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 코린토1서 13장 11절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자신, 어제보다 다른 자기를 꿈꿉니다. 모두가 그러한 변화에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믿었지만, 실패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오로지 지망하던 대학에 가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불우한 주변과 불안한 현실은 꿈을 채찍질하는 기수의 두 팔이었을 겁니다. 채찍질은 나를 매섭게 몰아쳤고, 드디어 말은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당연히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전 그렇게 믿지 못했고, 당연히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1년에 걸친 휴학에도 종착역이라 믿었던 지점에서 다음 역으로 가는 표 따위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게도 학업에 전혀 흥미를 갖지 못한 제게 돌아오는 것은 미니건으로 난사당한 성적표 두 장이며, 그런 결과를 맞닥뜨리는 혼미한 정신과 함께 있는 것은 불어날 대로 불어난 신체였습니다. 제게 어떠한 믿음 따위는 없었고, 앞에 보이는 것은 나름의 절망과 공포였습니다.
1년의 유기 정학을 받고 제가 내린 결정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물세 살의 나이로 아무렇게나 신청한 입대 장소는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보는 강원도였습니다. 나약한 육신과 영혼이 생전 처음 겪는 전체주의적 시련에서 찾은 것은 종교였습니다. 훈련소에서 시작된 믿음은 자대에 가서도, 굳이 자기 시간을 내어 성당에 가는 사람이 없음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는 나날 동안 저는 자신이 달라졌다고 믿었고, 굳건한 믿음으로 저는 몇 번째인지 모를 환승역을 지났습니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었을까요? 당연하게도, 또는 안타깝게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8년째를 맞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출한 학비를 갚을 일이 겁나고, 당장 제게 닥친 일을 해결하지도 않고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하는 것이 두려우며, 주일마다 가지 않는 성당 앞을 지날 때면 항상 도망치는 중입니다. 부정적인 행동과 감정은 저를 끊임없이 갉아먹고 있습니다. 어떠한 상담이나 대화 속에서도 이를 드러내지 못하며, 제 안의 부정은 서서히 남은 부분을 부정태우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니었겠지요. 저는 제 옆에서 세 번째 아웃카운트를 맞는 친구 옆에서 자신에게 안도했고, 어느새 무슨 세월이 흘렀다고 벌써 곳곳이 아프기 시작하는 불어터진 신체를 어느 정도 다독였습니다. 당연히 제가 생각했던 이상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떻게든 다음 목적지를 향해가는 중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제가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른처럼 헤아릴 수 있는 용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용기는 한 번에 타오르지 않는 다는 것을 알기에, 작은 용기를 피워봅니다. 무엇을 태우더라도, 작은 불씨가 거대한 화염 바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