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楊懷), 고패(高沛)는 유장의 명장으로 각각 강병들을 거느리고 관두(關頭-관문, 요긴한 길목)를 점거해 지키며, 듣기로 여러 차례 유장에게 전(牋-상주문, 서신)을 올려 장군을 형주로 돌려보내라고 간언했다 합니다.
- 방통전 -
주방은 산월의 구족(舊族)이나 명장들 중에서 북쪽의 적들에게 잘 알려진 자를 은밀히 구하여 이들을 시켜 위나라 대사마 양주목 조휴를 속여 유인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 주방전 -
조휴는 본래 친척 관계이기 때문에 임명된 것이지, 지혜나 용기있는 명장은 아닙니다.
- 주환전 -
육손 또한 죽게 되자, 공신이나 명장들 가운데 생존하고 있는 자는 주연뿐이었으므로 그와 견줄 만큼 융성한 대우를 받는 자는 없었다.
- 주연전 -
안량, 문추는 원소의 명장이었으나 두 번 싸워 모두 죽임을 당하니 원소군이 크게 진동했다.
사람을 알아보고 잘 살펴 미혹하여 속이기 어려웠는데, 행진(行陳-군진) 사이에서 우금, 악진을 발탁하고 패망한 적들 중에서 장료, 서황을 취하니, 모두 좌명(佐命)하여 공을 세우고 명장(名將)으로 섰고 그 외 세미(細微)한 신분에서 발탁되어 목(牧)이나 태수에 오른 자는 일일이 헤아릴 수도 없다.
- 무제기 -
때문에 다하여 강호(=흉노의 선우 호주천)에 사신을 넣고 명장(=곽원)에게 간명(簡命.분간하여 하명함)하고,
병기를 요정(料整.수효를 세고 정리함. 병장기를 날카롭게 다듬다)하고 병졸을 가려 취하고, 부고(府庫.관소의 곳간 등)의 자재를 두루 쓰고 식토(食土.논밭.식읍.알짜배기 땅)의 재화를 전부 꺼냈소.
- 원소전-
손권이 관우를 주살한 후에 문제는 조칙을 내려 모든 신하들에게 물어 유비가 관우를 위하여 오나라에 보복하려는지 않으려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논의함에 있어서 한결같이 말했다.
“촉나라는 작은 나라일 뿐이며, 명장(名將)으로는 오직 관우만 있었습니다. 관우가 죽고 군대는 무너졌으며, 나라 안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데, 다시 출동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 유엽전 -
이에 하후연의 사마(司馬)인 곽회(郭淮)가 군중에 영을 내렸다, “장(張) 장군은 국가의 명장(名將)으로 유비가 (두려워해) 꺼리는 분이다. 지금의 긴급한 사태는 장 장군이 아니면 누구도 안정시킬 수 없다” 이에 장합을 추천해 군주(軍主-군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 장합전 -
문흠은 어려서 명장(名將)의 자식으로서 재주와 무용이 있다고(材武) 칭해졌다.
- 관구검전 주석 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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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 삼국지에 명장으로 검색해봤습니다.
고대명장나오는거 제하고 문서나 대화에 나오는 명장 내용 빼면 저 정도가 거의 전부인듯 합니다.
살펴보면 명장의 기준은 요즘같이 엄격하게 지휘관의 끝판왕이 아니라, 잘 싸워서 이름 날리면 명장입니다. 장료, 장합, 주연, 서황, 우금, 악진, 관우는 물론이고 안량, 양회, 고패, 곽원 등도 명장이라 불린것을 보면 이같은 기준은 확실해보여요. 안량 등의 명장들이 열전이나 기록이 없는건 사관들이 열전을 만들지 않았거나 기록이 일실되서 그런것으로 보입니다. 또 꼭 이기기만 해야 명장으로 분류되는 것도 아닌것 같구요.
요즘으로 봐도 델보스케, 히딩크, 김인식, 김성근 등을 명장으로 부르지만 이들도 성공만 한것은 아닙니다. 커리어 중에 이름을 날릴만한 큰 성과를 올리면 명장으로 부르는게 아닌가 싶군요.
삼국지 열전에 있거나 특별언급되는 장수 정도면 모두 명장으로봐도 무방할 듯 싶습니다.
아래는 제가 예전에 썼던 장수의 자질에 관한 글이니 참고하실 분들은 참고하세요.
http://smh2829.blog.me/2205575158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