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쭈뼛거립니다. 보라의 생일파티에 가고 싶지만 자기를 불러주질 않거든요. 그렇게 서성이던 선에게 보라가 초대장을 줍니다. 선은 정성스레 팔찌를 만들고 편지도 이쁘게 씁니다. 선은 초대장에 적힌 대로 찾아가지만 거기선 엉뚱한 아저씨가 나옵니다. 선은 속았다는 걸 알고 한숨을 쉽니다. 육교 위에서 서운함을 삭이던 선에게 누군가 말을 겁니다. 방학식날 전학와서 자기한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한지아란 아이에요. 둘은 집까지 같이 갑니다. 선에게 친구가 생겼습니다.
며칠 전 <사돈의 팔촌> GV에서 배소은 배우가 그랬었죠. 아역들의 연기를 지도하는데, 오히려 자기가 많이 배웠다고, 아이들은 어른들이랑 다르게 그냥 해버린다고요. 아이들의 연기는 어른들이 아무리 해보려 해도 절대 흉내낼 수 없는 특별한 게 있다고 했었죠. 듀나도 에세이에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카메라에 담기는 아이들의 연기는 마법이 된다고요. 그게 대체 뭔지 전 몰랐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습니다. 잘 해야 한다, 진짜 같아야 한다, 어색한 티가 나면 안된다, 하는 긴장감이 이 영화에는 거의 없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힘이 빠진 상태에서 애들은 그냥 합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애들은 그냥 대사를 치고 그냥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화면 속 아이들을 보다보면 믿음과 또 다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의심이나 감별이 무의미한 상태의 세계에서, 그냥 말하고 뛰노는 아이들을 보게 되죠. 영화가 끝나고 타이틀롤이 올라가면 그제서야 느낄지도 모릅니다. 이런 아이들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라고요. 영화가 다른 예술과 구분하는 것은 실제 인간이 실제 인간으로서 실제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홍보사의 문구는 이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비유하지만 그 결은 좀 다릅니다. <우리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에요. 반짝이는가 하면 모진 나날이 이어집니다. 저는 올해 본 영화중에서 가장 지독하다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은 순수한만큼 잔인해지죠. 순간에 휩쌓여 아무렇지 않게 가슴팍을 그어놓습니다. 이렇게 감정으로 가득찬 아이들의 세계는 단 하나가 전부입니다. 가족, 성적, 경쟁, 싸움, 돈, 어떤 물건 등등. 그리고 친구가 전부인 아이의 세계에 친구가 들어왔다가 나가버립니다. 아이의 우주는 흔들립니다. 다른 무엇도 없이 그저 물어보고 침묵하면서 아이는 우주를 다스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될 턱이 없죠. 영화는 한 아이의 삶에서 가장 절대적인 무언가가 너무나 쉽게 멀어지는 걸 보여줍니다. 저는 보면서 몇번이나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어떤 답도 찾지 못한 채 마음 속 우주가 붕괴되는 걸 견뎌야 합니다. 아이를 둘러싼 세상은 의례 그렇듯 그 진동을 느끼지 못하죠.
어쩔 줄 모르고 깨지다가 그 조각들을 맨마음으로 밟습니다. 아픈 시간이 지나도 영화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지요. 다만 이거 하나는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엔딩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줄임표라고요.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궁금해 하는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해요.
아이들이 단 한번이라도 울었던가요. 사실 아이들은 울지 못합니다. 그게 그렇게 아리고 막막할 수가 없어요. 울지 못하는 마음이 엇나가며 생채기를 내죠.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불쌍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의젓한 아이들은 갈라진 너와 내가 다시 "우리"가 되는 법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 우리는 그걸 까먹고는 똑똑한 척 하면서 살고 있죠. 그러니까 배워야 합니다. 이 정도로 아름답게 그린 영화로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건 매우 특별한 체험입니다.
@ 배우들이 극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사진을 찍어줬어요. 너무 귀엽고 이쁘더군요.
http://cafe.naver.com/reviewmaker/15694 스포포함한 감상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