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전, 뭐하는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부부가 일 년 동안 핀란드에서 살았다는 책을 읽은 후 아내는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승낙했다. 왜냐면 남편들이란 대체로 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아내가 처음 세운 계획은 그 책처럼 핀란드에서 반 년 동안 사는 것이었다. 시간이 몇 년이나 흐르는 동안 그 계획은 점차 축소되어 갔고 동시에 줄어든 만큼 구체성을 띄어갔다. 핀란드는 태국이 되었다가 또다시 제주도로 변했고, 반년은 한 달을 거쳐 결국 보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주도 보름살기가 결정되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아니었지만, 계획이 확정될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미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전국적인 유행을 타다가 한물이 간 후였다. 무수한 인간들이 제주도에서 살다 왔고, 그로부터 비롯된 갖가지 문제점들이 이미 언론을 통해 낱낱이 흩뿌려졌다. 그렇기에 제주도 보름 살기는 너무나도 흔해빠진 나머지 그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을 낡은 주제가 된 지 오래였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유행에 극히 둔감한 편이기에 둘 다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계획되었던 육아휴직을 냈다. 휴직을 내면서 처음 마음먹었던 여러 가지 계획들은 삼십년 전에 내가 세웠던 방학시간표처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고, 나는 근면하고도 착실하게 매일을 게으름으로 채웠다. 그렇게 꾸준히 시간을 낭비하다 보니 어느덧 계획되었던 제주도 보름 살기 날짜가 다가왔고 나는 생각했다. 인간적으로 반 년 가까이 게으름을 피웠으면 이제는 조금 성실한 일을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고. 예컨대 한 보름쯤은 하루도 빼 놓지 않고 매일 글을 쓴다든지.
그런 까닭으로 이 연재는 시작되었다.
2019.5.2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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