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로는 온통 새카맣다. 나는 삽시간에 늙어 돌연 최후에 닿았다. 병장기가 누워있고, 군중기는 맥없이 밟힌다. 천지가 뒤집혀 섞인 광경에 시야는 점점 좁아진다. 점차 걷는 방향으로 걷게 되었으며, 어느 순간부터 들리는 소리라고는 늘어진 귓속을 맴도는 벌레울음소리뿐이다. 입가에서 꺼끌한 자갈의 맛과, 코끝에서 검붉은 흙의 향이 느껴진다. 텁텁하고 메마르다. 숨이 막힐 정도로 사위 모두가 나를 에워싸고 발걸음을 아등바등 부여잡는다. 잠시도 도망할 길 없는 그 악다구니 같은 현실 앞에 막상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한 순간의 절망과 매 순간의 후회뿐이다. 예비해 고르고 골라 가려앉았으되, 그러하다. 그러니 걸었다. 이제 남은 숨을 몰아 끝까지 걸어내야 했다. 겨울 산길은 고됐다. 현연하다. 멀리 까마귀 비명 같은 울음이 따른다.
"마씨오상 중 막내로 자가 유상이며 병서에 밝다고 합니다."
이적은 계속해서 말했다.
"이렇듯 재주가 뛰어나다 하니 좌장군께서 친히 불러 치하하고 주위를 바로 잡으시면 장차 일을 도모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좌장군 유비는 이적의 천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중앙과 지방의 결합이란 휘하에 직접 두는 것이 으레 상책이었고 세력을 키우기에 명망과 재주를 겸비한 인재란 더할 나위가 없었다. 유비는 얼마 간의 지시 끝에 곧 좌장군부로 마씨형제를 불러들였다. 유비는 서두르고 있었다.
"각설하면, 유기를 통한 명분이로군."
유비는 손바닥으로 턱을 괴고 손가락으로 귀를 두드리며 중얼거린다. 한의 좌장군이지만 여태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 군주다. 천하에 명사 중 곤궁한 이로 손꼽을 만한 인물이라 과연 면면이 거칠기 그지없다. 더군다나 계속해서 들썩이는 어깨며 몸짓이 초조한 모양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불현듯 타계한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도 어딘가 항상 급한 모양이었지. 기억나는 건 아버지의 얼굴보다도 등이다. 타인에게서 마주한 아버지란 새삼스럽다. 뭐가 그들을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었을까. 게다가 좌우도 없이 이런 독대라니, 얼마나 주위에 인물도 없이 홀로 외딴 것인가.
"예, 장군."
형은 유비의 작은 뇌까림에도 올곧게 대답한다. 굳이 대꾸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어쩌면 이 자리부터 잘못되었다. 유비의 부름은 충분히 예견됐다. 나의 반대에도 그저 웃던 형은 한번 만나보기나 하자 했다. 상대가 예를 다해 청하는데 거절함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니 어느 시절 공맹의 도를 논하는지 걱정된다. 바야흐로 전란의 시대다. 그런 것은 이미 서주에서 사라진 게 어제의 일이고, 동쪽의 손권을 찾아간 큰형으로부터 가타부타 소식이 없는 게 오늘의 일이다. 아무리 섬길 군주를 찾아 식솔간 최소한의 안위를 도모한다지만 결단코 유비는 아니다. 둘째형과 셋째형을 닥달해 넷째형을 더 말렸어야 했다. 시간낭비다. 고집불통 같으니. 큰형이 돌아온다면 기필코 배로 갚아줄 요량이다. 슬기로운 새는 나무를 가려앉는다 했거늘 검은 글자가 꼭 까마귀 꼴이라 허여멀건한 형의 책에는 쓰여 있지 않았던 모양이지. 그럼 책 좀 깨끗히 읽고 물려주던가. 큰형이 돌아오거든 꼭. 큰형이 돌아오걸랑. 큰형만 오면은…….
"유상은 정녕 내게 진언할 것이 없소?"
괜히 눈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탓에 되레 마음을 놓고 말았다. 헛기침을 하는 형을 보니 몇 차례 다시 물은 모양이다. 하지만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낮은 자세는 곧 도약의 전초다. 태연하게, 차분하게, 아무렇지 않다. 나는.
"송구합니다. 잠시 군략을 가다듬는다는 것이." "호오. 그게 뭐요."
유비가 흥미로워한다. 얼마나 다급하길래 표정조차 간수하지 못하는 건지, 역시 유비는 아니다.
"형주에 좌장군부를 세운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당장 군을 이끌 곳은 따로 있습니다." "북쪽을 말하오? 조조가 크게 패해 물러간 것은 맞으나……." "아니, 남쪽입니다." "남쪽이라니. 형남은 이미……." "형남사군은 본래 형주에 예속돼 있었으나 이는 무실한지 오래이고 상납도 속인채 각자도생이라 그 꾸밈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를 재차 복속하지 않으면 실정하여 스스로 화를 자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형사군을 복속하십시오."
나는 고개를 조아리는 모양으로 다시 유비를 살핀다. 통했는가 싶은지 머리를 주억거린다. 혹시나 했지만 다행이다. 제법 정세를 살피고 기획한 내용이다. 논리적으로 모나지 않았을 것이다. 검토도 수 차례 마쳤다. 구체적인 방안도 이미 여럿 준비해두었다. 다시 물으면 잠시 머금다 대답하면 될 터였다. 일차안을 일단 말할 것인가. 보강안을 말하고 강조안으로 써먹을 것인가. 아무래도 일차안을 먼저 말하는 것이…….
"알겠소. 유념하리다, 유상. 그렇다면 계상."
예상과 다른 전개다. 더 묻지 않으니 달리 대답할 일도 없어 머릿속 가득한 것들이 맴돌기 시작한다. 흩날리는 것들이 어지러워 유비와 형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도통 상관이 없었다. 이 곳을 꿰뚫어 살핀다 했건만 어느새 저만치 쫓겨나 있다. 이상한 기분이다. 불과 얼마 전 내 입을 떠난 말들이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는양 쉬이 흩어져 내린다. 괴이하다. 오색 단풍잎 같았던 그것이 이제는 온갖 낙엽이다. 이 세상 꽉꽉 뒤덮인 그것이 무겁고 버거워 내내 벙쪘다.
"이놈아. 공부는 헛했느냐. 어쩌자고 좌장군의 말을 그리 잘라? 예는 어디 두었더냐."
돌아가는 길에 형의 닥달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역시 대쪽 같은 군자시라 그런 게 맘에 걸리시는가.
"야. 내 말 듣고는 있어? 넌 옛날부터 꼭 그러더라. 대체 정신이 어딜 간 게야!"
버럭하는 모양새가 하루이틀은 내내 부러 시간내서라도 쫓아 떠들 모양새다. 집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그 때까지만 참고 듣는 시늉 정도면 족할 거였다. 분명 머지 않았을 텐데도. 집에 가는 길이란.
"군사중랑장을 뵙습니다."
뜻밖이었다. 예상과 또 다른 전개. 군사중랑장이라니, 그렇다면 저 사람이 그 소문의 와룡인가. 음……. 평범한데? 와룡이랍시고 단편적으로 무슨 비늘 붙은 사람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비유할 정도면 어지간히 자기애가 대단한 정신줄 놓은 사람일 텐데 어딜 봐도 그냥 평범하게 생겼는 걸. 아, 키는 좀 큰가.
"계상. 낯부끄럽습니다. 서로 편하게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허허, 그랬었지요. 하지만 이곳은 좌장군부가 아닙니까. 마땅히 군사중랑장께도 예를 다해야지요."
형이 제갈량과 안면이 있었던가. 아, 저번에 한동안 나가있더니 그 때였던 모양이다. 아닌가. 좀 더 전인가. 그건 둘째형인가. 잘 모르겠네. 엊그제 집에 있었던가……. 없었던가…….
"군사중랑장. 여기 제 미흡한 아우입니다. 유상, 인사드려라. 공명 선생이시다."
상황을 살필 여유도 없이 형은 인사를 종용했다. 형주의 저명한 인사니 좀 더 살피고 싶었는데, 시선이 내게 모아진다. 조금 거추장스럽다.
"마가 속입니다." "아직 철부지라 예를 모릅니다. 어여삐 봐주십시오."
덧붙이는 형이 밉쌀스럽다. 돌아가는 길에 분명 잔소리가 더 추가되겠다. 부모가 주신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소개할 일이 아니며 엄연히 자를 짓는데 제대로 소개하지 않으며 또 그 짧막한 소개는 무엇이느뇨……. 아아, 들려온다. 예 운운하는 책들을 몰래몰래 좀 내다팔아야겠다. 집에 가고 싶다. 빨리 둘의 대화가 끝났으면…….
"형남이면, 그걸로 천하삼분이 가능하겠소?"
돌연 제갈량과 눈이 마주쳤다.
"예?"
생경한 눈이다. 맥락 없는 말을 끼워 맞추는 눈.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는 가을 바람. 한겨울 단풍이다.
"공의 진의가 뭐요? 제왕의 도를 힐난하는 건가!"
양의가 얼굴을 붉히며 일갈하자 좌중이 차갑게 식었다. 보다 못한 장완이 말리자 양의는 더욱 더 날뛰기 시작했다. 마주한 유파도 피하지 않고 양의를 짜증스레 노려보다 눈을 흘겼다.
"제왕의 도에는 한계가 없어 곧 폐하의 뜻이 그 전부요. 그대는 감히 폐하를 능멸하시오?"
유파의 평소 행실을 아는 대신들은 표정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유파를 내려다보던 이엄조차 곁의 제갈량의 안색을 살피며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황제에게서 뺀질거리지 못해 안달이던 유파가 저런 말을 하고 있으니 정쟁이란 없던 충심도 생기게 하는 모양이었다. 제갈량은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좌중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속이 메스껍다. 못 볼 꼴을 계속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민다. 대체 이러고 있을 땐가 싶다. 일개 서생인 나도 이럴 진데, 승상 속이 어련할까. 대전은 그놈의 형주파와 익주파로 나뉘어 소위 걸맞는 꼴값을 하고 있다. 그래, 결정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불필요하지 않다. 또 결과를 준비하고 감당해낼 토대가 된다. 하지만 이건 지난한 길이다. 그들은 거리를 좁히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밀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해가 지자 밤이 길을 삼킨다. 목적지를 뒤바꾸고 있다. 이래서야 너무 멀다. 마냥 기다리기 힘겹다. 나서야 한다. 관망하다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다. 와룡은 이미 있다. 굳이 나까지는 필요치 않다.
"자, 잠시 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한 모양이다. 말을 더듬었는데 너무 목소리가 작아 들은 사람이 없다. 대전 내의 시선은 모조리 논박 중인 양의와 유파에게로 쏠려있다.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집에 가고 싶다.
"크흠."
옆에 있던 상랑이 헛기침을 했다. 일부 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하시고, 이 사람이 대신들께 올릴 말씀이 있답니다."
상랑의 말에 시선이 모인다.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소란스러웠던 장내가 더 어수선하다. 대전을 가득 채운 건 이 지리한 다툼 끝에 남은 정답 없는 공허다. 이쯤에서야 모두 안다. 여기서 필요한 건 필부의 패기다. 누군가의 바짓가랑이 사이라도 부여잡고 서슴없이 길 수 있는 자아다. 거창해서가, 잘나서가 아니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현연할 수 있다. 이미 있는 걸 그저 옮길 따름이다. 어차피 듣는 이는 듣고 귓등으로 흘릴 이는 흘릴 터다. 모두 붙잡을 수는 없다. 난 그 사이를 기어간다. 동오로의 진격은 분명 섣부른 결정이다. 단기간에 마치기 어렵고, 한계 역시 명확하다. 조위는 건재하고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황제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황제는 초조하다. 형제의 도라서가 아니다. 제왕의 도도 중요치 않다. 확신할 수 있다. 황제는 그저 서두르고 있을 뿐이다. 정립이 아니라 판도를 흔든다. 등을 보이고 나아가기 위함이다. 최선이 힘들다면 차선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악을 피해 차악을 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 놓고 떠든 모양으로, 어느새 눈 앞에는 승상만 남았다. 이엄은 끝끝내 돌아서기 전 욕을 했던 것 같다. 돌아가는 길은 쌀쌀하다. 승상부 한 구석 낙엽을 모아 태웠는지 어울리지 않게 타다 남은 외딴 모닥불이 보인다. 자칫 불이 번질까 자리하던 이도 떠나 쓸쓸하게 홀로 남은 검은 재가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내가 방을 나서자 누운 황제에게 다가가는 승상의 기척이 느껴진다. 스치는 가운데 승상의 안색이 황제보다 새파랗다.
"공명. 유상을 어찌 생각하오?" "예, 당대의 영재입니다."
형이 죽었다.
"그대가 지금 죽으면 누가 잇겠소?" "예, 유상일 것입니다."
형이 죽었다.
"아니오. 유상은 상념이 지나친 자요. 속이 복잡하고 다난한데 겉치레에 능하니 쉬이 곁을 주는 이도 아니오."
형이 죽었다.
"이런 이에게 큰 일을 맡겨 중용해서는 그 향방을 짐작키 어려울 것이오. 그러니 그대가 이를 살펴보시오."
형이 또 죽었다. 넷째형은 백미라 불리는 것을 꺼렸다. 천하에 뜻을 둔 것도 아니고, 일신의 영달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평안한 가정. 늘 무탈한 가족. 누군들 쉽게 얘기할 그것들을 뚜렷한 목표도 없이 제법 어렵지 않게 해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 보였다. 더불어 잔소리 들어줄 막내.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알고 있었다.
큰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석연찮고 두루뭉술했지만 이름 없는 도적은 도처에 즐비했다. 사람을 써 흉수를 수배하였으나 그마저도 별 진척이 없었다. 집안 온갖 서책이 무용했다. 그간의 명망이란 실체가 없었다. 지닌 군략이란 허망했고 두 손에 당장 쥘 수 있는 칼자루는 하찮기만 했다. 둘째형과 셋째형은 집안 단속과 장례 그리고 장래를 염두하기에 분주했다. 말을 잃은 넷째형 옆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걸 한답시고 골똘히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걸, 할 수 있을 걸 생각했다. 나는 차분했다. 슬프되 눈물은 나지 않았다. 선선히 눈에 밟히는 것을 담았다. 그 날은 밤새 눈이 감기지 않았다. 군사중랑장의 병력이 주변 도적을 토벌중이란 소식만 멀찍이 듣다 말았다. 이미 벌어진 일에 책안의 법률은 정리만을 도맡을 뿐이었다. 이릉에 불길이 솟던 날, 둘째형과 셋째형의 시신은 넷째형의 시신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사람 찾는 아수라장 속에 시신만이 가득했다. 신원을 확인하는 관리들의 목소리는 이어지는 악다구니에 묻혔다. 그곳엔 이름 모를 촌민들의 시신도 함께였다. 당장 형들의 시신을 마주하기란 몹시 어려움이 따랐다. 주저하던 찰나 문득 아는 얼굴 몇이 스친다. 나는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아는 면면을 허망하게 내려다보았다. 넷째형이 익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전송하던 마을 사람들이다. 언제고 셋째형에게 매번 신세를 진다며 인사 온 이는 형의 방에서 책이나 뒤적거리던 나와 마주치자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가곤 했다. 난 어색한 김에 마주 인사하고 방으로 돌어가기 일쑤였고 그 땐 그저 그런가 했다. 그의 시신 앞에서 얼마를 울었는지 모르겠는 아이가 스러진다. 그저 평안한 가정. 늘 무탈한 가족.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알고 있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그래, 그래 보인다.
남중으로 향하는 한의 군대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길다. 승상부에 남아있다 미처 못다한 말이 떠올라 말을 박찼다.
"참군입니다! 승상, 잠시 드릴 말씀이!"
끝에 가서는 거의 악을 썼다.
"유상이 걱정이 되는가 보군."
담담하게 다가오는 승상을 보며 무슨 말을 먼저 해야할지 몰랐다. 분명 알고 왔는데, 까무룩 잊었다.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은 언제나 형이었다.
"비록 함께 모의한 지 오래 되었으나, 지금이라도 좋은 계책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오."
승상은 익숙하게 일차안을 머금었다.
"아, 어. 예."
나도 모르게 더듬은 모양이다. 어깨가 들썩이고 다리가 휘청인다. 초조하다.
"남중은 그 지세가 멀고 험한 것을 믿고서 불복한 지 오래라, 오늘 격파하고 나면 내일 다시 반역할 것입니다. 지금 공께서 바야흐로 온 나라의 힘을 기울여 북벌을 하느라 강적을 맡고 계시니, 저들은 관리들의 형세가 안으로 텅빌 것을 알고서, 그 반역함이 또한 신속한 것입니다. 만약 저 무리들을 다 없애 후환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진 자의 마음이 아니며, 또한 창졸 간에 할 수도 없습니다. 무릇 용병의 도에는 마음을 공격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고 성을 공격하는 것을 하책으로 삼으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을 상책으로 치고 병사로 싸우는 것을 하책으로 여기니, 원컨대 공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복종시키십시오."
승상은 머리를 주억거린다.
"덧붙이건대, 북쪽으로 향할 군자는 남쪽에서 나올 것이고 치융, 강무하며 크게 군사를 일으킬 때를 기다리십시오. 이것이 곧 천하에 뜻을 뒀을 마씨오상의 최선입니다." "답이 되었네. 보강안은 도착해 진을 치고 일별이라도 기별하겠네."
대답하는 승상의 선선한 표정에 난 아무 말 없이 우두커니 바라볼 따름이다.
"에둘러 청하건대, 저들의 정예가 사뭇 염려되니 평지보다는 산지에 진을 펴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왕평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훗날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저들이 아래에서 수로를 막으면 장래 대처하기 어렵습니다."
압니다.
"나는 아직 바짓가랑이 사이를 기는 중입니다." "지난 배수진은 분명 별동하는 차선이 있었고, 그간 승상의 진도 지대가 높되 용수로를 지키기 어렵지 않은 곳을 최선으로 가렸습니다. 이를 늘 살피고 제안한 것도 공이 아닙니까."
누군들 압니다.
"공의 진의가 뭡니까. 나는 어느 한 쪽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장군께서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건흥 6년, 제갈량이 군대를 출정시켜 기산으로 향했는데 당시 숙장인 위연, 오일 등이 있어 논자들은 마땅히 그들을 선봉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으나, 제갈량은 뭇 의견을 거스르고 마속을 발탁하여 대군을 통솔하여 선두에 서게 하였다.
"명공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보아주시고, 저도 명공을 아버지처럼 보았으니, 원컨대 곤을 죽여 우를 흥하게 했던 의리를 깊게 하시고, 여기에서 평생의 교류가 훼손되지 않게 하십시오. 저는 죽더라도 황천에 한이 없을 것입니다."
위의 장수 장합과 가정에서 싸웠으나, 장합에게 격파되고 병사들은 흩어졌다.
"덧붙이건대, 오늘 한은 반드시 높은 곳을 가려 앉아 낮은 자세로 엎드려야 할 것입니다."
제갈량은 진군하려 해도 거점이 될 곳이 없어 군대를 퇴각시켜 한중으로 돌아왔다.
"익주파의 권신들은 장휴와 이성을 선두로 이미 제 병력을 모두 내어 공을 앞다투니 필시 도망하지 못할 것입니다. 후사는 왕평 장군에게 맡겼으니 중히 쓰십시오. 그는 항장이니 당파와 관계없이 유용할 것입니다. 모든 입을 막을 순 없겠으나 다행히 제 뜻을 잇는 이가 십만은 족히 넘으니 무사히 이들의 생환을 명공께서 살피시면 큰 흠결 없이 무마하여 장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황습은 심성이 유약하고 저와 같아 의심이 많으니 쉽게 병력을 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에 죄를 물어 그 병사를 박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직후에 이들은 감히 명공을 거스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저 명공께서는 뜻을 품고 도약하여 최후에 자리하소서."
마속은 하옥되어 죽었다. 제갈량이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마량이 죽을 때 나이는 36세였고, 마속은 39세였다.
"크흠."
옆에 있던 상랑이 헛기침을 했다.
"이제 좀 정신이 드시오?"
상랑은 내 팔을 어깨에 두르고, 발에 채이는 타고 남은 재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현실로 걸어야 하오. 내내 길 것이오. 가을 단풍은 절망과 후회 속에 겨울을 버티지 못할 것이오." "병이는 무탈합니까." "하! 그 녀석은 아주 무탈할 것이오. 이 와중에 조카 안위가 걱정이시오?"
그저 평안한 가정. 늘 무탈한 가족. 어느 쪽이든 머지 않다. 태연하게, 차분하게, 아무렇지 않다. 나는. 일별이라도 등을 보이고 섰다.
한은 오늘 반드시 패하여야만 했다. 상랑은 이해하고 있다.
"그대의 도는 이와 맞지 않으니, 차라리 속세를 떠나 은거하시오. 내가 돕겠소. 그대는 너무 급하오." "기다리기 어렵습니다. 언제쯤 천하가 하나가 되겠습니까." "당장은 어려운 일입니다. 차근차근 해나가야 하니, 필부는 그저 기다릴 밖에요." "그럼 갈려나가는 건, 또 누구랍니까."
상랑은 말없이 웃었다. 그는 이해하고 있다.
"승상부의 병력이 주변을 수색하는 모양이오."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선선하다. 바람이 불어온다.
가을 바람은 이미 겨울도 견뎌낼 것이다. 이윽고, 봄이 오면 와룡이 일어난다. 평범하게, 비늘이라도 단 모양으로.
가깝다.
장완이 후에 한중으로 가서, 제갈량에게 이르길,
"옛날 초나라가 성득신을 죽이자 그런 연후에 진문공이 기뻐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않았는데, 지모 있는 선비를 죽이는 것이 어찌 후회되지 않겠습니까?"
라 했다.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손무가 능히 천하에서 제압하여 승리했던 까닭은, 법을 운용하는데 밝았기 때문이오. 양간이 법을 어지럽히자 위강이 그의 노복을 죽였소. 사해가 분열되고 군대의 교전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만약 다시 법을 폐한다면, 무얼 써서 적을 토벌하겠소?"
라 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 책안의 법률은 정리만을 도맡을 뿐이었다. 나는 까무룩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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