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한 번 써 봐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건 여행기를 올려 천만 히트수를 기록한 다음 출판사 스물일곱 곳의 접촉을 받은 끝에 계약을 맺어 십억 원의 선인세를 받고 책을 내는 전업여행작가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그게 안 된다면, 차선책으로는 그저 재미를 위해서겠지요.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요.
여하튼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장모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을 오키나와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2018년 2월. 3박 4일 오키나와 여행의 시작입니다.
[1부. 여행 준비]
여행계획을 짜는 일은 죄다 아내가 했습니다. 저는 그저 짐꾼이자 운전자로, 말하자면 리빙스턴 박사가 나일 강의 발원지를 찾아 아프리카로 떠났을 때 뒤에서 등짐을 지고 따라가던 토인 정도의 역할이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남이 대신 여행계획을 짜 준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실 겁니다. 물론 다들 집에 3박 4일 여행 일정을 죄다 대신 짜 주는 아내 한 사람쯤은 있으실 테니 제가 딱히 자랑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2부. 공항]
주차니 도착시간이니 뭐 그런 게 궁금하시면 여행가이드북에 다 적혀 있습니다. 그대로 하세요.
저는 자가용을 끌고 갔는데 3박 4일 기준 주차대행비 15,000원에 주차비 36,000원 나왔습니다.
아. 일본이니까 110볼트 돼지코 두어 개 사 가시는 것만 잊지 않으시면 됩니다.
[3부. 오키나와]
오키나와 나하 공항에 내립니다. 인터넷으로 미리 렌터카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업체는 도요타 렌터카인데, 공항 밖으로 가 보니 유독 한국인 이용객이 많습니다. 아마도 인터넷 예약도 손쉬운 데다 한국어를 쓰는 직원이 있고 심지어 내비로 한국어 지원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빌린(아내가 고른) 차는 AXIO라는 녀석이었습니다. 하이브리드요.
요놈입니다.
차는 크지 않은데 실내공간은 의외로 넓습니다. 다만 저는 덩치가 좀 있는 편이라 (184/94) 타고 내릴 때마다 스티어링휠에 다리가 부딪혀서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키나와 렌트는 소형이나 준중형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좌측통행을 하다 보니 운전하는 감각이 완전히 달라서 차가 저절로 왼쪽으로 쏠리는데, 차 덩치가 작으면 차선침범 위험이 적거든요. 여하튼 그럭저럭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다만 엔진 힘은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그야말로 죽여줍니다. 오르막길에서 엑셀을 밟으면 폐병 환자가 기침하는 소리를 내며 어르신이 끄는 폐지 수거 리어카 같은 격렬한 기세로 경사로를 오릅니다. 장모님께 잠깐 내리셔서 차 좀 밀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하려다 말았습니다.
숙소는 Moon Ocean Ginowan Hotel & Residence 라는 곳이었습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도 합리적이고 좋았습니다. 3박 이상 묵는 고객에게는 칵테일이라든지 식전주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한 번도 안 써먹었습니다. 방에 한 번 들어가면 워낙에 나오기가 귀찮더라고요.
숙소 사진 따윈 없습니다. 저는 그런 거 찍을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정 궁금하시면 구글이나 네이버에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아. 바닷가에 있어서 바다 풍경은 그럭저럭 볼 만하더군요. 그게 하필이면 강풍에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우울한 잿빛 바다였지만요.
오키나와에는, 적어도 2월의 오키나와에는 바람이 강하게 붑니다. 좀 많이 강해요. 아주 강합니다. 돼지가 하늘을 날 수 있을 정도로요. 나하 공항에 내리자마자 저희를 반겨준 것이 바로 그 바람이었습니다. 게다가 빗방울이 섞여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우산을 쓰시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우산과 함께 날아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말이지요. 오키나와 3박 4일 중 햇빛을 볼 수 있었던 때는 마지막 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첫날부터 숙소에서 시간을 죽일 수는 없어서, 일단 짐을 풀자마자 아메리칸 빌리지로 출동했습니다. 크고 작은 식당들과 예쁘고 깜찍한 쓰레기를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관광객이 찾아가기 딱 좋은 곳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쇼핑할 수가 있다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 바람이 상쾌하다면 참치 냉동 창고 안에서도 쾌적하게 거주할 수 있는 뮤턴트일 겁니다.
그래도 아메리칸 빌리지는 돌아다니기 괜찮은 곳입니다. 주차할 곳도 꽤 많고요. 렌터카로 여행을 다니면 가장 걱정되는 점이 주차 문제인데, 주차가 편하다는 건 큰 장점입니다.
아메리칸 빌리지 안에는 자질구레한 가게들이 많습니다. 즉 특정 가게를 찾아가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저희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데다 얼빠진 한국인 네 명이서 가게이름을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갑자기 먼저 다가와서 친절하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고, 심지어 가게 앞까지 안내해준 후 웃음 띤 얼굴로 작별을 고한 착한 일본 여성’과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가게 앞까지 가면서도 계속 이상한 데로 유인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저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더군요.
식당은 ‘키지무나’라는 타코라이스 가게였습니다. 들어가니 멕시코풍 으로 생긴 외국인이 어눌한 일본어로 저희를 반겨주더군요. 저는 좀 더 어눌한 일본어로 대답했고,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재빨리 영어를 쓰기로 묵언 하에 합의했습니다. 그쪽도 좀 안심하는 눈치더라고요.
이 가게의 타코라이스는 잘게 자른 양상추 위에 볶음밥 오므라이스를 올려놓는다는 기괴한 조합이었습니다. 물론 양상추는 맛있는 재료고, 볶음밥이란 대체로 맛있으며, 계란 지단은 언제나 맛있으니, 세 가지를 섞어놓은 물건도 당연히 맛이 좋았습니다. 사진이 하나 있긴 하네요. 일곱 살짜리 딸내미가 먹기 시작한 걸 갑자기 빼앗아서 얼른 찍은 사진입니다.
(아빠. 내가 먹는 거 왜 빼앗아 가?)
(이 사진을 찍어야 선인세 십억 원을 땡길 수 있어!)
그렇게 타코라이스를 걸신들린 듯 흡입하고 나니 이제는 가게 안 풍경도 한 장쯤 찍을 만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컷 찰칵.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대관람차가 있었습니다.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타 봐야겠지요. 그러나 제 딸은 그런 거 무서워서 싫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어요. 하지만 남는 시간을 주체하기 힘들어서, 결국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마트로 원정대를 꾸려 모험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옆에서 와이프가 저녁 먹으러 가자고 재촉해서 이만 줄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