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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5/12 00:18:07
Name 리니시아
Subject [일반] 라이터를 켜라 (2002) _ 어느 예비군의 편지


0.
얼마전 예비군을 다녀왔습니다.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내내 14년전에 봤던 영화 <라이터를 켜라> 가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다시한번 보았고,
주인공인 허봉구의 나이가 저와 같은 나이라는 설정에 굉장히 놀라며 이 영화를 다시 한번 곱씹게 되었습니다.





1.
<라이터를 켜라> 는 요즘 무한도전으로 얼굴을 보이고 계신 '장항준' 감독의 데뷔작 입니다.
2002년 월드컵이 막 끝나던 7월에 개봉하였고, 같은시기에 개봉하였던 경쟁작들도 쟁쟁했습니다.
맨 인 블랙2 (200만명) , 마이너리티 리포트 (전국 337만명),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서울관객 54만),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200만)의 경쟁하였습니다.
포스터나 이미지를 보면 뭔가 '뻔한 영화' 라는 느낌이 들지만 <라이터를 켜라>는 130만명의 관객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장항준감독의 다음 작품이 나올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줍니다.
(하지만 다음작품 <불어라 봄바람> 으로 인해 영화 감독에서는 멀어져간...)




2.
운이 좋은 감독, 아내 김은희 작가 ('싸인', '유령', '3데이즈' '시그널') 에게 얹혀사는 이미지가 형성되었지만, 알고보면 준비된 노력파 인것 같기도합니다.
서울예대 시절 대학 도서관에 있는 대본을 모두 읽어보았고, 학창시절에는 영화 광고문구만 보고 친구들이 좋아할만한 스토리를 하루종일 이야기하며 이야기를 만들곤 했다고 합니다.
신입 FD 에서 운좋게 6개월만에 작가로 거듭나지만 이 또한 준비되어있던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이고, <박봉곤 가출사건>의 첫 시나리오도 운좋게 대종상 후보까지 오르는 쾌거를 거두었고 여러 시나리오를 찾아보고 많은 고민을 한 결과라고 합니다.





3.
작가 출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쓴 각본이 아닌 '박정우' 감독의 각본으로 첫 연출을 하게됩니다.
박정우 감독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등으로 시네마 서비스의 여러 히트작을 내 놓은 각본가 입니다.
감독 본인이 쓴 시나리오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수정을 가한 부분이 있는데, 깡패 '양철곤'이 가정을 갖게되는 설정.
그리고 허봉구의 어머니와 양철곤의 아내가 한 동내에 산다는 설정은 굉장히 리얼리티가 떨어지며,
김승우, 차승원, 박영규,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강성진 등등의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코미디 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설정들은 코미디 이기에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 볼때 너무 과한것 같다고 장항준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4.
음악에는 장항준의 절친인 '윤종신' 이 맡았고, ost에 참여한 아티스트들도 범상치 않습니다.
윤종신, 유희열, 김광진, 하림이 참여하였고 지금에 비하면 '쭈구리(?)' 시절이라고 볼 수 있기에 영화에 담긴 음악들은 허봉구의 애환이 고스라니 느껴지기도 합니다.


집 떠나와 버스타고 어디로 가는지
오늘 하루는 나라에 몸을 맡기련다
우리동네 지켜보려 한다
부모님께 꾸중 듣고 서러운 아침은
반갑지 않은 한 동네 친구 만나면서
힘든 하루 고된 날 예고한다
어색해진 군복속에 숨겨진
무력해진 나의 근육은
이젠 말을 듣지 않고 쉬려고만 한다
피로해지는 나의 젊음이여
가고 있다 빠르게 가고 있다
단 한 번뿐인 겁없는 계절이
곧 다가온다 꿈보다 후회많은
아저씨라는 길고 긴 계절

입대할 때 그 눈빛은
일생에 단 한 번 그 때 뿐일가
아무리 힘줘 부릅떠도
떠오르는 걱정에 늘어진다
어색해진 군복 속에 배었던
기대뿐인 나의 출발은
아직 늦은것 같지는 않아
반도 안된 나의 인생을 다시 믿어본다
오고있다 빠르게 오고있다
잡힐것 같은 뿌듯한 계절
곧 다가온다 든든히 나를 믿는
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
곧 다가온다 든든히 나를 믿는
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
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



이등병의 편지와 비슷하다가 살짝 꺾여(?) 버리는 멜로디가 인상적이며, 극중 '허봉구' 의 처지를 잘 이야기하는 노래 가사가 일품인것 같습니다.
이 외에 '담배 한 모금, Spactacle Life' 라는 곡들도 굉장히 인상적이며, 특히 담배 한 모금 이라는 곡에선 윤종신 특유의 미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5.
장항준 감독은 장진 감독과 굉장한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데, 두 감독의 영화에서 보이는 '아이러니' 함은 비슷하지만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장진 감독의 <아는여자> 에서의 경우 주인공 동치성은 불치병에 걸린줄 알고 자살시도를 하게됩니다.
'마라톤' 을 통해 몸에 무리를 오게 하여 자살시도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5등 상품으로 '김치 냉장고' 를 받는 장면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집니다.
자살시도를 '마라톤'으로 택하는 아이러니함이 5등 상품인 '김치 냉장고' 를 받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지요.

반면, 장항준은 좀더 대중적인 아이러니함을 사용합니다.
목숨까지 걸며 '그깟 300백언 짜리 라이터' 를 돌려받으려는 아이러니한 고집이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매개체로 사용하게 됩니다.
어쩌면 교훈적일 수도 있는 결과는 감독 자신이 TV에서 연출을 하였던 경험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6.
30살. 무직. 허봉구.

이 영화는 구밀복검님의 말을 빌려 '명절 영화' 급이라고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전형적인 한국 코메디 물이고, 그때 당시 잘나가던 차승원표 코메디 + 조폭 코메디에 장항준이 이끄는 변주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제게 떠오르는 이유는 아마도 허봉구의 무식한 '노오오오오력' 인것 같기도 합니다.
주인공과 같은 나이가 되며 허봉구가 느꼈던 집착이 삶의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 조금은 이해되기도 하구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코메디 영화였지만, 지금 와서도 즐겁게 보고 여러가지 생각하게 되는 영화 <라이터를 켜라> 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저와 구밀복검, 명주군이 진행하는 '팟케스트 영화계' 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8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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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16/05/12 00:30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어요~ 저도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라이터를 켜라], [아는 여자], [바르게 살자] 같은 정서를 가진 영화를 참 좋아합니다. 사실 그런 장치들의 영화가 꽤 많긴 하죠. 신경쓸만한 놈이 아닌 캐릭터를 가장하다가 갑툭튀하면서 폭발하는 식이요. 다만 위의 영화들은 시종일관 캐릭터의 똘끼에 화면이 집중되어서 승리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더 강력한 것 같아요. 캐릭터가 뻔하면 식상하고 대비가 강렬 해야하니 주인공은 늘 돌아이가 되야하는 건 물론이지요. 크크크 비슷한 정서의 연장선에서 상황이 개판되는 쪽도 참 좋아해요. 요건 호불호가 좀 더 갈릴려나요?

근데 생각해보면 역시 장진이 이 분야 장인은 장인이였긴 합니다.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 등 (그 이후도) 죄다 같은 정서를 공유하죠. 크크 (뜬금 장진얘기; 제가 라이터를 켜라 봤을 때는 군입대 전이었는데 그래서 예비군복이 참 생소했는데 이참에 다시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리니시아
16/05/12 09:04
수정 아이콘
유투브에도 많이 돌아다니는걸로 알고있고 쉽게 보실 수 있을겁니다.
저도 장진영화중에 [아는여자] 를 가장 좋아한는데, 이나영 영화중에도 가장 좋아합니다??? 크크크
동치성 캐릭터가 아주 살아있죠. 이나영도 정말 귀여웠구요.
비슷한 상황에서 개판되는 영화가... 아무래도 장진의 [퀴즈왕] 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게 초반에는 흥미진진하다가 후반에 맥이 턱...
굿모닝 프레지던트 이후로 장진영화는 아무래도 아쉬워 집니다..ㅠㅠ

저도 장진스타일의 영화를 한참 재밌게 봣었는데 요즘 뜸해서 좀 아쉽죠.
그나마 최근 하정우가 감독한 [롤러코스터] 가 비슷한 맥락에서 재밌었는데 그 이후로 딱히 비슷한 부류의 한국영화가 없어서 아쉽습니다..
김성수
16/05/12 11:30
수정 아이콘
유튜브에 올라오는 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저도 아는 여자가 역시 애착이 갑니다. 흐흐 정재영-동치성이 진짜 기가맥혔죠. 이나영도 그 작품에서 빛이 나고요. 덕분에 [후아유] 까지 찾아본 뒤에 이나영의 몰랐던 매력을 건져네는 데 성공했어요. [퀴즈왕]은 언급하려다 꾹 참았는데 찝어주셨네요. 크크 이건 고구마 100개 먹음 느낌이라 좀 많이 아쉬웠습니다. 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대중적 코드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던 느낌이고요. 말씀대로 그러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롤러코스터]가 싹은 보이는데 꽃을 못 피운 것 같아요. 끝판왕 급 영화가 나와주기를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은 정서에서 좋아하는 작품은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 요런 것을 꼽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실 것이라 생각해요. 또 저는 공포 영화 못보는데 [캐빈 인 더 우즈]가 제 취향이란 것을 듣고 참다 참다 보기도 했었고요. 크크 [처음 본 그녀에게 프로포즈 하기]도 정말 좋아해요. 평단에서는 욕 먹기 딱 좋은데 아마 저와 같은 취향이시라면 쓰러지실 영화입니다. 취향 영화 저격해주셔서(사실 공포 빼고 잡식으로 보긴 하지만..) 덕분에 영화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샘솟습니다. 감사드려요 ~~
리니시아
16/05/12 18:17
수정 아이콘
[캐빈 인 더 우즈], [처음 본 그녀에게 프로포즈 하기]
이름만 들어보고 그냥 지나갔던 영화였는데.. 한번 찾아봐야겠군요.
저도 감사합니다 ^^
16/05/12 00:30
수정 아이콘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영화를 엄청 즐기는 편이 아니고 영화편식이 심한편이라 본영화의 숫자가 많지 않은데
우연히 이영화를 보고 재밌어서 지금도 가끔 보면서 시간을 때우곤 합니다.
내 라이터 내놔 란 대사가 늘 참 마음에 와닫곤 합니다.
리니시아
16/05/12 09:05
수정 아이콘
'300원 짜리 일 회용 가스가 들어 있는 빨간색 새 거!!'
대사가 디테일해서 더 재미있었던..크크크
피아니시모
16/05/12 00:35
수정 아이콘
라이터를 켜라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당시 친구들이 비디오로 빌려와서 집에서 봤는데요 그때 다들 미친듯이 웃었습니다
같이 빌려왔던 링은..지네들이 빌려와놓고 무서워서 못보겠다면서 제 방에서 자기들끼리 컴퓨터하면서 놀더군요
(...) 그건 왜 빌려왔떤건데..
리니시아
16/05/12 09:07
수정 아이콘
저도 친구네 놀러갔다가 '주온' 빌려갔었는데..
재미가 없어서 친구 컴퓨터로 피파 하던 기억이..크크
지구특공대
16/05/12 00:39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한국영화중의 배우들의 욕설연기가 가장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내에서 어떻게 그렇게 다들 욕을 찰지게 하는지 크크크크 저는 상황보다 욕하는게 더 웃겼네요.
치토스
16/05/12 04:10
수정 아이콘
이문식 진짜 웃기죠 크크 개인적으로 이문식의 3대영화로
라이터를켜라,공공의적,마파도 꼽습니다
peoples elbow
16/05/12 06:53
수정 아이콘
황산벌.....
영원한초보
16/05/12 00:45
수정 아이콘
장항준 감독은 라이터를 켜라보다 좋은 작품이 없네요.
필모를 보니까 요즘은 감독 잘 안하는 군요.
리니시아
16/05/12 09:08
수정 아이콘
좀 찾아보니 드라마 연출 하기 전에 영화 두편 정도를 기획하고 있다가 제작비 무산때문에 제작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긴했습니다만..
기다려 보려구요 ^^
냉면과열무
16/05/12 00:45
수정 아이콘
전 이 영화를 을지로에 있는 명보 극장에서 보고 다신 한국영화는 극장에서 안보리라 다짐했었는데..
장진감독의 영화는 참 좋아라하지만요.
또니 소프라노
16/05/12 00:48
수정 아이콘
오 영화계 새 에피 올라왔군요 글을 읽으면 팟캐 스포(?)가 되니 팟캐를 듣고 보는걸로... 항상 잘듣고 있습니다. 요즘 영화계 처음부터 아는 영화 나오는거만 정주행중인데 완전 꿀잼이더군요 크크 주변 친구들한테 추천중입니다.
리니시아
16/05/12 09:10
수정 아이콘
와 감사합니다..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 내려고 더더욱 노력중입니다
써니지
16/05/12 02:51
수정 아이콘
장진 감독 영화는 순간순간 재미있는 장면들은 있지만, 전체 플롯(?)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이 안들어서 꺼려지더군요.
리니시아
16/05/12 09:10
수정 아이콘
그렇군요.. 다만 이 영화는 장항준 감독 영화....
Jedi Woon
16/05/12 05:01
수정 아이콘
저도 이 영화 볼 때 마냥 웃기기 보단 보고나서 뭔가 여운이 남았던거 같습니다.
별볼일 없는 인생 살면서 겨우 쫀심(?) 세우는게 라이타지만 그걸로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세우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뭔가 소시민이 공감할 것 같은 대리만족인것 같았네요.
마나나나
16/05/12 07:39
수정 아이콘
사실상 장항준 최대 작품 크 웃프네요
작은기린
16/05/12 07:46
수정 아이콘
전설의 영화 '긴급조치 19호'가 이 영화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습니다.
물론 영화 자체도 꽤 괜찮은 수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당시 극장에 다니셨던 분들이
긴급조치 19호를 보고 나서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거의 오스카 수상작 만큼 깊은 여운과
높은 완성도를 가진 영화라고 추억보정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이-_-;;;
리니시아
16/05/12 09:11
수정 아이콘
뿐만 아니라 [아 유 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또한 개봉시기가 비슷한....
스타로드
16/05/12 13:17
수정 아이콘
예전에 봤을 때 굉장히 재밌게 봤었습니다.
작년인가 아이피티비서 무료로 떠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다시 봤는데 예전 만큼 재미가 없더라구요. 왜 그럴까...
리니시아
16/05/12 18:16
수정 아이콘
사실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개그들의 향현이긴 하죠.
조폭코메디의 변주 급인데 사실 요즘 트랜드에 안맞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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