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는 어제 먹고 남은 닭강정. 날씨는 맑음. 바람은 매우 거셈. 힘껏 점프했다가는 공중제비를 돌며 한라산 중턱까지 날아갈 것 같은 바람이었다. 제주도에는 바람이 많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도로 출발하기 전에 성산항에 전화를 넣어 보았다. 금일 정상운행이라는 답변을 받고 성산항으로 향했다. 우도는 렌터카 출입 금지였지만 서울에서 개고생하며 차를 끌고 온 내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아 보이는 배에 차를 싣고 우도로 들어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센 바람과 일렁이는 파도 탓에 배가 꽤나 흔들렸지만 멀미 기운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목적지였다.
우도에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두 군데 있다. 선착장을 나오면 차량을 빌려주는 곳이 가득했다. 작은 경차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2인승 삼륜차를 선택했다. 렌터카 입도가 금지된 후로 전기 삼륜차는 우도의 명물이 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커플들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쌍쌍이 삼륜차에 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눈꼴이 시고 배알이 뒤틀렸다. 젠장. 니들은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있어서 좋겠구나. 나는 애인도 없고 연인도 없고 단지 아내밖에 없는데.
우도는 작은 섬이었다. 한 바퀴 도는 데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늦은 점심식사를 곁들여 느지막이 다녔는데도 네 시간이 미처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작을망정 우도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흰색과 옥색과 검푸른 빛이 뒤섞인 바다는 무척이나 이국적이었고 기묘한 모습으로 우뚝 솟은 절벽은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제주도에서 또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지리적 문제 때문인지, 사람들의 손길이 지나치게 닿은 관광지 느낌이 비교적 적어서 좋았다. 다만 우도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땅콩 아이스크림은 단언컨대 그저 그랬다. 굳이 두 번 먹고 싶지는 않은 맛이었다.
점심은 섬소나이라는 식당에서 먹었다. 메뉴가 다섯 종류인데 그중 셋은 (비싼) 짬뽕이고 나머지 둘은 피자라는, 꽤나 괴악한 조합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해물을 잔뜩 넣은 짬뽕 국물은 의외로 맛이 좋았고 피자는 아이가 잘 먹었으니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 최적화되어 있다고나 할까.
밥을 먹은 후 때마침 가게를 찾아온 까만 색 동네 개를 쓰다듬으며 아이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는 배 안에서 아이는 내게 물었다. 우리 우도에 또 올 수 있을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이제는 엄마 아빠와 다니기 싫다고 투덜거릴 만한 나이가 되기 전이라면 말이지.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일부러 삼륜차가 많은 해안도로를 피해 내륙의 골목길을 택했다. 해안도로에 비하면 한적하다 못해 한산하기까지 한 길을 따라가며 오래된 시골집 담장 옆을 지나치다 문득 우도에 뿌리박고 사는 주민들을 생각했다. 매일 수천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섬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관광객을 상대로 한 가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섬의 경제가 관광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된 게 확연했지만, 그럼에도 우도에는 여전히 작은 밭을 가꾸고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져 먹고 사는 평범한 주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과거의 우도와 지금의 우도는 과연 어떠할까?
단지 뜨내기일 뿐인 나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다시 성산항으로 돌아온 우리는 섭지코지로 향했다. 섭지코지라는 명칭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는 입구 근처의 판때기에 적혀 있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차장은 붐볐고 사람들은 많았으며 걸어야 하는 거리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러나 걸어가면서 보는 해변의 풍광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섭지코지를 한 바퀴를 돌아보는 데는 대략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거센 바람 덕택에 덥지는 않았고, 사람은 많았지만 평일 오후였던 탓에 치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름 휴가철에 이곳을 찾아왔더라면 분명히 크게 후회했을 거라는 예감은 들었다. 이곳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이 적을 때 와야 더 좋을 것 같다는 뜻이다. 하기야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그렇겠지만.
우도에 이어 섭지코지까지 돌아보자 오늘 하루도 알뜰하게 흘러갔다. 식당에 들려 밥을 먹으며 오늘은 단 한 번도 내 손으로 밥을 차리지 않았다는 사소한 기쁨을 마음껏 만끽했다. 더 좋은 건 식탁 위에 새로 산 빵이 있다는 사실, 즉 내일 아침에도 나는 스스로 밥을 차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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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해안가 식당에서 자연산 멍게, 해삼, 문어 등등을 먹었었죠. 허름한 가게 외관과는 달리 어마어마하게 비싼 가격이었어요. 제주도 중문시장에서 회를 배 터지게 먹었던 다음날보다 여기가 더 비쌌습니다. 주문할 때마다 아주머니가 해안가에서 직접 줏어오길래 그러려니 했습니다. 자연산+여행뽕에 취했던 상태이도 했고.
나중에 나름 제주도 잘 아는 지인에게 들었는데, 그거 다 시장에서 (중국산) 사온 다음 그물망에 넣어서 해변에 던져놨다가 주문 들어오면 하나씩 가져오는 거라고 하던데, 진위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아닐거야... 아닐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