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익숙하지 않은 검은 정장 양복과 검은 구두를 신고 그 동료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라갔습니다.
장례식장을 가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익숙해질 나이이기는 하지만, 사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곳이라 더 그런가 봅니다.
얄궂게도 영정 사진의 동료는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고, 저는 그 앞에서 절을 하려 하는데
그 친구가 '에헤이. 됐으니 그냥 일어나 있어' 같은 말이라도 했는지 무릎이 꿇어지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서 유족들과도 절을 하는데. 근래에 참석한 장례식 중에는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단순히 동료나 친구라서가 아닙니다.
부인과 자녀, 그리고 나이 든 부모를 남겨 두고 먼저 간 경우이고 제가 참석한 장례식 중에도 이런 경우는 오랜만이라 참 뭐라 할 말이 없더군요.
무거운 기분으로 동료의 일가친척의 뒤를 따라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벽제. 그리고 벽제에서 다시 추모공원까지.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의 모습으로 있지 않게 되는 것은 참으로 한순간이었습니다.
기다리면서 많고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짓는 천차만별의 모습과 표정들을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사십대는 넘어 보이는 여인이 엄마를 애타게 찾는 서너 살 어린아이처럼 엄마 가지마 하며 관에 매달려 가신 분을 놓지 않으려는 풍경.
남녀노소 모두가 엄숙하게 잠시 눈물을 훔치면서 너무도 조용하고 평온하게 배웅하는 모습.
조금 큰 아이가 아빠를 부르며 울부짖는 것과는 달리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장례절차를 위해 뛰어다니는 여러 업체의 장례지도사들의 모습.
스님과 목사님. 신부님들의 경건함과 평안함을 바라는 기도.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목탁 소리, 찬송가와 성가 소리.
언젠가 저도 가야 할 길이니 힘들어도 지금 잘 봐 둬야 한다는 생각.
떠난 그 동료 친구에게 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
하지만 이제 그런 것들을 생각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마자 드는 허탈함과 피로감.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는 눈물을 참아 오다 결국 유골함이 추모공원에 안치되고 나서야 통곡을 하는 동료 부모님 모습은 참 뭐라 할 말이 없었고
그 분들이 눈물을 또 다시 애써 참으며 우리더러 와 주어서 고맙다고 하는 인사를 할 땐 감사하기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의 가혹함을 느꼈습니다.
이제 추모 공원의 한 자리에 있는 동료. 그 친구에게는 '곧 다시 만나세'라는 말을 전해주고 왔습니다.
우리네 삶이야 하루하루가 전쟁같고 내일이 올까. 언제 갈지 몰라 불안해하다가 밤이 오면 지쳐 잠드는 삶이라 하지만
그 곳에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저 한순간에 불과할테니 말이지요.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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