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6/05 17:11:47
Name 누구겠소
Subject [일반] 껍데기
껍데기만 있는 글은 어떤가 입 안에서 퍼석거리는 감촉만으로 즐기는 문장은 어떤가 솜사탕마냥 맛보고 나면 허무해지는 글쓰기는 어떨까 이야기가 없어 아무 교훈도 감동도 없기에 읽고나면 허무해지지만 어쩐지 읽게되는 그런 낱말의 배열은 어떠한가 죽고나면 아무것도 없다는 신화에 기반한 신화적 글쓰기는 어떻겠는가,

라고 그가 얘기했고 나는 그걸로는 별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거라고,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따지고 들었지만, 내가 말해봤자 그의 글쓰기는 병적인 것이라 이미 멈출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조만간 그가 빌어먹게 되리란 예상을 어렴풋이 할 뿐이었다. 난 그게 새삼스래 안타까워

이야기는 먼 옛날 말이 생겨날 때부터 있었을 것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만이 사람들이 찾는 인간 본성의 공통의 취향일 것이라고, 또 이미 이야기를 쓰고 있으면서 이야기가 아닌 것을 쓰려는 시도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까지 말했을 때 그는 반박했는데,

그냥 이야기는 이미 너무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직 적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한 인간이 평생 읽어도 다 못 읽을 만큼은 이미 많으며,

허구는 정교해질대로 정교해져서 빽빽한 그 허구에 숨이 맥히는걸 나는 참을 수 없어 기승전결에 맥이 빠지고 반전엔 숨이 가빠 몸에 좋은 재미와 감동은 이제 피곤하고 차라리 콜라 혹은 담배같은 입에 당기는 걸 원하는걸 한숨쉬듯 나오는 혹은 마려웠던 소변을 보는 쓰기를 하고싶은걸
제정신을 놔버리고 싶은걸  

이미 내 머릿속에선 애완견과 냉장고 세번째칸 서랍이 사랑에 빠졌는데 냉장고 서랍안에 썩어버린 음식이 그들의 사랑에 방해가 되는데 슬픈 개의 척추는 틀어지고 흩어져서 소나무로 돋아나는 가운데 감가상각비의 적용으로 주인은 냉장고를 처분하기 곤란해하는데

내 글쓰기는 미쳐 아니 미처 마치질 아니 원하는 바에 미치질, 미쳐서 마치질 혹은 망치질 못해 구부러진 못으론 도무지 글을 망치질로 박다가 망치는 일을 아니 글을 어떻게든 마치는걸 ,

여기까지 이야기하더니 그도 사람이라 목이 말랐는지 물을 마시기에 나는 참지 못하고, 그런건 독자에게 실례아닙니까 했더니

그는 아 그건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파랑파랑
16/06/05 17:14
수정 아이콘
라임 미쳐
누구겠소
16/06/05 17:21
수정 아이콘
평소 라임에 관심이 있습니다. 크크크
누구겠소
16/06/05 17:20
수정 아이콘
글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읽기 불편하셨다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픽션입니다.
테바트론
16/06/05 17:40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다혜헤헿
16/06/05 17:41
수정 아이콘
이게 한 문장이라니... 누가 영어만 길다 하겠는가
유스티스
16/06/05 18:29
수정 아이콘
한문장 아니에요...
행운유수
16/06/05 17:53
수정 아이콘
냉장고 정리 한 달에 한 번씩은 해줘야 되요...
tannenbaum
16/06/05 17:56
수정 아이콘
아 혼란하다......
해석본이 필요해요. ㅜㅜ
수아남편
16/06/05 17:59
수정 아이콘
우리누 미쳐~
크크크크크
칼라미티
16/06/05 18:06
수정 아이콘
제 취향이네요.
CoMbI COLa
16/06/05 19:07
수정 아이콘
이상의 날개에 있는 날개가 어쩌구 하는 구절이 생각나는군요. 그러니 누가 해석 좀....
yangjyess
16/06/05 19:16
수정 아이콘
콜라 담배같은 느낌으로 다가가서 몸에 좋은 재미와 감동으로 유혹해내는 글이 가끔 있죠... 크 냉장고 등장신부터 조금 아스트랄해지기는 하지만 그 이전 내용은 저도 평소 자주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16/06/05 21:40
수정 아이콘
그래도 사랑얘긴 들어있으니 껍데기만 있는건 아닌걸로..
candymove
16/06/05 22:54
수정 아이콘
살짝 장기하 가사 느낌도..

전 개인적 취향으론 글의 내용 형식 모두 너무 맘에 듭니다.
과제 시즌이라 글 쓸일이 많은데 마려웠던 소변 보듯 글 쓰고 싶네요..
아케미
16/06/06 00:34
수정 아이콘
첫 문단이 특히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16/06/06 09:02
수정 아이콘
이건 잘 모르겠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5583 [일반] 우리동네 음악대장 12곡 [30] 성동구12245 16/06/05 12245 21
65582 [일반] 씨버썸 [10] yangjyess5283 16/06/05 5283 14
65581 [일반] 껍데기 [16] 누구겠소4485 16/06/05 4485 11
65580 [일반]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 - 후아레즈스러운 영화(스포가득) [40] aSlLeR6369 16/06/05 6369 17
65579 [일반] 브록 레스너 7월 9일 UFC 200 복귀 확정 [30] 어리버리5657 16/06/05 5657 1
65578 [일반] [미술] (혐오주의) 인간과 죽음에 대하여, 데미안 허스트 [32] Basquiat18398 16/06/05 18398 22
65577 [일반] D-3 수술을 앞두고 드는 잡생각들... [30] 최강한화6231 16/06/05 6231 9
65576 [일반]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 다녀왔습니다. [29] 영혼의공원7162 16/06/05 7162 8
65575 [일반] <아가씨>는 반전 영화도 아니고 페미니즘 영화도 아니다. [50] 마스터충달9359 16/06/05 9359 10
65571 [일반] 베이징 세대가 kbo에 등장할거 같습니다. [48] 그시기10394 16/06/05 10394 3
65570 [일반] 노가다로 돈모으기 대실패! [55] 물리쟁이13605 16/06/05 13605 42
65569 [일반] (스포) [리뷰] 아가씨(2016) - 박찬욱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다 [34] Eternity9831 16/06/04 9831 10
65568 [일반] 프로야구 올스타전 유사성에 대하여 [33] Bomb범7433 16/06/04 7433 0
65566 [일반] <삼국지> 삼국시대 명장의 기준. [10] 靑龍6290 16/06/04 6290 3
65564 [일반] 복서 무하마드 알리. 향년 74세로 사망. [25] Igor.G.Ne7394 16/06/04 7394 6
65563 [일반] [프로야구] 응원단 관련 폭행사건에 대한 역대급 기아 야구단 입장 [59] 삭제됨12236 16/06/03 12236 6
65562 [일반] 광주 위안부소녀상 모금 횡령 의혹 마무리? [9] bluff4625 16/06/04 4625 4
65561 [일반]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 따라 가며 [7] The xian4884 16/06/04 4884 4
65560 [일반] [참여요청] 아동 성추행 목사를 잡으러 갑시다. (feat. 그것이 알고 싶다) [47] 곰주11063 16/06/04 11063 17
65559 [일반] 여론 참여 심사 게시판에 안건이 있습니다 (6/3 ~6/8) [15] OrBef4547 16/06/03 4547 0
65558 [일반] 2016년 가온 주간 스트리밍 차트 1위 정리 [4] Leeka4359 16/06/04 4359 0
65557 [일반] 어제 있었던 잡담 같은 경험담 [13] 맥주귀신4701 16/06/03 4701 3
65556 [일반] 영남권 신공항 문제, 어떻게 보시나요? [148] 도연초11566 16/06/03 1156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