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모 게임사이트 게시판에서 동네북 신세로 두들겨맞고 있는 한 준프로게이머의 모습이
참 예사로와 보이질 않는다.
어제 경기 보지도 않은 입장에서, 사실 무어라 할 말은 없다.
단지 여러분들의 글을 통해
분명 방송에서는 테란고수 대 저그고수로 경기가 홍보되었다는 것,
그러나 정작 그 게이머는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고
그래서 프로토스가 유리할 것 같은 섬맵에서
별다른 생각없이 주종목인 테란을 버리고 프로토스를 골랐다는 것,
그러나 상대방 게이머는 그 선수가 워낙에 테란으로 이름이 높은지라
응당 테란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 덕분에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는 것,
결과적으로, 테란을 잡았던 그 선수가 3대 1로 이겼다는 것 정도를 겨우 알 따름이다.
아마, 문제의 경기가 1대 1이 된 후 치뤄진 경기였기에
전체적으로 봤을때 승부의 분수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대목이었겠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이나 '분개'하고 있지 않은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그 선수가 썩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공인 프로의 신분은 아니지만
스타크래프트에 관심있는 사람 치고 그의 아이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이름이 나 있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원한 것이 그의 '테란'이었다는 점을 너무도 쉽게 생각해 버린 것은
분명 실수라면 실수고,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프로게이머가 연예인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 또한 그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의 성원을 먹고 사는 존재인 만큼...
대중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잠시 생각을 해 보았어야 옳지 않았을까.
(아마 그 선수가 테란을 잡아 그 경기를 지고 결국 라이벌 전도 졌더라면
오히려 힘내라 열심히 해라는 성원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못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수라면 누구나 이기기 위해 경기에 임하는 것이고
그로서는 좀 더 쉽고 빠르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이겠는데...
하찮은 점심값 내기 게임 한판에도 눈에 핏대가 오르는 사람의 심리를 생각해보면
그의 그런 행동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게 아닐까.
오늘 그가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는 사이트에 갔다가
천썅테란...이라는 호칭을 봤다.
올 것이 왔는가...하는 생각이 잠시.
그 후엔 울컥 화가 치밀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무엇일까.
이름, 나이, 성별, 그리고 온라인을 벗어난 일상에서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도.
그 외엔... 전무하다.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그를 부르는 호칭-천상테란-은
사실 그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실수...
그것도, 그의 인간됨이 사악해서도 아닌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에서 빚어진 미숙함에 불과한 행동 하나로
우리는 지금 그의 이름에, 그의 얼굴에, 그의 모든 것에 먹칠을 하고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심하다... 아무리 봐도 심하다.
아마 게임을 시작한 지 거의 처음으로 그는 자신의 게임아이 점수를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그가 1200, 1300점 대의 일반적인 유저였다면
그가 섬맵에서 프로토스를 잡았든 저그를 잡았든
그 누구도 시비거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 아닌가.
실망했을 수는 있다. 그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사람 하나를 둘러싸고 돌팔매질을 해야만 옳은가.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될 일의 경계란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팬으로서, 관중으로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주종목을 버린 그에게 실망할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 한번의 실수만으로 heaven을 bull shit으로 바꿀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Apatheia, the Stable Spirit.
PS...
좋은 날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치밀어올라서...
이런 글 쓸 데가 여기밖엔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