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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01 11:31:27
Name aura
Subject [일반] 캐치 유 타임 슬립! - 4 튜토리얼(3) (본격 공략연애물)


  1.


한국에서 입학식은 언제나 그렇듯 지루하면서도, 뻔하다.
뻔한 말씀에 뻔한 순서.
뭐가 어떻든 빨리 입학식이 끝났으면 좋겠다.
입학식이 끝나고나서는 학부과별로 '대면식'이라는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뭐 대면식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은 아니고 선후배간 면식을 익힌다는 명분하에
모여서 술을 퍼마시는 자리 쯤 된다.


보통 이런 신입생, 뉴 페이스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다양한 선배들이 서식하고 있기 마련인데,


진심으로 후배의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은 책임감 강한 선배님.
어디 예쁜 뉴 페이스좀 없나? 두리번 거리며 이 쪽 저 쪽 다 찔러보는 껄덕쇠.
나도 이제 선배라며 한 부심 부려보고 싶은 어린 꼰대 등 아주 다양하다.


비단, 대학교는 선배뿐 아니라 동기든 후배든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이 군집해 있는 독특한 장소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군집과 그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갈등과 감정들은 대학 생활의 참 묘미이자,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군가는 집단에 밀려 소외감에 사로 잡히고, 누군가는 집단을 장악해 도깨비 감투도 써 본다.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싸우고 갈등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실타래가 가장 크게 펼쳐지고 엉키며,
마음 속 깊이 감춰왔던 마음의 실도 슬쩍 비춰내 보이는 곳이 바로 술자리다.
못볼 꼴, 재밌는 꼴을 다 볼 수 있는데, 어떤 일의 당사자는 최고든 최악이든 둘중에 하나겠지만(보통은 최악이지만)
방관자에게는 항상 큰 재미를 보장한다.


-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와 함께 입학식은 드디어 끝.
입학식 종료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각 과의 선배들은 과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번쩍 들고 같은 과 아이들을 모집한다.


[은하야 가자.]
- 저... 나는 경영학과야!


그러고보니 통성명만 했지 은하는 내가 본인과 같은 학과라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싱긋 웃어보이며 대답한다.


[말 안 했었나? 나도 경영학과거든.]
- 정말?
[응.]


<<< >>>
상태창 업데이트.
호감도 상승x2
호감도 상승효과로 현은하의 현재 속 마음을 읽습니다.
<우연...일까?>


생각지도 못한 수입이 계속 굴러들어온다.
나는 눈 앞에 뜨는 요란한 상태창에도 아랑곳않고, 그대로 은하의 옷깃을 잡고 그녀를 이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지금부터란 말이지.
그 때 경영학과 표지판을 들고있는 남자 선배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박재신인가.
적당한 키에 적당히 생긴 얼굴. 언제나 애용하던 과잠(과잠바)차림.
그나마 겉으로 보여지는 성격은 쾌활해서
바람 핀 소문이 나기전 까지 학과내 여론이나 평판은 꽤 좋았던 것 같다.


크, 이 앙큼한 새끼. 이렇게 건실하고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로 양다리를 걸쳤단 말이지?
앞으로 벌어질 일이나, 알고 있는 사람의 성격, 성향들을 미리 알고 있다는 건 참 묘한 기분이다.


- 경영학과 분들 여기로 모이세요!


박재신이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표지판을 위아래로 흔든다.
뭐 일하는 것만 보면 나이도 어린 게(?) 속시원하게 잘하긴 한다.
그러니 선배들 사이에서 그의 평판은 압도적이었지.


몇 번 더 박재신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학과의 신입생들이 모두 모였다.
박재신 외에도 여러 선배들이 조를 나눠 후배들을 인솔해 예약해둔 술집으로 향한다.
아무래도 경영학과가 사람이 많긴 많군.


여타 다른 과에 비해 늘어선 줄의 길이가 두배 이상이다.
뭐 그만큼 사람이 많기 때문에 집단의 특성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나로서는 즐거울 뿐이다.
방관, 갈등, 무관심, 소문, 다툼, 분열, 집단뭉침, 소수소외 등.


그리고 그것들은 잔인하지만, 시작의 총소리가 없다.
지금 이 순간도 사람과 사람의 도화선은 타들어가고 있었으니까.



2.


- 안녕하십니까. 새내기 여러분.
   이번 년도 과 회장을 맞은 이선준이라고 합니다.


술집에서 신입생과 재학생들의 착석이 끝난 후 기다렸다는 듯이 과 회장이 등장해 자기 소개를 한다.
그러고 보니 이선준이라.


회장이긴 하지만 내게 딱히 큰 존재감은 없다.
뭐랄까, 비유하자면 요순시대의 임금같은 느낌이다.
회장임에도 있는 듯 없는 듯. 당시에는 큰 감흥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과 회장을 아주 잘한 것 같다.
잡음없이 무난하고 평탄했으니까.


- 다들 우리 학교에 온 거 진심으로 환영하고,
   진짜 우리과가 최고인 게 공부도 잘하는 분들이 예쁘고 잘생기기까지 했어요 그쵸?


뭐 동의하진 않지만,
회장 주변 집행부들의 호응에 따라 신입생들도 호응한다.


- 참 제가 한 명 한 명 이렇게 보는데...


응?
기분 탓일까. 이선준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는 느낌이다.


- 역시 우리과가 제일 멋지고 예쁜 것 같습니다.


기분 탓인가.


- 그럼 생긴 것 만큼이나 같이 재밌게 놀고, 공부도 열심히해서 즐겁고 유익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대학생활하길 바라고, 오늘 이 자리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여러 정보를 줄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뭔가 회장답지 않게 깔끔하고 짧게 말을 끝냈다.
뿔테 안경에 똘똘해 보이고, 깐깐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깔끔한 연사다.
다만, 조금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쩐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 봤던 것 같은데...


- 현민아!
[응?]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감상에서 깬다.
내 옆자리에 꼭 붙어 앉은 은하가 내 팔을 슬쩍 흔든다.


- 아이고 후배님 저 팔 떨어지겠어요.


이런, 너무 생각에 잠겨있었나. 코 앞에서 선배가 술을 따르려는데 멍때리고 있다니.
딱히 이제와서 대학교 선후배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굳이 내 평판이 깍일 일은 벌이지 않는게 좋다. 뒷말이 깔끔할 수록 학과 여론을 장악하기도 쉽고,
나쁜 것 보다는 분명 도움이 되니까.


[죄송합니다. 잠깐 딴 생각하고 있었어요.]
- 어이구 우리 후배님이 다른 생각이라니요, 설마 여자 생각?


그러고 보니 우리 테이블에 앉은 이 선배놈, 최현식이다.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적당한 껄렁쇠에 사랑의 짝대기 같은 놈이랄까.
지 연애는 잘 못하면서 무슨 모임에서 그렇게 짝대기를 연결해대는지.
후에 후배들에게는 같은 테이블에 앉기 싫은 선배 1순위에 꼽힌다.


물론 방관자로서는 아주 유능한 컨테쳐다. 가만히 있어도 술자리 안주를 만들어주는 광대다.


[하하, 저 여자친구 없어요 선배님.]


어쨌든 자연스럽게 내가 여자친구가 없음을 은하에게 어필할 좋은 기회다.
이미 조금이지만 호감도가 쌓여있는 은하로서는 내 말을 어느 정도 귀기울여 들을테니.


- 에이 여자 생각은 여자친구가 아니어도 하죠. 옆의 귀여운 후배님이라던가?
[은하요?]
-올~ 벌써 이름도 알아?
-저, 저요?


역시 능숙한 사랑의 짝대기답게 분위기를 몰아간다. 남의 감정을 드블하는 하는 건 메시 호날두 뺨따귀 때릴 실력이다.
은하는 다소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에요. 하하. 그냥 오늘 입학식에서 알게되서 친해졌고 제가 생각하던건 여자 생각이 아니고
  선배님 생각한 거거든요.]



보통 저런 사랑의 짝대기러는 자신이 대화의 주제인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가장 쉽게 사람의 구미를 당기는 연애감정을 주무르는 것이고.
그 심리적인 틈을 찌르자.


- 응?
[그냥 저희 과 선배님들도 다 멋지고 예쁘세요. 특히 우리 테이블에 계신 선배님이요!
  잘생기고 말씀도 잘하세요.]



다소 낯 뜨거울 정도로 얼굴에 금칠하는 말이지만, 이런 여러 사람이 처음 모인 공식적 자리에선
다소 매칭이 안 되는 칭찬을 과하게 할지라도 효과가 분명히 있다. 평상시라면 오히려 놀리냐며 기분이 나빠질 수 있겠지만,
오늘 같은 자리에서는 상대의 감정을 기분 좋게 흔들 수 있다. 특히 멋모르는 신입생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면 왠지
모르게 선배 입장에서는 말에 신뢰도가 느껴진다. 신입생이 처음 본 선배에게 거짓말을 할 리 없어! 같은 느낌이랄까.


- 어허허허허허. 그래?
[네. 그치 은하야?]
-아? 으응!


역습과 함께 은하의 결정타로 못을 막는다.
은하같은 미인마저 동의하니 주변의 다른 신입생들도 동조한다. 분위기에 취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도
얼굴들은 하나 같이 웃으며 환호한다.


역시 이래서 대학, 아니 사람은 재밌어.


- 하하. 살다가 이런 말도 다 들어보네. 어쨌든 다들 자기 소개 한 번씩 하자!


테이블을 장악하고 있는 선배의 기분 업은, 전체적인 흐름을 부드럽게 한다.
첫 술자리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은하는 다행스럽게도 부드러움 흐름에 몸을 맡겨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3.


사랑의 짝대기러, 최현식이 다른 테이블로 가자마자
박재신이 기다렸다는 듯이 최현식의 자리를 꿰찼다.


역시 그 표지판들고 나댈 때 부터 신입생 여자애들을 스캔했던건가.
계속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선배들의 말에 맞장구 치면서도 박재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박재신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눈여겨둔 예쁜 여자 후배들의 번호를 묻고 있었다.


주도면밀하게, 은밀하게.
귓속말로 물어보고 테이블 밑으로 휴대폰을 건네 번호를 받는다.
이제는 은하 차례라고 생각했는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들이민다.


박재신은 등장하자마자 꽤 능숙하게 테이블 분위기를 장학해나갔다.
사람 좋아 보이는 호탕한 웃음으로 무장한 그는 후배들의 사소한 말에도 웃어주며,
소외받기 쉬운 구석의 신입생들에게도 농담을 건네는 괴력을 보인다.


아마 이런식으로 분위기를 이끌다 은하에게 은근슬쩍 번호를 물어볼 심산 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미리 은하에게 번호를 알려주지 말라고 할 명분이 없다.
오히려 이상한 놈으로 생각되어질 수도 있고.


이 쪽에서 쓸 수 있는 수는 그렇다면 한 가지 뿐인가.
박재신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는 틈에 슬쩍 은하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저 선배가 번호 물어보면 그냥 여기요 하면서 위로 핸드폰 건네줘.]
- ?


은하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은하야 다 너를 지키기 위한 거야.


때맞침 박재신이 움직였다.
잠시 신입생들 끼리 재잘거리는 동안 은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작게 속삭인다.


- 번호 좀 알려줄래?


은하는 꾹꾹 번호를 눌러 내가 지시한 대로 테이블 너머로 박재신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 여, 여기요!


잘했어 현은하!
나도 타이밍 좋게 치고 들어갈 때다.


[어? 선배님 저도 번호 좀 알려주세요!]


키득키득. 순간 당황한 박재신의 표정이 볼만하다.
설마 이렇게 남자 후배가 대놓고 번호를 물어볼지 몰랐겠지.
내 러쉬에 이어 다른 신입생들이 동요한다.


소곤소곤. 우리도 물어봐야하나? 원래 저렇게 하는 건가?
곧 이어 한 명이 번호를 물어보자 다른 신입생들도 우르르 박재신에게 번호를 알려달라며 붙었다.


- 선배님 저도요! 번호 알려주세요.
- 저, 저기 저도요.


지금 이렇게 하는 행동이 아무 의미 없어보이겠지만,
이것으로 일단 박재신의 도화선에 틀림 없이 불은 붙인 셈이다.
최대한 많은 후배들이 오늘 박재신의 번호를 알아갈수록, 한 순간 그에 대한 평판을 끌어내릴 수 있을테니까.




4끝. 5에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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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맥
16/03/01 11:37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공효일인데 한편 더 달리고 쉬시죠~!
16/03/01 11:40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달렸습니다. 흑흑.
글쓰기 넘나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


해원맥님 댓글보는 맛에 열심히 써야할 것 같긴 한데... 크크
해원맥
16/03/03 00:22
수정 아이콘
안자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흫흫
16/03/03 00:29
수정 아이콘
엇 크크크. 아직 집필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16/03/03 01:43
수정 아이콘
자 보러가시죠!
데로롱
16/03/03 01:48
수정 아이콘
넘나 재밌는것..
잘보고있습니당!
16/03/03 01:50
수정 아이콘
5편이 써져있습니다??
크크. 감사합니다. 넘나 재밌다니 ㅠㅠ
미카엘
16/03/06 12:18
수정 아이콘
이건 비터군요... 치터가 아니죠 크크.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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