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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2/16 10:08:01
Name 글곰
Subject [일반] 출사 :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 02 (1.공명, 현덕을 만나다)
(1편 링크) https://cdn.pgr21.com./?b=8&n=63559

약속대로 두 번째 글을 오전에 올립니다.

이 글을 쓰는 데는 대략 2주 정도가 걸렸습니다. 머릿속에서 엉켜 돌아가는 이야기의 가닥을 잡는 데 열흘, 처음 한 단락을 쓰는 데 이틀이 걸렸고 나머지를 쓰는 데 이틀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씀해주시니 그 2주가 결코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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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찾아올 무렵이었다. 제갈량은 마루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는 중천에 떠서 따뜻했지만 사립문 사이로 살짝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조조가 승상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승상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로 본래 왕망이 난을 일으키기 전에 이미 없어진 직책이었건만 조조가 이를 되살린다는 것이니, 신하로서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자 스스로 더 높은 직위를 만드는 격이었다. 이로서 조조는 자신이 천하에서 둘째가는 사람이자 실질적으로는 허수아비가 된 황제를 뛰어넘어 명실상부한 일인자가 되었노라 자처하는 셈이었다.

  ‘곧 맹덕이 올 것이다.’

  제갈량은 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이미 천하의 지배자를 자처하는 마당에,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지방의 군웅들을 가만 놓아둘 조조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첫 번째 대상은 분명 허도에서 가까운 형주일 것이다. 이미 몇 해 전에 조조는 하후돈과 우금을 보내 형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유비가 복병을 써서 그들을 패퇴시켰으나, 그 때는 조조가 원소의 자식들을 공격하던 중이었기에 단지 후방의 안정을 위해 한 갈래 병사를 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지금 조조는 이미 원소의 자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오환까지 정벌하여 북쪽의 근심을 완전히 없앤 연후였다. 완연한 봄기운 때문에 제갈량은 도리어 추위를 느꼈다. 군사를 일으키기에 좋은 계절이었다.

  ‘경승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유표에게 조조를 막을 방도가 있다면, 오직 강동의 손권과 힘을 합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손견이 황조를 공격하다 죽은 이후로 손씨 가문와 유표는 하늘을 함께 일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되었고, 당장 작년에도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공격하여 많은 포로를 잡아간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올해도 손권이 다시 군사를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제갈량의 형이 보내온 편지에 따르면, 강동의 젊은 군주는 황조의 목을 벨 때까지 결단코 유표와의 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면 현덕은 이제 어찌 하려는가......’

  단지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칼 아래 목을 늘어뜨려야 할 터였다. 막다른 길에 몰리기 전에 먼저 반격을 해야 했다. 조조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천하를 하나씩 하나씩 삼켜 가는 조조의 거침없는 발걸음을 멈추게는 해야 했다. 그리고 제갈량에게는 계책이 하나 있었다. 긴 겨울 동안 천하의 정세를 살피고 고심한 끝에 내놓은, 다름 아닌 현덕을 위한 계책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그가 현덕을 위한 계책을 만들었는지는 그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봄바람이 다시 불어와 제갈량의 얼굴을 간질이고 지나갔다. 그는 갑작스레 졸음기를 느꼈다. 천하의 정세가 시급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잠시 낮잠을 자도 될 것 같았다. 적어도 그가 낮잠에서 일어날 때까지는 조조가 형주를 침범하지 않을 터였다. 그는 누워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얼굴이 따끔거리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그는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마치 불타는 듯 이글거리며 그를 응시하고 있는 두 쌍의 눈동자였다. 낮은 담장 너머로 얼굴이 험상궂고 덩치가 큰 두 남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것 같은 기세였다.

  개중 좀 더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호라, 해가 다 지도록 퍼질러 자다가 이제야 슬슬 일어난단 말이지?”

  사람의 말이라기보다는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곁에 서 있던 수염 긴 남자가 그를 말렸다.

  “입을 다물어라, 익덕(益德). 형님께옵서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하시지 않았더냐?”

  그러나 그 말은 마치 그의 형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당장이라도 제갈량의 목을 쳐 버렸을 것이라는 투로 들렸다. 제갈량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익덕이라는 자(字)를 들은 것만으로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가 그 유명한 장비 익덕이라면 그 곁에 있던 수염 긴 남자는 응당 관우 운장(雲長)일 터였고, 그렇다면 분명히 그 남자도 함께 있을 터였다. 마당으로 내려서자 한 남자가 허리를 숙이고 읍을 한 채 서 있었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제가 너무 큰 실례를 범한 모양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전갈도 드리지 못하고 불쑥 찾아뵈었으니 제 잘못입니다. 어찌 손님이 주인을 책망하겠습니까.”

  남자가 허리를 폈다. 살짝 희끗해진 머리에 관을 썼는데 얼굴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두 눈은 옆으로 찢어졌지만 그 안의 눈동자는 맑게 빛났고 양 귓불이 남달리 컸다. 그가 허리를 재차 숙이며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유비라 합니다. 제갈 선생의 높은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두 번이나 찾아주셨다는 전갈을 들었는데도 제가 게으른 탓에 귀한 몸을 이런 곳까지 오시게 했습니다. 제 죄가 큽니다. 이리 들어오시지요.”

  유비를 방으로 안내하여 마주보고 앉자 제갈량은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본론부터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그가 바로 입을 열었다.

  “유좌장군께서 이 누추한 곳을 찾아주심은 무엇 때문입니까?”

  유비 또한 곧장 대답했다.

  “저는 선생이 필요합니다. 저를 위해 일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돌리지 않고 정곡을 찌르는 화법에도 당황하지 않는 자였다. 제갈량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장군께서 몇 번이나 찾아오실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선생께서는 누운 용(臥龍) 같은 분이라 들었습니다. 수경선생(水鏡先生)이나 상장(尙長, 방덕공의 字. 다만 확실치 않음) 같은 분들께서 어찌 그릇된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그분들이었던가.’

  제갈량은 내심 쓰게 웃었다. 다름 아닌 그들이 추천했기에 유비가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사마휘와 방덕공 둘 다 사람을 가려 사귀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유비가 어떤 사람이었기에 거리낌 없이 자신을 추천한 것일까? 마음속에서 더욱 의문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며 제갈량은 의식적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저와는 안면이 있기에 한두 마디 과찬을 하셨을 뿐입니다. 형주에 훌륭한 선비가 많은데 제가 어찌 감히 와룡이라 자처하겠습니까? 처음 방문하셨을 때 최주평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훌륭한 선비로 충분히 장군의 보좌가 될 만한 인재입니다.”

  “아. 지난겨울에 만난 그 분 말씀입니까. 기억납니다.”

  유비가 씩 웃었다.

  “저를 떠보시더군요.”

  공명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는 않았다. 그 정도조차 간파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이 난세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히려 공명을 놀라게 한 것은 유비의 그 다음 반응이었다.

  “분명 재능이 있으나 아쉽게도 제가 원하는 바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제게 필요한 사람은 한갓 백리지재(百里之才)가 아닙니다.”

  공명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방 백 리나 되는 고을을 다스릴 사람이 필요치 않다면, 유비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한 나라를 짊어질 수 있는 인재라는 뜻이다. 조조에게 쫓긴 끝에 형주의 객장 신분으로, 사방 백 리는커녕 고작 오십 리도 되지 않는 작은 고을 하나를 빌려 몸을 의탁하고 있는 자가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황당한 말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왠지 모르게 그에게 이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 겪는 놀라운 느낌에 그는 급히 다시 주워섬겼다.  

  “맹공위나 석광원은 어떻습니까? 그들 또한 기재라 할 만합니다.”  

  유비가 다시 웃었다.

  “그 두 분도 세상을 보는 눈이 있으나 아쉽게도 배포가 부족한 듯했습니다. 아마도 맹덕에게 출사한다면 모를까 제게 올 것 같지는 않으니 제가 굳이 좇을 일은 없을 듯합니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판단력과, 그런 판단을 과감히 드러내는 자신감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의 말에 새삼 흥미를 느끼며 제갈량이 다시 내질렀다.  

  “하지만 제 경우는 어떻습니까? 실례지만 장군께서도 그저 제 헛된 이름만을 듣고 오신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직접 만나 뵈려고 이렇게 오지 않았습니까.”

  유비가 태연히 응답했다. 이제는 다시 제갈량의 차례였다. 망설일 겨를은 없었다. 그는 바로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어 그동안 갈고 닦아온 생각을 천천히 꺼내 놓기 시작했다.

  “맹덕은 지금 하늘의 때를 타고 천하의 삼분지 이를 손에 넣은 바, 그 기세가 왕성하여 대적하기 어렵습니다. 중모는 장강에 의지하여 걸터앉았는데 강이 넓고 깊으며 배와 수군들은 날래어 쉽사리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장군께 남은 곳은 둘입니다.”

  “어디입니까?”

  유비가 속을 알기 힘든 얼굴로 물었다. 제갈량이 대답했다.

  “형주는 전화에 휩싸이지 않아 인구와 재물이 많고 군사는 강성합니다. 북으로는 한수와 면수에 의지해 상업이 번성하였고 동쪽으로는 오회, 서쪽으로는 파촉과 통하니 교통의 요지라 하겠고, 아울러 피난 온 재능 있는 선비들이 많아 가히 장군의 터전이 될 만합니다. 비록 경승이 이곳에서 오래도록 세력을 닦아 왔으나 지금은 나이 들어 정신이 흐려진 상황이어서 형주의 군민들은 그들을 지켜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동성(同性)인 경승을 치고 이 땅을 손에 넣으실 수 있겠습니까?”

  너를 받아주고 땅과 병사까지 내어준 친척을 배신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다. 유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문득 물었다.

  “또 한 곳은 어디입니까?”

  제갈량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서천입니다. 익주의 계옥은 사람됨이 어리석고 유약하여 서천을 장악하고도 오히려 한중의 공기(公期. 장로의 字)에게 밀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나 서천은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풍부하며 천혜의 험지 안에 있어 그곳에 터 잡으면 안으로는 지키기 쉽고, 밖으로는 형주와 연계하여 나오기 쉽습니다. 이 두 곳을 터전으로 삼아 동쪽으로는 중모와 손을 잡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융과 만을 위무하며 인재를 모으고 군사를 조련하다 하늘의 때를 잡아 북을 울리고 한번에 나아가면 저 맹덕에게 능히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계옥을 치고 그 땅을 손에 넣으실 수 있겠습니까?”

  유비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깊은 눈으로 제갈량을 쳐다볼 뿐이었다. 제갈량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공중에서 부딪히고 격렬하게 뒤엉켰다. 일순간 유비의 눈 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일렁이듯 움직이는 것을 제갈량은 보았다. 유비가 답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겨우내 제갈량을 괴롭혀 왔던 질문에 대한 답이 어슴푸레하게나마 보이는 듯했다. 맹건은 틀렸다. 유비는 결코 단순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석도 역시 틀렸다. 아직 유비에게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가 있었고 아울러 그 길을 택할 결단력이 있었다.

  그리고 최균은 무어라 했던가.

  ‘그 남자는 위험하네.’

  그렇다면 확인해 볼 일이었다. 제갈량은 재차 입을 열었다.

  “장군께 여쭈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제갈량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했다.

  “맹덕은 관도의 일전에서 저 본초를 패퇴시켰고 마침내 하북을 평정하여 천하의 삼분지 이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이대로 놓아두면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천하를 아우르고 평정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오랜 전란이 그치고 백성들도 마침내 평온해질 것인데, 장군께서 굳이 그에게 대적하려 하심은 싸움이 끊이지 않게 하여 오히려 백성들을 더 괴롭히게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인(仁)의 길이겠습니까?”

  제갈량은 유비의 답을 기다렸다. 유비는 여전히 제갈량의 눈을 응시하다 뜻밖에도 크게 웃었다. 낭랑한 웃음소리가 열린 창문 너머로 길게 울려 퍼졌다. 바깥에서 관우와 장비가 무어라 쑥덕이는 소리가 들렸다. 유비가 웃음을 멈추더니 문득 몸을 숙여 미소 띤 얼굴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갈 선생. 나는 그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학문이 깊지 않아 어려운 말은 할 줄 모릅니다. 그러니 그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비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었던 유비의 눈빛이 마치 번개와도 같이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비록 나직했지만 흡사 천둥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것만 같았다.  

  “고제(高帝. 한 고조 유방)께서는 패현의 한낱 정장(亭長)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침내 항적(項籍. 항우의 본명)을 토벌하고 천하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 비(備)가 그리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 남자는 위험하네. 최균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는 물었다.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고제를 본받으시려는 것입니까?”

  유비는 확신에 찬 어투로 대답했다.

  “나는 천하를 손에 넣겠습니다.”

  그 때 비로소 제갈량은 깨달았다. 자신이 왜 지금껏 유비를 만나는 것을 피하고 있었는지를. 유비는 거대한 꿈을 꾸는 자였다. 그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을 한꺼번에 휘몰아 데려가는 꿈을. 그 꿈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박살내고 끝내는 스스로조차도 함께 함몰시켜 가는 그런 종류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르는 곳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유비는 그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곳으로 자신과 함께 갈 것을. 설령 그 과정에서 산산이 부서져 조각조차 남지 않게 될지라도.

  아니, 그렇지 않다. 제갈량은 알아챘다. 모든 것이 사라지더라도 오직 하나만은 남을 것이다. 제갈량은 자신의 확신을 재확인하기 위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게는 무엇을 줄 수 있으십니까?”

  유비는 웃었다.

  “드릴 것이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이라면 저보다 맹덕이 훨씬 낫겠지요. 허나 선생께서는 평소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해 오셨다 들었으니 일신의 안위를 좇는 분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다른 걸 드리려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유비는 대답했다.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의 패자로 이끈 관중과 제나라 70여 성을 함락시킨 악의의 이름은 역사에 기록되어 생생히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비는 바로 그것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가 죽어 땅 속에 묻혀 육신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흩어져 사라지더라도 사서(史書)에 영원히 남을 이름을.

  제갈량은 고요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길게 숙였다.

  “신(臣) 량(亮)이 주군을 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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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love
16/02/16 10:15
수정 아이콘
이야.. 감동적입니다. 제갈량이 만세에 걸쳐 칭송을 받는 건, 그 뛰어난 능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신하고 배신하는 그 난세에 흔들리지 않고 충심을 지켰다는 것 때문이겠죠.

그런데,
“그리 하겠습니다.”
가 사실인가요? 유비가 애초부터 유표 등을 배신하려고 했나요? 유표가 형주를 물려주려고 했지만 망설이고 거절한 유비가 아니었던가요?
我無嶋
16/02/16 10:18
수정 아이콘
애초에 픽션이다보니....
ohmylove
16/02/16 10:20
수정 아이콘
픽션인 건 알지만, 실제로도 유비가 그런 마음을 먹었나, 질문드리는 겁니다.
16/02/16 10:51
수정 아이콘
정사 선주전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파성넷 번역입니다)

조공이 원소를 격파한 후 친히 남쪽으로 선주를 공격했다. 선주는 미축(麋竺), 손건(孫乾)을 유표에게 보내 서로 소식을 전하자, 유표는 직접 교외에서 선주를 영접해 상빈(上賓)의 예의로 대우하고, 군사들을 보태어 신야(新野-형주 남양군 신야현)에 주둔하게 했다. [선주에게 귀부하는 형주의 호걸(豪傑)들이 날로 많아지자 유표는 선주의 마음을 의심해 은밀히 그를 방비했다.]

그리고 유비의 행적을 살펴보면 도겸 사후 서주를 손에 넣었고 유장에게서는 익주를 빼앗았으니 충분히 형주를 손에 넣을 마음과 능력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유표가 죽었고 후사 문제와 조조의 공격이 겹쳐 쫓기게 되었으니 실재로 어떻게 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16/02/16 10:18
수정 아이콘
선댓글 후감상을 해야하는데, 첫 줄 보고 홀려서 다 읽어버렸네요. 흑 첫 댓글을 놓쳤겠군요. 하지만 후회는 없다.
我無嶋
16/02/16 10:18
수정 아이콘
아...홀린 기분입니다
16/02/16 10:21
수정 아이콘
헐...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와 놀랐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02/16 10:21
수정 아이콘
일단 추천 누르고 읽으려고 들어왔다가
홀린듯 다 읽고서야 추천을 눌렀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6/02/16 10:23
수정 아이콘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덜덜..
휀 라디엔트
16/02/16 10:23
수정 아이콘
천년을 넘어 그 두배의 시간에 다다르도록...
본토를 넘어 주변국들에게까지 명성이 자자하게되고...
인간을 넘어 신이 돠고, 가끔식 여자도 되...응?
신용운
16/02/16 11:32
수정 아이콘
레이저도 쏘시고 마왕도 되고 하시죠...
강동원
16/02/16 10:27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었습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블리츠크랭크
16/02/16 10:2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16/02/16 10:29
수정 아이콘
밤사이 멘탈붕괴가 다소 있으셔서 이 글을 못볼줄 알았는데 오전에 올라오다니!

잘 보고 갑니다.
16/02/16 10:32
수정 아이콘
거의 다 써 놓은 글을 마무리만 하고 올리는 것이라.... 다행이지요.
16/02/16 10:30
수정 아이콘
이름이었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입 다물어 주세요
16/02/16 10:33
수정 아이콘
필력 덜덜덜덜
花樣年華
16/02/16 10:38
수정 아이콘
끝? 이라니요... 삼국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으음....
16/02/16 10:52
수정 아이콘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제 게으름이 춘삼월 한낮에 마루에서 엎어져 자는 공명 이상으로 심한지라... ㅠㅠ
김연아
16/02/16 10:40
수정 아이콘
패는 장면이 없네요? 크크
농담이고 잘 읽었습니다-
16/02/16 10:55
수정 아이콘
이에 선주가 두 손을 들어 제갈량의 얼굴을 가격하니 그 빠르기가 번개와도 같고 그 단단함은 바위와도 같았다. 제갈량이 버티지 못하고 외쳤다. "응당 장군을 따라가겠습니다. 따라갈 터이니 살려주십시오." 이에 그의 목숨을 붙여 놓고 말에 묶어 형주로 데려오니 저간의 사정이 마치 관우, 장비를 때려 눕혀 형님 소리를 들을 때와 흡사하였다. 뭇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저마다 놀라 말하기를, 유비가 제갈량을 세 번 때려 그를 얻었다고 하였다.
김연아
16/02/16 11:08
수정 아이콘
좋아요!!
다그런거죠
16/02/16 11:52
수정 아이콘
크크크 대단한 필력이십니다.
말머리
16/02/16 11:55
수정 아이콘
유비 패왕설인가요 크크크크크크
아지다하카
16/02/16 19:21
수정 아이콘
으엌
16/02/22 18:54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
신의와배신
16/02/16 10:40
수정 아이콘
멋지군요
삼국지연의의 삼고초려도 멋지지만 말을 아끼는 대화가 더 빛이 납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자곡동
16/02/16 10:40
수정 아이콘
캬 유비 클라스!!
알팅이
16/02/16 10:44
수정 아이콘
이건 무조건추천 ...와...
두부두부
16/02/16 10:49
수정 아이콘
추천& 스크랩
정말 감사히 읽었습니다.

삼국지를 떠올릴수록... 신기한 인물은 정말 유비인거 같습니다. 마성의 남자인거 같은데.. 그 매력의 원천은 머였었는지..
마냥 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궁금한 인물입니다..
16/02/16 10:59
수정 아이콘
정사 관우전 [선주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정사 조운전 [선주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손을 맞잡으며 애틋하게 작별했다]
정사 조운전 [선주는 조운과 함께 같은 침상에서 잠잤으며]

매력의 원천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人在江湖
16/02/16 11:14
수정 아이콘
ANG... 인가요;
어제의눈물
16/02/16 10:57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마치 저 장면을 직접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파란아게하
16/02/16 10:58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크 좋아요
비속어가 절로 나오는데 참습니다.
mapthesoul
16/02/16 11:05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은 무조건 추천하는거라고 배웠습니다.
글곰님의 필력으로 보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네요.

1. 현덕 사망 직전, 공명과의 대화 "승상, 가정의 달을 꼭 기억하시게."
2. 공명 사후, 문장(위연)과 문위(비의)의 대화 "공명, 나한테 왜 그랬어요."
3. 백약(강유)의 음모 "등산가 따위에게 나라를 내어줄 수 없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16/02/16 11:15
수정 아이콘
오오. 멋진 장면들을 추천해 주셨네요.
그중 1번은 제가 지난번 쓴 글에 들어 있습니다(https://cdn.pgr21.com./?b=8&n=59712). 다만 가정의 달은 언급이 안 되었네요.
2번은 꼭 써 보고 싶은 장면입니다. 위연도 재미난 캐릭터니까요.
개인적으로 꼭 쓰고 싶은 부분은 왕평의 낙곡 전투입니다. 상대가 십만 군사를 휘몰아 쳐들어오는데 나는 천 명을 끌고 맞서 싸우겠다는 그 패기, 말을 듣는 부하 하나만 끌고 가서 자신의 말을 실행한 저 무지막지함, 그리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말을 툭툭 던지는 그 오만한 성격까지, 왕평은 정말 매력적인 장수입니다. 그 때 돌을 들어 등산가놈의 뒤통수를 내리쳤더라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수 있었건만....ㅠㅠ
mapthesoul
16/02/16 11:36
수정 아이콘
역시 삼국지 최고의 IF는 가정 아니겠습니까 ㅠㅠ
아 그리고 제가 언급한 등산가는 마속이 아닌 등애였습니다. 흐흐
촉한 멸망 후 종회와 강유가 반란을 도모하는 장면도 좋을듯 해서요.
물론 마속을 상대로 강유가 가진 마음을 묘사한 글도 훌륭할듯 합니다!!

말씀하신 낙곡전투도 숨겨진 명장면이라 생각되구요.
(1) 이릉전투를 앞두고 공명과 자룡의 대화 "효직은 왜 그리 일찍 죽었대니"
(2) 현덕과 사원(방통), 적로의 막장드라마 "왜 너는 나를 만나서"
이외에도 글곰님이 써주셨으면 하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나열하기조차 어렵네요. ^^
마르시앗다
16/02/16 11:08
수정 아이콘
필력이 덜덜이군요 정말.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와 이부분 진짜..와....선추천 후감상 했습니다. 정말 멋진 글입니다.
설탕가루인형
16/02/16 11:14
수정 아이콘
캬~ 정말 멋진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Je ne sais quoi
16/02/16 11:20
수정 아이콘
아는 이야기지만 이렇게 읽으니 또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16/02/16 11:23
수정 아이콘
조만간 가정의 달이 다가오니 마속을 까는 유비의 글이 올라오리라 믿어봅니다.
16/02/16 11:43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16/02/16 11:48
수정 아이콘
오오 알고 있던 삼고초려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지네요

조용히 추천 누르고 갑니다, 필력이 좋으셔서 아예 삼국지 연재를 해보심이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아스트란맥
16/02/16 11:56
수정 아이콘
깊은 매력이 풍기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푼 카스텔
16/02/16 12:38
수정 아이콘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이 부분 읽으면서 순간 전율이...
선비욜롱
16/02/16 12:43
수정 아이콘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참...소름이 돋는 듯한 필력이군요;

사서에서 제갈량과 유비간의 만남을 삼고초려와 융중대를 비롯해서 그려낸 바였지만 제갈량이 평생을 유씨천하를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종사하게된 연유를 그리 박제된 기록이 완벽하게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운데 글곰님의 글은 정사를 기반해서 상상력을 덧붙여서 더욱 설득력있게 그려낸 느낌이 드네요.

조금 과욕이지만 먼훗날에 나올 강유 등장씬이 매우 기대되는군요 흐흐흐흐.
좋아요
16/02/16 12:47
수정 아이콘
필력이 부럽네요. 추천!
휴머니어
16/02/16 13:0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6/02/16 13:13
수정 아이콘
잊지 않겠습니다 덜덜
하민수민유민아빠
16/02/16 13:21
수정 아이콘
글곰님의 필력은 어디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ㅜㅜ
지금이시간
16/02/16 13:33
수정 아이콘
이래서 피지알 옵니다. 추천 &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글 써봤으면 좋겠네요.
중학교삼학년
16/02/16 15:48
수정 아이콘
아... 너무 짧아요. 단 2편으로 끝내시다니요.
이럴거면 제목을 상,하로
1,2이렇게 나와서 더 나올 줄 크크크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요.
Liberation
16/02/16 16:34
수정 아이콘
퍼가고 싶을 만큼 너무나도 좋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밀란홀릭
16/02/16 17:00
수정 아이콘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소름돋네요... 덜덜덜
16/02/16 17:39
수정 아이콘
'한갓'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갑니다.
추천도 물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구라리오
16/02/16 18:06
수정 아이콘
그래서 3편은 2주 기다리면 나오는거죠?
크라쓰
16/02/16 20:19
수정 아이콘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추천 드립니다
빈즈파덜
16/02/16 23:12
수정 아이콘
3편이 2주나 걸린다니..엉엉~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근에 삼국지13도 나와서 삼국지 이야기가 더 재미가 있는거 같네요
16/02/17 00:54
수정 아이콘
글곰님께서 삼국지를 완역하신다면 꼭 사서 읽겠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천지인
16/02/17 01:20
수정 아이콘
황호: 나는 조정을 손에 넣겠습니다.
유선: 그렇다면 제게는 무엇을 줄 수 있으십니까?
황호: 천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름을 드리겠습니다.
유선: !! PROFIT!
16/02/17 20:33
수정 아이콘
대박입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께요!!
16/02/17 21:00
수정 아이콘
재밌게 봤습니다..
읽으면서 문득 이말년시리즈의 제갈공명전이 떠올랐네요
같은 장면을 이렇게나 다르게 연출해 내다니..
역시 창작은 위대해!!
검은별
16/02/17 21:17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엄청난 흡입력이네요!
카멜로
16/02/19 16:14
수정 아이콘
덜덜 이걸 이제야 보다니 엄청납니다
brothers
16/02/19 16:57
수정 아이콘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네요.. 내가 전생에 제갈량이었나봅니다 ..
The Seeker
18/09/21 17:07
수정 아이콘
이제 읽습니다... 다른 분들은 천년에 꽂히신 것 같은데 저는
[완연한 봄기운 때문에 제갈량은 도리어 추위를 느꼈다. 군사를 일으키기에 좋은 계절이었다. ]에 꽂혔습니다.
18/09/21 17:12
수정 아이콘
뒤늦게 댓글 달아 주시니 반갑고도 감사합니다.
피지알에 댓글 알림 기능이 있어 참 다행이네요. :)
The Seeker
18/09/21 17:13
수정 아이콘
현기증 나서 이북 구매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Take my m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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