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우니까 뻘글 하나 써봅니다.
입시에서 성적, 취업에서 학점에 관하여 생각해봅니다. 고령화가 진행된 피지알에서는 성적과 학점의 의미는 많은 분들께 잊혀지고 있겠지만, 아이들이 진학할 즈음하야 성적에 대하여 다시 고찰할 기회가 생기셨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성적은 개인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표상하는 지표이다.
성적, 학점은 한 집단에게 표준고사를 치르게 하고 성과의 수준을 객관적인 수치로 변환한 것입니다. 성적은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능력이 있다”,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다”는 것을 표징하지요.
그러나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첫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인 과정을 설계할 능력
둘째, 하기 싫은 일을 참고 계속 할 능력
셋째, 한계를 마주했을 때 돌파할 용기와 끈기
넷째, 실수를 복기하고 보완할 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필요합니다.
정규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일정을 세우고, 족보를 구하고,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선생님(교수님)이 강조한 부분을 캐치하고, 날씨가 좋아도 참고 도서관에 앉아 책을 봐야 하고, 공부가 너무 하기 싫은 순간 한 글자라도 더 알려고 하고, 틀린 문제를 다시 살펴보며 왜 틀렸는지 분석하고 다시는 틀리지 않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것.
이것들은 단순이 그 교과과정을 ‘안다’는 것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저런 능력이 고루 뒷받침 되어야지 비로소 그 교과과정을 인지할 수 있고 평가에서 우수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지요.
이러한 능력은 직장에서도 동일하게 요구됩니다.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효율적인 일정을 짜고, 선행 프로젝트를 살피며 시행착오에 관해 점검하며,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업무에 한 번 더 집중을 하고, 사수에게 지적을 받으면 스스로를 개선할 능력이 있어야 하지요.
기업(또는 상급학교)은 이런 능력이 두루 우수한 지원자를 선발해서 일을 맡기(거나 가르치)고 싶을 것이고, 지원자가 그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보기 위해 성적을 봅니다.
이처럼 성적은 단순히 배움의 양을 측정하는 지표가 아니라 사람의 전반적인 퍼포먼스 능력을 표상하기에 개인의 객관적 능력을 표상하는 좋은 데이터임과 동시에 다른 방법으로 지원자의 퍼포먼스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면 곧바로 대체가능한 지표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적이 평가기준으로서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방법 =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 방법’의 본질적 속성이 일치하는 경우에 한정될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적을 잘 받는 데 필요한 자질이 특별히 요구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학점이 평가기준으로서 무의미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수능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중 익힌 학습 내용 안에서 정답으로 가장 적절한 답을 골라내는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창의성이 중요한 직업이 있다고 가정할 때, 평가기준으로서 수능성적의 가치는 상당히 낮아지겠지요.
대다수의 평범한 상급학교, 평범한 직장은 현행 교육제도(입시→대학) 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규칙을 지키고, 한계 순간에 인내하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일이지요. 부모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킵니다.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얻어내는 체제에 익숙해지면, 향후 사회에 진출해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질테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단 공부를 하고 시험을 봅니다. 잘 해내는 아이들은 고통이 덜 하지만, 타고난 성향이 체제에 맞지 않는 아이들은 고통스럽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타고나야 할 역량을 타고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성적을 받는 것에 흥미가 없는 아이, 노력은 하는데 영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 본인 스스로와 부모의 경제력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 등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세상에서는 상위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모종의 패배감을 갖고 살게 됩니다. 물론, 상위권 내에서도 스스로를 등급매기고 더 잘해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결국 전세계 1등 말고는 누구나 크고 작은 패배감을 안고 살게 되지요.
#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한 나를 만들기 위한 과정을 버려본다면
그런데,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세상’ 밖에 펼쳐진 바다가 훨씬 광활하다면요? 목표를 세우고, 과정을 인내하고, 실수를 수정해 같은 일에서 실수를 줄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요?
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 가치롭게 여겨지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어서 꾹 참고 할 필요가 없다면, 매일같이 반복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곱씹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면 어떨까요. 아니, 그보다 모두가 한 가지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평가받기 위하여 일렬로 줄 서서 평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꽂히는 것, 나를 기쁘게 만드는 것에 집중을 하는 세상은 어떨까요.
학교 성적을 잘 받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과, 내가 이 과목을 아는게 흥미로워서 이 분야를 공부했고 그 결과 00한 성적을 얻게 되었다는 것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아이들과 대학생들을 스스로의 인생의 주체로 만들어 줄 것이고, 모두가 한 목표를 위해 달려가지 않게 되므로 사회는 다양화 될 것이고, 어쩌면 전혀 다른 새로운 산업분야가 쑥쑥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경제적 손익을 따지는 것과 별개로, 적어도 그 사람은 평생을 스스로의 욕구와 즐거움, 능력에 집중할 수 있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아쉬워 하는 시간을 자신의 행복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게 말처럼 쉽냐고요?
보통 스스로의 욕구, 선호, 행복에 집중하여 내 인생을 항해하다 보면, 내가 미처 얻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줄어들지 않나요. 열매만을 바라보고 달린 경우에 비하여 과실의 크기는 작겠지만, 열매를 키우는 과정에서 충분히 즐거웠으니까요. 그래서 남들보다 덜 가져도, 뒤쳐저도 삶이 대체로 풍족합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은, 아니 적어도 제 아이만큼은 스스로에게 집중해서 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판단력을 길러주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자세를 알려주면 그 이후의 삶은 자기가 알아서 살며 스스로를 책임 질 수 있도록요.
두서 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