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익과 유리는 사촌지간입니다. 오랜만에 본 둘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합니다. 유리는 뚱뚱한 태익을 돼지라 놀리고, 그런 유리에게 하지 말라며 태익은 짜증을 냅니다. 그래도 보이는 것만 그렇지 사실 그 둘은 사이가 좋습니다. 예지까지 끼어 셋은 엉키고 즐겁게 놉니다. 그 와중에도 태익은 유리를, 유리는 태익을 가끔씩 바라봅니다.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둘만 남았을 때 태익은 유리를 뒤에서 포근히 껴안습니다. 그게 이들의 마지막 기억이었고 어른이 된 후 이들은 다시 만납니다. 더 이상 뚱뚱보가 아닌 태익, 이제 이름을 바꿔 유리가 아닌 아리, 둘은 뻣뻣하고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한번 어우러집니다.
<사돈의 팔촌>은 사촌끼리의 연애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가족 사이에서 싹튼 감정을 쑥쑥 키워나가는 영화에요. 그래서 이 영화는 평범한 형태와 특별한 의미의 로맨스가 됩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혈족제도를 파고드는 거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랑을 했는데 그 방해 조건이 하필 유별난 거죠.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라고 가능성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촌이라는 관계는 가족보다는 어쩌다보니 가족인 관계에 더 가까우니까요.
이런 설정은 근친상간의 자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이 둘의 감정이 유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갑니다. 어린 애들이 장난스럽게 놀다가 눈이 맞았고, 그게 아리와 태익이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의 씨앗입니다. 아직 욕망과 금기가 선명하지 않을 때 시작된 감정, 가장 깨끗해보이는 첫사랑으로 영화는 이야기의 가닥을 잡습니다. 파격의 출발점을 보편에서 찾고 이를 보편적으로 풀어나가려 하죠. 그 둘 사이에서 사촌이라는 항목을 제거해버리면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들이 애틋하게 서로를 그리는 이야기가 됩니다. 여기에 아리의 소리만 가려낼 수 있는 태익의 판타지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청아한 느낌을 주려 하죠.
그럼에도 영화는 야합니다. 굉장히 야해요. 첫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의 원동력은 남녀 사이의 섹슈얼리티에서 나옵니다. 이 둘이 아무리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시 발현되는 부분은 서로를 남자와 여자, 섹스할 수 있는 상대방으로 보는 지점입니다. 시작과 끝은 플라토닉하지만 몸통을 이루는 건 결국 태익과 아리 사이의 성적 긴장감이죠. 영화는 태익의 시선으로 성인 여성이 된 아리의 몸을 적극적으로 따라다닙니다. 아리는 예쁘고 섹시해요. 태익이 여자친구와 섹스를 했다는 암시가 나올 때부터 영화는 끈끈해집니다. 이 탄성은 태익과 아리 사이에도 그대로 전이됩니다. 아리가 태익을 남성으로 인식하는 것도 자신을 이성으로 보는 태익의 성적 긴장감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둘이 가까워지는 과정은 엉큼하지 않은 척 하는 남자와 그 가면 밑을 자꾸 들춰보려는 여자 사이의 전형적인 줄다리기입니다. 태익의 내적 갈등은 사촌을 좋아하면 안되는데, 보다는 사촌에게 성욕을 느끼면 안되는데, 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습니다.
사실 야하려는 영화가 제대로 야하기는 꽤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의 영화는 몸뚱이의 전시에만 혈안이 되어있고 결국 관음으로 모든 이야기가 흘러가버립니다. 벗은 몸을 보고 그 몸들이 엉킨 걸 보면 모든 긴장이 해소되어버립니다. 이런 함정을 피해가며 <사돈의 팔촌>은 줄타기를 꽤 성공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이 영화가 야할 수 있는 건 감정이 풀려갈수록 금기에 대한 딜레마도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태익과 아리는 사촌으로서 서로의 성을 느끼면 안됩니다. 그렇지만 이 둘은 계속 갈등해요. 이 둘이 키스를 하는 지점에서 해버려와 하면 안돼의 상반된 감정이 엄청나게 충돌합니다. 육체적으로 연결된다 해서 태익과 아리는 사촌관계를 벗어던지고 남자와 여자로 돌변하지 않아요. 둘 사이의 사촌관계는 계속 유지되고 한번의 키스가 딜레마를 중첩시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영화는 긴장감을 잃지 않죠. 야하다고 해서 영화의 노출 수위가 높거나 그 묘사가 과격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영화가 그리는 야릇함만큼은 굉장한 압박감이 있어요. 태익과 아리가 어떤 방향으로 합의를 하려하든 보는 사람은 초조해집니다. 사촌이라는 갈등이 끝날 때까지 해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솔직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합니다. 두 성인 사이의 연애에서는 성이 빠질 수가 없고, <사돈의 팔촌>은 그 부분을 생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촌이지만 남자와 여자의 연결이라는 점을 용감하게 그립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첫사랑의 연결고리를 계속 강조합니다. 유년기에 좋아했던 마음이 정말로 10년이나 남아있을 수 있는지, 그 마음이 정말 성인이 되고 난 후의 욕망으로 발전했다 할 수 있는지 좀 의문이 남습니다. 차라리 유년시절을 청년시절의 대조점으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그렇다고 영화가 가식적인 건 아닙니다. 영화가 그리는 욕망은 진하지만 건강합니다. 다만 수채화 같던 욕망이 농밀해지는 간극이 제대로 연결되진 않습니다. 감정이 발달된다기보다는 플라토닉과 에로스가 동시에 달려나가는 느낌이 들죠. 잘 섞여있지는 않지만 어찌됐건 근친상간의 벽을 넘는 데 있어서 완충망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야한 매력은 탁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싱그럽게 흘러가구요.
모든 연애는 욕망과 운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벽이 높으면 높을 수록 이를 뛰어넘으려는 욕망도 강해지기 마련이죠. <사돈의 팔촌>이 재미있는 건 이미 마음 속으로 뛰어 넘은 허들을 바깥에서는 계속 세워놓고 망설인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아주 무시해버리기에는 엄연히 존재하는 규칙이니까요. 절대와 아무 것도 사이에서 충동에 굴복하거나 저항하는 태익과 아리가 귀엽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야함은 결국 그 모든 벽을 훌쩍 뛰어넘어버리려는 도움닫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맨스와 에로티시즘, 둘 모두를 흠뻑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 아리가 좀 더 주도적으로 나갔으면 현실 속 성폭력의 그늘을 떨치기가 더 쉬웠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 역시 스크린은 믿을 게 안됩니다. 배소은 배우가 화면보다 훨씬 더 여리여리해서 좀 놀랐어요. 화면에서는 서구형 미인으로 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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