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금은 PGR이란 한 사이트에서만 띄엄띄엄 글을 써내려가는 나이지만, 소싯적에는 여러가지 다른 사이트에서 다른 주제를 갖고 글을 썼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기에 그럴 수도 있었지만 아마도 지금 33살의 나보다 훨씬 더 감수성이 풍부했었기에 그렇다고 본다. 은연 중엔 아직까지도 내게 그 때 그시절의 감수성이 남아있기를 바라지만, 키보드 자판 위에 굳은 채 멈추지 않는 손가락을 보면 야속해지기까지 한다.
5년전의 나는 인터넷에서의 내 행적을 모조리 지우고자 했다. 8년 차를 맞이한 군생활을 하고 있던 내게 큰 변화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그 기회는 나로 하여금 외부와 완벽한 단절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던 그때의 내게 주어진, 어쩌면 인생에 단 한번만 찾아올 기회. 의아하게도 그 기회는 너무나도 적절한 타이밍에 내게 찾아왔다. 글로 쓰기엔 쑥스러우나 그 당시의 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자랑스러운 27살의 나. 로지컬, 피지컬 두 방면에서 나는 분명 엄청난 인재라고 스스로도 자부할만한 사람이었다. 이런 내게 찾아온 기회는, 범인(凡人)의 상식 밖에 위치한 곳에서부터 온 것이었다.
루머로서만 존재하던 군대 내의 특수한 조직. 어쩌면 영화에서나 볼 듯한 그런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 진정한 디테일은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밝힐 수 없는 그런 곳이지만,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눈치를 챘을까? 하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밝힐 수 없는 이곳은 그런 눈치의 범위 밖에 존재한 곳이라고 감히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당연스레, 그리고 호기롭게 그 기회를 받아들였고 그 길로 절차를 밟아 "지명을 밝힐 수 없는 곳"으로 향했다. 의미없는 오리엔테이션과 허울뿐인 기초체력 테스트가 끝나고 나를 비롯한 13명의 후보생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문이 닫히고, 방금전까지 웃으며 설명하던 이른바 "교관"의 표정이 변했다. 장난기가 싹 가신 얼굴에 실내의 공기는 삽시간에 바뀌었다. 을씨년스러운 가을 날씨가 가득했던 그 "훈련소"의 작은 실내에서, 나를 비롯한 13명의 후보생들은 엄습한 긴장감에 숨을 멈추었고, 그중에서도 나는 마음 한구석에 미약한 불안감마저 느꼈던 것 같다. 갖고온 물건들을 차례로 반납하고 그들이 제공한 훈련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모든 후보생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고장이 나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움직임조차 없던 그 교관의 눈빛 아래서 나는 그제서야 담배 생각이 절실해질 정도로 숨이 막혔던 것 같다.
각 훈련과정도, 어떠한 훈련을 했는지도,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조차 아마 내가 죽기 전에는 못 밝히지 싶다.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13명 중에서 7번째 탈락자였다는 것이다. 글로 쓰는 것조차, 아직까진 가슴 한켠이 아릴 정도의 결과. 자만심에 충만해 하늘 높을 줄 모르던 내 콧대를 산산히 부숴버린 순간이었다.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편에서 나는 사람들이 자고있는 틈을 타 담요를 뒤집어 쓰고 울었다. 문제없이 통과할 것이고, 결국엔 내가 선택될 것이라고 믿었었다. 장단점이 뚜렷한 후보생들과 그러한 그들 중에서 내가 유독 빛난다고 믿었었다. 을의 위치인 후보생이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존재를 밝힐 수 없는 그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나는 생각했었다. 시시해보이기까지 한 난이도를 지닌 모든 훈련을 최상의 성적으로 수료하면서 나는 "그 곳"까지 틀림없이 누구보다 가까이 있었다. 작디작은 그 실수 하나만 아니었다면.
하늘이 제일 먼저 보였다. 여러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웅성대는 소리는 나중이었다. 한번의 잘못된 발디딤으로 인해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편리하게도 신은, 내게서 모든 것을 그 훈련소의 가장 높은 곳에서 한번에 앗아간 것이었다. 의료반이 도착해서 점검한 내 허리는 더이상 훈련을 지속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그 순간에 나는 탈락의 쓴잔을 마시게 되었다. 작열하는 듯한 허리의 통증보다 그들이 내게 미안하지만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말한 것에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품위있고 고상한 척을 다했던 27살의 잘났던 나는 그 자리에서 꼴사납게 끅끅대며 울었고 교관은 내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고 나를 떠났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완성까지 겨우 몇걸음만 남겨뒀었던 나는 그때의 망가진 허리를 갖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성공하지 못한 도전에서 오는 무력감과 패배감으로 점철된 마음의 상흔은 아마 허리가 고쳐진다해도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될때까진 무엇이든 도전해보자던 나의 20대의 자신감에 찼던 의지가, 이제는 그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덤이다.
수많은 주변의 도움과 나 개인의 노력 끝에 패배의 트라우마에서 겨우겨우 벗아난 지는 별로 얼마 되지않았다. 있을 법한 일들을 가정해보는 상상 속에서도 나는 그때의 다른 결과를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다만 이제는 눈물보다는 쓴웃음과 헛웃음으로 끝을 맺을 뿐.
란체스터의 법칙에 따르면 공격력은 무기의 질과 무기의 숫자의 곱이라고 한다. 가끔 생각컨데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찌보면 개인의 노력과 운의 곱이 성사를 결정짓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정말 운이나 신의 가호같은 것을 지독히도 믿지않는 나이지만 그때의 일만큼은 내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하는 수 없이 운의 영역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내 모습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약해지는 반증인 것일까, 아니면 그 상처를 애써 덮어보려는 내 발악인 것일까.
에고이스트(Egoist)라는 말에 걸맞는 20대의 콧대높던 나를 지나고, 30대로 접어든 나는 이제 내 개인의 영달보다는 내 곁에 있는 사람과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만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돌고 돌아 첫사랑과의 성공적인 재회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들려진 발톱 아래 속살마냥 한없이 예민한 그때의 상처조차도 어루만져주고 같이 눈물 흘려주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 것에 나는 감사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쩌면 내 인생은 그곳과 그녀의 기로에서 그녀로 향하는 길을 나도 모르게 택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을 해보기까지 한다.
진중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어째 이 글을 써내려가는 것이 힘들어 슬슬 마침표를 찍을까싶다. 글을 한동안 안 써보다가 다시 써보려니 키보드 자판 위의 손가락이 뻣뻣하게 굳은 것이 우습기까지 하다. 이렇게 써내려간 글에 담긴 내 가정(Hypothesis)를 누군가는 알아차리고 내 고충을 이해해 주었을까싶지만 아마도 내가 2004년부터 애용한 이곳의 사람들이라면 대강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아직까지 내가 이글에 어떠한 가정을 담아내었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해를 돕기 위한 마지막 한 문장을 바친다.
"이 글은 58자의 글자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장을 갖고 각 한글자로 문장을 시작하여 한편의 작품이 완성될 수 있다란 가정하에 만들어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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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흑흑 ㅠㅠ
작품은 아닙니다..을과 를을 최대한 배제하려다보니 작품이란 단어를 쓰게되었지만 작품이란 이름에 걸맞는 퀄리티는 아니네요..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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