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시판
:: 이전 게시판
|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8/01/22 14:38
시대의 아픔과 함께 했던 80년대는 1987년이 정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직선제가 쟁취되었고 88 올림픽과 서태지 문화가 탄생하는 90년대로 바로 넘어가면서 언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새로운 기성세대로 편입되었습니다. 군부독재와 데모로 점철된 80년대 학생들은 시대와 함께 산화했고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 된 역할로 만족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 1987 영화는 추억 그 자체였습니다. 운명의 6.10 항쟁의 날이 밝았습니다. 이날 모든 학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진실규명과 호헌철폐 및 독재타도를 위한 동맹휴업을 선언했어요. 출정식을 갖고 출발하는데 참가인원이 너무 많아 중앙도서관 광장에 모두 집결이 어렵다고 하면서 각 대학별로 출정식을 했었던 것 같아요. 우리 학과 52명중에 45명은 나왔는데 엄청난 참가열기가 느껴졌습니다. 저 녀석은 여기 올 놈이 전혀 아닌데 하는 애들도 나왔으니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엄청 웃기더라고요. 총학에서는 회기역에서 경희대.외대와 함께 합류해 서울역으로 간다고 했는데 참가 인원이 너무 많아 지하철이 어렵다고 청량리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거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청량리에서 종로행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어떤 녀석이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니까 한명씩 한명씩 따라 불렀어요. 버스 승객들이 박수를 치길래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어요. 이런 환영을 받는 일이 벌어지다니 참 신기했어요. 마침 신설동로타리에서 신호대기 정차를 했는데 옆 버스도 학생들로 만원버스인데 같이 노래를 부르더군요. 무슨 일이 났나 구경하시던 보행자분들과 택시기사분들이 손을 흔들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경찰이 시위장소를 원천봉쇄해 종로에서 오도가도 못하다 거리를 점령하면서 시위가 시작되었어요. 그날 명동, 시청, 회현고가, 서울역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는데 우리는 종로에서 밀려나 시청쪽으로 이동하면서 구호를 외치면서 갔어요. 마침 점심시간이라 시민들이 많이 나와 구경들을 하는데 시청옆 코오롱빌딩에 넥타이 형님들이 박수쳐주고 같이 <호헌철폐 독재타도>구호 외쳐주는데 길가에 가게 아줌마들은 물까지 날라주니 다들 힘든 줄도 몰랐어요. 밤이 되니까 학생숫자는 줄고 경찰들에게 점점 밀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따라서 간 곳이 계원여고를 였고 여기 담을 넘어가니 명동성당이 나왔어요. 하필 운이 없게도 6.10 항쟁의 주역들이 끝까지 버티던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강제로 시위본부에 합류하게 되었네요. 아버지가 공무원이라 나때문에 짤리면 안되니까 탈출을 해야 했어요. 다행히 밤 10시쯤에 명동성당을 포위하던 경찰이 확성기로 방송을 했어요. 일반 학생들은 체포하지 않고 집으로 귀가시켜 줄테니까 나오라고 하더군요. 쭈삣쭈삣 눈치보며 일어나니 몇십명이 우르르 따라 나왔어요. 명동성당에서 중앙극장쪽으로 나오는 100미터 길을 학생 한명씩만 통과하도록 전경들이 줄을 좁혀 놓고 방패로 도열해 있었어요. 그 100미터를 나오면서 양편의 전경들에게 욕 들어가면서 머리 쥐어 박힌거만 해도 평생 당할 걸 이날 모두 경험했습니다. 다음 날이 밝았습니다. 평소 데모에 관심없던 애들은 이날 모두 빠졌습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종로로 나갔고 이날 부터는 명동성당에 고립된 애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구호도 생겨났어요.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면서 이한열 열사 이야기도 듣고 명동성당에서 끝까지 버티던 운동권학생들도 6.10항쟁의 지속력을 이끌어주었습니다. 일주일후 관철동 사거리에서 백골단에게 잡혔습니다. 얘네들에게 쫓겨 마지막에 랜드로버 매장앞에 구경중이던 일반인들 뒤에 숨었는데 어떤 여자애가 야속하게도 저를 손짓으로 가르켜서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어요. 닭장차에 끌려 올라갈때 한놈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더니 얼굴을 푹 숙이고 있는 제 입가 언저리에 최루탄 가루를 한 웅큼 먹였습니다. 지옥 맛!!! 종로경찰서에 굴비꾸러미처럼 엮어 바닥에 앉아있다가 취조를 받았는데 담당형사가 30cm 플라스틱자를 최대한 휘더니 빰을 여러번 때리는데 그 맛은 정말 눈물 찔끔흐르고 볼탱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얼얼해 집니다. 마지막으로는 공무원 아버지를 둔 놈이 이 짓한다고 몇대를 더 맞았습니다. 그러더니 담배 한가치 주면서 2일간만 고생하고 다신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힘차게 '네' 라고 대답했어요. 2일 후에 집에 왔습니다. 옥상으로 불려가 아버지한테 혼났어요.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5대 맞았는데 아버지한테 맞은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이한열열사의 추모식이 열리던 6월 말일까지 열심히 돌던지러 나갔는데 운이 좋게도 다시 연행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