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째 지지인 뱀 사(巳)는 이미 다루었으니, 이제는 일곱째 지지인 낮 오(午)의 차례다. 午의 자원과 파생된 한자들을 살펴보자.

왼쪽부터 갑골문 1, 2, 금문, 춘추 금문, 제 문자, 연 문자, 초 문자,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1, 2,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거스르는 것[啎]이다. 5월은 음기가 양기를 거슬러 땅을 뚫고 나오는 때다. 그러므로 화살[矢]과 뜻이 같다.”라고 풀이해, 화살 시(矢)와 연관시켰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을 보면 화살과는 거리가 있는 형태다. 대부분은 절굿공이의 모양을 본뜬 한자로 공이 저(杵)의 초기 형태로 보는데, 다만 궈 모러(郭末若)는 매듭이라 풀이했고 절굿공이가 아니라고 했다. 절굿공이란 해석은 찧을 용(舂), 나라이름 진(秦)과도 연관된다.
지금은 午의 맨 위 가로획이 세로획을 막고 있지만 대부분의 옛 형태에서는 세로획이 뚫고 올라오고 있고, 예서에서도 이 형태가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전한 예서 2에서 뚫고 올라온 세로획이 분리되어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바뀌었다. 지금도 소 우(牛)와 비슷한 형태이지만, 옛 형태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지 한자와는 달리 '낮'이라는 일상 용어가 뜻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것도 지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십이시에서는 오전 11시-오후 1시, 이십사시에서는 오전 11:30-오후 12:30을 가리키는데, 이 때문에 오시가 낮의 기준이 되고, 나아가 낮이라는 뜻이 된 것이다. 마치 첫째 지지인 자시가 밤의 기준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달로는 음력 5월을 가리키고, 방위로는 정남을 중심으로 한 15° 이내의 범위다.
스미스는 거스를 오(忤, 啎)와 이 한자를 연관시켜, 원래는 '대면하다, 만나다'라는 뜻이었고 해와 달이 서로 거스르는 위상인 보름달을 가리키는 데에서 일곱째 지지라는 뜻이 나왔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쉬슬러는 거스르다는 뜻은 그저 啎의 약자일 뿐이라 일곱째 지지라는 뜻과는 별개로 보았다. 한편 프랑스의 언어학자 미셸 페를뤼스(Michel Ferlus)는 베트남어에서 동물 말을 뜻하는 ngựa과 연관시켰다. 그렇다면 일곱째 지지가 말을 가리키는 것은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낮 오(午, 오전(午前), 단오(端午) 등. 어문회 준7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午+人(사람 인)=仵(짝 오): 오작(仵作: 검시관) 등. 인명용 한자
午+止(그칠 지)+卩(병부 절)=卸(풀 사): 급수 외 한자
午+心(마음 심)=忤(거스를 오): 오역(忤逆: 반역), 객오(客忤: 어린아이가 놀라 복통을 일으키는 병) 등. 어문회 특급
午+日(날 일)=旿(밝을 오): 어문회 준특급
午+木(나무 목)=杵(공이 저): 저구(杵臼: 절굿공이와 절구통), 침저(砧杵: 다듬잇방망이) 등. 어문회 준특급
午+凵(밥그릇 거)=缶(장군 부): 부(缶: 질장구), 와부(瓦缶: 흙으로 빚어 만든 장군) 등. 어문회 준특급
午+言(말씀 언)=許(허락할 허): 허용(許容), 면허(免許) 등. 어문회 5급
午+辵(쉬엄쉬엄갈 착)=迕(만날/거스를 오): 착오(錯迕: 뒤섞임) 등. 인명용 한자
卸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卸+彳(자축거릴 척)=御(거느릴 어): 어사(御史), 제어(制御/制馭) 등. 어문회 준3급
缶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缶+勹(쌀 포)=匋(질그릇 도|가마 요): 급수 외 한자
缶+宀(집 면)+玉(구슬 옥)+貝(조개 패)=寶(보배 보): 보물(寶物), 국보(國寶) 등. 어문회 준4급
許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許+水(물 수)=滸(물가 호): 수호전(水滸傳), 수호지(水滸誌: 수호전) 등. 어문회 준특급
御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御+示(보일 시)=禦(막을 어): 어한(禦寒), 방어(防禦) 등. 어문회 1급
匋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匋+水(물 수)=淘(쌀일 도): 도태(淘汰/陶汰), 자연도태(自然淘汰) 등. 어문회 1급
匋+示(보일 시)=祹(복 도): 인명용 한자
匋+糸(가는실 멱)=綯(노꼴 도): 도사(綯絲: 몇 가닥을 함께 꼰 실), 삭도(索綯: 새끼를 꼼) 등. 어문회 특급
匋+艸(풀 초)=萄(포도 도): 포도(葡萄), 포도주(葡萄酒) 등. 어문회 1급
匋+金(쇠 금)=鋾(무딜 도): 인명용 한자
匋+阜(언덕 부)=陶(질그릇 도): 도자(陶瓷/陶磁), 흑도(黑陶) 등. 어문회 준3급
寶에서 파생된 한자는 다음과 같다.
寶+雨(비 우)=靌(보배 보): 인명용 한자(寶와 동자)

午에서 파생된 한자들.

왼쪽부터 御·缷의 갑골문 1, 2, 금문 1, 2, 춘추 금문, 진(晉) 문자, 초 문자, 소전, 전서, 진(秦) 예서, 전한 예서,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왼쪽부터 馭의 금문, 진(秦) 석고문, 진(晉) 문자 1, 2, 3, 초 문자, 고문,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풀 사(缷)와 거느릴 어(御)를 다른 글자로 설명했지만 소학당에서는 같은 계통으로 보았다. 여기에 있는 午를 궈 모러처럼 매듭, 채찍으로 보아 말을 부리는 도구로 뜻을 나타낸다고 하기도 하고 절굿공이로 보아 그냥 소리만 나타낸다고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午와 꿇어앉은 사람을 나타내는 병부 절(卩)만 있었는데 나중에 움직임을 나타내는 쉬엄쉬엄갈 착(辵)이 더해져 지금의 자형이 되었다. 지금의 형태는 辵을 이루는 그칠 지(止)가 午와 융합되어 뭉개진 결과다.
한편 말부릴 어(馭)는 지금은 御와 다른 글자로 보지만 《설문해자》에서는 御의 고문으로 보았는데, 원래는 오른쪽이 지금의 또 우(又)보다 복잡한 글자였다. 정설은 이 부분을 채찍을 나타내는 한자로 채찍 편(鞭)의 고자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진(晉) 문자 2와 초 문자를 보면 午와 又가 결합한 한자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원래는 말 마(馬)와 또 우(又)가 뜻을 나타내고 午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였는데 소리 부분이 통째로 탈락하고 회의자의 짜임으로 변형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원래 御와 馭의 뜻은 “말을 부리다”고, 지금은 이 뜻은 대부분 馭가 맡고 있지만 말을 부린다는 뜻의 기어(騎御)에 남아 있다. 이에서 나아가 거느리다, 통제하다 등으로 발전했고, 제어(制御), 어사(御史) 등이 비롯했다. 어사는 본디 고대 중국에서 관리들의 감찰 업무를 맡는 어사대(御史臺)에서 비롯하며, 장관 어사대부(御史大夫), 부관 어사승(御史丞) 아래에 시어사(侍御史)와 어사(御史) 등을 두었다. 한국에서도 고려 말·조선 초에 어사대를 설치했고, 또 조선 시대에 왕명을 받고 몰래 지방을 시찰하며 지방관의 비리를 탄핵하는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유명하다.
사람을 부리는 사람 중에 가장 높은 사람이 임금이니, 御는 임금과 관련된 물건이나 사람 앞에 붙는 접두어가 되었다. 어명(御命), 어의(御醫) 등이 그런 예다. 어용(御用)도 마찬가지로 임금이 쓴다는 뜻인데, 이에서 나아가 본디는 중립적이어야 하는 것이 임금, 정부의 주장만을 대변하는 것으로 전락했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 되었다.
쉬슬러는 이 말을 버마어에서 몰다, 위협하다를 뜻하는 မောင်း (maung:)이나 운전하다를 뜻하는 မောင်း (maung)과 연관지어 중국티베트어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았다.

왼쪽부터 禦의 갑골문, 금문 1, 2,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손오(삼국지의 오나라) 예서. 출처: 小學堂
막을 어(禦)는 《설문해자》에서는 “제사의 이름이다.”라고 풀이하고, 갑골문에서도 어떤 특정한 제사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소리를 나타내는 御가 아직 간략한 형태라서 뜻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가 왼쪽 변에 있지만, 소전은 이미 御가 많이 복잡해진 후라 示를 변에 얹기에는 부담스러워서 발에 있다. 예서에서는 자형이 뭉개져서 진나라 예서에선 彳+卩이 行처럼 뭉개졌고, 전한 예서에서는 가운데 午+止+示 세 글자가 하나로 뭉개졌고, 손오 예서는 좀 더 알아보기 쉽지만 卩이 阝처럼 뭉개져 있다.
본디 제사의 뜻으로 쓰던 이 글자는 나중에 御가 담당하는 뜻 중에 있던 막다, 금지하다의 뜻으로 바뀌었고, 지금도 방어(防禦) 등의 단어로 쓰이고 있다.

왼쪽부터 杵의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출처: 小學堂
공이 저(杵)는 《설문해자》에서는 “절굿공이다. 나무 목(木)이 뜻을 나타내고 午가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고, 주석에서는 午의 본 뜻이 절굿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午가 뜻도 나타낸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午가 본의로 쓰이지 않게 되면서 원 뜻을 나타내기 위해 파생된 글자다.
이 말은 옛날 옷을 펴기 위해 다듬잇돌 위에 옷을 놓고 다듬잇방망이로 두들기던 것에서 나오는 다듬잇방망이를 한자로 부르는 침저(砧杵)나, 절굿공이와 절구를 같이 일컫는 저구(杵臼) 등의 용례가 있는데, 둘 다 현대에는 낱말이 문제가 아니라 물건 자체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옛 중국에서는 이 저구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춘추시대 쇠퇴해 가는 제나라를 안영의 도움으로 다시 일으킨 임금 제경공의 이름이 저구였고, 진(晉)나라의 대부 조씨의 드라마틱한 몰락과 재기를 다룬 설화인 조씨고아 이야기에서 주인의 집이 역적으로 몰려 몰락했을 때 다른 사람의 아기를 주군의 아기로 위장하고 함께 잡혀가 죽은 인물이 공손저구(公孫杵臼)였다. 절구와 절굿공이는 지금에야 대체제에 밀려났지 당시에는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이기에 이름으로 쓰인 것이 아닐까?

왼쪽부터 缶의 갑골문 1, 2, 춘추 금문 1, 2, 연 문자 1, 2, 초 문자 1, 2, 진(秦) 문자, 소전, 전한 예서. 출처: 小學堂

국립민속박물관의 똥장군.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缶는 《설문해자》에서는 액체를 담는 용기인 장군의 모양을 본뜬 상형자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고대 문자에서는 午의 형태가 뚜렷이 보여 후세에는 상형자 외에 午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라는 설도 자리를 잡았다. 《설문해자》에서는 진(秦)나라에서는 이걸 두들겨 악기로도 썼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질장구라 해서 전통 악기 중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초 문자 2는 장군을 흙으로 만드니 흙 토(土)가 들어갈 법한데, 춘추 금문 2에는 쇠 금(金)이 들어가 있다. 금속제 장군도 있었나 보다.
장군이라고 하니 떠오르는 게 똥장군이다. 옛날 똥을 거름으로 쓰고자 나르는 데 쓰인 장군이다. 학창시절 배운 박지원의 《예덕선생전》의 주인공인 엄 행수가 도성의 똥을 논밭에 거름으로 팔고 다닌 똥장수인데, 이런 똥장수들이 지고 다니는 게 바로 저 똥장군이다.
이 缶는 일본에서는 두레박 관(罐)의 신체자로 지정되어 쓰이고 있다.

왼쪽부터 許의 금문 1, 2, 진(晉) 문자, 초 문자, 진(秦) 문자, 소전, 진(秦) 예서, 전한 예서, 후한 예서. 출처: 小學堂
허락할 허(許)는 《설문해자》에서는 “듣는 것이다. 말씀 언(言)이 뜻을 나타내고 午가 소리를 나타낸다.”라고 풀이했다. 듣는 것이 허락의 시작이요, 소통의 근본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풀이 같다. 그래서 許의 본뜻은 응답한다, 용인한다는 것이고, 이에서 가능하다는 뜻이 인신되었다. 허락이라는 말은 본음은 허낙(許諾)이나 활음조 현상으로 음이 허락으로 바뀌었다. 1994년 상하이 박물관에서 구매해 보관하고 있는 전국시대 죽간 모음인 《상박초간·간대왕박한》(相博楚簡·柬大王泊旱)에서도 이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한자는 야호(耶許)에도 쓰인다. 야호가 한자어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許의 또 다른 용도는 성씨로, 중국의 허(許)씨는 주나라 때의 제후국 허(許)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본디 이 나라의 이름은 없을 무(無)를 소리 부분으로 하는 나라이름 허(鄦)로, 鄦와 許의 상고음은 /*hmaʔ/와 /*hŋaʔ/로 서로 다르나 한나라 때에 음운이 바뀌면서 두 한자의 소리가 같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나라는 지금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패권 경쟁에서 동네북으로 얻어맞는 정(鄭)나라의 이웃 나라로 지금의 쉬창시 근방에 있었으나, 정나라의 핍박을 받아 지금의 예현인 섭(葉) 땅으로 이주한 이래 초나라에 종속되었다. 이후로도 정나라의 압박 때문에 여러 차례 이주했다가 마침내 초나라에 병합되었다. 옛 허나라의 공족들이 나라 이름에서 따서 자신의 성씨를 정한 것이 허씨의 시작이다. 한자 연구에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설문해자》를 쓴 사람도 허씨인 허신(許愼)이다.
한편 허나라가 쉬창시를 떠난 이후에도 그 지역은 죽 허(許, 鄦)라고 불리다가, 후한 말 권력을 잃고 떠도는 황제 헌제를 조조가 받들면서 수도를 자기 본거지에 가까운 이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으면서 '위나라의 기초는 허에서 번창할 것이다'라는 글을 짓고 도시 이름을 허창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쉬창(허창)이란 이름이 완성됐다. 정작 곧 낙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허창은 도로 쇠퇴하지만.
한국의 허씨는 중국과 무관한 성씨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이자 가야 수로왕의 왕후 허황옥에게서 유래한다. 수로왕의 열 아들 중 첫째가 김씨를 이어받고, 두 아들은 어머니의 성을 이어받아 허씨가 되었으며 나머지 일곱 아들은 출가해 부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는 성은 다르지만 같은 집안으로 여겨지며, 김해 허씨에게서 갈려나온 인천 이씨도 마찬가지다.

왼쪽부터 匋의 금문, 춘추 금문, 제 문자, 초 문자, 소전. 출처: 小學堂

왼쪽부터 陶의 금문 1, 2, 소전, 전한 예서 1, 2, 후한 예서 1, 2. 출처: 小學堂
지금은 陶가 “질그릇 도”로 쓰이지만, 원래는 언덕 부(阜)가 없는 匋가 질그릇 도였다. 허리를 굽히고 있는 사람을 나타내는 쌀 포(勹)가 뜻을 나타내고 缶가 뜻과 소리를 나타내는 회의 겸 형성자다. 초 문자에서는 사람 모양이 큰 대(大)처럼 바뀌기도 한다. 사람이 질그릇을 만든다는 뜻으로, 도기, 요업을 나타낸다. 陶는 《설문해자》에서는 제음(濟陰)에 있는 언덕 이름으로, 고대 전설의 요임금이 이 곳, 도구(陶丘)에 살았기에 도당씨(陶唐氏)라고도 한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지금은 陶가 匋의 쓰임을 완전히 대체했다.
陶가 원래는 언덕 이름이었다는 것은 성씨 도(陶)씨에 약간 남아 있는데, 이들 중 일부는 도당씨의 후예라 도씨를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도씨는 별로 흔한 편은 아닌데, 그나마도 도읍 도(都)씨가 대부분이고 도(陶)씨는 고작 천 여명에 불과하다. 중국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란 고사성어를 남긴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이 있고. 현대인 중에서는 중국계 호주 수학자 테렌스 타오가 도(陶, 타오)씨다. 한편 일본에도 스에(陶)씨가 있는데, 무로마치 시대의 거대 다이묘 오우치(大內)씨의 신하로 주군 오우치 요시타카를 죽이고 가문을 장악했으나 이웃 영주 모리 모토나리에게 역사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패를 하고 자결한 스에 하루카타(陶晴賢)를 배출했다. 오우치씨의 방계로, 야마구치현 스에촌에서 유래한 성씨다.

萄의 소전. 출처: 小學堂
포도 도(萄)는 포도 포(葡)와 함께 오직 식물 포도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한자로, 다른 용도는 없다. 포도는 전한 무제 때에 흉노의 방해를 뚫고 갖은 고생 끝에 중앙아시아와 한나라 사이의 교류를 연 장건이 대완, 곧 페르가나 지방에서 접하고 선물로 받아 가져온 것이라 한다. 쉬슬러는 포도는 박트리아어에서 술을 뜻하는 *bādāwa를 음역한 것이라 했다. 이 두 한자가 자리잡기 전까지는 포도를 蒲陶, 蒲萄, 葡桃 등으로 쓰기도 했다. 포도도 두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고 각 한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에서는 연면사지만, 외국어를 음차하면서 생겨난 것이라 중국어 내부에서 유래하는 연면사와는 다르다.

왼쪽부터 寶의 갑골문, 상나라 금문, 주나라 금문 1, 2, 3, 4, 초 문자, 고문(寚), 소전, 후한 예서 1(寳), 2, 조위(삼국지의 위나라) 예서. 출처: 小學堂
보배 보(寶)는 갑골문에서는 집 면(宀) 안에 옥을 뜻하는 구슬 옥(玉)과 돈으로 쓰이는 조개 패(貝)가 들어가 집 안에 귀한 물건들이 있다는 데에서 보배를 뜻하는 회의자의 짜임이었다. 여기에 소리를 나타내는 缶가 들어간 게 주나라 금문 3으로 초 문자, 소전을 거쳐 현대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이것저것 많이 들어간 한자다 보니 변형이 많은데, 상나라 금문에서는 貝가 빠졌고, 주나라 금문 1에서는 玉이 빠졌고, 주나라 금문 2는 貝와 玉이 둘 다 빠져 缶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가 되었다. 주나라 금문 4는 缶 대신 午만이 들어가 있는 형태다. 고문은 상나라 금문과 구성은 같지만 배치가 다르다.
일단 소전이 나온 뒤에도 예서에서 자형이 안정되지가 않아서, 후한 예서 1, 2에서 缶가 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예서 1에서는 너 이(尔)이 되었고, 예서 2에서는 이왕 보배를 뜻하는 한자이니 보배 진(珍)이 들어가도록 바뀌었다. 조위 예서는 그나마 소전에 가까운 편이다.
금문은 대부분 예식용 청동기에 새긴 한문이라 그런지, 예식에 쓰이는 보배를 언급하는 일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소학당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寶의 금문은 무려 293개에 달하며, 이체자도 15개나 된다.

寶의 금문 이체자들 중 일부. 윗줄은 해서로 바꾼 것. 출처: 小學堂
寶를 두 손으로 떠받드는 형태의 이체자도 있고, 보물이 많으면 부자라서 그런지 부자 부(富)까지 끼워넣는 복잡한 형태도 있다. 거기에다 조개 패(貝)와 유사한 솥 정(鼎)이 잘못 들어간 듯한 이체자까지 존재한다. 사가르는 寶를 富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寶의 춘추 금문 1, 2, 초 문자 1, 2, 3. 윗줄은 해서로 바꾼 것. 출처: 小學堂
또 다른 계통의 이체자는 소리 부분을 지킬 보(保)로 쓰는 것들이다. 춘추 금문부터 나타나서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에서도 볼 수 있다. 뜻 부분 역시 貝, 玉, 宀을 선택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이체자가 존재한다. 쉬슬러는 寶가 保와 같은 단어일 수도 있다고 보았는데, 보물은 귀하게 아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STDET와 쉬슬러는 모두 寶가 원시중국티베트어에서 값을 뜻하는 *pəw 에서 유래했고, 버마어에서 값을 뜻하는 အဖိုး (a.hpui:)와 동계어로 보았다.
요약
午는 절굿공이의 모습을 본뜬 한자이며, 일곱째 지지로 가차되었고, 이에서 낮이라는 뜻이 유래했다.
午에서 仵(짝 오)·卸(풀 사)·忤(거스를 오)·旿(밝을 오)·杵(공이 저)·缶(장군 부)·許(허락할 허)·迕(만날/거스를 오)가 파생되었고, 卸에서 御(거느릴 어)가, 缶에서 匋(질그릇 도|가마 요)·寶(보배 보)가, 許에서 滸(물가 호)가 파생되었고, 御에서 禦(막을 어)가, 匋에서 淘(쌀일 도)·祹(복 도)·綯(노꼴 도)·萄(포도 도)·鋾(무딜 도)·陶(질그릇 도)가, 寶에서 靌(보배 보)가 파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