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남편과 아침 일찍 ktx를 탔습니다. 전날 밤 애견 운동장에서 데려온 강아지(24개월 된 대형견)에게 "갔다올게!"하고 인사를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일주일 내내 꿈이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아닌 것 같아!'라고 매일 말 했다가 '꿈 좀 그만 믿어~'라고 핀잔을 여러번 듣기도 했는데(운수 좋은 날 명대사도 들음), 아무튼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무척 안 좋은 상태였고, 병원까지 도착하는 내내 혼자 짜증을 냈습니다. 저한테 직접 한 건 아니었지만, 덥다고 짜증, 서울역에서 아이스크림 퍼준 게 손에 묻었다고 짜증 등등 제가 눈치 볼 정도로 심각하게 기분이 나빠보였습니다.
아무튼 병원에 도착했는데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서 의자에 앉아 대기하니 남편이 흡연실을 보았다며 담배를 피고 오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후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원인을 알게 된 저는 평소처럼 (담배 냄새를 극도로 혐오하므로) 떨어져 앉으라고 말하고 핸드폰으로 웹서핑에 집중했습니다. 평소 핸드폰 사용을 저보다 더 자주하는 남편은 본인 핸드폰 배터리가 나간 관계로 유난히 저한테 뭐보냐고 잔소리를 했고, 지루할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나 혈압을 재고(153/80) 진료실 안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주말에 간 관계로 지난 번 진료하신 선생님에서 같은 과 다른 선생님으로 변경되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유난히 친절한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해주셨습니다. "제가 환자 분을 오늘 처음 뵙나요?"하고 물으시는데 목소리가 상냥 그 자체라 저는 네~하고 끄덕이고, 좀 무례하게도 "아니죠?"하고 대뜸 질문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웃으시며 "제가 결과를 먼저 살펴볼게요~"하고 차트를 보셨는데, 솔직히 저는 무슨 수치인 줄 모르겠고, 차트가 왔다갔다 하면서 검은 색 숫자, 빨간색 숫자가 왔다갔다 하는 걸 보며 좋은 결과를 예상했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제 바람대로 외관상으로는 보이지만(?), 검사 수치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건강하다고 얘기해주셨습니다! 순간적으로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의사 선생님은 바로 '효과는 좋지만, 보험 처리가 안 돼서 비싼 다이어트 보조제를 제가 원하면 처방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뒤에서 남편이 "해"라고 말하자마자 흥(?)이 정점으로 오른 저는 태어나서 두번째로 약 이름도 묻지 않고(첫번째는 정신과 처음 갔을 때인데 당시 날짜, 요일에 대해 인지를 제대로 못하고, 운전시 핸들에서 손을 놓으라는 스스로의 정신적인 압박을 경험하고 매우 놀랐으며, 무언가에 집중하려고 하면 눈 앞이 흐려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라 약에 대해 묻고 말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제가 복용하는 정신과 처방약 2개(밤에 코팩사엑스알서방캡슐75mg 1개-이건 전 날인 금요일에 37.5mg 1개로 줄임, 웰부트린서방정150mg 아침에 1개)는 이번 처방약을 먹으면 안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약이 우울증보다 살빼는데 더 영향을 많이 줘서 처방한 걸 거라고 하시면서요. 저는 원래 코팩~75mg를 하루라도 빼먹으면 유체이탈이 이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극심한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에 시달려서(정신과 선생님께 말씀드리니까 교과서적으로는 금단 증세가 없는데 가끔 그런 분이 있더라고요...라고 답변하심) 몇 번 끊으려고 시도하다가 못 끊고 다시 한 번 시도하려고 바로 전 날 37.5mg로 줄인 상태였습니다. 제가 "지금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한번에 못 끊고 37.5mg로 줄인 상태인데, 이 약을 끊어도 되는 건가요, 아니면 같이 먹으면서 코팩~37.5mg를 끊으라고 하시는 건가요?"라고 묻자 후자라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살찐건 제 의지보다 이전에 먹었다가 끊은 다른 약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좀 의아했던 건... 지난 번 진료하신 선생님은 제가 가져간 복용약 중 웰부트린을 보시면서 "쯧쯧. 담배는 끊어야죠!"라고 하셔서 제가 담배는 심부름 하느라 곽 자체를 집어 본 적은 있어도 펴본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말씀드리자 갸웃하셨습니다(직업 상 담배를 피는 순간 엄청난 압박이 들어오고, 담배 냄새 자체가 역겨워서 실제로 아빠가 화장실에서 담배핀 것 때문에 토한 적도 많습니다. 남편은 결혼 후 심부름을 할때 마다 집 안에서 담배를 피게 해달라고 몇번이나 주장하다가 이제는 알아서 건물 밖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이번 의사 선생님은 다이어트를 돕는 약이라 안먹어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지금 다니는 정신과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제 증상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거나, 약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한 적이 없어서(임신 준비하면 약을 몇 주 전에 끊어야 한다는 설명은 해주셨어요. 아무래도 처음에 지나치게 나쁜 상태에서 약 먹자마자 며칠 만에 안정을 찾은 경험을 해서인지 유난히 의사 선생님을 신뢰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뭐 때문에 저 약을 먹는 줄 모르므로 일단 알겠다고 했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다시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의사 선생님은 언제 다시 올 수 있느냐고 여쭤보셨고, 저는 한 달 뒤에나 가능하다고 대답 드렸습니다(9월 초에 조교 그만 둘 예정). 그러자 처음에는 투여 일수를 7일로 설정하신 걸 28일로 변경하셨고, '원래는 집 가까이에서들 많이 처방 받으면 편한데 원하시면 저희도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아니면 약 먹어보고 효과가 있는 것 같으면 집 근처에서 처방 받아도 돼요'라는 말씀과 함께 인바디 검사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 남편 손을 잡고 흔들며 걸었습니다.
약국에 와서도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약사 선생님께 약을 받으며 약 이름도 확인 안하고(...), 부작용도 안 물어보고(약국에서 처방 약 부작용 안 물어본 건 진짜 처음이네요. 정신과 약은 보통 병원 안에서 지어주다보니...) 약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약사 선생님이 하루 2알이라고만 얘기하고 바로 결제하셔서 식전인지 식후인지도 모르고 있다가(...), 남편이 물어봐서 약사 선생님의"원래 이 약이 30분에서 1시간 전에 먹으면 좋은데, 의사 선생님이 식전이라고 처방하셨네요. 그냥 밥 먹기 전에 드셔도 상관 없을 것 같아요." 말을 듣고 바로 박카스와 함께 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역까지 걸어가자며(폭염..습기..ah...) 저에게 최후의 만찬(미스터 피자 시크릿 가든)을 사줬습니다. 근데 그 때 이상하게 남편과 저는 피자 작은 것 한판을 놓고도 둘다 잘 먹지 못했고(평소에는 저렴한 가게에서 중간 사이즈 시켜서 먹으면 알맞았음), 저는 굉장히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습니다. 왜 이럴까 고민하다가 한참 지나서야 제가 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깨닫고 약 이름이 '벨빅정'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약학정보원 들어가서 약 정보를 검색하고 기차 타고 돌아오는 내내, 진짜 내가 엄청 스트레스 받았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고 집에 와서 3명의 지인에게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정말 푹~잤습니다. 사실 이거 말고 다른 의료사고 때문에 소송 준비 중이어서 굉장히 스트레스 받았거든요. 그쪽은 좀 놀랄 정도로 대놓고 의사 선생님이 실수하셨는데도 인정 안하시는 거라(내 동기 중에 판검사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라는 말을 드라마도 아니고 현실에서 들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변호사 선생님은 신경안써도 된다고 하셨는데... 신경 안쓰일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잠을 잘 못잤는데 이틀간 죽은 사람처럼 편안하게 잘 잤습니다. 진짜 몇 년만에 이틀 동안 꿈도 안꿨네요.
오늘(월요일) 아침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몸무게를 쟀는데 86.5였습니다. 7년 전에도 10일 동안 8kg 감량(허리가 4인치 줄어들었고, 지금 살찌기 전까지 유지했습니다. 당시 선배 선생님이 너무 신나하시며 이후 한달 동안 제 점심 식판을 직접 검사 하셨던 기억이...
참고로 칠년 전 열흘 동안 했던 건...
1. 죽기보다 먹기 싫은 아침 대용으로 달걀 1개와 요구르트 하나를 먹고 출근하면서 멀미하며 헛구역질(...)
2. 커피 등의 음료, 과자 및 야식 안 먹기
3. 자주 걷기(원래는 노래 들으며 걷는 걸 좋아했는데, 당시엔 오른쪽 발목 인대가 5번 연속 늘어나서 걷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일 때)
4. 점심에 밥을 줄이고 반찬을 더 먹기. 김치나 짠 음식은 최대한 안 먹고, 평소에 생수 가지고 다니면서 물 꾸준히 마시기
5. 어린이집 교사 직업병인 5분 안에 밥 먹기를 자제하고, 국에 말아서 삼키는 거 안하고, 입에 반찬 넣고 아무리 못해도 다섯번은 씹기
6. 저녁때는 밥은 매우 적게 먹되 반찬은 순두부나 콩나물, 삶은 콩, 돼지 고기(사랑입니다) 처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로 먹기
7. 컴퓨터 안하고 푹~ 자기
그런데 이번에는 이틀간 푹 자기 말고 딱히 한 게 없고... 아무리 새 약을 이틀 동안 4알 먹었다고 해도, 너무 뜬금없이 몸무게가 줄어서 체중계 문제가 아닐까 싶어서 학교와서 보건실에 가서 쟀더니 여기서는 또 86이 나왔습니다(...). 약 때문인가 싶어서 대학병원에 전화해보니 그건 아닐 거라는 말씀에 대체 내가 왜 또 살이 빠졌는가에 대한 고민을 길게 했지만, 출근 하면서 운전하면서 두통이 심하게 온 이후로 그냥 생각을 멈추고 있습니다. 약 먹고 나서 특별히 심한 건 없었고... 두통(아까 점심 이후로 사라짐), 주말에 얼굴 전체, 입술 오른쪽 위와 손가락 왼쪽 세번째 손톱 있옆이 양쪽으로 심하게 부었다가(남편 왈 '뭐야... 자기 한 대 맞은 것 같아!')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괜찮음, 안과에서 안구건조증세가 있다고 들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눈이 과자 에이스 말라 비틀어진 걸 눈에 비비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건조함(이건 지금은 어제보다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러네요), 몸이 매우 피곤(점심에 이 글 작성하다가 과사 바닥에 누워서 잔...)... 정도네요.
아무튼 지난 번 염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사실 '아니면 어떻게 하지? 망신 아닐까? 지가 게으른 주제에 의사 선생님 괜히 의심했다고 욕 하진 않을까?' 등등의 고민으로 글쓰기를 굉장히 망설였는데... 걱정해주시는 마음을 느끼고나니 오히려 글을 쓴게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요. 슬픔과 불안은 정말 나누면 반이구나, 나도 다른 분의 어려운 마음이 담긴 글을 지나치지 말아야겠구나 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여러 의사 선생님께 섣부르게 의심의 말을 꺼내지 않고, 침묵했던 저 자신의 소심함에 감사(...) 했습니다.
관심가져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편안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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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별로 먹지도 않는데 체중이 확~ 불어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착한아이님도 아마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경과가 좋으시다니 같은 비만인(?) 으로서 괜시리 기분이 좋네요. 축하드리고요, 지속적으로 잘 관리하셔서 정상체중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