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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15 21:09:19
Name Lupin
Subject [일반] 소녀시대, AOA, Produce101
소녀시대는 특별한 그룹이었다. 물론 대 아이돌 시대의 포문을 연 것은 원더걸스였고 누구도 그 업적을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홍대 게릴라 콘서트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텔미 텔미 테테테테테 텔미를 열창할 때 이 기세라면 곧 세계 평화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더걸스는 미국을 정복하지 못했고 사그라들었다. 9명이나 되는 소녀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처음엔 어려웠지만, 그녀들은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을 정복하기 시작했고, 누구의 팬인가가 문제였지 소녀시대의 팬이 아닐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윤아로 시작해서 태연, 티파니를 거쳐 유리에 도달했고, 친구는 언제부터인가 순규를 좋아했다. 나는 아직도 순규에 대한 팬심은 없지만, 그가 순규를 좋아한 것에는 어떤 필연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한 번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학원의 어떤 여자아이를 끊임없이 좋아했지만 결국 이루어지진 못했다. 그리고 순규는 그 여자 아이를 닮은 구석이 있었다. 아마 순규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은 현실에서도 순규를 닮은 여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을 것이고, 순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손에 잡힐 것 같은 현실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는 노무현 대통령이 죽고 20여 일 후 죽었다. 그 관계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시기적인 관계만이 그와 대통령이 연관 검색어로 떠오르게 한다.

친구가 죽은 여름, 소원을 말해봐가 나왔다. 나는 눈물이 많지 않고, 이미 그맘때쯤에는 내 안의 모든 눈물이 다 흘러나온 후였다. 나는 담담하게 소원을 말해봐 뮤비를 수없이 보았고, 내 친구가 너무 빨리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살았으면 소녀시대의 명곡이 하나 더 나왔을 텐데 왜 바보같이 빨리 죽어버렸을까.

어쨌든 나는 할 일을 해야 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말하자면 눈을 치우는 종류의 일에는 어찌 됐든 실력이 있었다. 물론 눈을 굉장히 치우기 싫어하고, 더디게 치우는 편이었지만, 결국 눈을 치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실적이 있었다. 친구는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친구가 살아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자주 그를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노무현과 모든 소녀시대, 모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그리고 AOA의 심쿵해를 들었을 때 이 노래는 정말로 굉장해서 2015년에 나온 모든 노래 중 최고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아츄라든지 뭐 그런 노래들도 굉장했지만 심쿵해는 정말 엄청났다. 그리고 그 밑에 어떤 외국인이 댓글을 단 것을 보았다. AOA는 ‘anti commit suicide’ or ‘to live alive’의 기능을 한다는 댓글이었다. 친구는 아직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살아서 AOA를 보았어야 했고, 카오스에서 끝날 게 아니라 롤을 했어야 했다. 적혈귀를 좋아했던 그 친구는 아마도 리븐이라든지 야스오 같은 걸 잘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살아있는 게 좋았다.

Produce 101을 보았다. 이렇게 예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한다. 혹자는 이를 너무 노골적이며 잔인하다고 비난한다. 물론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헬조선에서는 수천대 일의 경쟁률을 뚫기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와 싸우고 있고, 그 현실은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녀들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다. 너무 나태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하며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는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뽑으며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그리고 역시 설현이 최고라고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로 굉장했던 그녀들을(태연이라든가 수지같은) 다시금 떠올린다.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죽은 것처럼 살던 내가 이제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 동생들을 위해 꼭 이기고 싶다는 이해인(SS)을 보면서 같이 롤을 한다면 이해인 같은 사람에게 미드를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위해 이기고 싶다는 바램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이를 통해 최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냥 버스나 타면서 만족해선 안 된다.

언젠가는 무슨 글인가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최근 며칠간의 생각이 모였다. 살아남아야 새로운 AOA의 신곡을 들을 수 있고, 새로운 걸그룹을 볼 수 있고, 더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 있고, 남아있는 사람이 오롯이 그러한 것들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소녀시대를 보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기분이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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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스
16/02/15 21:55
수정 아이콘
살아남아야 우리 연정이가 11위 안에 드는걸 봅니다ㅠㅠㅠ
16/02/15 23:08
수정 아이콘
살아있어야 우리 유정이가 최종센타에 서는걸 봅니다ㅠㅠ
연의하늘
16/02/15 21:55
수정 아이콘
수능비문학 지문같네요
밑줄 친 것중 관계없는 것을 골라라

마지막에 '사정했다' 가 빠진느낌도 크
solo_cafe
16/02/15 22:07
수정 아이콘
하..하루키니?크크크
16/02/15 22:20
수정 아이콘
좋은게 계속 나오는 세상이죠. pgr의 자게처럼...

별개로 제가 어렸을때라면 이해인양을 안좋아했을거 같아요. 욕심쟁이인가, 자기만 잘났나 라는 생각을 했을텐데
팀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멋져보이네요. 실제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내일은 저도 소녀들처럼 좀 힘차게?! 출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Rorschach
16/02/15 22:30
수정 아이콘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중인 "죽은 마법사의 도시" 최근 편인
http://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409629&no=199&weekday=tue
이 회차가 생각나네요.

네 최소한 MCU의 페이즈3은 다 봐야하고 DC코믹스의 저스티스리그가 영화로 어떻게 완성이 되는지는 봐야겠죠. 저 개인적으로 스타워즈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3부작은 다 봐야할테고요. 그리고 저것들이 다 끝나갈 때면 뭔가 또 새로운게 나올거고...

즐길 수 있는 것이 계속 나온다는게 모두에게 살아갈 이유가 반드시 되어야하는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 중 하나는 되는 것 같아요.
캡틴백호랑이
16/02/15 23:16
수정 아이콘
최소한 타노스에게 최후 일격을 날리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도대체 루피가 해적왕이 되는지 안 되는지 보고 죽어야죠.
A.O.A-pink
16/02/15 23:12
수정 아이콘
이 닉네임을 선택하고 이 보다 완벽한 닉네임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으나..바꾸고 싶게 만드는 처자들이 계속 나오네요
apinKeish
16/02/15 23:1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묘하게 글에 감동이 오네요... 아재?!임에도 걸그룹을 좋아해서 그런가 ...
살아남아야 김세정양이 데뷔하는 걸 볼수도 있겠죠 ㅠㅠ
16/02/15 23:18
수정 아이콘
처음부터 기운 판
불타는밀밭
16/02/15 23:19
수정 아이콘
실제로 사람 죽었는데 어떻게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카라 프로젝트 이후에 경쟁 데뷔 컨셉 프로그램이 지양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반대로군요.
16/02/16 03:10
수정 아이콘
제가 어떤의미로든 좋아했던 사람 중에 순규 닮은 사람은 없습니다.(단호)
맥핑키
16/02/16 06:06
수정 아이콘
아주 멋진 글인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감동적이었습니다.
눈물을 훔쳤습니다.
16/02/16 10:16
수정 아이콘
헌터X헌터 엔딩을 볼 수 있을까요?
카푸스틴
16/02/16 16:00
수정 아이콘
역시 미드는 이해인입니다.
탑은 주목안받아도 혼자 튈수있는 김청하
정글 김도연
미드 이해인
원딜 주결경
서폿 김소희

권은빈을 김도연이나 주결경대신 넣어도 좋을거 같아요
16/02/16 16:56
수정 아이콘
지식인의 품격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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