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와 회사는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주 중에는 회사 앞에서 자취를 하고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퇴근 버스에 몸을 싣고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오늘 늦는다고 그랬고 엄마는 모임이 있어서 지금 나가니까 아빠랑 같이 뭐 시켜먹어.
응응. 알았어. 대충 전화를 끊고 덜컹거리는 퇴근 버스에서 멀미를 참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았다.
한 시간 이십 분보다 조금 넘게 걸리는 퇴근 버스는 집에서 차로 십 여분쯤 떨어진 어느 마트 근처 육교 앞에서 멈춘다. 버스를 타고 가도 삼십 분 안에 도착할테지만, 일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딸을 데리고 오기 위해 금요일마다 이십 분 쯤 일찍 퇴근하는 아빠는 늘 마트 앞에서 차를 세워두고 기다린다. 매주 반복되는 지극정성이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아무리 훑어봐도 아빠 차가 보이지 않는다. 금요일이라 차가 조금 막히나 싶어 전화를 거니 잔뜩 미안한 목소리로 아빠가 전화를 받는다.
아빠, 나 도착했는데 좀 늦을 거 같으면 장 보고 있을까?
그래. 저녁에 먹을만한 거 뭐 사고 있어. 금방 갈게.
대형 마트가 아닌지라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쭉 훑어봐도 저녁으로 먹을만한 게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고 재료를 사다가 해먹는 건 무리고, 그냥 시켜먹어야 하나 싶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엉뚱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데 뒷쪽에서 누군가 왁! 큰 소리를 내며 어깨를 툭 친다. 보나마나 아빠다.
결국 저녁은 시켜먹기로 하고 집에 뭐 떨어진 것은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며 생각나는 대로 장바구니에 집어 넣는다. 꼴랑 아이스크림 여섯 개와 에프킬라 하나가 든 장바구니를 들고 서로 내가 계산할 거다, 실랑이를 피우다 끝내는 내가 이겼다. 마지막까지 지갑을 꺼내 드는 아빠의 등을 카드 실적 올려야 한다는 말로 떠밀어 보내고 만 원도 안 되는 칠천 얼마를 계산한다.
차를 타고 십 분 남짓,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저녁 메뉴로 뭐를 시켜먹을까 고민을 한다. 그래봐야 중국집이나 치킨인 것을, 한참을 둘이 머리를 싸매 보아도 메뉴를 결정하지 못한다. 결국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치킨으로 합의를 봤다. 배달이 오기 전에 먼저 씻어야겠다며 샤워하러 들어간 아빠를 대신해서 늘 먹던 집에 주문을 한 뒤, 야근하느라 늦는 언니에게 메신저로 약을 올린다.
[우리치킨먹는다부럽지?]
언니에게선 칼 같이 답장이 왔다.
[먹고살이나쪄라]
* * * * *
샤워하고 나온 아빠가 슬쩍 말을 흘린다.
계란찜 하나 할까? 국물 먹게.
좋은 생각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내가 할테니 아빠는 티비보고 있으라고 거실로 쫓아냈다. 그래도 나름 엄마의 주방 보조 십 몇 년 경력의 소유자인지라 자신감 넘치게 뚝배기에 계란 두 개를 깠다. 근데 물을 얼마나 넣어야 하더라... 기억을 더듬어 엄마가 하던 걸 떠올리며 대충 이쯤이겠지, 하며 물을 붓고 소금을 치고 파까지 썰어 넣은 뒤 뚝배기를 불 위에 올렸는데 어째 기운이 쎄하다.
아니나 다를까, 끓어오르는 걸 보니 이게 계란찜인지 계란국인지 모를 만큼 홍수가 났다. 티비에 빠져 주방 일은 잊고 있을 아빠는 모르게 아주 조금 떠서 한 입 먼저 먹어본다.
큰일났다, 이게 뭔 맛이냐.
* * * *
똑똑똑. 치킨 왔어요. 집에서는 화장이고 뭐고 앞머리고 뭐고 아무 것도 없다. 아빠 손에 내 카드를 쥐어주고 후다닥 주방으로 숨었다. 기왕 주방 쪽으로 숨은 거 냉장고에서 소주나 꺼내 가야지.
따끈한 치킨과 맛 없는 계란찜을 두고 두 부녀는 나란히 소주잔을 기울인다. 나는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아빠는 언니와 엄마가 주중에 얼마나 열심히 싸웠는지를 얘기한다. 둘이 성격이 불 같은 게 똑같아서 싸우기도 잘 싸운다고, 웃다가 문득 지난 주에 자취방에 데려다 주고 돌아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아빠, 그래도... 엄마 지난 주에 나 자취방에 데려다 주고 울더라. 나 혼자 두고 가는 게 짠하다고.
아빠는 묵묵히 숟가락을 움직여 식었어도 여전히 맛 없는 계란찜을 한 입 떠먹고는 잔에 남아있던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너네 엄마가 독하긴 해도 마음이 여려서 그래.
* * * * *
둘이서 나란히 소주 한 병 씩을 나눠 마시며 치킨을 열심히 뜯었지만 고작 반 마리 밖에 먹지 못했다. 배가 터질 것 같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아빠는 상을 치운다. 그릇 몇 개 되지도 않는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에 이불을 깔고 티비를 보며 뒹굴거리고 있자니 엄마가 돌아왔다. 약간 알딸딸하게 취기도 올랐겠다,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찡찡이 스위치에 불이 들어온다.
둘이 밥 맛있게 먹었어?
내가 계란찜 했는데 하나도 맛 없고 비렸어, 물 조절 잘못해서.
샤워하고 나온 엄마를 붙잡고도 또 한참을 징징댄다.
엄마, 나 너무 많이 먹었더니 배 아픈 거 같애.
약 먹어, 그럼.
소화제 말고 나 배 쓸어줘.
평소엔 안 먹다가 간만에 많이 먹어서 그러지. 타박하는 엄마에게도 일주일 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그렇게 엄마는 다 큰 작은 딸에게 한참을 붙잡혀서 가만가만 배를 쓸어주었다.
엄마, 우리 삼청동 갈까? 북촌 한옥마을 이런 데.
좋지.
아빠랑 가본 적 있어?
연애할 때 가봤지. 요즘은 바빠서 갈 수가 있나.
그럼 오랜만에 언니랑 나랑 가자. 응?
몇 주 후에 오는 주말이 연휴를 끼었으니 그 때가 좋겠다, 많이는 안 걷고 가깝게 돌아다니면 괜찮겠지? 엄마는 점심으로 뭐 먹고 싶어? ...
이거저거 신나서 묻다가 절로 쏟아지는 잠의 홍수에 휩쓸려 가만히 눈을 감는다. 가물가물 잠들어가는 작은 딸의 배 위로 이불을 덮어주고,
엄마는 야근하느라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큰 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