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체 스 타
명동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일 차로 모실 걸 하는 후회가 든다. 엊저녁 클라이언트의 변덕 때문에 긴급 철야작업을 마치고 새벽에 퇴근했고, 곧장 어머니 댁에 들러서 택시를 타고 왔다. 덕분에 머리도 띵하고 발바닥도 아프다. 택시에서 좀 잘걸 그랬어.
“피곤해 보이는구나. 한숨도 못 잤다며?”
“괜찮아요. 일상이라서.”
어머니와 조심조심 발걸음을 맞추며 찾은 곳은 호텔과 백화점이 들어찬 대로변 안쪽의 작은 양복점이었다. 저긴가 싶은 곳이 보였을 때, 굳이 주머니에서 ‘그 작자’가 남긴 명함을 꺼냈다. 명함에 그려진, 양복을 입은 푸른색 남자 실루엣이 저기 간판의 것과 같다.
45년 전통 비스포크 전문 맨체스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OO, 02-3397-OOOO
오너 테일러 함석진
명함 뒤편에는 볼펜으로 쓰인 3개의 날짜가 있다. 지난달 첫째 수요일과 셋째 목요일이었던 날에는 가로선이 그어진 것으로 보아 그 날엔 그 작자가 직접 이곳을 방문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마지막 날짜, 바로 오늘이다. 그 작자가 이곳을 세 번이나 방문하려 했던 이유는 어제 전화로 대강 들었다. 하지만 굳이 왜? 끝까지 성가시게 하네.
“어머니, 여기네요.”
양복들로 가득한 진열장을 들여다보시더니 몸도 성치 않았을 양반이 이런 엄한 곳엔 뭐하러 왔을꼬 하며 혀를 차신다. 문을 밀자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났다. 어머니를 매장 가운데 소파에 모셨을 때, 커다란 두루마리 원단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벽을 등진 노신사가 미소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부엉이 같은 검은색 둥근 안경알, 희끗희끗한 머리와 멋스러운 턱수염. 어제 전화를 받았던 이 가게 사장이 분명하다. 감색 체크 무늬 양복 어깨에 줄자를 걸친 채 사장이 다가오며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다.
“어제 오후에 전화 드렸던 사람입니다. 함 사장님이시죠?”
설명이 부족하다는 듯 정중하게 이름을 묻는다. 그 작자 이름을 전했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살짝 눈웃음을 하고 사라진다. 잠시 후, 매장 한편 목 없는 마네킹들이 입고 있던 옷 중 군청색 재킷을 벗겨온 사장이 안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오늘이 마지막 ‘가봉일’이군요.”
“어제 전화로 대충 듣긴 했는데요, 가봉이 뭐죠?”
“옷을 몸에 딱 맞게 조정하는 거지요.”
“그런데 3번이나 와야 하는 건가요?”
“우리 가게는 재봉틀과 접착제를 쓰지 않고 전부 손바느질로 옷을 만드는 곳입니다. 예전엔 다 그렇게 옷을 맞췄지요.”
언제고 신문에서 본 기사가 기억났다. 70년대 여기 소공동 일대는 전국에서 옷을 맞추러 올 만큼 유명한 양복 거리였다고. 기성복이 나온 후 명맥이 끊겨 이런 가게는 거의 없어졌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양복점을 몇 개 본 것 같기도 하다.
“옷 주인은 왜 안 오셨을까요?”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말했다.
“아버지께서 맡기셨던 건데요, 2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런! 아, 맞습니다. 이제 기억나네요. 그, 연로하셨던.”
딱한 사연의 손님을 보는 사장의 표정이 싫다. 어머니께 다가가 옷을 보였다.
“이거래요.”
침침한 눈을 껌뻑이실 만했지만, 어머니는 그 옷을 단번에 알아보셨다.
“영감이 결혼식 때 입었던 거네. 맞아. 그거야.”
결혼식? 새 옷을 맞춘 게 아니었어?
“결혼식이요?”
“그렇다니까. 허이구, 이걸 언제 꺼내왔누.”
결혼하신 해가 아마 1973년, 그 작자가 스물둘이었을 때니 40년도 더 된 옷이다. 박물관에서 진귀한 골동품을 만난 듯 새삼 양복을 다시 살폈다. 오래된 옷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재킷은 말쑥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거라지만 40년도 돌 수 있을 줄이야.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 진심이 나왔다.
“옷이 참 멋지네요. 옷깃도 깔끔하고, 어깨와 허리선도 부드러운 게, 실은 제가 이런 거 잘 볼 줄 모르긴 하지만 굉장히 고급스럽게 보이네요.”
“만족하신다니 다행이네요. 고인께서 살이 많이 빠지셔서 전체적으로 작게 고치고 라펠(밖으로 접힌 재킷의 깃 부분)을 요즘 식으로 조금 좁게 다듬었더니 그리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치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지난달이라면 막 퇴원해 어머니 댁에서 누워만 있을 때였다. 화장실 갈 때도 부축이 필요했을 정도였다고 들었는데 먼 명동까지 오가며 양복을 수선한 까닭을 짐작하기 어렵다.
“정말이었나 보네. 정말이었어.”
“뭐가요?”
“영감이 자기 가기 전에 이거 입고 결혼식 다시 하자고 했었는데 정말이었네. 하이고, 영감.”
다 마른 줄 알았던 어머니의 눈물을 봤을 때, 무례하게도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참으로 어이없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리마인드 결혼식’을 생각한 거다.
하지만, 그래, 이건 도리어 참 그 작자다운 발상이다. 시장통에서 어머니만 개고생시키고 평생을 술로 탕진한 작자의 마지막 낭만답다. 세상에 이런 엉터리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살아생전 그렇게 어머니께 모질 게 타박만 하더니 그런 이벤트를?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이건 웃긴 상황이 맞다. 어머니만 안 계셨다면 이따위 옷 그냥 내팽개치고 가게를 나왔을 거다.
“사정상 이대로 가져가야겠네요. 어제 바지도 있다고 하셨죠? 같이 싸 주세요.”
다시 재킷을 돌려받은 사장이 문득 나를 살핀다.
“아드님이시죠? 이제 보니 생전 어르신 체형과 비슷한 거 같은데 한 번 입어보시면 어떨까요?”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 작자 옷을 내가 왜? 후련하게 떨쳐버린 망령을 다시 만나는 기분일 거다.
“괜찮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입어 보시죠? 세상에 주인을 잃은 옷만큼 측은한 게 없답니다. 새 주인을 찾아주고 싶네요.”
만난 지 몇 분이지만 사장이 달리 보인다. 깊은 눈빛, 차분하지만 묵직한 어조. 이 사람, 뭐지? 완곡한 거절의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영험한 최면술사의 명령이라도 받은 듯 내 몸이 저절로 응했다. 머리는 내키지 않다고 소리치는데 어느새 점퍼를 벗고 조심스레 재킷을 걸치고 있다.
사장이 줄자로 내 옆구리를 감싸고 있을 때, 또다시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이 옷, 어이없게도 영 내 것 같다. 누군가 한 아름에 껴안듯 더없이 포근하고 푹신하다. 영문 모를 안도감이 밀려왔고, 훌륭한 음식을 맛본 미식가처럼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당장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눈두덩이 뜨거워진다. 훌쩍 코를 들이켰다.
“이상하네요. 돌아가셨을 때도, 화장할 때도, 장례 치르는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옷이.”
편안한 목소리의 사장이 내 마음을 관통했다.
“마치 아버지께서 안아주신 것 같죠?”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말도 안 된다. 내 기억 어디에도 그 작자가 나를 안았던 장면은 없다. 그 작자가 나를 안는다고? 퍽이나 아름답겠다.
“전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았어요. 어렸을 땐 몰랐는데 머리가 좀 크고 나니 알겠더군요. 평생 어머니만 고생시키고, 허구한 날 술만 끼고 한량처럼 사는 게 참 못마땅했어요. 취하기만 하면 행패를 부려서 어머니도 저도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밖에 없죠. 맞기도 많이 맞았고요.”
“고인께서 성격이 좀 괴팍하셨군요.”
“아뇨.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에요. 나쁜 사람이었어요. 어떤 날은 너무 취해서, 이유는 기억 안 나지만 집에서 부엌칼로 행패를 부렸던 날도 있었죠.”
누구에게도, 심지어 집사람에게도 해 본 적 없는 고백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할 말은 더더욱 아닐 터.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면 이런 기분일까? 갑자기 떠오른 악몽 같던 나날들을 떨치기 위해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마 사장님 솜씨가 좋아서 그런가 봐요. 옷을 너무 훌륭하게 만들어 주셔서.”
재단용 초크로 팔꿈치 안쪽에 작은 선을 그리는 데에 집중한 채 사장이 옅게 웃는다.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옷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눈물을 보인 사람은 50년 동안 없었답니다. 실은 양복쟁이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자기가 가장 아꼈던 옷에 영혼이 깃든다는. 어쩌면 고인께서 이 옷을 통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셨을지도 모르죠.”
그 작자에게 영혼이라, 참 생경하다. 하지만, 그래 뭐, 영혼이라는 게 진짜 있다면 그런 작자에게도 있기야 하겠지.
“옷이 딱 맞네요. 팔꿈치 접히는 부분만 살짝 조절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는데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으니 그냥 달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입에서는 다른 소리가 나온다.
“그러시죠.”
턱이 빠질 것 같은 하품이 나왔다. 아, 어쩐지. 어제 잠을 못 자서 정신이 좀 이상해졌던 거였어. 그런 거였군.
하릴없이 매장에 있는 옷들을 둘러보다 무료해진 나는 어머니에게 돌아와 앉았다.
“옷 찾으면 밥이나 같이 먹어요. 모처럼 바깥사람들 구경도 좀 하시고.”
식사 생각은 없으신지 말씀이 없으시다. 표정을 살폈더니 또 그 작자 생각이 나셨나 보다. 그딴 사람 뭐 그리 추억할 게 있다고.
“요 앞이 명동이니까 칼국수 드시고 가실래요? 십만 원짜리 칼국수 사드릴게. 큰맘 먹고 제가 쏠 테니 돈 걱정은 마시고.”
정말 십만 원짜리 칼국수가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개구쟁이처럼 웃는 얼굴로 농이라는 것을 알렸다. 다행이다. 이제 웃으시네.
다시 하품이 났다.
.......................
탁!
가부좌를 튼 그 작자가 부엌칼을 마룻바닥에 꽂았다. 칼 건너편에는 파랗게 질린 9살짜리 꼬마인 내가 있다. 찌, 찌르지 마세요. 포박이라도 당한 양, 나는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몸을 떨고 있다. 저 칼이 당장 내게 날아들 것 같다.
“엄마한테 들었다. 내 지갑에서 돈 꺼내다가 걸렸다며? 어디다 쓰려고 그랬어? 엉?”
그렁그렁한 눈물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말해!”
벼락같은 고성에 숨 막힐 듯 놀란 나는 순순히 이실직고했다.
“로, 로보트. 약국 앞 문방구에서 파는 거. 그거 사려고.”
“로보트? 너 얼마 전 추석 때 외삼촌이 하나 사줬잖아? 그런데 또?”
“지난번 그거랑, 하, 합체되는 거라서. 너무 사고 싶어서.”
“뭐? 어휴!”
술 냄새가 잔뜩 섞인 한숨이다. 눈물의 안개 너머로 벌겋게 달아오른 괴물 같은 얼굴이 어른거린다.
“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게 도둑질이라고 했어 안 했어? 엉? 그래, 너 같은 새낀 필요 없어! 나가!”
잘못했다고 빌어도 소용없다. 온갖 험한 소리를 내뱉던 그 작자가 드디어 칼 손잡이를 움켜쥔다.
“시펄, 나가라고!”
용수철처럼 단박에 몸이 일으켜졌다. 신기하게도 나는 지금의 모습, 어른이 되어 있다. 이미 연습했던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거침없이 외쳤다. 피가 거꾸로 솟아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아 썅, 진짜!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애 앞에서 칼로 뭐하는 짓이냐고요? 좋습니다. 저 이 집구석 나갑니다! 더럽고 치사해서 도저히 못 살겠어요! 그런데요, 나가기 전에 이 말은 좀 합시다. 사업한답시고 돈 꼬라박았다가 망했으면 어떻게든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온종일 시장통에서 쭈그려 앉아 있는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그래놓고 꼴에 가장이라고 훈계질? 그러니 평생 그따위로 사신 겁니다! 알아요? 당신 진짜 한심하다는 거?”
속이 다 후련하다. 저 꼴 같지 않은 면상에 침이라도 뱉고 싶다.
“이 새끼가?”
박치기라도 할 듯 그 작자가 단숨에 내 앞에 섰다. 덜덜 떨리는 흐릿한 눈, 그리고 여전히 역겨운 구취.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뭘 알긴요. 저도 나이 사십이 넘었어요. 가르칠 생각 마시죠? 당신 주제에 뭘 가르치려고요?”
번쩍. 손찌검을 허용했다. 하지만 기뻤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더 때려 봐! 당신 손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아! 아니면 칼로 찔러 보든가!”
내 악다구니에 정말로 바닥의 칼을 뽑아 든다. 식식거리며 나를 노려본다. 그렇게도 무서웠던 저 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눈 한 번 깜빡여지지 않았다.
칼이 바닥에 뒹구는 소리가 났다. 어느새 이 작자는 백발의 노인네가 되어 있다. 놀랄 틈도, 거부할 틈도 없이 나를 와락 안는다. 나오는 소리는 더 가관이다.
“영우야, 미안하다.”
미안해. 뭐? 이제 와서?
“용서해다오.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는데. 이렇게, 이렇게.”
갑자기 이 무슨 감동적인 장면이람? 이제 내가 ‘아버지, 사랑해요.’ 하면서 서로 얼싸안고 울 차례인가? 그치가 내 왼쪽 어깨에 얼굴을 파묻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물로 어깨가 뜨거워진다. 물론, 여전히 감동 따위는 없다. 감동은커녕, 이따위 싸구려 신파, 역겹고 더럽다. 저리 가.
.....................
“아범아, 아범아. 자니?”
어깨가 흔들리더니 주름진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괜스레 기침하며 눈을 비볐다.
“험, 왜요?”
“피곤했니?”
“‘어제 일이 좀 많아서요. 잠깐 졸았더니 이제 괜찮아요. 옷은 아직?”
어머니의 손이 다시 어깨로 향한다.
“자식이 그러는 거 아니다.”
“네?”
이게 무슨 상황이지? 허몽 중에 잠꼬대라도 한 건가?
“영감이 가기 전에 한 말이 있어. 하나뿐인 손주라고 영훈이 끔찍이 아꼈잖니. 영훈이를 보니 자기가 젊었을 때 열심히 안 산 거 후회된다고 했어. 요즘처럼 험한 세상, 애 키우는 데 돈도 많이 들 텐데 해준 것도, 해 줄 것도 없다며 눈물도 펑펑 흘리고. 내 평생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양반인데 말이다. 그리고 네게도 많이 미안했다고 하고.”
“그건, 사람이 갈 때가 되면 안 하던 짓 한다잖아요. 그런 거겠죠. 그 노친네가 진짜 반성이라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전 그렇다 쳐도 어머니께 더 미안해해야죠. 평생 온갖 행패 다 받아주며 사시다 마지막엔 병시중까지. 우리 어머니께서 제일 고생하셨어요, 정말로. 그 양반이 어머니껜 미안하다고 안 하던가요?”
“아휴, 뭐라니? 난 그런 말 필요 없어. 그냥 내 팔자려니, 팔자려니 하고 살았어. 괜찮아. 살만했어. 사는 게 다 그런 거야. 따지면 끝이 없어. 넘어갈 건 넘어가야 해. 그러니 아범아, 이제 떠난 양반은 그만 원망하고 그러려니 하렴. 그 양반은 그냥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었던 거야. 그냥 철없이 한세상 살다가 갈 길 떠난 거야.”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어머니는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대시며 눈을 감으신다. 사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할 말이 마구 떠오르는데도.
어머니 말씀처럼 한때나마 그 작자를 이해해 보려 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작자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긴 하다.
어머니께 들은 바, 그 작자는 시골 농사꾼인 조부로부터 사랑 따위는 받지 못한 채 자랐다. 조모는 극심한 산고 끝에 돌아가셨는데 어미를 죽인 핏덩이라며 하나뿐인 자식을 모질게 대했다 한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 이야기겠지만, 그 작자 역시 어렸을 땐 제법 영특하다는 소릴 듣고 자랐다. 국민학교 내내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남자는 모름지기 농사를 지어먹어야 한다는 조부의 강권으로 졸업과 동시에 농사일을 거들 수밖에 없었다.
불만과 갈등이 쌓이다 터진 건 열여덟 살 때였다. 심한 말다툼 끝에 가출하다시피 서울로 뛰쳐나온 것이다. 유달리 배운 것도, 가진 것도, 그럴싸한 인맥도 없던 터라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다. 그렇게 그치는 이발소 보조, 동대문시장 지게꾼을 거쳐 공사장 잡부가 되었다.
어머니를 만난 것은 공사장 근처 함바집이었다. 가난했기에 식은 올리지 못했다. 신혼여행은 상상하지도 못했고, 친척은 물론 조부조차 초대하지 않았다. 그저 옷 한 벌씩 맞춰 입고 셋방살이하던 달동네 집 근처에서 공사판 친구들과 술판을 벌였다 했다.
그리고 결혼한 그해에 조부는 취중에 발을 헛디뎌 툇마루에서 떨어져 뇌진탕으로 돌아가셨다. 친척들이 나서서 뭐라 하지 않았다면 장례조차 치르지 않았을 거라 하셨다.
가정에 재앙이 닥친 건 결혼 2년 후였다. 있는 돈 없는 돈 그러모아 벌였던 공사판 자재 납품 사업이 동업자의 횡령으로 하루아침에 빚더미로 돌아왔다.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 작자는 그대로 무너졌다.
가장이 되어 보니 알았다. 세상에 무능력한 가장 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는 것을. 그 비참함을 달래기 위해 평생 술에 의지하고 말도 안 되는 잔소리와 기행을 일삼았던 것 역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쏟아내야 했고, 그게 하필이면 가장 가까이에 있던 우리들이었을 터.
어머니 말씀처럼 그는 무지했다. 무지했기에 가장의 역할과 책임을 외면했고, 사랑의 수혜자가 되어 본 적 없는 삶을 살았기에 베푸는 방법 역시 몰랐다. 이렇게 보면 그 작자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돌이켜 본들, 하지만 끝내 나는 그 작자를 포용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내게 각인된 증오와 공포가 생생했다.
더 따져보면, 흉악무도한 살인마라고 해도 사연은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 기구한 사연이 현실의 죄를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작자의 패악질 때문에 내가 인생에서 누리지 못한, 남들은 다 누리고 살았던 수백, 수천 가지 손해는? 이건 보상받을 길조차 없다.
보상? 그래, 자식 된 도리로 보상 따위는 당치 않다고 치자. 그렇다면 최소한 그치는 우리에게 미안해하기라도 해야 했다. 결혼 후 나는 따로 살아 그 꼴을 피할 수 있었지만, 죽기 직전까지 난폭한 술주정을 감내해야 했던 건 여전히 어머니였다.
그렇게 그 작자는 없는 사람으로 치고, 가끔 어머니에게만 연락하며 지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중 ‘그 사건’이 일어났다.
대략 5년 전이었다. 갓 세 돌이 지난 아들이 저녁 자리에서 밥을 먹지 않고 고래고래 울기만 했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녀석이 집어던진 숟가락이 하필 내 머리를 때렸을 때, 나는 아들에게 손찌검을 날렸다. 고작 3살배기에게 말이다. 처음 보는 내 잔혹한 폭력에 아내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정말 놀란 건 나였다. 뉴스에 가정 폭력 이야기가 나오면 치를 떨며 저런 새끼들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며 한소리 거들던 나였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였다. 나 역시 그렇게도 증오해 마지않던 쓰레기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헤아릴 수 없는 절망감이 나를 지배했다. 그 날 아내는 새빨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뺨을 쓰다듬을 뿐 며칠이나 내게 말을 걸지 못했고, 나 역시 아무 말도, 미안했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도 몰랐던 내 폭력성의 원인을 찾아야 했다. 아니, 정확히는 ‘핑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핑계는 참으로 간단히 떠올랐다. 그래, 어디선가 들었어. 폭력은 '유전'이야. 전부 그 작자 때문이야. 내가 보고 자란 것 때문에 그런 거야. 그래, 이거였어.
그리고 다짐했다. 참아야 해. 그 작자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어. 나는 달라야 해. 정신 차려. 살인마도 사연은 있다 생각했지만 우습게도, 그리고 끔찍하게도 내 모습 역시 그러했다.
내 결심과는 달리 그 이후로도 서너 번, 나는 아이에게 손찌검은 물론, 애들이 크면서 저지를 수 있는 흔한 실수에 발길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중 몇 번은 그 작자가 그랬던 것처럼 취중에 벌어지기도 했다.
내 비열한 폭력이 멈춘 건, 전날 발길질을 얻어맞았음에도 아빠, 아빠하며 내 손을 붙잡고 까르르 웃던 아이의 얼굴을 봤을 때였다. 그리고 나를 나무라지 않고 요즘 야근 때문에 고생이 많다고 위로하며 콩나물국을 끓여주던 아내의 모습에 내 뺨을 후려치며 눈물을 쏟았던 재작년 어느 날이었다.
사장이 다가온다.
“다 됐습니다. 입어 보시죠.”
건네받은 재킷을 걸치니 착 달라붙는 게 몸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팔꿈치만 손본다고 했던 것 같은데 처음보다 더 일체감이 든다. 굉장한 솜씨다. 그런데.
이상하다? 순간 소름의 썰물이 들이쳤다.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건 너무 이상하다.
나와 그 작자의 체형이 같을 리가 없다. 그 작자 키는 내 어깨 즈음이었다. 몸은 어떤가. 오랜 투병 생활로 임종 땐 북어처럼 말라 있었다. 그 몸이 지금 나와 같다고? 이 옷 뭐지?
“사장님, 이 재킷, 다른 손님 것과 바뀐 건 아닌가요?”
“그럴 리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 여사님께서도 그렇다고 하셨잖습니까?”
“이렇게 잘 맞을 리가 없어요. 저랑 몸이 아주 달랐거든요.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잠시 뜸을 들인 사장이 세상 둘도 없이 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사님 말씀처럼 뒤늦게나마 아드님께 뭐라도 남기고 싶으셨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람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여기 대체 뭐야? 갑자기 사장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런. 닦아 드리겠습니다. 다리미가 낡아서 물이 좀 튀었었나 보군요.”
거울을 보니, 어깨였다. 축축하게 젖은 얼룩이 왼쪽 어깨에 가득하다. 이 자국은 마치, 어? 그러니까 아까 그, 그 작자가 꿈에서.
“저, 저기요, 괜찮습니다. 그냥 주세요.”
사장이 빙긋 웃는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애초에 다리미는 아니었거든요. 허허.”
그럴 줄 알았다니? 다리미가 아니었다는 말은 또 뭐지?
소믈리에의 암 타월처럼 팔에 걸치고 있던 바지를 살짝 들어 올린다.
“이것 역시 굳이 입어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왠지 딱 맞을 거 같거든요.”
저 말의 의미가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옷의 의미도.
“사장님께서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사장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지와 재킷을 옷걸이에 걸고, 큼지막한 맨체스타 마크가 선명한 양복덮개를 씌웠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옷과 함께 종이가방 하나가 딸려왔다.
“이건 뭐죠?”
“어울리는 셔츠도 하나 넣었습니다.”
지나친 호의에 당황한 나머지 헛웃음이 났다.
“하핫, 이건 너무 부담스럽네요. 여기 굉장히 비싼 가게 같은데 이런 것까지.”
“괜찮습니다. 사장님께서 그러라고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주신 고객님을 위한 특별 서비스라고 하십니다.”
“사장님? 그럼 선생님께서 여기 사장이 아니신가요?”
“아닙니다. 실은 이 옷을 만드신 건 진짜 사장님이신 제 선친이십니다. 바로 여기 계시죠.”
노신사는 입고 있던 체크 무늬 양복을 자랑스레 보듬었다.
“돌아가실 때 물려주신 겁니다. 저는 그냥 사장 대행이고요.”
잠시 정신을 놓았던 나는 허겁지겁 지갑을 꺼냈다.
“얼마죠?”
“받은 거로 하겠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이, 이건 정말 아니죠. 제가 너무 곤란합니다. 받으세요.”
사장 대행이 양 손바닥을 보이며 정중하게 말한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역시 사장님 지시라서요. 허허.”
딸랑딸랑. 가게를 나서자마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애비 덕분에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겠구나. 고맙다.”
“어이구, 겨우 칼국수 따위가 뭐라고. 앞으로 자주 사 드려야겠네요.”
어느새 불어난 인파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신비로운 동화의 나라에 다녀온 사람처럼, 혹은 다시 못 올 고향을 떠나는 사람처럼 가게를 돌아봤다.
마지못해 눈을 거뒀을 때였다. 문득 아내와 애도 함께 왔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칼국수 참 좋아하는데 말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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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pgr21 글쓰기 소모임 '모난조각(모임장 마스터충달)'에 2018년 7월 17일에 올렸던 글을 금일 다시 퇴고한 글입니다. 못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