위한 하나의 공식이자 코드로만 치우쳐 활용돼선 곤란하다는 얘기이다. 여기에는 '현실의 맨얼굴과 마주하는 불편함'이 아닌 일종의 '사회비판의 가면을 쓴 판타지'만이 남을 확률이 높다. 이것이 <검사외전>에서 상징적 악으로 대표되는 정치인 우종길을 응징하는 마지막 법정씬이 내게 카타르시스가 아닌, 뭔지 모를 지루함과 뻔함으로 다가온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검사외전>을 통해 건질만한 미덕은 무엇일까? 과거의 천만영화들이 <괴물>, <왕의 남자>처럼 완성도가 높거나 <해운대>, <7번방의 선물>처럼 까일 거리로 넘쳐나는 양극단을 오고갔던 데에 반해, 최근의 천만영화들은 그럴듯한 모양새와 기획력을 갖추고 치밀한 흥행공식을 더해 더욱 교묘해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명절특수를 노린 기획상업영화의 공식을 전부 한데 끌어안은 채로 최첨단에 서서 우리 영화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려주는 것이 <검사외전>의 유일한 미덕이라면 미덕이겠다. 그래서 <검사외전>은 일면 상당히 재기발랄하고 트렌디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껍질을 한꺼풀 까보면 그 이면은 상당히 구식이고 약았다. 가볍고 경쾌한 것은 좋지만, 이런 식으로 가볍고 경쾌해선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