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기를 쓰려고 들어왔더니 이미 글이 올라와 있네요. 대세(?)에 동참하고자 글 적어 봐요.
여행가기 전, 함께 가기로 한 동생과 둘이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비행기 뭘 탈까. 저가항공사 쪽에 마음이 쏠렸는데, 마일리지 조회를 해 보니 제주도는 공짜로 다녀올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저가항공사보다 더 쓴 비용은 내가 한 턱 내겠노라 하며 대한항공을 탔어요. 그 선택이 그렇게 중요했을 줄은, 그때는 전혀 모르고 있었죠.
21일, 친한 동생과 함께 비행기를 탔어요. 좀 춥더라고요. 우린 따뜻한 남쪽나라에 갈 거라며 수다를 떨었죠.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벌써 바람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게다가 생각보다 제주도는 컸어요. 사실 생각해보면 ‘시’가 두 개나 있는 섬인데 큰 건 당연한 건데……. 숙소까지 두 시간은 걸릴 것 같아서 자매국수에 들러서 고기국수를 먹었는데, 엄청나더군요. 돼지 국물이 어떻게 이렇게 담백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고기는 야들야들하니 입에 스르륵 넘어가고요. 약간 뻣뻣한 노란 국수 면발에 고기 한 점 집고, 김치랑 같이 먹으면 그만이더군요. 둘이 대접째 들고 마시고 있는데 서빙하던 아주머니가 툭 던지는 한 마디.
“그거 맛있어? 난 여기서 일한지 몇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거 못 먹어.”
…….
엄청 당황했지만, 그래도 맛있었어요. 고기국수.
직원은 안 먹어도(?) 맛있는 고기국수
식후땡으로 감귤 하루방을 하나씩 입에 물고 협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갔어요. 동생이나 저나 종특에 ‘철없음’이 박혀있기 때문에, ‘겨울 바다는 낭만적이잖아. 바다 앞에 있는 근사한 게스트하우스에 가자.’ 같은 생각밖에 하지 않았죠. 바닷바람같은 건 물론 안중에도 없었 어요. 바다 앞에 있는 ‘낭만적인’ 게스트하우스를 향해갈수록 바람이 온몸을 때리기 시작하더군요. 거친 바람을 뚫고 간신히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었어요.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그건 세탁실 문이더군요. 다시 바람을 뚫고 겨우겨우 방에 들어갔을 때는 둘 다 사람보다는 얼음에 가까웠죠.
방은 따뜻하니 기분 좋고, 4인 도미토리도 생각보다는 편안하고. 그대로 잠들었으면 좋겠지만, 그 바람 부는데 술을 먹어야겠다고 기어이 기어나갔어요. 제주 해녀의 집에서 눈총을 받으며 회 한 접시 소주 한 병을 둘이서 접시 째로 들이마시고는, 숙소 근처의 술집에 들어갔어요. 인테리어도 그렇고, 안락한 동굴같은 곳이었어요. 오밀조밀하게 귀여운 물건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퍽 많이 앉아 있었어요. 바에 앉기는 몸이 힘들고, 어디 편한 자리 없을까 살펴보니 신발을 벗고 올라가서 둘이서 테이블 하나 사이에 두고 다리를 쭉 펴고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더군요. 냉큼 올라갔어요.
마른 안주 하나 시키고 메뉴판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주인장은 어려운 칵테일 못 만드니 시키지 마세요.’ 왠지 말을 잘 들어야할 것 같으니 순순히 진토닉을 시켰어요. “독하면 조절해드릴게요.” 그러고 두고 가셨는데, 제가 먹은 진토닉 중에 제일 양주 함량이 높은 것 같더군요. 가격도 저렴했는데! 게다가 그 다음으로 나온 마른 안주는 푸짐하고 훌륭했고, 기본 안주로 나온 과자 그릇에는 프리첼과 꿀과자와 나초가 산처럼 쌓여 있었어요. 천국을 찾았구나 싶어서 잭콕을 한잔 더 시켰는데, 이번엔 아예 술잔에 술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고는, 따지도 않은 콜라 한 캔을 두시면서 한 마디.
“원하시는 대로 농도 조절해서 드세요.”
역시 천국이로구나!
프리첼을 깔고앉은 오징어 오징오징
22일, 게스트하우스의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어요. 동생은 아직 자고 있었죠. 계란, 토스트, 시리얼, 그리고 커피! 아무튼 눈에 보이는 걸 쓸어담아서 앉아서 우적우적 먹었어요. 아침시간에 잘 어울리는 이토 준지의 토미에도 한 권 뽑아서 읽었죠. 다 읽었는데도 얘가 올 기미가 없길래 위층으로 올라갔어요. 흔들어 깨우고는, 같이 오설록으로 갔죠.
사실 거긴 뭐, 볼 건 없었어요. 차밭에서 윤아가 나올 일도 없고. 그렇지만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쉐이크를 먹으며 빈둥거리는 건 꽤 즐거웠어요.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사진이나 찍을까 했는데 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어요. 아주머니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전혀 웃을 수 없었죠. “웃어!” “아가씨들, 웃어!” “좀 웃어!” 라고 열심히 격려해 주셨지만 나중에 사진을 보니 둘 다 그냥 벌벌 떨면서 억지로 히죽거리고 있었어요.
경치가 좋았던 카페. 통유리 너머로 차밭이 보였다.
고소하고 맛있었던 땅콩 아이스크림
제주는 버스가 참 안 오더군요. 한참 서서 기다리는데 눈이 또 오기 시작했어요. “바람 엄청 부네. 섬이라서 그런가?” “그런 거 같아. 사방이 바다잖아.” 곧 32년만의 한파가 찾아올 거라는 건 둘 다 생각조차 안 하고 즐거워하고 있었죠. 버스 아저씨가 운전을 하다가 차창밖으로 주먹질을 하며, “야 이 xx야! 차선 안 보여? 어? 차선은 폼이야? 너 한 번만 더 그러면 박아버린다!” 라고 할 때도 우린 아주 즐거웠어요. 아저씨의 욕은 거의 갱스터 랩 수준이었거든요.
이중섭거리는 사실 뭐, 볼 게 없었어요. 놀란 건, 이중섭거리 로고가 박혀 있는 단란주점이 왜 그리 많은지.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나 몇 번 지도를 봤어요. 그런데 여기 맞더군요. 평일이라 노점도 많이 없고, 소품 가게들은 중국과 말레이시아에서 건너온 물건들로 가득했어요. 이중섭 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작품들은 적었고, 2층으로 가니 젊은 작가 전시전을 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눈에 딱 띠는 작가가 있었어요.
박주우작가였나요. ‘고립’이라는 시리즈를 여러 점 그려뒀더군요. 배경은 아주 아름다운데, 한결 같이 초점은 잔뜩 녹이 슬고 낡아버린, 버려진 물건들에 가 있더군요. 아름다운 하늘 아래 버려진 삶들. 동생이 그러더군요. “우울증 환자인가.” “그런 거 같아.” “버려진 자전거를 보고 떠오른 생각이라던데.” “꼭 죽기 직전의 사람이 그린 것 같아. 청년 전시전이니 젊을 텐데.” “그런데 근사하다.” “응, 저 그림밖에 안 보여.”
그림 속 버려진 차들 가운데 딱 차 한 대의 헤드라이트만 들어와 있었어요. 그러고는 곧 그것마저 꺼져버렸죠. 이 작가는 뭐가 그렇게 외롭고 고독했을지 궁금했어요. 철저하게 버려지고, 사람들 가운데서 따돌려지고, 그런데 버려진 것들을 제외한 세상은 터무니없이 아름다웠어요. 작가의 이름을 열심히 외우고는, 올레 시장에 들러 밥도 먹고 기념품도 한아름 사서 택시에 탔어요.
차창 밖을 내다 보는데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어요. 대체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불빛이 없었어요. 제주도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더군요. 캄캄한 어둠 속을 비추는 건 자동차 전조등 뿐이었어요. 서울에서는 밤이 오더라도 주변이 밝았어요. 가로등이든, 가게의 불빛이든, 뭐든지요. 그런데 여기는 사방이 어두웠어요. 택시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엄청 조용하다.” “응.” 우리도 왠지 조용히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우연히 들어간 가게에서 먹은, 두툼하고 맛있었던 흑돼지 돈가스
23일. 조식을 먹기 위해 일찍 일어났어요. 고기국수도 한 접시 먹고 싶었죠. 콜택시를 부르려고 했는데 거는 곳마다 차가 없었어요. 창문 밖을 보니 눈보라가 치고 있었어요. 어쩔 수 없이 눈을 헤치고 버스 정류장에 걸어갔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잔뜩 있더군요. 벌벌 떨며 한참동안 기다려서 버스에 탔어요. 공항까지 무사히 갔으니 이게 끝일 것 같았어요.
왠걸, 비행기가 지연되기 시작했어요. 세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아시아나가 결항되었다는 방송이 나왔어요. 오늘 못 갈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도 결항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대한항공 라운지 쪽으로 걸어가는데,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대한항공 승무원 아저씨가 보였어요. 대기는 받지 않을 거다. 순차적으로 연락 드릴테니 기다려 달라, 그런 이야기였어요.
“언니, 이 사람들 전부 숙소를 잡을 것 같지? 우리 얼른 나가야 해.” 동생 덕분에 공항 근처의 숙소를 재빠르게 잡을 수 있었어요. 눈보라 때문에 앞은 안 보이고. 버스를 탄 것 마저 감지덕지였으니 택시는 꿈도 못 꿨죠. 숙소로 들어가 마지막 방 열쇠를 받아들고는, 덜덜 떨면서 숙소로 들어갔어요. 저녁 아홉시 이후에 연락을 주겠다는 항공사의 문자메시지를 받고는,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당연히 어디에서도 배달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맘스터치는 문을 열었길래 거기서 치킨을 사서 왔죠. 맘스터치에서 햄버거를 샀어야 하는데…….
막 눈이 쌓이기 시작한 제주도
24일. 동생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병원에 데려다 주고 싶었지만, 사방이 눈보라라 어디도 갈 수 없었어요. 감기약을 먹고 난방을 최대로 해 놓고 항공사의 연락이 오길 기다렸어요. 친구들에게 카톡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너 노숙해?” 텔레비전에서 방송을 하는 듯 했어요. 아니라고 한참 이야기를 해 주다보니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또다시 결항. 내려가서 숙박 연장을 하고는, 밥을 사러 나갔어요.
도로가 얼어붙어 있었어요. 어디가 도로고 어디가 인도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어요. 한 걸음 내딛는데 바람 때문에 앞으로 넘어갈 것 같았어요. 옷을 여미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었어요. 가게들은 여전히 모두 문을 닫았어요. 어제 열었던 맘스터치도 문을 닫았더군요. 한참 더 걸어가니 문을 연 기사식당이 보였지만, 아픈 동생을 여기까지 데리고 나올 수는 없었어요. 편의점에 가서 남은 삼각김밥을 집었어요. 아르바이트생이 말했어요. “그거 폐기니까 그냥 드릴게요.” 고맙다고 고개를 푹 숙이고 거기서 나왔어요.
그날 저녁, 다시 다음날 8시까지 공항이 폐쇄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왔어요. 이쯤되니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최악의 경우라면, 금요일에도 못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요. 다시 내려가서 하루 더 연장했어요. 27일부터는 방이 없다는 말에,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복잡했지요.
다행히 열이 떨어진 동생에게 뭔가 좋은 걸 먹이고 싶었지만, 그날 저녁 문을 연 가게는 동네 피자 가게 하나뿐이었어요. 얇은 피자를 사서 둘이 나눠먹다가, 그래도 기념할만한 여행 아니겠냐며 둘이 낄낄거렸어요. 이런 때 여행을 같이 온 사람이 그 동생이라는 게 정말 다행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서로 농담이나 하며 웃을 수 있는 좋은 동생이니까요. 숙소를 잡은 것도, 사실 동생 덕이니까요.
25일. 오늘은 올레TV에서 무슨 애니메이션을 볼까하고 둘이 궁리하고 있었어요. 동생은 다행히 감기가 다 떨어져서, 함께 걸어나가서 샌드위치를 먹었어요. 오랜만에 커피를 마시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데, 문자가 왔어요. 6시 대한항공 항공편 탑승이 가능하다는, 반가운 메시지였죠. 이미 체크아웃 시간은 지나서, 환불을 해줄까 걱정했는데. 아주머니가 웃으며 잘 됐다고 말해주었어요. 서둘러 짐을 챙겨서 공항으로 갔어요.
아이고.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한숨이 나왔어요. 어디가 줄이고 어디가 통로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어요. 사방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여기서 노숙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사람들은 카트로 성처럼 주위를 둘러놓고는, 삼다수를 마시며 아이들을 달래고 있었어요. 아이들 몇은 나노블럭을 만들고 있었고요. 탑승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묻기 시작했어요. “문자가 언제 왔어요?” “문자가 와야 탈 수 있는 거예요?” “몇일 비행기 예약이었어요?”
23일 1시에 떠날 예정이었던 우리는 항공권을 꽤 빨리 받은 편이었어요. 우리만 먼저 가는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드는 것도 잠시, 드디어 돌아간다는 생각에 기쁘더군요. 비행기를 탈 때까지 의자에서 졸다가, 갈 때보다 훨씬 큰 비행기에 탔어요. 특송으로 내려보낸 747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지요.
비행기 차창 너머는 온통 시꺼맸어요. 불안정한 기류 때문이니 안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오자마자, 비행기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떨어지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다 동생과 눈이 마주쳤어요. 서로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라고요. 흔들림이 멎은 뒤에야 다시 밖을 바라보았어요. 불빛이 드문드문 보여요. 터무니없는 말이긴 하지만 별자리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늘에 총총히 떨어진 별들처럼요.
서울로 갈수록 점점 더 밝아졌어요.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는, 불빛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어요. 서귀포에서 숙소로 돌아오던 깜깜한 밤이 떠올랐어요. 어쩌다 가로등이 하나 있으면 오랫동안 그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죠.
“해방이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며 걸어갔어요. 동생과 저는 사진을 한장 찍었어요. 여행 첫날과 비교해 보는데, 둘다 얼굴도 잔뜩 부은데다 엄청 지쳐보였죠. 너랑 여행와서 다행이야, 그렇게 말했어요. 나도, 동생이 대답했죠. 그러고는 드디어, 드디어 집에 도착했는데, 고양님이 아주 삐져있었어요. 좀 봐 줘. 그래도 얼굴도 안 쳐다봐요. 간식을 줘도 택도 없대요. 한참 어르고 달랬더니 그제야 꼬리를 척 다리에 붙여요. 그다음부터는 밀착마크. 당분간 고양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는 어디 못 갈 것 같네요. 야, 나도 오고 싶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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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엄마에게 고양님이 왜 그렇게 노여워하셨는지 들었어요. 계속 기다리면서 현관앞에서 자다가, 30분 간격으로 방문 앞에서 야옹. 그래서 열어주면 이 닝겐놈은 당연히 이불속에 있을 거다! 하고 이불속 수색. 없으면 옷장 앞에서 야옹. 옷장에도 없으면 고개를 추욱 떨어뜨리고 다시 문 앞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대기.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주 노여워하셨답니다. 내가 있을 때는 쳐다도 안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