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발매 / EP 'Crazy' / 작사 서재우 현아 빅싼초 손영진, 작곡 서재우 빅싼초 손영진)
- 빼어난 명검이 될 수 있었던 아쉬운 칼 한 자루
: 인트로부터 제대로 치고 나온다. 현아 솔로 곡 '빨개요'와 유사한 방식의 인트로지만 훨씬 더 강력한 비트와 사운드로 귀를 압박하고 현아의 랩 역시 날이 서있다. 이어 등장한 권소현 파트도 '우리가 나타나면 난리난다'는 자신감 가득한 파워를 지속한다. 후렴구에서 들려주는 에너지 역시 묵직하다. 동양적 느낌의 소리와 함께 '미친 것 처럼 따라해'라고 말하는 'Female Monster'의 명령은 절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2절 첫 verse, 전지윤의 '세계 도시 이름 나열' 랩 파트는 곡의 백미라고 해도 무방하다. 현아 랩과는 다르게 더 날카롭고 격양된 이 래핑은 '미쳐'라는 곡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곡의 2/3이 철저하게 마음에 들었지만 제목을 '아쉬운 곡'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나머지 1/3 때문이었다. 먼저 허가윤 파트다. 인트로부터 권소현 파트까지 한껏 기를 모은 에너지를 허무하게 잃은 부분이 바로 여기다. '답은 정해져있어 넌 그저 ok / 나도 내가 좀 미친 것 같아' 라며 소위 '미친'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온화한 상담 선생님이 된다. "더는 널 외롭게 하지마, 이제 숨겨온 널 찾아봐"라며. 가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밤이 가잖아, 다 뛰어 흔들어'라는 메시지도 마치 사랑 노래를 부르는 창법으로 전달한다.
브릿지에 해당하는 남지현 파트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나와 놀아 / 나만 믿고 널 내게 맡겨봐'. 이렇게 도발적인 뜻을 지닌 가사를 밍밍한 멜로디와 보컬로 일관한다. 힘이 실려야 할 메시지에 힘이 실리지 않으니 곡의 매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현아 '빨개요'에서도 비슷한 브릿지 파트로 곡의 긴장감을 감퇴시켰는데 작곡진이 이번에도 그 실수를 답습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가요의 흔한 버릇 중 하나가 '감성적인 멜로디 파트를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는 인식인데 그것의 안 좋은 예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허가윤의 파트를 좀 덜 감성적인 접근으로, 남지현의 파트는 아예 넣지 않거나 타이트한 방향으로 갔다면 분명 빼어난 명검 같은 음악이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노래의 2/3'이 워낙 강력했고 안무 역시 F(x)의 '4 Walls' 와 더불어 올해 최고의 안무 중 하나였다는 점, 마지막으로 뮤비 또한 노래의 매력을 배가 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멋진 케이팝으로 남아있다.
- 마음 : 아이유
(5월 8일 발매 / 싱글 '마음' / 작사 아이유, 작곡 편곡 아이유 김제휘)
- 꿈처럼 반짝, 하지만 영원히 살아있을 그리움
: 작품 해석 방향성 문제로 큰 소동을 만든 2015년 아이유지만 싱글 '마음'만큼은 해석의 다양성이 주는 재미를 청자에게 선물한 곡이었다. 짝사랑을 앓고 있는 화자를 다룬 가사로 보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연인 관계에서 홀로 있을 때 겪을 마음의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도 느껴진다. 또한 러블리즈의 '놀이공원', 박정현의 '꿈에'처럼 이미 헤어진 상대가 내 앞에 나타나는 꿈에 관한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마지막에 언급한 방향으로 곡을 본다면, '눈을 떼지 못해' 슬퍼하고 '더운 숨을 쉬는' 건 꿈에서 전 연인을 만난 것이고 '찾아오거나 달래주지 않으셔도' 괜찮다는 건 꿈에 나온 그를 향한 바람이다. 이후 '반짝 살아있다'는 말은 이 모든 게 짧은 꿈이었다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렇게 꿈처럼 '반짝'에 불과한 만남이었지만 마음은 '영영 살아있다'고 얘기하며 오래 잊지 않을, 또는 잊지 못할 그리움을 '순간과 영원'이라는 역설로 표현했다. 이전까지 아이유가 그랬듯 열거한 모든 가사를 부를 때 화자의 표정까지 보이는 디테일한 목소리로 묘사했다. 덕분에 곡에 담긴 애이불비의 정서가 살고 이어서 작품의 입체적 구성까지도 멋지게 살려냈다.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편곡도 곡의 주인공인 '가사와 목소리'를 돋보이게 만드는 여백의 미로 느껴진다. 제제 사건과 대응으로 아이유는 '가수를 잘못봤구나'란 씁쓸한 후회를 안겨주며 내게 있어 상당한 정감이 줄어든 가수가 돼버렸으나 '마음'은 노래를 깊이 감상하고 해석하는 즐거움을 안긴 고마운 곡임에 분명하다.
- Day 1 : 레드벨벳
(9월 9일 발매 / 정규 1집 'The Red' / 작사 작곡 편곡 황현)
- '연애 출발선'에 선 소녀의 천연색 마음
: 정규 1집 10개의 트랙 중 뒤에서 두 번째에 박혀있기에는 아까운 음악이다. 밴드 음악으로 만들어진 'Day 1'은 주로 SM 아티스트에게 상큼한 넘버를 선사하는데 재능이 있는 황현의 작품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애를 시작하는 첫 날의 설레고 풋풋한 마음을 담고 있다. 마치 청춘 드라마 엔딩곡에 어울릴 법한 구성의 노래로, 멤버들의 목소리 또한 기교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육성을 '말하듯이' 들려준다. 가수로 느껴지던 레드벨벳이 딱 그 나이대의 소녀로 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되었다.
'Day 1'이 독특한 이유는 마냥 해맑게만 멜로디를 구성하지 않음에 있다. 인트로부터 22초간 메이저 풍의 밝은 느낌이 물씬 전해지다가 첫 verse 직전 (0:23) 인트로 종료 음을 종결 화음으로 선택하지 않고 마치 불협화음으로 느껴지는 음을 사용했다. 이어지는 첫 verse 멜로디 시작 음 (0:24, '맨 처음 교복을') 이 그 음을 그대로 받아 전개한 까닭에 메이저 곡임에도 마이너한 향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가사에서도 '어색한'의 '색' (0:28), '한 시간도'의 '시' (0:41), 그리고 후렴구 중 '속삭여줘' (1:08) 부분처럼 반음이나 한음씩 변형을 주어 일반적 화음과는 다른 전개를 만들었다. 그 때문에 평면적이지 않은 감성을 전달할 수 있었다.
뻔하지 않는 코드 전개와 더불어 후반부 브릿지 파트 (2:14~2:37) 역시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가사 내내 설레고 벅쳐오르는 감정을 얘기했다면 브릿지 파트에선 좋아하는 감정이 있지만 다소 불안한, 그래서 더 다짐하고픈 마음을 전달한다. 그런 복합적 감정을 전하는데 있어서 보컬은 여전히 깨끗하게 가는 반면 이제까지 자유로운 선율을 타던 베이스 기타는 보다 단순하고 묵직한 연주로, 키보드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화음으로 볼륨을 점점 높이며 노래 배경을 채색한다. 이 다양한 장치들이 어울어져서 떨림과 염려가 함께 하는 화자의 정서를 적확하게 구현한다.
본 앨범 타이틀 곡인 '덤덤'은 멜로디와 사운드 구성 모두 뛰어난 반면 작사가의 마이클 잭슨 오마쥬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옥의 티'가 있었다. 반면 'Day 1'은 이제까지 레드벨벳이 보여준 음악과는 다른 장르였지만 그야말로 소녀 다운, 레드벨벳에 참 잘 어울린 '청춘 캐주얼st 의상'으로 각인 된 음악이었다.
- 다시 만난 세계 (Ballad ver.) : 소녀시대 (4월 1일 일본 발매 / 블루레이 'The Best Live', 원곡 - 싱글 '다시 만난 세계' / 작사 작곡 김정배 Kenzie)
- 또 다른 세계를 만날 그들의 다짐
: 몇 년 사이 소녀시대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한국 아이돌 그룹으로서 더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Gee와 Hoot 시절처럼 수 년간 누렸던 '용암처럼 뜨거웠던 시절'은 이제 후배 걸그룹에게 물려줘야 했다. 멤버들 다수의 열애설과 멤버 탈퇴로 인해 그룹과 팬들은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내홍 외홍을 모두 겪은 소녀시대는 이제 남은 8명의 멤버로 도쿄돔 무대에 섰다. 수많은 노래를 부른 후 마지막 순서로 그들이 꺼낸 노래는 소녀시대의 초심, '다시 만난 세계'였다. 멤버들의 오디션 영상이 나온 후 오로지 피아노 만을 반주로 노래를 시작한다.
노래 내내 울먹이는 써니를 비롯해서 모든 멤버가 눈물을 참으며 애써 노랫말을 전한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 변치않는 사랑으로 지켜줘 /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제 안녕'. 어떻게든 자신들과 팬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과 그 모습을 응원해달라고 하는 원곡의 가사는 2014년 당시 시점과 잘 어울렸다. 그 마음이 청자의 감정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충분했다. 제시카 애드립이 포인트였던 마지막 후렴구 부분은 과감히 삭제했다. '사랑해'라는 말을 반복한 후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마무리 한 선택도 발라드 버전에 어울리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사랑해' 파트 직전에 멤버들이 둥글게 모여 손을 맞잡은 연출이 조금은 '연출'같아 보인 흠이 있었지만 그들의 다짐과 팬을 향한 마음은 진실됐음을 느낄 수 있는 곡임에는 분명했다. 그리고 보란듯히 얼마 지나지 않아 발매한 정규 앨범과 태연 솔로의 성공으로 그들의 건재함을 증명해냈다.
- Rewind : 원더걸스
(8월 3일 발매 / 정규 3집 'Reboot' / 작사 작곡 편곡 선미 주효 이토요)
- '그래, 우리 오래된 아이돌이야.'
: 밴드라는 선택부터가 복고다. 타이틀 곡과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80-90년대 댄스 사운드다. 원더걸스는 이제 데뷔한 지 10년이 돼가는 아이돌이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애써 상큼한 척 신선한 척 하지 않았다. 그들의 '오래됨'은 단점이 아닌 무기로 간주했고 그들의 나이이기 때문에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정서의 노래를 만들었다. 특히 선미가 송 메이킹 전 부분에 관여한 'Rewind'는 그들의 무기가 제대로 투영된 트랙이다. 마치 90년대 어느 작은 카페에서 흘러나올 법한 레트로 팝 장르로, 스네어와 신디사이저 사운드 뿐만 아니라 그 배치 역시 꽤나 고전적인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촌스럽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보컬과 멜로디가 현재의 팝에 가깝기 때문이다. 연주만 들으면 영락 없는 90년대 8비트 음악이지만 멜로디 라인은 16비트로 맞춰져있다. 박자를 살짝 엇나가며 멜로디를 부르는 방식 역시 세련됨을 위한 괜찮은 선택이었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에서도 목에 힘을 뺀채 처연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고 그 표현법 역시 옳았다. 노래에서 가장 돋보인 사람은 곡을 쓴 선미다. 1절에서는 자신을 두고 떠난 상대방에 대한 슬픈 냉소를, 2절에서는 '대답 좀 해봐, 자꾸 날 숨 막히게 할거야'라고 원망스런 마음을 토로한다. 이 목소리에 관능적 요소가 살짝 묻어나있으면서 매력을 더한다. 두 번의 솔로 활동을 통한 경험 때문인지 과거에 비해 큰 성장이 느껴지는 보컬이었다.
몇 개의 노래를 제외하고 본 앨범 여러 트랙에서 그랬듯 'Rewind'에서도 유빈의 랩은 곡의 흐름을 멋지게 타지 못하고 있다. 발음과 플로우, 감정 표현까지 전부 만족스럽지 못한 랩을 들려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아이돌 랩퍼들이 성대를 조이는 음색으로 랩을 한다면 유빈은 그들과 달리 낮고 무거운 톤을 갖고 있다. 즉, 음색의 장점은 분명 있는 아이돌이긴 하나 아이돌 구력에 비해 크게 성장하지 못하는 랩 스킬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나머지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유빈은 이번 앨범에 본격적으로 곡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고 그 결과물 또한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앞으로 그들이 만들 음악에 대한 기대감은 버리지 않을 것이고 이 다음 앨범 역시 필청할 이유가 분명하다.
- 짠해 : 피에스타
(3월 4일 발매 / EP 'Black Label' / 작사 작곡 LE 4번타자 예지 신사동호랭이)
- 흙 속에서 나오지 못한 한 곡의 진주
: 자신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무심히 떠나간 사람이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 예전과 달리 초라한 모습으로. 화자가 겪었던 이별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갑'이었던 상대가 을로 전락한 모습을 보는 건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온다. 비단 연애에서만이 아니다. 내게 시련을 주었던 과거 거대한 존재가 시간이 흐른 뒤 '기운 다 빠진 무언가'로 변함을 볼 때 우리는 미움보다도 동정 같은 언짢음을 느낀다. '짠해'에 담긴 감정의 주제가 바로 이 짠한 마음이다. 신사동호랭이와 4번타자가 만들어낸 세련된 기타-신디프로그래밍 편곡에 예지와 EXID LE도 함께 만든 '동정심에 관한' 노랫말은 쉬이 설득이 될 정도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최근 걸그룹 타이틀 곡 정서 중에서 가장 마이너한 느낌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노래의 1탄 격인 EXID의 '매일밤' 은 4년 전 LE와 신사동호랭이가 만든 곡이었고, 두 곡 모두 호평을 받았으나 대중적 히트는 기록하지 못했다.
곡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바로 '반복'이다. 이 곡은 후렴구가 16마디로 돼있다. 요즘 많은 가요가 8마디를 택하는 추세에 비해 긴 편이다. '짠해'는 후렴이 8마디씩 두 번 반복되는 구조인데 멜로디가 뒤 3마디 정도를 제외하고는 완벽히 동일하다. 그 후반 세 마디 마저 멜로디를 종결하는 역할에 충실할 뿐 임팩트 있는 한 방은 아니었다. 후렴 멜로디 라인이 진성 가성을 넘나들며 나름의 매력이 있는 건 분명하나 대중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기에는 무리가 있는 구조다.
후렴구에 16마디를 할당한 2015년 또 다른 아이돌 곡인 샤이니의 'View' 역시 8마디가 두 번 반복한다. 다만 뒤 8마디 편곡은 악기를 더 추가하고 보컬 멜로디를 조금씩 생략하는 등의 변화를 통해 지루함을 탈피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에 성공했다. 반면 '짠해'는 후렴 뿐 아니라 브릿지 부분에서도 반복의 굴레를 탈피하지 못한다. 브릿지 '도대체 왜' 파트가 2마디씩 4번이 등장하는데 아무 멜로디 변주가 없다. 반복은 분명 멜로디를 기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나 그것이 '긍정적 각인'으로 이어졌는지 조금 의문이 남는다. 이 문제들만 제대로 보완했다면 피에스타는 멤버들의 예능이 아닌 노래로써 보다 빨리 대중의 세상으로 나올 그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 Automatic : 레드벨벳
(3월 17일 발매 / EP 'Ice cream cake' / 작사 최소영 작곡 편곡 Danial Klein, Charlotte Taft)
- 공간감으로 전달하는 도회적 매혹
: 인트로에 담긴 비트 질감부터 구미가 당긴다. 드럼 브러시 소리를 시작으로, 끝부분에 살짝 딜레이가 걸려있는 듯한 킥과 스네어가 중심이 되고 LP 노이즈가 비트 중간에 양념처럼 뿌려진다. 소리 배치를 넓게 쓰고 있으면서도 악기 소리는 전혀 울림 없이 막혀있는 소리로 들리는 모습이 흥미롭다. 킥 소리와 스네어 소리 사이에 마치 무거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베이스와 유사한 사운드가 두 번 연달아 나오며 비트의 맛을 살려낸 포인트 역시 돋보인다.
이어 바로 등장하는 후렴구에서는 베이스 기타가 곡의 리듬 뿐만 아니라 멜로디에서도 중심이 되는 독특한 구성을 취했다. 요즘 가요와는 달리 신디사이져 트랙도 적게 사용했다. 대신 베이스 기타 볼륨이 상당히 높여진 상태에서 거대한 붓이 그림을 그리듯 소리의 공간을 메우며 주 멜로디를 탄탄히 받쳐준다. 소리의 빈 곳을 베이스가 메워준 덕분에 많은 부분에 여백이 느껴지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은 곧 청명한 공간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베이스 치고는 고음 영역을 사용했기에 다른 곡들보다 베이스 멜로디가 잘 들리는 특징도 있다.
레드벨벳의 보컬은 시종일관 힘을 뺀 상태로 노래한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며 상대에게 매혹되는 찰나의 감정을 가사는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 걸맞는 '은은한 섹시함'을 그들은 들려주고 있다. 다만 이렇게 매혹적 느낌의 분위기 보다는 '아이스크림 케익'이나 '덤덤'에서 보여준 힘 있고 발랄한 목소리가 레드벨벳에 좀 더 잘 맞게 느껴진다. 레드벨벳을 수면 위에 올린 '아이스크림 케익' 발매 직전 공개 곡이 'Automatic'과 그 전 싱글 'Be Natural'이었고, 두 곡 모두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지금보다 더 시간이 지난 후 듣는 '성숙한 Automatic'은 분명 지금보다 더 어울리는 목소리일 것이라 확신한다.
- Best 3. 핫핑크 (Drunken Acoustic Ver.) : EXID (12월 28일 업로드 / 싱글 'Hot Pink' / 작사 작곡 LE 신사동호랭이 범이낭이)
- 곡의 약점을 한 방에 날려버린 신의 한수, '어쿠스틱'
: 원곡 '핫핑크'는 도입부부터 하니-LE 랩 파트까지는 흠 잡을 곳 없이 뛰어난 힙합풍 올드 스쿨 댄스 넘버다. 허나 이어지는 많은 부분들에서 의문 부호가 생긴다. 멤버들의 목소리 보다 더 부각되게 들리는 'Push push' 남자 파트, 위아래-아예처럼 약간의 뽕끼가 가미되어 기청감이 느껴지는 혜린-솔지 파트, 그리고 솔지가 최절정 고음으로 에너지를 올려 'Everybody knows'를 외쳤음에도 이어 그 기세를 받지 못하고 어떤 '한 방'이 없는 후렴구까지 아쉬움 투성이인 음악이다. 분명 좋은 원석 같은 노래라고 생각되나 완곡에서는 포텐만큼의 파급력이 기대만 못한 게 사실이었다.
곡 발매 약 한 달 후, 소위 '만취 어쿠스틱 버전'이 등장한다. 이 버전은 기타 한 대로 편곡한 상태에서 템포를 늦추고 재즈 같으면서 R&B의 느낌도 있는 슬로우 템포 곡으로 탈바꿈했다. 혜린-솔지 파트를 포함해서 원곡 대부분의 멜로디에 감성이 다량 함유됐었기에 원곡 장르인 힙합 댄스 보다는 감미로운 와중에 리듬을 탈 수 있는 재편곡 버전이 오히려 '핫핑크'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Push push'를 외쳤던 남자 파트가 멤버들의 화음으로 대체되면서 풍성하면서 신선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더군다나 영상을 보면 대부분의 멤버가 실제로 취기가 올라 눈이 풀려있음에도 음정과 화음이 잘 맞으면서 더욱 곡의 완성도를 높였다.
원곡에서 가장 이질적인 조각이었던 브릿지, 정화 파트가 재편곡 버전으로 살아나게 된 점 역시 눈에 띈다. 원곡에서는 이 파트를 '주위 전환용'으로 의도했지만 그것에 실패하고 음악 흐름을 끊는 역할이 되어 안타까운 맘이 있었다. 그토록 부드럽고 마이너한 멜로디와 발성 덕분에 이 곳 재편곡 버전에서는 맥을 끊는 느낌이 사라졌다. 오히려 '전조'의 원래 역할대로 음악의 본래 흐름에 다른 색깔 하나를 입히는 선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핫핑크의 최대 약점이라고 간주했던 '단순한 안무' 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취기 오른 멤버들의 모습이 대신하는 점도 마음에 든다. 이 버전은 아직 공식적으로 음원화되지 않고 술자리 라이브 영상으로만 존재한다. 때문에 자연스러운 취중 풍경과 알콜로 인한 코믹한 행동들까지 그대로 볼 수 있어 더 애착이 가는 버전이 되었다. 분명 훌륭한 포텐을 갖고 있던 곡임에도 몇몇 만족스럽지 않은 프로듀싱 방향으로 만개하지 못한 곡의 매력이 이런 식으로 살아날 수 있다는 멋진 예시를 이번 기회로 보여주었다.
- Best 2. 4 Walls : 에프엑스 (10월 27일 발매 / 정규 4집 '4 walls' / 작사 이스란 작곡 편곡 LDN Noise, Jasper, McKinnon)
- 고급진 우아함 그 자체
: 사실 이 음악을 처음 듣고 난 첫 생각은 '심심하다'였다. 작곡가 전작인 샤이니의 'View'와 쌍둥이 격이면서도 '4 walls'만의 특별한 킬링 포인트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허나 멤버들의 안무가 곁든 무대 영상을 보고 판단은 180도 달라졌다.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가사가 그들의 춤사위마다 연결이 되고, 정중동으로 '몸의 선'이 주는 아름다움은 놀라웠다. 특히 후렴구에 적극적으로 응용된 '보깅' 안무 스타일은 제목대로 사랑의 벽에 갖힌 미스테리한 느낌을 살리는데 주효했다.
앞에서 언급한 'View'와 후렴구를 비롯해서 노래 진행 방식에 유사성이 있지만 가성이 두드러진 '4 walls'와는 발성 스타일부터 차이점이 있다. 또한 샤이니의 보컬은 큰 볼륨으로 사운드 중앙에 배치돼있는 반면 F(x)의 목소리는 백그라운드 보컬 사운드와 거의 비슷한 볼륨 크기로 전개된다. 특히 두 번째 Verse (0:31~0:44 / 1:31~1:44)에서는 비브라토처럼 움직이는 베이스 소리에 오히려 보컬이 2선으로 물러나게 들릴 정도로 볼륨이 작게 믹싱됐다. 2절 첫 verse (1:16~1:30) 만이 깨끗한 보컬이 등장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보컬 파트에서는 전부 화음이 얹혀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대부분의 한국 가요가 바로 눈 앞에서 노래가 나오는 것처럼, 소리의 센터에 매우 높은 볼륨으로 보컬을 믹싱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방향의 프로듀싱이다. 맨 마지막 후렴구에 비트를 강하게 몰아쳐서 곡의 클라이막스를 생성하며 'View'와의 차이점을 만들고 편곡이 마무리된다.
가사는 에프엑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알쏭달쏭하다. 재밌는 건 이토록 비유법이 많이 사용된 노랫말임에도 글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된다는 면이다. 물론 가사가 이별을 말하는 것인지, 달콤한 감정에 빠진 순간을 말하는 것인지 아님 또 다른 순간인지는 에프엑스 멤버들 간에도 이견이 있을 정도로 불분명하다. 그 어떤 방향으로 봐도 가사 속 화자가 사랑의 한 부분에 위치해있고, 그로 인해 벽에 막힌 것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란 건 쉽게 전달된다. 어떤 곳에 시선을 둬도 '너'만 보인다는 주제엔 변함이 없다. 덕분에 은유법과 상징법이 난무한 가사임에도 직관적으로 노래를 듣게 하는 매력을 품게 되었다.
앨범 '4 walls' 사재기 논란이 제대로 진상 규명 되지 않은 점과 이전 음반과 마찬가지로 곡의 대부분이 외국에서 수입해왔다는 점은 유감이었다. 다만 노래만 본다면 타이틀 곡을 포함해서 앨범 전 곡이 뛰어난 EDM 사운드를 즐길 좋은 음반이란 점은 틀림없다.
- Best 1. 놀이공원 : 러블리즈 (3월 3일 발매 / 정규 1집 리팩 'Hi~' / 작사 서지음, 작곡 편곡 윤상 Davink 스페이스카우보이)
- 예쁘게 포장된 몽환 속 집착
: 요리 안에 고수 이파리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 음식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놀이공원'은 유지애의 목소리를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것으로 마치 고수 잎처럼 곡 전체에 대한 청자의 호감이 명확히 나뉘었다. '세상 가장 달콤했던 솜사탕'이라는 가사를 표현하기 위해 있는 힘껏 아이 같은 발성으로 표현한 음색이 여러 사람에게 거부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적용된 곡은 이 노래만이 아니다. 오리지널 정규 1집 수록 곡인 '비밀여행'에서도 비슷한 음계에, 같은 발성으로 소릴 내었고 그 오묘한 느낌이 호불호를 갈라놓았다.
유지애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까닭은 몽환을 주제로 한 가사 때문이다. 노래 시작 부분 편곡을 들어보면 소리들이 뭉뚝하게 나왔다가 명확한 사운드로 바뀌는 시퀀스를 반복하고, 도입부 마지막에 순간적으로 소리들이 말끔히 정리된다. 현실과 잠의 경계에 있다가 꿈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열림을 표현한다. 도입부가 끝난 후 전주에서 '몰래 놀러 올래' 라는 가사가 등장하면서 노랫말로도 꿈의 시작을 알린다. 첫 Verse 에서 '열 두시가 되면 다 깨기 시작해'라며 잠이 들어 꿈을 꾸는 상황을 오히려 '깬다'라는 반어법으로 설명한다. 이어지는 가사에서 그리운 상대를 만나는 과정을 묘사하고 이 모든 상황이 꿈이라는 걸 자각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상대방은 이미 이별을 선언했음에도 인정하지 않고 내 꿈에서 상대방과 함께여서 여전히 즐겁다는 감정을 후렴구 1 (0:58~1:21)에서 얘기한다.
그리고 문제의 후렴구 2 (1:22~1:45) 에서 상대방과의 얽힌 많은 장소 중에 놀이공원을 꿈으로 구현했는지에 관한 이유가 나온다. 관람차 내에서 연인과 함께 하며 먹었던 솜사탕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 행복한 기억을 말하는 목소리가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의 유지애다. 어릴 때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면 한 번 더 타고 싶어하는 감정과 매치가 되고 후반부에 '아이처럼 아무 것도 놓지 못해요, 내 사랑을'이란 가사가 나오듯 상대방을 향한 여전한 그리움을 아이의 갈망으로써 묘사한 걸 알 수 있다.
여기서 포인트는 노래가 전달하는 아이 같은 메시지, 아이 같은 목소리가 청자 입장에선 '진짜 동심'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이 노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어쩌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거나 아니면 소름이 끼칠 수도 있는 모습이다. 자신과의 추억을 꿈으로 다시 만들어서 이별을 받아드리지 못하고 가장 좋았던 순간을 반복하며 그 환상 속에서 행복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자에겐 꿈결처럼 해맑은 행복이지만 이 상황을 모르는 상대방 입장에선 정반대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 양측의 정서를 연출하는 방편으로 유지애의 보컬이 알맞게 쓰인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기억 몇 개를 지니고 있다. 그 기억이 꿈으로 다시 재생된 후 잠에서 깨어 '아 열여덟 꿈'을 외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기에 '놀이공원'이 전달하는 복잡다단한 느낌을 향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같은 소재를 다룬 박정현의 '꿈에' 에서는 몽환 속 등장하는 상대방을 향한 사랑과 이별의 서사를 나열한 후 마지막 가사에서 '다시 나타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반면 '놀이공원'은 노래의 마지막까지 꿈 속에서 상대방을 갈구하는 모습으로 곡을 매조지한다. 윤상 특유의 묘한 멜로디 전개와 편곡이 가사 스토리와 어울어졌고 그 덕에 여타 가요와의 차별점을 획득했다.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주인공 나오미 왓츠처럼 사랑을 잊지 못하고 꿈을 생성해버린다는 주제 덕에 이 곡은 '통속적이지 않은 음악'이란 장점으로 올 한 해 오랫동안 내 귀를 즐겁게 했다.
- 번외. Best 10 외의 Best 11
11. 우아하게 - 트와이스 10. 어떤 오후 - 소녀시대 9. 우주를 건너 - 백예린 8. Hello bitches - CL 7. I - 태연 (Feat. 버벌진트) 6. 빛 - 디아크 5. Ice cream cake - 레드벨벳 4. Puss - 지민 of AOA (아이언 파트 제외) 3. 내 집에서 나가 - 현아 (Feat. 권정열) 2. 토닥토닥 - EXID 1. 오늘부터 우리는 - 여자친구
포미닛 미쳐는 중간에 모자쓰는 부분이 너무 좋아요 진짜 미친느낌이 잘 들어나는 부분인듯 그래서 요번곡 싫어는 좀 아쉽네요 구성을 미쳐랑 비슷하게 한거 같은데 i hate you 훅 부분 비트가 너무 구린느낌..
피에스타 짠해도 정말 좋았는데 인지도 부족으로 폭망해서 요번 예능에서 차오루, 언프리티 예지로 인지도 많이 올렸으니 다음 활동이 기대합니다
저한테 올해의 곡 한곡 뽑으면 exid 토닥토닥이네요 좋은 자장가 느낌, 이 곡이 원래 위아래 나오기전 2년간 쉴때 타이틀로 활동할려고 했었는데 돈 때문에 접은거 같던데 어쿠스틱 핫핑크가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다음엔 댄스말고 발라드 느낌의 곡으로 나오면 좋겠지만 계속 댄스할 느낌이라 아쉬워요
러블리즈 놀이공원은 유지애 목소리에 대한 호불호로 분명히 나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아이 목소리가 뜬금없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지만 듣다보니 유지애 버전도 괜찮네요.
노래와는 별개로 러블리즈 앨범을 듣다보면 울림의 배려가 느껴져서 기분이 오묘합니다. 인피니트 때부터 앨범 수록곡에든 뮤비에든간에 서브보컬의 킬링파트를 꼭 넣어줘서 상대적으로 파트가 적은 서브보컬의 팬들을 만족시키죠. 서브에게 곡의 킬링파트를 선뜻 내어주는 게 곡의 호불호를 갈리게 하는 주요 원인이지만서도 그런 울림만의 배려가 나쁘지 않네요.
automatic이 상위권이라는 것에서 신뢰도가 팍팍 상승합니다 크크
첨 이 노랠 들은게 레드벨벳이란 그룹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했던 노래 제목하고 같아서.. 라는 쓰잘데기 없는 이유였는데
곡이 딱 시작하자 빨려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S.E.S. 의 S.II.S 하고 많이 닮아있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정말 그 어떤 섹시 컨셉의 걸그룹 노래보다 이 곡 만큼 치명적인 섹시한 느낌을 주는 곡은 없었어요.
다른 섹시 컨셉의 곡들이 "봐라! 나 이 만큼 섹시하다! 어서 날 사랑한다 말해줘!" 이렇게 소리치는 느낌이면
이 곡은 살을 맞대고 귀에 속삭이는 느낌이라 버틸 수가 없네요.
저도 듣자마다 S.II.S, 그리고 신화의 Hiway가 생각났고 두 노래 모두 유영진의 작품이었죠.
근데 들을 수록 장르도 다르게 느껴지고 사운드 구성을 하는 방식에서 Automatic과 위 두 노래는 완전 반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유영진은 항상 소리의 빈 곳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하고 오토매틱은 리뷰서 언급했듯이 여백이 도드라지는 느낌이에요.
언젠가 S.II.S을 리뷰하는 시간을 만들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