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밤듸입니다.
가입한 지는 시간이 조금 되었지만, 처음으로 자게에 글을 적어봅니다.
해경으로 군 생활할 때 적었던 일기장을 읽어봤습니다. 상경으로 진급하던 2013년 가을부터 제대하던 2014년 여름까지의 일 년을 꽤 꾸준히 써놨더군요. 여태 만 원도 넘는 양장 노트도 몇 권 사봤지만, 다이소에서 3000원에 산 이 일기장만큼 애정을 담아 꾹꾹 눌러 쓴 노트는 없었네요. 아무 글씨도 그림도 안 그려져 있어서 앞면이라고 적어놨었네요.
읽었던 구절들을 몇 개 추려봤습니다. 해경 전경으로 있으면서 사소한 에피소드들도 적어놨었는데, 세월호 참사와 복무 기간이 겹쳐 있어 해경과 관련된 구체적인 일화는 피했습니다. 벌써 그로부터 네 번째 겨울이네요. 마음 한 켠에 항상 노란 리본을 간직하겠습니다.
[9월의 학습 목표를 세웠다. 홀가분하다. 공부한 것도 아닌데 이미 다 마친 것처럼 기분이 가볍다.]
: 공부계획을 세우면 공부 다 한 것처럼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당연히 이다음에는 책상을 정리해야죠? 그러고나서는 목이 마르니까 물을 한 잔 먹고...
[꼴보기 싫다. 무어라 욕해버리고 싶다. 아주 친했기에, 그리고 사랑했기에. 감정의 끝은 서로 맞닿아 있다. 사랑하는 감정이 증오로 바뀌기엔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 누구를 좋아하다가 그게 잘 안풀렸었나봅니다. 그 때의 저는 한결 같이 찌질하네요. 하지만 이 때 제가 누구를 좋아하다가 저런 꼴이 되어버렸는 지 감도 안잡히네요. "얼룩지는 것이 운명이고..." 라며 한참을 적어놨는데 그 운명의 대상을 아직도 상상의 용의선상에 조차도 올려놓지 못했습니다.
[경험한 것만큼 경험을 기록하는 데 시간을 들일만 하다. 경험한 것을 적는 것은 마치 보석을 깎고 닦는 과정과도 같아서 경험이라는 작고 볼품 없던 원석을 값지고 빛나게 해준다.]
: 와아...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하루였네요. 하지만 이 일기장을 끝으로 이 깨달음도 같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카톡도 안 하고 페북도 안 하니 확실히 외로운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시간도 뺏기지 않는 것을 물론이고, 하지 않을 때도 궁금증, 기대감이 생기지 않아서 좋다. 혹시 누군가가 내게 메세지를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내가 보낸 메세지에 상대방이 무어라 답했을까하는 궁금증.]
: 휴가를 나와 핸드폰을 켜면 오히려 더 외로웠던 모양입니다. 친구 목록에 수 백명의 친구가 있는데 막상 이야기하고 만날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요. 제게 좋은 친구 몇 명이 있다는 게 참 다행입니다.
SNS는 할수록 외로워져요. 페이스북에는 로그아웃해두고 카카오톡 친구목록에는 반년동안 직접 만난 사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숨겨놨습니다. 이렇게 해두니까 가까운 사람들한테 더 신경 쓰게 되고 친구목록에만 있고 신년인사조차도 하지 않을 사람들에게 받는 공허함이 줄어들더라구요.
[오늘은 일기가 필요하다. 가슴 속에서 어지렇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휘몰아 친다. 분노와 짜증, 실망감과 안타까움과 같은 부정적인 그리고 소모적인 기분이 하루를 꽉 채웠다.]
: 날짜와 이 밑의 내용들을 다시 읽어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일기를 쓸 땐 정말 화가 많이 나있었을텐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게 뭐였는지 새까맣게 까먹어버렸군요. 일기장에 이런 일들이 몇 번씩 적혀있지만 한결같이 분노의 배출이었지 그 당시 일기를 쓰는 시간은 반성의 시간이 되지는 못했네요.
[작은 뱀의 머리로로서 여러 궁리를 하며 리더가 처하는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계급에 산재해 있는 불합리함에 대해 알게 되니까 사람 사이는 평등해야만 더욱 큰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 자체로 역사의 오랜 발전을 축소하여 겪은 셈이다.
인간의 생리를 겪고, '현실과 이상' '이론과 실제' 계급과 평등' '진보와 보수' 따위의 양 극단의 논리가 왜 아직도 평행선을 그리는 지 대충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마 이것이 군생활동안 얻은 가장 큰 소득인 듯하다. 한 가지 정답이 있을거란 믿음을 버리고 귀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 항상 있다는 것.]
: 참 거창하게도 써놨네요. 다들 이러신가요? 이제 와 보니 아직 제가 저런말을 하기엔 많이 부족한데 말이죠. 그래도 뭐 12명 남짓 후임들을 데리고 어떻게 여기서 살아가야할 지 고민은 많이 했었나봅니다.
이 당시에 거창하게 쓰기 병에 걸렸는 지 일기장에는 수많은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깨달음이 널려있네요. 이제와 읽어보니 제가 왜 화가 났었는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 지 떠올리기 너무 어렵네요. 분명히 저는 그런 글을 쓸 당시에 엄청난 것을 분노하거나 깨닫거나 반성했었는데 말이죠.
반면에,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적은 날의 일기를 읽어보면 제 기억의 한 편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 양식을 도우러 갔다가 너무 고생해서 한동안 김은 먹지도 않았던 기억, 하루종일 페인트를 까고 새로 칠했던 적, 냉장고에 얼려두었던 바나나가 없어진 것 등등... 쓸 당시에는 이런 걸 써둘 필요가 있나 싶었던 작은 일들이 선명하게 일기장에 남아 제가 어떤 사람이었는 지 가르쳐주고 있네요.
여러분의 일기장은 어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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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비교도대에 있었는데... 고참이 되니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습니다. 근무할때 시간이 정말 안가더라구요. 범듸님이 일기를 매일 쓰셨듯이 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잭햄의 알기쉬운 인물화인가... 거기에 날짜를 써놨는데 연습할때 잘 안되는 날은 그리기 싫다던지 욕을 써놓는 일도 많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