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豎儒!夫天下同苦秦久矣,故諸侯相率而攻秦,何謂助秦攻諸侯乎?
"이 멍청한 유자(역이기) 놈아!" ─ 역생 육가 열전
2.
齊虜!以口舌得官,今乃妄言沮吾軍!
"제나라의 포로 놈(유경)아! 제 놈이 세 치 혓바닥으로 벼슬을 얻더니 오늘은 망언으로 우리 군사들의 진군을 막는구나!" ─ 유경 숙손통 열전
3.
高祖箕踞詈,甚慢易之
고조는 오만하게 다리를 상 위에 내뻗고 앉아서, 거만하게 (장오를) 꾸짖었다. ─ 장이진여열전
4.
豎儒,幾敗而公事!
"멍청한 유생놈(역이기) 때문에 이 어르신이 공사를 망칠 뻔했구나!" ─ 유후세가
5.
漢王數項羽曰
(항우의 도전을 거절한) 한왕이 그의 죄를 나열하며 비난했다. ─ 고조 본기
6.
虜中吾指
"저 도적 놈(항우)이 내 발가락을 맞췄구나!" ─ 고조본기
7.
楚方急圍漢王於滎陽,韓信使者至,發書,漢王大怒,罵曰:「吾困於此,旦暮望若來佐我,乃欲自立為王!
초나라는 형양을 포위하고 있어 한왕은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신의 편지를 본 한왕은 대노하여 욕을 해댔다.
"나는 지금 초나라에 포위되어 아침저녁으로 구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놈은 왕이 되려고 한다는 것인가?" ─ 회음후 열전
8.
漢王亦悟,因複罵曰:「大丈夫定諸侯,即為真王耳,何以假為!
(장량등의 조언으로 ) 깨달은 한왕이 욕하며 말했다. "대장부가 제후가 되었으면 진짜 왕이 되어야지, 임시 왕이 뭐라는 이야기인가?"
9.
"吾惟豎子固不足遣,而公自行耳。"
"나도 그런 조무래기(유방의 아들)가 (경포 토벌에)나서기엔 적절치 않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이 어르신께서 나서겠다." ─ 유후 세가
10.
上大怒曰:「相國多受賈人財物,乃為請吾苑!
황제께서는 대노하여 소리쳤다. "나는 네가(소하) 뇌물을 받아 먹었다는걸 알겠다!"
11.
罵曰:「若與彭越反邪?吾禁人勿收,若獨祠而哭之,與越反明矣。趣亨之。」方提趣湯,布顧曰:「原一言而死。」上曰:「何言?」
(황제께서는) 욕을 퍼부었다. "네놈도 팽월과 같이 모반한 놈이냐? 내 말을 무시했으니 너는 모반을 획책했음이 분명하다. 삶아 죽여야 겠다."
관리들이 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에 던지려고 하는 순간에 난포가 황제를 향해 말했다.
"한마디만 하고 죽겠습니다!"
황제가 물었다.
"뭘 말이냐?" ─ 계포난포열전
12.
"乃公居馬上而得之,安事《詩》、《書》!"
"이 어르신께서는 말 위에서 천하를 얻으셨다. 시서 따위가 뭐란 말이냐?"
─ 역생 육가 열전
(乃公이 '네 어르신' 이라는 정도의 어감이고 유방은 이를 자신의 호칭으로 사용하니, 상대는 자연스럽게 '조무래기' '아들' 정도가 됩니다.)
"멍청한 유생놈" 이나 "제나라의 포로놈" 같은 직접적인 발언 외에도, 똑같이 '유방이 말했다' 는 것도 罵曰라고 하면 '욕 하며 말했다' 가 됩니다.
심지어 이런 부분은 그냥 대놓고 신하들도 말하는 부분이라 유방도 딱히 자신의 태도에 대한 지적에 반발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소하: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하며) "대왕은 평소에 오만무례하십니다. 오늘 대장군을 임명한다고 하시면서 대장 될 사람에 대한 태도가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하십니다."
─ 소상국세가
왕릉 : (유방이 자기와 항우를 평가해보라고 묻자)"폐하께서는 오만무례하여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십니다."
─ 고조본기
고조는 두 발을 내벌리고 앉아 꾸짖는 등 장오를 몹시 가볍게 대했다. 조의 재상인 관고(貫高)와 조오(趙午) 등은 나이가 예순이 넘었지만 오래전부터 장이의 객으로서 평소에 기개가 있었다.
그들이 이에 노하여 “우리의 왕은 나약한 왕이로구나!”라고 말하고는 왕을 설득해 말하기를 “무릇 천하의 호걸들이 함께 봉기하는 상황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왕이 됩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고조를 몹시 공손하게 섬기고 계신데도 고조는 무례하니, 대왕을 위해 그를 죽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장오 열전
심지어 유방이 너무 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유방 편을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豹謝曰:「人生一世間,如白駒過隙耳。今漢王慢而侮人,罵詈諸侯群臣如罵奴耳,非有上下禮節也,吾不忍複見也。」
위표가 말했다. "사람의 한 생이란 마치 흰 망아지가 작은 문틈 사이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것처럼 짦은 시간인데, 한왕은 사람을 오만하고 무례하게 대하며 모욕을 주기를 좋아해 제후나 군신들에게 욕하기를 마치 제 종에게 하는 듯 합니다. 예절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인데, 저는 그런 사람은 다시 보기도 싫습니다."
─ 위표 열전
초한쟁패기는 진나라에 의해서 문헌에 제대로 기록도 안되던 태초의 제후국 시절부터 전국시대로 변모하면서 쭉 이어진 6국 질서가 한번 무너지는 와중에 다시 한번 천하 대란이 일어나며 기존의 신분 질서들이 파탄나면서 몰락한 옛 지배층과 벼락출세한 사람들이 대략 비슷한 위치와 눈높이에서 드잡이를 하는 독특한 시대였습니다.
유방 패거리는 패현 출신의 무뢰배들, 최대한 잘 쳐봐야 지역의 유지 중 하나 정도에 불과했을텐데, 반면 위표는 멸망한 옛 위나라의 공자 출신으로 수백년 이어진 귀족 사회의 중심에서 자라났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입장에서는 유방과 그 패거리는 다른걸 떠나서 옆에서 말하고 하는 행동만 봐도 고역이 심했을듯 싶고....
재밌는건 군신간의 사이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같은 제후를 상대할 때조차도 위나라 왕족 출신 위표가 "오만하고 무례하고 모욕적이다!" 라고 혀를 내두르던 유방의 태도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일관적인 편이었습니다.
高祖不修文學 而性明達 能聽 自監門戍卒見之如舊
애초에, 고제는 문학(유학)을 읽히지 아니하였지만, 그 성정은 밝고 통달하여 도모하는 것을 할 수 있었고 능히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았다.
(그가) 감문(문지기)에서부터 일개 수졸을 볼 때마다 그 대하는 태도는, 흡사 옛날의 친구를 만나 대하듯 하는 것이었다.
- 자치통감 12권 中
자기의 세력에 여기저기서 몰려든 쟁쟁한 명망가들, 세력가들, 유력자들 한테도 자기 집 종이나 되는 양 무례하게 대했다던 유방은,
당시 유방 입장에선 진짜로 아무것도 아닌 일개 문지기, 병졸을 볼때마다 대하는 태도가 마치 자기 옛날 친구나 되는 양 스스럼 없이 대했다고 합니다. 고조본기에는 없지만 자치통감에 있어서 별로 유명한 구절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자기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죄다 평등한 눈높이(?)에서 깔아본다고 할 수 있고, 중국 사극이나 무협지 같은 표현으로 소위 '사해의 영웅을 초개같이 본다.' 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만약 유방이 원래가 밑천 두둑한 금수저 중의 금수저 출신이었다면야 그냥 금수저 특유의 성장배경 탓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로부터 수백, 수천년간 기존질서가 계속 이어지던 상황에서, 그것도 기존질서에서 기준에서 보면 밑바닥 출신에 불과하던 사람이 시대배경 타고 계속 올라가면서도 무슨 밑바닥 특유의 콤플렉스 그럴것도 없이,
아직 패현의 사고뭉치로 패거리 이끌고 외상술 퍼먹고 아무데서나 퍼자고 땡전 한푼 없으면서도 행사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안색 하나 바꾸지도 않고 차지하고 앉아있을 때나, 패공이니, 한왕이니, 황제라는 소리 들으면서 온갖 유력자들 밑에 두고 있을때나 변함없이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게, 지금보다도 훨씬 신분질서가 공고하고 사람 사이의 계급이 공고하던 그 시대 주위 사람들 입장에선 정말로 기이하게 보이면서도 이해가 잘 안되며 소위 "그릇이 크다." 라는 인식을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고조는 정장으로 현을 위해 여산(酈山)으로 죄수들을 호송한 적이 있는데 도중에 도망간 자들이 많았다. 스스로 헤아려 보니 도착할 때 즈음이면 다 도망가고 없을 것 같았다. 풍읍 서쪽 늪에 이르자 가던 길을 멈추고 술을 마셨다. 밤이 되자 호송해가던 죄수들을 풀어주고는 “당신들 모두 갈길 가라. 나도 도망칠 것이다”라고 했다. 죄수들 중 장사 10여 명이 따르길 원했다. 고조는 술을 더 마신 다음 밤중에 늪지의 좁은 길을 지나면서 한 사람을 앞장 세워 가게 했다.
─ 고조본기
술과 포를 갖추어 놓다 酒脯之應
高祖為泗水亭長,送徒驪山,將與故人訣去。徒卒贈高祖酒二壺,鹿肝、牛肝各一。高祖與樂從者飲酒食而去。後即帝位,朝晡尚食,常具此二炙,並酒二壺。
고조 유방이 사수의 정장이 되어 무리들을 여산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고조는 도중에 자신과 면식이 있었던 일부 무리들을 풀어주게 되었다. 이에 무리들은 (감사 표시로)술 두 병, 사슴 뱃살, 소간 각 하나씩을 고조에게 선물하였다.
고조는 그래도 떠나지 않고 자신을 따르기를 원하는 자들을 함께 (앞서 받은) 술과 음식을 먹은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훗날 고조는 황제로 즉위하였는데, 아침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상식관은 언제나 이 두 가지 구운 고기, 술 두 병씩을 함께 마련하였다.
─ 서경잡기
진나라의 아방궁 건설에 인부를 데려가던 유방이, 도중에 사람들이 계속 도망치자, 이대로면 목이 달아날 와중에 그냥 자리 깔고 앉아 같이 얼큰하게 술이나 시원하게 마시고 "다들 도망가려면 가라. 나도 도망갈 테니." 한 일화는 아주 유명한데,
당대의 여러 잡사를 기록한 서경잡기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후일담으로 거기서 신나게 뜯어먹었던 술과 고기를 유방은 황제가 되고도 늘 아침 저녁으로 식단에 넣어두고 뜯어먹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 여러모로 일관성 하나는 인상적이라고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