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0/05/25 23:32:31
Name 박진호
Subject 2010년 독수리오형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나는 가난했다.



엄마는 수나가 젖을 떼자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인간시장에 나가 일을 구했다.

몸이 팔린 날도 있었지만 못 판 날이 더 많아, 벌이는 담배값과 소주값을 빼고나면 남는게 없었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서울 어딘가의 달동네 단칸방에서 3식구가 살았다.

혈육의 끈을 잘라버리지 못하는 할머니가 박스를 주어 방세를 냈다.

산 아래 아파트에 누군가 이사오는 날이 할머니의 운수 좋은 날이었다.



수나가 고등학교 등록금 미납문제로 교무실에 들락거렸어야 될 때 쯤, 할머니도 달동네를 떠났다.

달동네보다 더 높은 곳으로 떠났다.



진로 고민을 하는 수나의 학교에 남박사가 찾아왔다.

국제과학시술청이라는 정부지원 사설기관에서 나왔다고 소개한 남박사는

학교에서 가장 가난했고 가장 큰 희망을 가진 수나를 선택했다.

수나는 전국의 많은 학생들과 수차례의 적성테스트와 체력테스트를 거쳤다.

수나보다 가난한 이들이 떨어져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살만한 이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수나는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수나가 돌아왔을 때

수나의 집에는 값은 오르고 알콜은 적어진 소주병과

교육세가 포함된 담배와

딸의 교육비를 못내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빠, 저 이제 취직했어요. 이제 우리도 살만해질 거에요."

"그래, 어디 취직했냐."

"정부관련기관이니까 공무원이죠."

"그래 정부면 월급은 안 떼 먹겠지."

"아빠, 이제 술 그만 먹고 몸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수나가 내민 봉투안을 들여다 봤다.

"아직 말단인가보구나."

소주잔을 들이키고는 짧은 탄식을 냈다.

"오늘은 술이 달다."





세명의 남자와 한명의 남자아이와 팀이 되었다.

아이는 고아였고 두 남자는 갤랙터에게 부모를 잃었다고 했다. 남자 한명은 뚱뚱했다.

팀명은 독수리 오형제라고 했다.

새 모양의 망토가 달린 유니폼이 지급됐다.

수나는 백조 유니폼이었다.

독수리 유니폼은 리더 한 사람만 입고 있는데 독수리오형제인지,

여자인 수나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남매가 아닌 형제인지,

수나에게 백조 유니폼을 지급한 것은 고정된 성이미지에 기인한 일종의 성차별은 아닌지,

왜 적에 눈에 띌만한 형태로 유니폼을 만든 것인지,

이런 잡다한 의문들은 수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국제과학기술청은 수나에게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숙소와 작지만 큰 월급을 제공하고 있었다.





의문의 조직 갤랙터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일을 저질렀다. 덕분에 임무는 주당 1회꼴로 부여되었다.

갤랙터는 매 주 다양한 경로로 국가를 위협했다.

고위직 인사를 저격하려 하거나, 비밀문서를 빼내려 한다거나, 군수관리 시설을 폭파하려 한다거나.

하지만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도 하였는데, 그것은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커다란 로봇을 가져 오는 것이었다.

놀이동산을 침공했다가 관람차에 걸려 움직이지 못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쓸데 없이 매 번 다른 동물모양의 로봇을 만들어 침공했다.

로봇은 매번 똑같이 둔했고, 겉 모습만 다를 뿐 주 운동기관이나 공격 형태는 똑같았다.

수나는 갤랙터의 로봇디자이너는 동물을 사랑하는 의외로 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갤랙터가 사건을 일으키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컴퓨터 해킹, 폭탄 사용 및 제거, 무술, 사격 연습을 하면서

쉴 새 없이 보내야 했다.

어떤 날은 연기 연습, 유혹의 기술, 심지어 노래와 춤까지 배웠다.

보안문제 상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고 아버지와의 통화 시간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나도록 갤랙터의 침공은 계속되었다.

남박사는 언제나 적으로부터 평화를 지키자는 말만 하였고, 적의 본거지를 찾아 공격하거나 적의 수장을 암살하거나 하는

적극적인 작전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수나는 그동안 조금씩 모은 돈으로 아버지만 살고 있는 집을 전세로 옮겼다.

태어나서 오랫동안 살던 동네는 이사한지 얼마 안있어 사라졌다.

가난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동네에서 떠나지 못한 몇몇 이들은 울부짖으며 세상으로부터 떠나갔다.  





또 다시 1년이 흐르자 수나는 피로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끝을 모르는 침공, 진전되지 않는 갤랙터 소탕, 오르지 않는 월급.

가난했고, 힘들었고, 외로웠고, 어렸던 수나에게 시간은 계약서의 문제점을 가르쳐주었다.



13년 계약, 갤랙터 일당 처치 후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5대5, 기타 경비는 개인 부담.

그리고 자신은 공무원이 아니라 사설기관에 속한 직원이라는 것도, 그래서 공무원 연금도 안나온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많은 의문이 생겼다.

갤랙터의 대장이 타고 탈출하는 비행기는 왜 끝까지 추격하지 않는 걸까.

몇몇 지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왜 신경쓰지 말라고 하는걸까.

시청광장에 모인 수천명의 시민들을 구했을 때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않던 남박사는

제주도에서 골프치고 헬기타고 오다가 기상악화로 추락할 뻔한 군인 몇명을 구하고 나자 회식을 하면서 격려금까지 주었을까.

그 날 밤, 수나와 어린 막내를 남겨두고 남박사와 남자 팀원 셋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남박사는 정부로부터 얼마의 지원을 받는 걸까.

독수리 오형제는 그 중에서 얼마를 받고 있는 걸까.

전세값은 왜 자꾸 오르는 걸까.

아버지는 언제까지 쉬고 계실건가.

왜 이런 고민을 계속해야 되는걸까.





수나의 고민이 깊어갈 때쯤 좋은 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취직을 하였다. 일종의 경비직으로 보수도 좋다고 하였다.

수나는 가난했던 옛날과 현재를 비교하며 미소지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수나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갤랙터의 침공이 잦아지자 언론은 국방강화를 연일 외쳐댔고,

국회는 특별법을 통과시켜 세금을 올렸다.

아버지의 담배값에는 반갤랙터특별국방세까지 포함되었다.



세금을 올릴 수록 더 좋은 신무기가 만들어 졌고, 그럴 때마다 갤랙터의 무기도 좋아졌고, 남박사의 차도 좋아졌다.

수나의 월급은 조금 올랐다.





남박사가 장기간 출장을 갔다 온 후, 수나는 오랜만에 휴가를 받았다.

예고 없이 찾아간 집에는 아버지와 함께 여러명의 아저씨들이 모여 있었다.

수나가 들어오자 아버지는 아저씨들에게 나눠주려는 종이를 거뒀다.



"아빠 친구들이다. 제 딸이에요. 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어요."

정부기관이 아니라 정부지원사설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수나였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였다.



"아빠, 그건 뭐에요?"

"이건 아빠가 일하는 거다. 이제 우리도 조만간 부자가 될거야."

"그래요? 뭘해서 그렇게 돈을 벌어요?"

"조만간 말해줄게. 지금은 아직 말하기가 일러."



휴가를 끝내고 돌아 온 독수리오형제에게 남박사는 갤랙터 본부 습격지시를 내렸다.

남박사는 오랜 추적 끝에 남쪽 도시에서 갤랙터 본부로 보이는 빌딩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진입 직전 예고 없이 빌딩에 대규모 폭격을 시행하였다.

그 덕에 작전은 쉽게 성공하였다.

폭격으로 공포에 질린 것인지 갤랙터 일당은 쉽게 진압당하였다.

갤랙터의 대장은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자살이었다.

함께 찾은 수천장의 비밀 문서는 남박사가 모두 가져가 버렸다.

진입 전 폭격과 무기를 사용한 작전으로 인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정부는 일반 시민의 피해는 극소수라고 발표하였다.



'갤랙터, 수만명이 가입한 피라미드 회사'

'갤랙터 조직의 정체가 밝혀졌다. 갤랙터는 거대 피라미드 조직 형태를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갤랙터 직원 한명이 열명의 인원을 끌어오면 한단계 진급을 시켜주고  

부하직원의 수입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세를 불려왔다......'

언론은 정부의 발표를 인용하여 기사를 냈다.

검찰은 갤랙터와 관계된 사람을 조사하였다.

놀랍게도 모두가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검찰은 그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아버지가 구속되었다.





정부는 갤랙터 일당의 완전 전멸을 선포하였고 남박사는 언론에 독수리오형제를 공개했다.

그동안 갤랙터와 맞서 싸운 독수리 오형제에게 국민들은 모두 열광하였다.

수나는 전국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여러 자리에 초청되었다.

강연도 하고 TV 출연도 했다.

광고도 찍었다.

하지만 월급은 똑같았다.

계약기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남박사는 독수리오형제 캐릭터로 사업을 벌였다.

수나의 모습을 본 뜬 캐릭터는 온갖 상품에 붙여졌고, 모두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갔다.

그리고 남박사는 회식을 크게 한 번 열어 주었다.





수나는 결국 변호사를 찾아갔다.

불공정 계약 소송을 걸었다.

독수리 오형제의 다른 멤버들도 소송을 걸었다.

재판에서는 승리하였다.

하지만 보상금이 많이 지급되지는 않았다.

변호사비를 빼고 나니 점포하나 차릴 값이 남았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가 갤랙터 일당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노출되었다.

수나와 관련된 기사마다 악플이 가득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독수리오형제는 일본의 과학닌자대 갓차맨을 표절한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남박사는 독수리오형제를 해체시켰다.







수년이 지난 어느날, 수나는 출소를 며칠 앞둔 아버지에게 면회를 갔다.

창살 틈으로 수척해진 아버지가 보였다.

"자주 오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래 잘 지냈냐. 옷가게는 잘되고 있고?"

"네, 아빠.불경기라 그럭저럭 그래요."

"별일은 없고?"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한다고 해서 조만간 이사해야 할 것 같은데 전세값이 올라서 걱정이네요."



돌아오는 길에 버스 라디오에서 뉴스 속보가 나왔다.

국회의원 한명이 테러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테러를 가한 불명의 남자는 갤랙터 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정부는 갤랙터의 부활을 우려하는 공식 성명을 냈고,

남박사는 독수리오형제 2기를 결성하기 위한 대국민 오디션을 열 거라고 발표했다.





"나도 저 오디션 한번 봐볼까?"

"그래 너 나가봐, 될지도 몰라."

"되면 완전 좋겠다."



수나는 뒤에 앉은 여고생들의 대화를 들으며 쓰게 웃었다.



--전에 썼던 거, 생각나서 좀 고쳐서 올려봅니다.--
* Noam Chomsk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2-26 22:22)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0/05/25 23:43
수정 아이콘
현실과 비교해보니까 재밌네요.
주제가 생각납니다.

슈파~슈파 슈파 슈8~ 우렁찬 XX소리~
알카즈네
10/05/25 23:49
수정 아이콘
읽으면서 감탄이 나오는 글이었습니다.
각종 사회 풍자와 패러디들이 잘 녹아나있네요.

추천 한방 놔드립니다^^;
토마토7개
10/05/26 02:43
수정 아이콘
오 이거 대박인데요. 재미있게 봤습니다.
터치터치
10/05/26 05:50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읽는 글과 닉네임 보고 읽는 글이 있지요..

역시 닉네임보고 읽는 글이 안정적인 맛이 있네요.

변함없이 재밌는 글입니다.
10/05/26 07:27
수정 아이콘
추천드립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
설탕가루인형
10/05/26 09:32
수정 아이콘
우와...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근데 남박사와 3명의 남자 팀원들은 어디를 간건가요??@.@
감전주의
10/05/26 10:25
수정 아이콘
주 1회 임무 부여부터 뭔가 영혼의 동반자가 생각나서 헛웃음이 나오네요..
추천 한방!!
10/05/26 10:59
수정 아이콘
잘 쓰셨네요, 처음에 생각했던 그런 이야기 진행이 없이 깔끔해서 아주 좋았습니다.
아에리
10/05/26 13:14
수정 아이콘
대박이네요.저도 추천 누릅니다.
영웅과몽상가
10/05/26 14:37
수정 아이콘
이거 이글루스를 통해서 봤었는데 크크 재밌더군요.
10/05/26 17:33
수정 아이콘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무엇을 풍자하려는 걸까..생각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물흐르듯 읽게 되네요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559 2010년 독수리오형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3] 박진호9687 10/05/25 9687
558 최종병기 이영호 [57] fd테란14470 10/05/14 14470
557 열정 [55] Judas Pain11705 10/05/10 11705
556 지금 만나러 갑니다. [94] 온리진12948 10/03/12 12948
555 어떤 혁명가의 이야기 [36] 귀염둥이 악당8752 10/04/24 8752
554 [스압] 주옥같은 동물관련 판님 댓글 모음 Part 1. [57] ThinkD4renT17612 10/03/28 17612
553 플토 컨트롤의 로망, 다크로 마인 썰기 [38] 빵pro점쟁이14766 10/03/23 14766
552 하태기 버프, 투명 테란 이재호에 관한 소고 [58] kimera12134 10/03/14 12134
551 꺼져가는 속도거품, 드러나는 테저전의 끝 [66] becker12182 10/03/07 12182
550 [본격 알콜섭취 유도글 1탄] 니들이 진(gin)을 알어? [62] Arata9434 10/02/22 9434
549 눈이 정화되는 로고들을 한 번에 봅시다! [39] Alan_Baxter11989 10/02/12 11989
548 진화와 창조에 관한 이야기(1)-들어가기(개정판) [43] 반대칭고양이5929 11/02/12 5929
547 [서양화 읽기] 그림이 당신에게 묻다 -1- [31] 불같은 강속구5744 10/02/09 5744
546 박상우에 대한 기억 [40] 트레제디8966 10/02/08 8966
545 임요환을 위하여. <BGM> [163] Hanniabal28790 10/01/20 28790
544 어느 비상한 사람의 비상한 삶과 죽음 [18] happyend5972 10/01/11 5972
543 이공계의 길을 가려는 후배님들에게..1(이려나..??) [29] OrBef30152 06/01/07 30152
542 스타리그 4강 진출자를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들 [38] becker9199 09/12/31 9199
541 그 모든 노래들. [21] 헥스밤9053 09/12/29 9053
540 뜨겁게 타올랐던 pgr의 황금기 2005년 [86] DavidVilla28379 09/12/22 28379
539 tribute to 임진록. [45] becker12891 09/11/25 12891
538 [비판]우리가 만들어 낸 괴물. '루저'-P.S [68] nickyo9171 09/11/13 9171
537 부산오뎅 갖고 당진으로 [20] 굿바이레이캬6125 09/11/03 612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