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람들을 위해 저녁식사 전에 짧은 이야기를 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다 된 밥도 뜸이 들어야 한다. 그 밥이 전기밥솥에서 만들어진 밥이라도 마찬가지다. 뜸이 드는 그 길지 않은 시간동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요즘엔 음식이든 이야기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지어내야 하나. 하지만 역시 이야기 중의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인간의 실제 삶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는 말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참말인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가짜 이야기를 지어낼 정도의 깜냥은 아니므로,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 친구는 29세의 남자로 아주 특이한 녀석인데, 평소 말수가 적고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 편인 녀석이 술자리에서 갑자기 서너 명의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해 준 말이다. 내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녀석은, 화젯거리가 떨어지고 서로 묵묵히 자신의 잔만 쳐다보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말을 시작했다. “나도 들은 얘긴데……”로 시작한 그의 말은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나도 들은 얘긴데, 사람은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거짓말을 할 때가 있대.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죽는 약 같은걸 먹이면 자기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거야. 그게 왜 그런가 하니, 아주 오래 전에, 사람들이 말에 깃든 주술적인 힘을 믿던 시절에, 그리고 실제로 그런 힘이 있었을 때는,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인간들이 생존에 유리했다더라. 왜냐하면 거짓이라는 것은 실제로 있지 않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데, 당시에 존재했던 말(言)의 어떤 특별한 힘 때문에, 거짓말이 실제로 이루어지곤 했다고 하더군. 거짓말은 곧 소망의 실현을 만들었던 거야.
애초에 인간의 언어가 처음 생겨나던 당시에는,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인간과, 할 줄 모르는 인간 두 종류의 인간이 있었는데,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내일은 비가 온대” 라던지, “저쪽으로 가면 사냥감이 많더라” 라던지, 그런 실제로 있지도 않은 일을 말하는 사람들의 말이 자꾸만 실현되니까, 점점 더 생존에 유리했던가봐. 그래서 결국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자연히 도태되어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지 뭐야. 한편 거짓말을 ‘생각 해 낼 수’ 있는 인간들은 그렇지 못한 인간들보다 지능이 더 높았다고 볼 여지도 있겠지. 거짓말은 어떻게 보면 상상력과 논리, 두 가지 측면이 모두 필요한 것이니까 말야?
하지만 인구가 늘고, 따라서 인간의 말도 늘고, 말이 흔해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말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게 됨에 따라, 말이 가진 힘이 사라져 버리자, 거짓말을 잘 하는 습성은 이제 사회의 대표적인 부덕(不德)으로 자리 잡게 되었어. 실현되지 않는 거짓말은 결국 아무 쓸모없는 거짓말일 뿐이니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실현되지 않는 거짓말을 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는 인간들, 흔히 사기꾼이라고 하지? 그런 놈들도 여전히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이 거짓말 유전자는 인간에게 절대 사라지지 않을 만큼 뿌리 깊은 생명력을 얻게 됐다고 해.
정말 신기한 것은, 말이 아무런 주술적 힘을 갖고 있지 않은 현재에도 아직 소수의 인간은 아직도 말의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말의 결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면 즉시 알아챌 수 있다는 거야. 그 능력을 자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아무튼 주변에 거짓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 한 명 씩 있지 않아?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들으면 어떤 불쾌감을 느끼는 거지.”
여기까지 말을 마친 친구는 건배를 제의하더니 언제 떠들었냐는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마 다들 술에 취해 있어서였기도 하겠지만, 모두 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른다. 술자리에 내려앉은 순간적인 침묵의 장막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이 아닌가 했지만, 그는 대체로 침묵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인데, 그럴리야 있으랴. 아마 그저 갑자기 이야기가, 이것 참 다른 표현을 찾기가 어려운데, 흔히 쓰는 말로 이야기가 ‘꼴렸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처럼 과묵한 사람도 가끔씩 이렇게 떠들어대고 싶은 욕구가 숨어있다는 것은 참 인류의 미스테리다.
...그런데, 만약 그 친구 말이 거짓말이었다면? 다음날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이처럼 훌륭한 구라를 생각해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약간의 질투심과 함께, 정교한 거짓말을 하기 위해 그가 침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온한 상상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군침을 흘리며, 가짜 말을 지어내고 술자리의 적절한 침묵의 시기를 노려 호시탐탐 내뱉을 기회를 노리는 그의 내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 어 이거 내가 왜 이렇게 삐딱하게 생각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그의 말에서 한 가지 진실 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렇다면 그의 말은 참인가? 혹은 참이 섞인 거짓인가? 아니면 부분은 참이고 부분은 거짓인가? 하는 생각들로 쓸데없이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다.
알게 뭐람.
이제 밥에 뜸이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