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
[게임] “스타 중의 스타는 프로게이머” (2002.04.09)
‘스타크래프트 1인자’임요환씨, 매니저 두고 광고모델까지
지난 3월 23일 토요일, 서울 신림4동 은혜빌딩 3층은 이사짐을 옮기느라 발디딜 틈이 없었다. 아직 정리가 덜된
50평 규모의 사무실에는 컴퓨터 12대가 널부러져 있었고,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간 방엔 2층 침대 5개가 놓여 있었다.
벤처기업 사무실 같기도 하고, PC방 같기도 한 이곳이 프로게이머 에이전시 ‘아이디얼 스페이스’의 새로운 둥지다.
아이디얼 스페이스는 국내 1위 프로게이머 임요환을 비롯, 홍진호·이윤열 등 인기 프로게이머가 소속된 매니지먼트회사.
깨끗하고 널찍한 사무실을 보며 임요환(22·林遼環)씨와 매니저 김양중(25·金楊中)씨는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2년 전만 해도 연습실이 없어 냉·난방이 안되는 PC방에서 생활했는데….”
매니저 김양중씨는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두 사람의 직장이기도 한 아이디얼 스페이스가 보증금 2500만원, 월 150만원의 이 사무실을 얻는 데에는
임요환씨의 역할이 컸다. 임씨가 지난해 게임대회에서 13회나 우승을 하고, 상금과 기타 부수입을 합쳐
1억5000만원을 벌어들이면서 소속 회사도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수입 1억5000만원, 해외서도 유명
임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프로게이머. 그는 국내에서만 250만장 이상 팔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가장 잘 하는 선수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등장하는 3가지 종족중 가장 다루기 어렵다는
‘테란’으로 각종 스타크래프트 대회를 휩쓸었다. 그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공격으로 게임을 ‘보는 재미’를
안겨준다는 평을 듣는다. 게임 전문가들은 임씨를 ‘난공불락의 요새’ ‘타이밍을 아는 게이머’라고 표현한다.
스타크래프트 안에서는 가장 공격적인 게이머이지만, 임씨는 평소 말이 없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다.
그러다보니 임씨 곁에는 항상 매니저가 따라 다닌다.
매니저 김양중씨는 임씨에게 분신(分身)같은 존재다. 그는 임씨가 ‘형’이라고 부르며 믿고 따르는 인물.
임씨는 “양중이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동네 PC방의 영웅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임씨의 스타크래프트 선배다. 김씨가 스타크래프트에 입문한 것이 98년, 임씨가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접한 것이 99년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가을. 당시 김씨는 액세서리를 수입하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스타크래프트가 너무 좋아 퇴근을 하면 PC방으로 직행, 새벽 2~3시까지
게임을 하다 집에 가는 ‘조금은 특이한’ 회사원이었다.
“친구와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의 단골 PC방에 스타크래프트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친구 소개로 그 사람을 만났는데, 정말 손놀림이 신기(神技)에 가깝더라고요. 바로 요환이었죠.”
이후 김씨는 구애(求愛) 작전에 들어갔고, 결국 99년 10월 임씨는 김씨의 아지트인 서울 관악구 봉천7동
‘챔프’ PC방에 짐을 풀었다. “스타크래프트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 신문·잡지를 꼭 챙겨봤어요.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신주영·이기석 등 당시 잘나가던 프로게이머의 경기 모습을 담은 CD롬을 줬거든요. 그 사람들
경기를 보며, 요환이라고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씨는 이때부터 ‘프로게이머 매니저’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낮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밤에는
봉천4거리에서 계란빵을 팔며 임씨를 뒷바라지했다. “제 월급으로 PC방 이용료, 식비를 감당하기가 벅찼어요.
연습실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죠.”
2000년 5월 5일, 김씨는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봉천동에 PC방을 차렸다. PC방은 프로게이머 연습실을
겸할 수 있는 훌륭한 수입원이었다.
김씨를 만난 후 임씨도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다. 99년 12월 ‘제1회 SBS배 멀티게임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2000년 1월 ‘M.폴리스배 게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2000년 여름, 매니저 김씨가 잠시 외도(外道)를
하며 임씨도 방황기를 겪었다. 김씨가 ‘스타크래프트’ 대신 신작 게임 ‘디아블로2’에 빠져버린 것.
조강지처를 버리고 첩에 온통 신경을 쏟은 꼴이었다. 김씨는 디아블로2에 빠져 임씨에게 소홀히 했고,
이에 화가 난 임씨가 김씨 곁을 떠나기로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비 온 뒤 땅은 더 굳어지는 법.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열심히 게임에 매달렸고, 아예
프로게이머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이들의 소속사인 아이디얼 스페이스는 김씨의
친한 선배인 김종수(34) 사장이 대주주이자 대표이사로 있다. 임씨가 ‘스타크래프트의 지존(至尊)’으로
떠오른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2000년 9월 ‘제1회 코리아.C넷 게임대회’ 우승 이후 1년 동안 총 14회 우승을 차지했다.
임씨가 지난해 벌어들인 수입은 약 1억5000만원. 임씨 앞에 떨어진 순수입만 1억원에 가깝다.
하지만 임씨가 부모님께 인정받은 것은 불과 몇달 전의 일이다. 임씨는 위로 누나 셋을 두고 태어났다.
‘귀한 아들’이 대학에 연거푸 두번이나 떨어졌을 때 그의 부모님은 모든 것을 ‘망할 놈의 게임’에 돌렸다.
하지만 임씨는 게임 덕분에 작년 동아전문학교 컴퓨터게임과에 특차로 입학했다.
“작년 9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 부모님을 초대했어요.
관람객이 1만3000명이나 왔는데 제가 1등을 했거든요. 부모님이 매우 감동하셨죠.”
그 날 이후 임씨의 부모님은 임씨에게 보약을 챙겨주며 열성팬으로 변했다.
임씨는 더 이상 국내 스타가 아니다. 한류(韓流) 열풍이 불고 있는 중국에서 그는 연예인 못지 않게 유명하고,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 몽드’에도 그의 이름이 소개됐을 정도다. 임씨를 이렇게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작년 12월 열린 월드사이버게임즈(WCG). WCG는 전세계 37개국에서 43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올림픽이었다. 임씨는 이 대회에서 한번의 패배도 없이 전승(全勝)으로 결승에 올라
스타크래프트 부문 금메달을 차지했다. 대회 마지막날 프랑스 베스트랑 선수와 임씨가 벌인 결승전은
5000여명의 관람객이 경기장을 메우고 홈페이지 접속이 99만건에 달했다.
임씨는 이제 ‘걸어서 1m도 못 나가는 스타’가 됐다. 신문·방송·잡지마다 그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오고,
그가 게임 공개방송에 얼굴을 드러내는 날이면 ‘꽃미남 임요환’을 외치는 여학생 수백명이 선물을 들고 서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있는 그의 팬클럽 ‘임요환님의 드랍쉽이닷’은 회원이 12만명을 넘어섰다.
작년 말 서울대 뉴스사이트인 ‘SNU나우’(www.snunow.com)에서는 임씨를 ‘올해의 인물’로 뽑기도 했다.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업고, 그는 최근 LGIBM과 6개월 단발 6000만원에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서울大 뉴스사이트에선 ‘올해의 인물’로 선출
이번 광고는 임씨와 매니저 김양중씨에게 의미가 깊다. 그동안 여러 차례 광고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최고 결정 단계에서 “얘가 누군데?”라며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번 LGIBM 광고를 기획한
LG애드에서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임씨는 10·20대 사이에서는 인지도가 84%에
달했지만, 40대 이상에서는 14%에 그쳤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대스타가 됐지만 임씨는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연습시간은 신인 때보다 더 늘어났다.
“한동안 방송 출연 등 다른 스케줄에 묶여 연습을 게을리했습니다. 바로 실력이 떨어지더군요. 프로게이머는 연습한 만큼 실력이 드러나는 직업입니다.”
임씨는 요즘 스케줄을 대폭 줄이고, 게임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다. 밥 먹고 잠 자는 시간 외에는
마우스를 손에 놓지 않을 정도. 게다가 지고는 못 사는 승부 근성도 그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상황은 매니저 김양중씨도 마찬가지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게이머는 인정받는 직업이 아니라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프로게이머를 하나의 직업으로 확고히 인식시키고, 게임을 ‘e스포츠’로 키우는 게
꿈이다. 이를 위해 김씨는 요즘 임씨 이외에 11명의 프로게이머를 더 키우고 있다.
12명의 ‘동생’들이 연습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김씨의 하루 일과도 끝난다.
“요환이나 저나 게임 이외의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우리에겐 게임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게임입니다.”
( 박내선 조선일보 경제과학부 기자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