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에서 다키스트 아워 관련 글을 보고나니 간단한 소개도 괜찮겠다 싶어서 한 번 써 봅니다.
* 스포일러는 없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시점과 끝이나는 시점 정도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건너뛰어주세요.일단 두 영화의 (개인적 의견을 포함한) 공통점이 좀 있는데,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습니다.
- 영화 자체는 막 재밌고 그렇진 않습니다. 특히 후반부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 멀티플렉스 놈들이 개봉을 더럽게 했습니다. 개봉 주부터 아주 조조랑 심야만 걸질 않나 이러고도 개봉했다고 생색은...
다키스트 아워
윈스턴 처칠은 영국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죠. 매우 장수를 한 인물인데다 1,2차대전 전시내각에 모두 들어갔던 인물이기도 하고, 2차대전 종전 직전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가 이후에 다시 총리가 되기도 하는 등 윈스턴 처칠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는 영화라는 한정적 시간을 가진 매체로 그려내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건지 이 영화는 처칠의 생애를 그리기 보다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 딱 한 달의 시기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이 총리가 되기 직전부터 시작해서 다이나모 작전(덩케르크 철수작전)이 끝난 직후 까지 영화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딱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여준 셈이죠. 참고로 처칠이 총리가 된 것이 1940년 5월 10일이고 다이나모 작전이 끝난 것이 1940년 6월 4일 입니다. 뭐, 역사에 대해서는 저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언급은 넘어가도록 하고, 간략히 말하면 전시에 갑자기 총리로 임명이 된 후 독일과의 협상을 하느냐, 아니면 물러서지 않고 싸움을 하느냐의 기로에서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중에 하나였을 수 있는 결정을 한 시기를 영화화 한 것이죠. 나치독일이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던 시기이긴 하지만 처칠에게 극단적으로 시선이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전쟁을하는 장면 자체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두어차례 짧은 시간동안 탑뷰로 폭격이 일어나는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이 장면들이 매우 기가막히게 연출되긴 했습니다.
처칠의 고뇌와 연설문 작성, 그리고 연설을 하는 모습이 상영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조 라이트 감독의 편집능력에 힘입어 전체적으로는 영화가 지루하다거나 하진 않습니다. 특히 두 차례의 연설장면(총리 임명 후 연설, 다이나모 작전 후 연설)은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접어들었을 때, 사실상 누가봐도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알고있을 시점에 와서 영화가 조금 늘어지기도 하고, 실제 역사에 없었던 작위적인 장면이 들어가기도 하면서 초중반부에 비해 힘이 좀 떨어지긴 합니다. 물론 이 부분은 개인적인 의견이긴 해요. 후기들을 살펴보면 제가 작위적이라고 말했던 장면이 매우 좋았다고 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감독의 깔끔한 연출도 연출이지만 역시 이 영화의 장점은 뭐니뭐니 해도 게리 올드만의 연기입니다. 실제 인물에 맞춰 분상을 상당히 많이 한 상태로 연기를 펼치기 때문에 아마 큰 정보 없이 본다면 게리 올드만인지 모르실 분들도 계실 정도일겁니다. 그런데 연기가 정말 대단한게, 저 배우가 게리 올드만이라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 봐도 중간중간 처칠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가 누군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골든 글로브를 이미 수상하기도 했고, 아카데미에서도 유력한 후보로 점쳐지고 있기도 하죠. 제가 다른 네 편의 영화를 못 봐서 확정적으로 말은 못하겠지만 이 정도면 언제 개봉했어도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았습니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두 명 정도를 이야기 하자면, 먼저 릴리 제임스는 어울릴까 살짝 걱정하긴 했었는데 이질감 없이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조지 6세를 연기한 벤 멘델슨인데, <로그 원>의 '오슨 크레닉'이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존 대거트' 역할을 했던 배우입니다. 분장이 좀 가미됐겠지만 실제 조지 6세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가 실존 인물과 외형적으로는 별로 닮지 않았었는데 이 영화의 조지 6세는 정말 많이 닮았습니다. 물론 연기도 좋았고요.
재밌는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추천하기 쉽진 않을 영화이긴 한데 게리 올드만을 좋아하신다면 후회없이 볼 만한 영화입니다. <덩케르크>를 보고나서 다이나모 작전에 관심이 생긴 분들도 보면 괜찮을 영화입니다. 그 작전을 결정했던 사람들의 고민과 급박했던 상황이 잘 그려져 있거든요. 사실 연출도 깔끔한데다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해서 적절하게 편집만 한다면 공중에서의 한시간, 바다에서의 하루, 방파제에서의 일주일과 함께 웨스트민스터에서의 한 달로 함께 붙여놓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두 영화의 마지막이 처칠 본인의 목소리와 귀환병 토미의 목소리이긴 하지만 공통된 텍스트로 끝나기도 하고요.
올 더 머니
리들리 스콧 옹의 신작이죠. 일단 케빈 스페이시의 직격탄을 맞았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 중 하나인 폴 게티 역할을 맡아서 예고편까지 나온 상황에서 그런 일이 터져버려서 매우 짧은 기간동안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함께 재촬영을 거친 영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재촬영 했다는 느낌을 하나도 받을 수가 없어서 아마 사전 정보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급박한 재촬영이 있었다고는 생각도 못 할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단시간에 그런 연기를 보여주신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비롯 함께 연기한 미쉘 윌리암스도 대단하고 그걸 다 지휘해 낸 리들리 스콧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최근에 될 수 있으면 영화 예고편들을 안보려 노력하는 편이라서 이 영화도 예고편을 전혀 못봤었기 때문에 케빈 스페이시가 나온 초기 예고편도 못봤었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그 예고편들을 찾아보니 배역 자체도 케빈 스페이시 보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확인은 못해봤지만 감독이 원래 크리스토퍼 플러머를 생각했었는데 제작사 소니측에서 티켓파워를 고려해 케빈 스페이시를 주장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아무튼 영화를 보고나서 이 감독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여러가지 방면에서 실망이 컸었지만요.
사실 이 영화를 본 이유의 95%는 미쉘 윌리암스인데, 역시나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 분은 뭔가 좀 우울하거나 힘든 상황에 닥친 역할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제대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게 <셔터 아일랜드> 였고, 출연작들 중에 참 좋아하는 영화들이 <블루 발렌타인>과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이다보니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긴 하네요. 이번 영화에서도 쉽지않을 연기를 참 잘 해 주고 있습니다. 확실히 믿고 봐도 될 배우인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미쉘 윌리엄스 둘 모두 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둘 다 수상은 못했지만요. 아,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도 후보로 올라와있는 상태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한계가 있었을 수 밖에 없긴 한데 이 영화도 개인적으로 <다키스트 아워>와 마찬가지로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긴장감도 좀 떨어지고 살짝 지루해지기도 합니다. 아마 실제 사건이 어떤지 아시는 분들은 더 그렇게 느끼실거예요. 그래도 역사상의 대갑부였던 J. 폴 게티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보는 재미도 있고 두 주연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마치 자신이 위대한 피를 이어온 것 처럼 여기는 재벌 '1세'의 모습이 최근 국내에서 인기가 좋은 드라마인 "황금빛 내 인생"에 나오는 회장님의 모습과 너무 비슷해서 씁쓸하면서도 웃기긴 하더군요.
아무튼 이 영화 역시 재미 측면에서 추천해달라고하면 아마 선뜻 추천 못 할 것 같긴 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연출도 연기도 다 좋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좋은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보고싶으신 분들에게는 추천할 수 있는데 상영관도 너무 없고 상영회차도 정말 적네요.
* 마크 월버그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좀 안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